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동해중학교 옛날 제자들에게

맑은 바람 2012. 12. 22. 10:16

동해중학교 옛날 제자들에게

 

뭉클함이 밀려와 어디서부터 말의 실마리를 꺼내야 할지--

1970년 내 나이 스물세 살 때 만난 풋풋한 소년소녀들이  오십 중반의 장년들로 바뀌어 있으니

막상 만나서 그 옛날의 얼굴을 찾아내려면 한참 걸리겠구나!!

 

지금 생각하면 꿈같은 시절이었다.

새로 부임하던 날,  내 서울말이 귀에 설고 이상해서인지 킥킥거리며 웃기만 하던 아이들-

나는 또 경상도 사투리를 잘 알아듣지 못해 어리둥절했지.

 

봄에 가정방문을 다니느라고 해병대 트럭도 많이 타고

한두 시간 이상 걸어서 학생들 집을 방문하면 부모님은 안계시고 할머니가 맞아주시며

서울 시약시 왔느냐?”고 반겨주시며 내놓는 사이다에 배가 불렀다.

저만치 소를 끌고 오던 아이가 선생님을 보고는 부끄러웠는지 소 뒤로 숨어 모습을 보여 주지 않고-

 

봄날 수업 중에 갑자기 앞문이 드르륵 열리며 진흙 묻은 장화를 신은 아버지가 아들 이름을 크게 부르며

얼른 나오거라.“하고 데려가시던 일(일손이 딸려서 아들을 데리러 오신 거라 생각)

장마로 운동장에 물이 가득 고였을 때 몇몇의 사내아이들이 풍금을 옮기느라 기우뚱기우뚱 할 때면

저걸 물속에 빠뜨리면 어쩌나 간이 오그라들기도 하고-

여름방학이 가까워오면 <해양훈련>시간에 수영복들을 갈아입고 바닷물 속으로 텀벙텀벙 뛰어 들어가는

모습들이 선하다.

 

서울로 올라온 뒤에도 <1학년 2반 담임> 반이었던 아이들과 몇몇의 남학생들과 한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다.

 

영기, 필순이, 순득이, 용담이, 필선이, 병필이, 순옥이, 원기, 정희, 달복이,

택만이, 용근이, 영희, 남용이, 금순이, 임석이, 순자, 영숙이, 국희, 귀호,

영남이, 귀순이, 정화, 정녀--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들 살고 있는지-- 

                               학급아이들과

 

                                  이인숙선생님반 아이들과

 

                             여름방학을 앞두고 <해양훈련>

 

이태우 교감 선생님도 뵙고 싶고 이인숙 선생님을 꼭 한번 만나고 싶어 수소문을 해보았으나

연락이 안 됐다.

몇 해 전 동해중학교가 아직 그대로 있을까 궁금해서 찾아가 보았더니 솔숲은 그대로인데

학교는 온 데 간 데 없고 <동해정보고등학교>만 있더구나. 桑田碧海를 실감했단다.

내 후임으로 그곳에 내려갔던 민송자 선생님은 지금도 한 달에 몇 번씩 만나고 있다.

그분 夫君께서도 <동해중학교>에 근무하셨다던데--

 

얼마 전 이남용군과 문자연락을 한두 번 주고받았는데 이번에 손인목군이 내 블로그에 들어와

소식을 주고받게 되었지.

살아가면서 이런 邂逅야말로 사는 기쁨이 아닌가 생각되네.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속 깊은 친구  (0) 2013.01.06
명의를 찾아서-만성 구내염  (0) 2012.12.29
"Farewell~ until we meet again."  (0) 2012.12.19
<결혼의 매력이란 外觀 뒤의 미묘한 빛깔>  (0) 2012.11.16
바람 몹시 불던 날  (0) 2012.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