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다음 날은 참 편안하고 좋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난 후 찾아오는 이 평안-
오늘은 나무 그늘에 앉아 새 소리 들으며 가끔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몸을 맡기고 마당 한켠에 쌓인 일거리들을
치우기 시작한다.
며칠 전부터 아들이 본격적으로 정원 손질에 들어갔다.
길게는 10 년이 훨씬 넘은 회양목들과 바위취 등이 아들 손에 사정없이(?) 잘리고 뽑혔다.
전지가위로 자르고 도끼로 나뭇가지들을 토막 내서 6개의 대봉투에 정리한다.
이대로 조용히 떠날 수 없다는 듯 이눔저눔이 비닐봉투 밖으로 뾰족한 가지들을 내뻗어 봉투에 구멍을 내고
위협을 가한다.
회양목과 바위취를 걷어낸 자리엔 맥문동과 비비추를 심었다.
푸나무를 이것저것 기르다 보니 만만하고(?) 싫증나지 않는 게 바로 맥문동과 비비추였다.
뿌리가 흙더미를 꽉 부여잡고 있어 옮겨심기도 좋다.
겨울에 잠시 얼어죽은 듯 누워 있다가 푸릇푸릇 봄기운이 돌면 다시 꼿꼿하게 몸을 일으키고는
한여름 모두가 녹초가 되어 있을 때 의연하게 보랏빛 꽃을 피우며 여름 뜰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원래 일의 속도가 더뎌 하루가 꼬박 걸렸다.
정원이 제법 가지런하고 질서를 갖추어 보기에 좋았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소멸의 때를 향해가다가 어느 순간에
이렇게 무언가에 담겨 한줌 재로 돌아가거나 땅속에 묻힌다.
또 다른 새로운 것들에게 시간을 내주기 위해--
나이 들어 좋은 것은 그런 일련의 일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는 점이다.
글쎄,
그게 내 앞의 일로 다가왔을 때도 그래질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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