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엄마표 밥상

맑은 바람 2015. 2. 14. 12:49

  며칠 전 작은아들이 싱가포르에서 들어왔다.

직장이 싱가포르로 나가는 바람에 살던 집을 세놓고 짐을 정리한 후 아내를 데리고

가려고 온 것이다.

전화가 왔길래,

“뭐 먹고 싶니?” 했더니

엄마가 만든 콩장, 감자채 볶음, 장조림, 고추멸치 볶음, 계란말이, 청국장--” 하며 메뉴를 줄줄이 늘어놓는다.

객지에서 몇 달을 혼자 세 끼 식사를 다 음식점에서 해결했으니 오죽 집밥이 그리웠을까?

 

저녁상에 아들이 주문한 반찬 몇 가지를 해놓았더니 밥을 세 그릇이나 비운다.

며느리도 덩달아 장조림 국물까지 싹싹 비벼먹는다.

오히려 값비싼 새우요리는 한쪽으로 밀려나 홀대를 당한다.

“어휴, 잘먹었습니다. 뇌까지 흡족하게 먹었어요.”

지 아버지가 나보다 더 좋아한다.

부모는 자식이 어리거나 나이 들거나 부모 앞에서 맛있게 밥술을 뜨는 걸 보면 더 할 나위없이 기쁘다.

 

남편이 부엌 출입을 하게 된 것도 알고 보면 ‘엄마표 음식’ 때문이었다.

국시를 유난히 좋아하는 남편은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국수를 먹어야 했다.

그러나 난 원래 국수를 먹어본 적이 별로 없고 또 먹어보니 별맛도 없어서 국수가 상위로 올라온 적이 거의 없었다.

남편은 자라면서 국시집 딸이었던 우리 시어머니의 국시를 무척이나 많이 먹고 자란 것이다.

어찌 때때로 생각나지 않았겠는가?

멸치 국물에 호박 채 썰어 볶아 얹은 국시가락을 직접 만들어 후루륵거리며 맛있게 먹는 걸 보면 옆에서 군침이 돌 정도다.

 

나도 명절이 가까워오는 이맘때면 ‘엄마표 나박김치’가 생각난다.

봄 향기처럼 입안에 가득 퍼지는 미나리향-

고운 고춧가루 물에 무, 당근, 미나리를 듬뿍 넣고 담근 물김치를 나 못지않게 좋아한 사위는 한 번에 두 사발씩

먹곤 해서 장모님을 기쁘게 해드렸다.

 

숟갈질을 배우면서부터 입에 길들어져, 자식의 뼈와 살을 키운 엄마 밥상--

그 반찬이 비록 소찬일지언정 문득문득 생각나고 그리워진다.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는 셰프였다  (0) 2015.07.12
아이들아, 어디서 무얼 하고 있니?  (0) 2015.05.16
성경 필사 종료 8일 전  (0) 2015.01.25
추억의 사진 한 장  (0) 2014.12.12
혜화동 군밤 할아버지  (0) 2014.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