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웃엔 수녀님들이 살고 있다.
열 명 안팎의 수녀님들이 신학교를 다니며 임시 머무는 집이다.
늘 사람 사는 집 같지 않게 조용하다.
여자들만 사는 집이라 가끔 문제가 생기면 우리 영감이 신경을 쓴다.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에 지붕 홈통이 막혀 빗물이 빠져 나가지 못하면 영감이 사다리를 들고 가서
오물로 막힌 홈통을 뚫어주곤 한다.
성당에는 잡아 끌어도 안 나가는 사람이 수녀님네 집에 사소한 문제들이 생기면 누이집 돌보듯 가서 해결해 주었다.
그리고 명절 과일도 항상 먼저 챙겼다.
명절 때면 귀향하지 않는 몇몇 분들이 계신 것 같아 설,추석마다 사과나 귤을 한 상자씩 사다드리곤 했던 것이다.
그러면 수녀님들은 답례로 손수 빈대떡도 만들어 가져다 주시고 직접 담근 포도주도 갖다주셨다.
한때는 꽃을 잘 가꾸는 수녀님이 여름내 예쁘게 기른 봉숭아 꽃씨를 받아 두었다가 작별 선물로 주고 가시기도 했다.
수녀님의 선물-오가피차와 부활절 계란
수녀님의 손끝은 예술이다. 리봉 하나 포장 하나 예사롭게 다루지 않는다
전에는 이른 아침에 성가 부르는 소리도 들려오고 까르르--웃음 소리도 들려와서 참 좋았는데
어느 날부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웃에 시끄러우니까 소리 내지 말라는 엄명이 내려진 건 아닐텐데--
아름다운 노랫소리와 까르르 하는 건강한 웃음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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