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 평전 시리즈4
164쪽/원당희 옮김/세창미디어
--지오반니 쟈코모 카사노바
(10쪽)그는 초라한 배우의 아들로 태어나 파문당한 성직자, 퇴역 장교, 악명높은 사기도박꾼으로서 황제와 왕들의 궁전에 드나들었고, 결국은 어느 소공국 최후의 귀족 리뉴왕자의 품에 안겨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미미한 정신이 비록 시대의 바람 속에서 흡사 재처럼 날렸다 해도, 카사노바의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는 불멸의 인간들 속으로 끼어들었다.(대개의 사람들이 카사노바를 평가할 때 그랬던 것처럼, 멸시받아 마땅한 카사노바라는 존재를 무시할 수 없는 현실에 츄바이크는 불쾌함을 드러낸다.)
(11쪽)교활한 행운의 도박사 카사노바는 단번에 단테와 보카치오 이래로 이탈리아의 모든 시인들을 뛰어넘었다.
(시공사에서 출간한 카사노바는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기는 하지만 사진과 그림자료들이 한데 얽혀 너무 정신이 없다.그에 비해 이 책은 슈테판의 이미지처럼 품격있고 가지런해서 읽기 좋고 안정감을 준다)
(슈테판은 평가하기를, 카사노바는 문학 수업을 위해 큰 노력과 공을 들이지 않고도 행운을 거머쥔 '얄미운 인간'에 속한다)
(12쪽)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 서술했고 그것이 그의 문학적 최대 업적으로 남게 되었다.
5편의 장편소설, 20편의 희극, 다수의 단편소설과 삽화들, 매혹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상황설정과 일화들이 생생한 하나의 인물로 압축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바로 그의 삶이 예술가나 창작가의 정돈된 노력없이 예술작품으로서 풍성한 모습을 드러냈다.
카사노바의 도도한 모험적 삶은 마치 매일 속옷을 갈아입듯이 나라와 도시, 직업, 분야, 여자를 다양하게 바꿨다.
삶 자체를 위해 살아가려는 비창조적인 인간은 직접적인 현실에 물두한 채 자유롭고 방탕하게 향락만을 즐긴다.
(16쪽)작가들은 자서전을 쓰는 법이 드물었지만 반면에 멋진 체험을 자서전에 담아야 할 인간들은 그것을 쓸 능력이 거의 부족했다. 이런 상황에서 카사노바라는 멋지고 거의 유일한 행운의 사례가 발생했던 것이다.
그의 이야기에는 도덕적 변명이나 시적 미사여구, 철학적 치장도 없었다. 그는 있었던 일 그대로를 아주 사실적으로, 열정적으로 때로는 위기감을 고조하고, 때로는 분탕질은 쳐가면서 냉정하고도 흥미롭게 이야기했다. 비천하고 저속하고 불결한 것도 마다하지 않았으나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고 박진감이 넘쳤다.
(18쪽)둑스의 늙은 도박사는 언제나 그랬듯이 아주 느긋하게 최후의 도박판인 책상으로 걸어가서는, 최후의 일격을 날리기 위해 운명을 향해 자신의 비망록을 던졌다. 이렇게 하여 그의 최후의 도박이 불멸로 이어졌으니 이 얼마나 기적같은 일인가!
--젊은 카사노바의 초상
'생갈트의 기사'로 위장, 허세를 부리는 귀족들 속에서 도박의 상대, 연인이 되어줄 상대를 유혹한다.
--모험가들
전쟁이 멈춘 유럽의 영주들과 실력자들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많은 놀이들을 끌어들였다.
시인, 도박꾼, 연극인, 사기꾼, 가수들, 점성술사, 배우, 무용수, 음악가, 창녀, 연금술사 들은 자연스레 그들에게 기생하며 살았다 이런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살았던 삼사십 년 후 그들은 가장 완벽한 천재, 광적인 모험가 나폴레옹을 통해 자멸한다.
--교양과 재능
(47쪽) 카사노바와 친숙해진다면, 우리는 그의 내면에서 불신, 기만, 음란과 호색이 아주 무섭게 하나로 모여 있음을 알게 된다.
--1755년 베네치아 종교재판소의 비밀보고문
(49쪽)카사노바가 단순히 돈이 없거나 일하기 싫어서 모험가가 된 것이 아니다. 타고난 천부적 기질, 끝없는 천재성이 그를 모험가로 만들었다. 그는 언제나 자기본연의 유랑민 같은 처지, 새의 깃털처럼 가벼운 존재 속으로 도피하려고 했다.
(53쪽)그는 가장 완벽한 아마추어로서 예술과 학문에 대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의지, 결단력, 인내심이 부족했다. 그는 뭔가를 철저하게 한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 무엇도 원치 않았고,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것에만 만족했다.
(56쪽)단적으로 말해 약방의 감초같은 사람은 한 가지의 특기는 없지만, 그의 다리 사이에 탈 것만 넣어주면 무엇이든 잘 탈 줄 알았다.
(57쪽)그 모든 것을 이룰 수도 있었지만 아무것도 되지 않는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는 자유로웠다.
그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자유와 무구속적 상태였다.
그의 참된 직업은 어떤 직업도 갖지 않는 것이라고 그는 느꼈다.(요새 젊은 사람들의 로망?)
카사노바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의 가장 큰 보물은 내가 나 자신의 주인이라는 것, 그리고 불행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용기란 카사노바의 삶의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최고의 재능이었다.
그의 재능 중의 재능은 안전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무릅쓰고 사는 것이다.
그러나 운명은 부지런한 사람보다는 불손한 모험가에게, 인내하는 사람보다는 무례한자에게 더 많은 것을 선사했다.
그리하여 수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그의 삶은 넓고 화려하게 다양하고 변화무쌍하게 환상적으로 다채롭게 채색되었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삶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여성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적당히 눙치고 어떤 상황에서도 기죽지 않고 사태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사소한 것에 목숨걸지 않고 누군가에게 물질적인 피해를 입히고도 오히려 상대방을 매혹시키고, 여건이 좀더 나았더라면 조르바도 제2의 카사노바가 되었으리라.)
--현세의 철학
양심과 영혼이 없는 인간 카사노바이기에 경쾌함과 천재성의 비밀을 지닐 수 있었던 것.
(63쪽)하루를 즐기고 매순간을 확실하게 붙잡아라. 포도송이처럼 단물을 빨아먹고, 그 찌꺼기는 돼지들에게 던져버려라.
이것이 카사노바의 유일한 원칙이다.
(73쪽)카사노바는 하루살이처럼 가볍고 비눗방울처럼 투명하게, 사건들이 반사해낸 빛을 반짝이며 이 시대를 흔들고 지나갔다.
(76쪽)그의 모든 결정들은 뜻밖에 발사된 총알처럼 자신의 신경조직, 기분, 참을 수 없는 권태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바로 그런 대담한 무계획성 덕분에 그의 체험세계가 아마도 충만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82쪽)그는 언제나 도박과 여자, 순간과 모험에 매번 전력을 다했다. 이 때문에 그는 어느 은퇴자의 재산으로 연명하는 비참한 거지가 되어 죽음을 맞이했다. 이로써 마침내 카사노바는 최고의 삶, 무한히 충만한 삶을 얻게 되었다.
--호색가
이 다방면의 서투른 애호가는 색정에 있어서 만큼은 반박의 여지없이 천재였다.
이 미남은 191 cm의 키로 헤라클레스의 딱 벌어진 어깨에 로마의 레슬러처럼 근육질의 육체를 지닌 남성다운 남성이었다.
아름다운 갈색머리를 가졌으면서도 용맹하게 돌진하는 용병의 모습을 연상시키며 격정에 사로잡힌 채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숲의 신과도 같았다.
(92쪽)잡식성의 프로 호색가가 그렇듯이, 카사노바의 수집품은 매번 가치가 고르지 않았던 것으로 증명되었다. 그것은 미의 화랑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모험은 모든 연령층에 걸쳐 있어서, 오늘날처럼 규제받는 시대에서는 가차없이 檢事의 심문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100쪽)카사노바의 불타오르는 열정은 어느 여인의 마음도 거의 다치게 하지 않았다. 수많은 여인들에게 행복을 주었지, 신경을 건드린 적이 없었다.
(105쪽)오늘날 독일어나 모든 유럽의 언어로 카사노바는 미워할 수 없는 기사, 여성포식자,유혹의 대가를 의미한다.
**돈 후안: 스페인의 귀족. 음울하고 악마적인 모습/스페인의 사탄, 1003명의 여인을 상대한 호색한.
돈 후안은 자고난 다음날 아침이면 여인들의 열정에 비웃음을 흘리며 냉소를 보냈기 때문에 그를 상대한 여인들은 자신들의 나약함을 수치스러워하며 분노에 몸을 떨었다.
반면에 카사노바에게 몸을 바쳤던 여인들은 그를 신처럼 떠받들며 감사를 표했다.
--어둠의 세월
(115쪽) 어떤 남성도 카사노바의 회고록을 질투심없이 읽기는 쉽지 않다.
카사노바의 회고록을 읽는 그 누구도, 삶의 처세에 있어 이 빛나는 대가에 비해 스스로 형편없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여러 번 아니 백 번이라도 우리는 괴테나 미켈란젤로, 발자크보다는 카사노바가 되기를 원할 것이다.
(128쪽)말이 좋아 도서관 사서였지, 이곳 사람들은 소위 궁중의 익살광대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 늙은 사기꾼은 한번 더 세상사람들을 우롱했다.
그는 기억을 모아서 다시 자신의 인생을 구성하고, 영악하게도 불멸의 세계로 끼어들려는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늙은 카사노바의 초상
(131쪽)이제 사물들의 모습은 다른 것으로 변했다. 나는 나를 찾고 있다. 그러나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다. 나는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존재했었다.-노년의 카사노바 초상화에 기록된 글
(142쪽) 둔중한 회색 안개처럼 권태가 다시 인적없는 방안에 내려앉았고, 어제는 잊었던 통풍이 두 배나 잔인하게 다리를 비틀어놓았다. 카사노바는 투덜거리며 궁중예복을 벗어던지고,두텁게 솜을 넣은 터키의 잠옷을 떨리는 뼈마디 위에 걸쳐 입었다. 그러고는 유일한 추억의 피난처, 책상으로 투덜거리며 기어갔다. 하얀 원고더미 옆에는 동강난 펜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종이들은 반가운듯 바스락거리고 있었다. 거기 앉아서그는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떨리는 손으로 쓰고 또 썼다. 그를 쓰도록 몰아가는 축복받은 권태여! 이렇게 그의 삶의 역사가 무르익고 있었다.
**(그는 16권에 달하는 회고록을 남겼다.)
그의 사후 그 원고들은 25년 동안 (1798-1822) 사람들의 뇌리에서 완전히 떠나 있었다.
--자기묘사의 천재
그는 하루 12시간씩 7년 동안 회고록을 썼다.
"미쳐 버리지 않기 위한, 또는 분노(발트슈타인 백작의 성에 살고 있는 시기심 많은 무뢰한들 쪽에서 걸어오는 불쾌감과 일상의 번잡함에 대한 분노)로 죽어 버리지 않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그는 말했다.
(161쪽)그의 책은 18세기의 역사적인 여행안내서 내지 유쾌한 스캔들의 연대기, 한 시대의 일상을 관통하는 완벽한 단면도로서 대단한 가치를 지닌다.
우리는 그를 통해서 당시에 사람들이 어떻게 여행하고,식사하고, 놀고, 춤추고, 거주하고 사랑하고, 즐겼는지를 알게 되었다.
(162쪽)일찍이 한 인간이 책이라는 울타리 속에 한꺼번에 몰아넣은, 가장 흥미진진하고 다채로운 인간 동물원이었다.
이런 정도면 20권의 장편소설을 가득 채우고, 10세대에 이르는 단편소설 작가들에게 소재를 공급하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163쪽) 그는 생시에나 사후에도 미학의 모든 통용원리가 논리적 모순임을 증명했으며, 도덕의 교리문답을 불손하게 책상밑으로 집어던졌다.
(164쪽)영원불멸은 인간의 순수성이 아니라 통일성, 초지일관된 범례와 형태를 요구한다. 이를 위해 도덕은 아무것도 아니며 내포적인 힘만이 전부인 것이다.
(카사노바 역시 발트슈타인 백작의 옥탑방이 아니었으면 불멸의 작품을 내놓지 못했으리라. 정신의 힘이 강한이들에게 육신의 감옥은 영혼의 자유로운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모양이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정약용의 목민심서, 정약전의 자산어보, 네루의 세계사 편력, 오스카 와일드의 옥중기 등, 감옥과 유배지에서의 작품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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