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카드(어르신 교통카드)>가 나왔다.
-여보 나 교통카드가 나왔는데 오늘 좀 써먹어야지?
-그러지, 뭐
낙원3가 4층, 허리우드 실버영화관부터 갔다.
<대장 부리바>를 보았다.
꽃미남이 대세인 요즘 영화와는 달리, 남자는 정말 남자답게 용맹하고 싸움 잘하고 몸이 곧 무기고
여자는 더할 나위 없이 청순하고 아름답고, 꽃잎 위에 이슬 같은 눈물이 고운 얼굴에 그렁그렁하고--
실버들 비위에 딱 들어맞는 영화다.
영화가 끝나면 또 근방에서 割引價에 먹을 수 있는 음식점과 찻집을 매회 상영 때마다 극장사장님이
일러준다. 가 본 적은 없지만--
제기동까지 지하철을 타려고 <종로 3가역>으로 들어갔다.
무슨 군중집회라도 있는 줄 알았다. 통로에 거무죽죽한 외투부대가 빼곡하다.
바깥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니 안으로 피신(?)들을 한 모양이다.
불루카드만 있으면 지하세계를 주름잡고 다닐 수 있으니 거기서 시간들을 보내는가 보다.
나와서 혼자 돌아다니는 시간만큼은 내 세상이다.
바둑 두는 곳에 한 무리, 마이크도 없이 즉석연설하는 웅변가 옆에 또 한 무리,
한켠에선 어수룩한 노인네들 주머니돈 노리는 야바위꾼들도 노인들 넋을 뺏느라 여념이 없다.
제기동에서 내려 출구 쪽으로 간다.
카드를 대니 찌찍- 두 번 소리나는 게 좀 창피하기도 하고 좋기도 하다.
‘늙은이’라고 自他가 공인하게 된 게 속상하고 창피하다. 공짜는 좋으면서--
경동시장은 오늘도 人山人海다.
물론 대낮이니까 젊은 사람들을 보기 어렵지만 여기도 실버천지다.
한약재를 끓여서 한 컵씩 주는 곳은 노인들이 長蛇陣을 쳤다.
추운날씨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차를 마시는 걸 보니 그리로 가고 싶었으나
그냥 돌아선다.
눈을 밝게 해 주는 결명자도 사고 기침감기에 좋은 오미자도 샀다.
편강을 만들어보려고 생강도 샀다.
건강관리 잘해서 마르고 닳도록 살아야 ‘노령연금’도 받고 더 재미나게 살 테니까--
적어도 새 대통령 재임 기간에는 ‘실버천국’ 보장해 줄 테지.
그런데 이러다 아무래도 젊은이들한테 ‘公共의 敵’이 되는 거 아닌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