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음의 나날처럼 맑고 눈부신 가을날이었다.
二年餘의 방황과 엇갈림의 연속 끝에 우리 다시 만난 날이.
햇살 부서져 내리는 강물에 잊어도 좋은 일들일랑 모두 흘려보내고 전격적으로 결혼을 선언,
풍선만큼이나 부풀었던 날들이 엊그제 같은데 이 가을 우린 또 하나의 식구를 얻었다.
친지들의 축복 속에 태어난 새 생명 앞에, 그러나 우린 좀 묘한 감정을 체험한다.
자유를 謳歌하며 훨훨 날아다니던 시절과의 영원한 결별을 의미하는 존재가 조금은 짐스러운 것이다.
굴레를 의식하는 날부터 결혼생활의 수레바퀴는 서서히 속도를 더해가고 부부는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더욱 견고하게 쌓기 시작하는 것인가 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직장이나 윗사람과의 모임에서 言行을 삼가고 퍽이나 신중해진 이들이 자칫
未婚者들의 눈에 소심한 것으로 비춰지곤 한다. 그런 때 특히 결혼생활에 관심이 많은 나이든 총각처녀들은,
결혼이란 얼마나 단조롭고 따분한 생활에로의 投身이냐 통탄하며 자신들이야말로 홀로 한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임을 은근히 다행으로 여기는 눈치다.
그러나 이들은 짐짓 그 외관 뒤에 있는 ‘미묘한 빛깔’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앙드레 모로아는 이를 결혼이 제공하는 가장 매력있는 것이라 했다.
2월 어느 날, 결혼 후 처음으로 우린 一泊二日의 여행을 떠났다.
차분히 계획을 세워 놓았던 것도 아니어서 여러 가지로 未備된 상태에서의 출발이었지만 남행열차에 몸을
실은 순간 그렇게도 홀가분하고, 가벼운 흥분마저 억제할 수 없었다.
정말이지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새로운 생활에 길들여지는 동안 성격, 생활 습관 등의 차이에서 오는 심심치
않은 마찰로 심신이 지쳐가고 있었다.
결혼 전 , 무척이나 쏘다니길 좋아해서 휴일이면 으레 등산복 차림으로 친구들과 어울려 여행길에 오르곤 했다.
먼 곳으로의 여행을 떠나온 날, 밤이면 좁은 방에 빠듯이 들어앉아 미래의 부푼 꿈 얘기로 시간가는 줄 모르곤
했었는데--
이제 그 旅窓에서 또 다른 미래를 엮게 된 것이다.
다시 新房을 차리듯 신비로운 客舍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고 여수도자들의 道場으로 유명한 山寺(수덕사)를
향했다. 싸늘한 아침 공기가 볼에 차가왔으나 한 번의 심호흡은 폐부 깊숙이 상쾌한 기분을 전해 주었다.
매일을 마주해 온 사람이건만 객지에서의 하루는 그 몸짓 그 언어에 新鮮한 느낌을 더해 준다.
잿빛 하늘 아래 드리운 裸木의 앙상한 가지마저 훈훈한 숨결을 토해내는 듯, 우리를 둘러싼 자연의
아늑함이 전해져 왔다.
쉬엄쉬엄 걸어 닿은 절간에서 한 모금 약수로 목을 추기고 여승들의 거처로 발을 옮겼다.
요사체 앞 너른 뜰엔 따사론 햇살이 아른거리는데 여승 하나 빈 마당을 거닐고 있었다.
저기 백 년 뒤에 涅槃의 세계가 열린다 해도 저 숨 막힐 정적 속에서 인고의 삶을 사는 젊음에
그저 敬遠의 念을 품는 마음은 俗人의 경박한 생각일까?
사바세계의 우린 사랑하고 사랑받고 사는 즐거움의 가치를 너무도 잘 안다.
그러기에 애정을 주고받을 이가 곁에 있는 현재야말로 과거도 미래도 그 자리를 양보해야 할 가장
중요한 시점인 것이다.
귀로의 복잡한 차편, 달랑거리는 주머니 사정으로 잠시 신경을 곤두세웠다하여도
이 여행이 준 값진 시간들 앞에서 어찌 미소 짓지 않으랴.
나는 달리는 車窓에서 다시 모로아의 다른 구절을 외어본다.
“힘껏 사랑하는 사람은 필요하다면 다시 생활을 새롭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라는--
(1975 三星電氣 社報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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