사는 이야기

닭 이야기

맑은 바람 2012. 7. 9. 18:31

 

 

初伏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바야흐로 개와 닭들의 수난시대가 임박했다.

 

나는 원래 닭과 계란을 좋아해서 일 년 내내 수시로 먹는다.

터키여행을 다녀온 후로는 아예 매일 아침 토마토, 요구르트와 함께 계란을 한 알씩 꼭 먹는다.

점심이나 저녁 때 냉면이라도 먹게 되면 또 계란을 삶는다.

 

옛날엔 소풍 때 단골 메뉴였고 장거리 여행을 할 때도 삶은 달걀로 한 끼 식사를 대신했다.

한번은 앉은 자리에서 6알을 먹었더니 입안에서 닭 똥내가 나더라.

 

평소 집에서는 닭의 내장을 드러낸 뱃속에 찹쌀과 마늘을 듬뿍 넣고 고아서 소금 간해서 먹는다.

살이 토실토실 찌는 기분이 든다.

 

더운 여름엔 친구들과 어울려 종종 통닭집을 찾는다.

바삭한 닭튀김과 시원한 생맥주 한 잔이면 행복 만땅-

 

얼마 전부터 무릎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닭의 콜라겐 성분이 관절에 좋다고 해서 닭발을 사다가 尾蔘

넣고 고은 후 믹서기에 뼈째 갈아서 걸러 먹는다.

 

그런데 며칠 전 신문 한 귀퉁이에서 기업형 양계장의 닭 이야기를 읽었다.

양계장 닭은 어릴 적에 부리를 생으로 잘라버리고, 평생 A4용지 만한 공간에서 지내는데 너무 좁아

몸을 이리저리 돌리지도 못하고 앉을 수도 없다. 선 채로 알을 낳고 배설을 한다.

위층에서 떨어지는 다른 닭들의 배설물로 인해 점차로 눈이 멀고 깃털도 다 빠진다.

토종닭들이 평생 12~24개의 알을 낳는데 공장의 닭들은 평생 250~280개의 알을 낳기 때문에 엉덩이가

빨갛게 퉁퉁 부어 있다고 한다.

 

닭들이 잠 못 들게 밤새도록 불 밝힌 양계장-

죽은 후에나 벗어나올 그 숨 막히는 공간에서 눈이 먼 채로 알을 낳고 있는 닭들-

우리의 味覺을 즐겁게 하고 몸을 이롭게(?) 하기 위해 인간이 상상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사육되고

죽어가는 동물이 非但 닭뿐이랴!

 

양계장의 닭들이 눈에 선하면서 가슴이 답답해 온다.

그리고 말 할 수 없이 미안하고 죄스럽다.

惻隱之心이 깊어지는 날 나는 어느 새 菜食主義者가 되어 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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