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옥정호-양산 8경-덕유산 송계사-병암리
엊그제 서울을 출발해서 충청남도, 전라도를 거쳐 경상남도까지 갔다가 충청북도 땅까지 올라왔다.
잠시잠시 식사하고 사진 찍는 시간 외엔 계속 운전대를 잡은 셈이다.
칠십 넘은 老軀와 68세 할매 기운도 좋다!!
둘 다 운전을 즐기는 편이라 가능한 얘기 같다.
전에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근무지까지 찾아다니며 열성을 부렸는데 그짓(?)도 그만 시들하다.
몇 장 사진으로 섬진강과 遭遇하고 <양산 8경>을 찾았다.
조선시대 연안부사 박응종이 이곳 錦江 변에 정자를 짓고 솔씨를 뿌려 지금과 같은 솔밭을 일구어 한여름 피서지로 각광을 받는 곳이라 한다.
신바람 찐방을 사며 만두를 찌는 동안 주인아저씨한테 말을 걸었다.
"양산 8경이 좋다 해서 와 봤는데 물도 마르고 썰렁하네요."
“아니, 양산 8경이 서울까지 소문이 났어요?”
“? ?”
질문한 내가 무색하다.
덕유산을 향했던 건 아들이 잠시 머물렀던 한옥학교를 보고싶다는 남편의 청에 의해서다.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고 누굴 만나 어쩌겠다는 생각이 없었기에 기왕 온 거 <송계사>나 둘러보자고 했다.
비교적 조용한 절이다.
나이 든다는 건 무심해지고 무감동해지는 걸까?
전과 같은 감흥이 없다. 그저 한 바퀴 도는 것일 뿐이다.
여행의 의미를 다시 짚어보게 된다.
이제는 돌아다니는 일보다 한곳에 머물며 쉬는 일이 더 어울리는 나이인가?
그런데 고속도로를 110km씩 달리고 60km로 가야 할 곳에서 80km로 달리는 걸 보면 아닌 것도 같고---
오늘의 종착지는 병암리-
나는 무작정 떠난 여행이었지만 의뭉스런 우리 충청도 출신 바깥양반께선 이번 여행에 병암리를 꼭 가보리라 맘먹은 것 같다.
날이 저물 무렵 찾은 충청북도 청주시 가덕면 병암리-그곳은 당신 할머니(지금 생존하셨다면 128세)의 고향이다.
늘 ‘병풍징이댁’이라 불린 할머니가 처녀 적 살던 곳, 마을 건너엔 개울을 따라 병풍을 두른 듯 바위가 이어져있고 그 위로 솔숲이 울창했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屛巖里인 것 같다.
소나무를 이고 있는 병풍바위
수백 년은 됐을 법한 느티나무
할머니 사랑이 남달랐던 손자-언젠가 들은 얘기 한 토막이 떠올랐다.
십리가 넘는 길을 예사로 걸어서 등하교 하던 시절, 한여름 신작로를 달리던 얼음 실은 차가 커브를 돌면서 얼음 한 덩이를 떨어트렸다. 얼음은 떨어지면서 산산조각이 나고 무료하게 집으로 가던 아이들은 다투어 달려들어 흙투성이인 얼음들을 제각기 주워들었다.
그중 큰 거 하나를 차지한 손자는 흙먼지를 털어내고 양은도시락을 꺼내 그 속에 넣었다. 얼음이 녹을세라 발에 불이 나도록 달렸다. 얼음덩이는 가방 속에서 춤을 추고 등허리로는 땀인지 물인지가 줄줄 흘러내렸다.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려와 대문으로 들어선 손자는 할머니를 외쳐 불렀다.
어리둥절한 할머니를 앉혀놓고 도시락뚜껑을 열었다.
그렇게 죽기살기로 달려갔는데도 도시락 만하던 얼음은 눈깔사탕만해졌다.
할머니는 얼음을 손바닥 위에 놓고 기특한 손자를 바라보셨다.
그때 어느새 다가온 어린누이가 그 얼음을 날름 제 입속에 넣어버렸다.
이 반전에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남편의 유년시절의 단면을 그려볼 수 있는 얘기였다.
이제 칠십 넘어 당신의 할머니 고향을 찾아든 그 심정을 어찌 다 헤아리랴만, 당신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좋을 듯해서 이리 가자면 이리 가고 저리 가자면 저리 가고 하면서 사진도 찍고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일요일 저녁이라 마을회관 문도 굳게 잠겨 있어 이 부근 어디쯤에서 자고 내일 아침 다시 찾아오기로 했다.
오늘 숙소는 미안(?)할 정도로 숙박비가 쌌다. 있을 건 다 있는데도 말이다.
‘이래 가지고 뭐 장사가 될까?’
게스트하우스를 하는 아들 생각하며 난 별 걱정을 다 했다.(2015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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