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앨범을 정리하며

맑은 바람 2013. 3. 22. 16:23

 

오랫동안 벼르던 앨범정리를 다시 시작했다.

장가간 아들 앨범을 비롯해서 근무지가 바뀔 때마다 생긴,

이제는 거의 들춰보는 일이 없어 쓸모없게 된 앨범들을, 아직도 아쉬움이 남는 것들만 스캔해서

컴퓨터에 저장해 두고 모두 버려야겠다.

어제와 같은 초유의 비상사태(사이버공격으로 인한 전산망 마비)가 발생해서 순간에 모든 것이

虛空으로 사라진다 한들 뭐 어떠랴?

每日, 하나뿐인 목숨들이 이런저런 사정들로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흩어지고 있는데--

 

우선 장가간 작은아들 유년시절의 앨범을 정리하며 나는, 떠오르는 이런저런 생각들로 울컥하여

눈물을 쏟았다.

-아이들을 앞에 앉혀놓고 부엌 바닥에서 김을 바르시는 시어머니,

-유치원 행사에 참석해서 유모차를 끌고 운동장을 달리는 시어머니의 모습을 뵈니

마음이 짠해 온다.

 

 

 

 

 연년생 두 아이를 맡겨놓고 직장 다닙네 하고 집안일을 소홀히 하는 사이,

시할머니 수발하랴, 손주 돌보랴, 살림하랴-- 한시도 쉴 틈이 없었던 나의 시어머님-

그분의 노고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할 줄 몰랐던 걸 깊이 반성하며 속죄한다.

 

한창 살이 올라 오동통할 두세 살 때, 우리 아이들의 수척한 모습을 보니 또 가슴이 아프다.

강이를 낳고 이듬해 生死를 넘나드는 대수술을 두 번이나 했으니,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벅찬데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수 있었겠는가?

 

부족한 게 많은 부모였으나 시어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잘 자라, 어느덧 예쁘고 心地 깊은 처녀를 만나

장가도 가고 열심히 살아주니 그저 고맙고 또 고맙다.

 

뜰에 매화, 목련 활짝 피거들랑 불러서 봄나물에 콩나물밥과 된장찌개 만들어 먹여야겠다.

날 풀리면 애들 데리고 시어머니 산소에도 한번 찾아 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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