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아버지는 셰프였다

맑은 바람 2015. 7. 12. 21:00

요새 백종원이라는 셰프가 엄청 뜨는데 못 봤느냐고 누가 얘기하길래 tvn을 고정시켜 놓고 백종원의 요리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오늘은 강용석의 고소한 19에서 10명의 잘나가는 셰프를 선정해서 발표했다.

최현석, 백종원, 샘킨--

내게는 낯선 이름들이지만 SNS를 들썩이게 하는 모양이다. 연예인 못지않게 인기가 치솟는 요리사들-

하나같이 남자들이다.

점점 女權이 신장되고 아침밥 안 하는 여자들이 늘어가면서 주방도 남자들 전유공간으로 바뀌어갈 모양이다.

우리 아버지가 지금 저들 나이로 살아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광화문 교보빌딩이 들어서기 훨씬 전에 그 바로 뒤쪽에는 <福淸>이라는 인근에서 꽤 소문난 日食집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요리사로 일하셨다.

남자는 부엌 근처에 얼씬도 못하던 시절에 어떡하다 우리 아버지는 앞치마를 두르고 하루 종일 물 묻은 손으로 사셨을까?

학기가 시작할 때마다 환경조사서 부모 직업란에 아버지 직업을 상세히 쓰는 것이 부끄러워 ‘상업’이라고 대충 얼버무리곤, 정직하지 못한 나의 행동을 또 자책하며 왜 하필 그런 직업을 가지셨을까 원망도 했다.

그러나 나의 생각과는 달리 아버지는 비교적 자신이 하시는 일에 불만이 없으신 것 같았다.

바로 길 건너에 동아일보사가 있었기 때문에 신문사 직원들이 종종 드나들었는데, 그중 ‘고바우 영감’ 김성환씨가 아버지 단골 손님이셨던 모양이다. 그분과 對酌이라도 한 날이면 ‘오늘 그분과 얘기 많이 나눴다’고 기분 좋아하셨다.

아버지는 음식점이 다 그러하듯 밤늦도록 가게문을 열어놓아야 하기 때문에 늘 통행금지 시간이 다 되서 돌아오셨다. 더러는 술이 과하셔서 통행금지 시간을 넘기면 나도 잠을 설치며 엄마랑 마중을 나가곤 했다.

다음날 魚市場엘 가실 때면 잠자리에 편히 누울 새도 없이 첫새벽에 집을 나서곤 하셨다.

집과 일터밖에 모르고 평생을 살다가 간암으로 훌쩍 떠나버리신 아버지-벌써 34년이 흘렀다.

 

생전에 한 번도 당신 손으로 빚은 초밥 한 번 먹여주지 않으셨던 분-

오늘 문득 그 초밥이 먹고 싶어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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