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다자이 오사무/번역 양윤옥/2018.5초판/시공사/290쪽/읽은 때 2021.4.24~427
바로 전에 읽은 <드로잉 일본철도 여행>에서 저자는 특급 쓰가루를 타고 아오모리현의 기타 쓰가루로 다자이 오사무의 체취를 느끼고자 문학기행을 떠나는 대목이 나온다. 책이 또 한 권의 책을 만나게 해 준 셈이다.
제목이 '인간실격'이라니!
그러나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내가 인간노릇 제대로 하고 산겨? ' 하고 자신에 의문을 던져보았을 것이다
나 또한 이 시점에서 그런 생각이 든다. 과연 이 책은 내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작품1 인간실격
(10)주름이 쪼글쪼글한 꼬마라고 하고 싶을 만큼 참으로 기묘한, 그러면서도 어딘가 추저분하고 이상하게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표정의 사진이다. 나는 지금까지 이런 이상한 표정의 어린아이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11)찬찬히 들여다보면 역시 이 잘생긴 남학생에게서도 어쩐지 괴담같은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이런 이상한 미모를 가진 청년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12)사람의 몸에 짐 끄는 말의 머리를 갖다붙이면 이런 느낌일까. 아무튼 어딘지 딱 집어낼 수도 없이 보는 사람을 오싹하게 하고 짜증나게 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이런 이상한 얼굴의 남자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19)인간에 대한 두려움에 항상 바들바들 떨면서, 또한 인간으로서의 나 자신의 말과 행동에 털끝만큼도 자신감을 갖지 못한 채, 그리고 나만의 깊은 고뇌는 가슴 속 작은 상자에 감춰두고서, 그 우울과 긴장을 꼭꼭 감추고 또 감추며 오로지 천진한 낙천성만 있는 척 나는 장난꾸러기 별난 아이로 점차 완성되어갔습니다.
(21)싫은 것을 싫다고 말하지 못하고 또한 좋은 것도 어쩐지 머뭇머뭇 남의 것을 훔친 것처럼 참으로 씁쓸한 뒷맛이 남고 그러고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에 시달리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내게는 양자택일의 능력도 없는 것입니다. 나중에 이것이 결국 나의 '부끄러운 일이 많은 생애'의 중대한 원인을 만든 성격이라고 생각합니다.
(28)서로 사기를 치면서도 다들 이상하게 아무 상처도 입지 않고 서로 속이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실로 훌륭한, 그야말로 맑고 밝고 명랑한 불신의 사례가 인간의 삶에 가득한 것입니다.
(34)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이 나를 죽여주기를 바란 일은 수없이 많지만 남을 죽이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건 그 끔찍한 상대에게 도리어 행복을 가져다주는 일일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46)나는 이윽고 화방의 어느 미술학도에게서 술과 담배, 매춘부와 전당포, 그리고 좌익사상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묘한 조합이기는 하지만 사실이 그랬습니다.
(51)나에게 매춘부란 인간도 여성도 아닌 백치나 미친사람처럼 보여서 그 품속에서는 도리어 마음 놓고 푹 잘 수 있었습니다. 다들 서글플 만큼, 참으로 털끝만큼도 욕심이라는 게 없었습니다.
(53)공산주의 독서회(비밀단체)입단: 비합법. 나는 그것이 적잖이 즐거웠던 것입니다. 오히려 그쪽이 마음 편했습니다.세상에 통하는 합법이라는 것이 무섭고 그 구조가 불가해하고 그 창문도 없이 뼛속까지 냉랭한 방에는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차라리 비합법의 바다에 뛰어들어 헤엄치고 이윽고 죽음에 이르는 게 나에게는 더 마음 편한 일 같았습니다.
(이 글을 읽어나가면서, 일반 상식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다자이 오사무의 일련의 행동들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문득 영화 '양철북'이 생각난다. 어느 면에서 두 작품의 공통점이 느껴져서일까?)
(55)나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음지인인 것만 같아서 세상사람들에게 음지인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사람을 보면 그때마다 다정한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67)겁쟁이는 행복조차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솜에도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행복에 상처를 입는 일도 분명 있습니다. 더 이상 상처를 입기 전에 어서 빨리 헤어지고 싶어서 예의 광대짓이라는 연막을 쳤습니다.
(번역문이라고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문맥이 매끄럽고 자연스럽다.
다자이 오사무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읽던 책을 옆으로 미뤄놓고 인간실격에 빠질 정도로 이 책은 흡인력이 있다)
(93)가난한 호리키의 어미가 내온, 먹기 힘든 단팥죽:그 단팥죽과 그리고 그 단팥죽에 기뻐하는 호리키를 통해 나는 도시사람의 깍쟁이 근성, 혹은 안과 밖을 딱 잘라 구분하며 살아가는 도쿄 사람의 실체를 목격했습니다. 안팎의 구분도 없이 그저 끊임없이 인간의 생활에서 도망치기만 하는 얼간이인 나는 완전히 뒤쳐져 호리키한테까지 버림을 받은 것 같아 큰 낭패감 속에서 단팥죽과 칠 벗겨진 젓가락을 들고 견딜 수 없는 쓸쓸함을 느꼈다는 것만 기록해두고 싶을 뿐입니다.
(101)아아, 인간이란 서로를 전혀 알지 못하고, 아예 완전히 잘못 보았으면서도 둘도 없는 친구라고 생각하고, 평생 그걸 깨닫지도 못한 채 상대가 죽으면 울면서 조사 따위를 읽고 있는 건 아닐까요?
(143)나의 불행은 거부 능력이 없는 자의 불행이었습니다. 누가 뭔가를 권하는데 거절하면 상대의 마음에도 내 마음에도 영원히 메울 수 없는 허연 균열이 생길 것 같은 공포에 시달리는 것입니다.
(144)(정신병원에 수용됨:돈이 필요하다고 아버지 집에 장문의 편지를 보낸 후 넙치와 호리키가 나타나 그를 정신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이제 나는 죄인은 고사하고 미친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뇨, 결단코 나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단 한 순간이라도 미쳤던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아, 미친사람은 모두들 그렇게 말한다는군요. 그러니까 이 병원에 들어온 사람은 미친사람이고 이 병원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은 정상인인 모양입니다.
신께 묻습니다. 무저항은 죄인가요?
호리키의 그 이상하게 아름다운 미소에 나는 눈물을 흘렸고 판단력도 저항하는 것도 잊은 채 차에 탔고 그리고 이곳에 끌려와 미친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곳을 나가더라도 나의 이마에는 미친 사람, 아니, 폐인이라는 낙인이 찍히겠지요.
인간 실격.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형이 찾아와 휴양지에 집을 얻어 살게 한다. 아버지의 부재는 그에게 고뇌하는 능력조차 상실하게 한다.)
(147)지금 나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갑니다.
내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이른바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가지 진리라고 생각되는 건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간다.
작품2 물고기 비늘옷
(155)혼슈북쪽 마하게야마 산속 폭포(9000m)에서 실족사한 도회지 학생
(158)폭포 옆 숯가마 움막에 사는 부녀:딸이름이 스와.
아버지가 숯을 팔러간 추운 겨울, 스와는 폭포에 몸을 던져 한 마리 붕어가 된다.
작품3 로마네스크
(169)소스케 촌장이 49세에 얻은 첫 아이는 다로였다.
세 살 때 혼자 집을 나가 100m 높이의 산속에서 발견되었다.
무얼 보았느냐는 아버지의 질문에
'다나카무다아치이나에'(백성의 아궁이가 풍성하구나)
소스케는 생각했다. 촌장의 자식놈이 촌장 조상님이로구나.
(174)다로가 열 살 때 대홍수가 났다. 가축과 볏섬이 다 떠내려가 마을 사람들은 앉아서 굶어죽게 생겼다. 다로가 성주를 찾아가 직소하기로 했다. 마을은 다로 덕분에 살아났다. 그러나 다로는 仙術을 부린 나머지 불상의 얼굴로 변해 마을을 떠난다.
(179)싸움의 달인, 지로베
양조업을 하는 시카마야 잇페이-그의 술(미즈구루마)은 맑고 쓰다.
그의 둘째아들 지로베는 술을 좋아하고 배포가 있다. 싸움의 달인이 되기 위해 3년을 수행하고 나니 적수가 없어졌다.
소방대장이 된 지로베는 연모하던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이나 재미삼아 싸움의 묘기를 보여주다 아내를 죽게 만든다.
(191)거짓말의 달인, 사부로
에도의 후카가와에 사는 하라노미야 오손은 홀아비학자인데 그에게 외아들 사부로가 있었다.
아버지는 극도로 인색하고 아들의 거짓말의 원천이 되었다.
(202)한 날 한 시에 술집에서 다로와 지오베와 사부로가 만나 인연을 맺는다.
우리는 예술가다. 우리 세 사람은 형제다. 오늘 여기서 만났으니 이제는 죽어도 헤어지지 말자. 이제 곧 틀림없이 우리의 천하가 될 것이다. 왕후장상도 부럽지 않다. 금전 또한 우리에게는 나뭇잎처럼 가볍도다.
(제목과 내용의 관계를 알지 못하겠다)
작품4 새잎 돋은 벚나무와 마술 휘파람
(207)-어느 노부인의 고백:
교장선생님인 아버지, 신장 결핵을 앓고 있는 여동생 그리고 나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달랑 여동생만 남았는데 그 여동생의 餘命도 100일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여동생을 위해 거짓 연서를 쓰나 동생은 이 모든 사실을 안다.
그러나 담밖에서 들려온 휘파람소리의 정체는 끝내 알지 못한다.
작품5 개 이야기
친구가 개에게 물린 사건을 소재로 사실적이고 실감나게 개 이야기를 한다
(228)참새를 보라. 무기라고는 단 하나도 지니지 못한 섬약한 들짐승이면서도 자유를 확보하여 인간계와는 전혀 별개의 작은 사회를 꾸리고 동족간에 서로 친애하고 흔연히 하루하루의 청빈한 생활을 노래하며 생을 즐기고 있지 않은가
생각하면 할수록 개는 불결하다. 개는 싫다. 어쩐지 나하고 비슷한 점까지 있는 것 같아서 점점 더 싫다.
(그렇게 싫고 미웠던 개 포치가 먹고 죽는 약을 고기에 넣어 먹여도 죽지 않고 돌아왔을 때 '나'는 포치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242)"안돼. 약이 안 들어. 용서해 주자. 이 녀석에게는 죄가 없어. 예술가는 원래 약한 자의 편이 되어야 하는 거야."
"약한 자의 친구란 말야. 예술가에게는 그게 출발점이자 최고의 목적이야"
작품6 화폐
화폐를 의인화하여 쓴 글
주인공은 100엔 화폐.
(249)인간성 전반의 문제:
당장 오늘 저녁에 죽을지도 모를 처지가 되면 물욕이고 색욕이고 깨끗이 잊어버리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 아무래도 꼭 그렇지만도 않은지, 인간은 목숨이 막다른 궁지에 몰리면 서로 웃으며 대하지를 못하고 그저 서로간에 탐욕을 부리게 되는 모양입디다.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불행한 사람이 있는 한 나도 행복해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인간다운 감정일 텐데, 나만 혹은 우리 가족만을 위한 잠시잠깐의 안락을 얻겠다고 이웃을 욕하고 속이고 넘어뜨리고(아뇨, 당신도 한번쯤은 그런 짓을 하셨어요. 무의식적으로 해놓고서도 자기자신만 그런 줄을 모른다는 건 더욱더 분노할 일이지요. 부끄러운 줄 아세요. 인간이라면 부끄러운 줄 아시라고요. 부끄러워한다는 건 인간에게만 있는 감정이니까요), 참 영락없이 지옥의 망자가 서로 물어뜯으며 싸우는 것처럼 어처구니없고 비참한 장면들을 지켜봐야했습니다.
(249)잊을 수 없는 훈훈하고 즐거운 추억:인간의 직업 중에서 가장 비천한 장사라는 이 창백하고 뻐쩍 마른 여자가 내 어두운 일생에서 가장 귀하고 찬란하게 보였습니다. 아아, 욕망이여, 사라져라, 허영이여, 사라져라.일본은 이 두 가지 때문에 패한 거예요. 술따르는 여자는 아무 욕심도 없고 또한 허영도 없이 오로지 눈앞의 술주정뱅이 손님을 구하고자 혼신의 힘을 다해 대위를 일으켜 세우고 겨드랑이를 받혀주고 비틀거리면서 밭쪽으로 도망쳤습니다. 도망쳐 나오자마자 神社 경내는 불바다가 되었어요.
(새벽에 대위는 술집여자 덕분에 불구덩이에서 살아난 사실을 깨닫고 고마움을 느낀다.)
(255)대위는 왠지 지독히 당황한 기척으로 비척비척 일어나 도망치듯이 대여섯 걸음 걸어가다가 다시 돌아와 웃옷 안주머니에서 내 친구인 100엔 지폐를 대여섯 장 꺼내고, 그리고 바지 주머니에서 나를 빼내 모두 합해 여섯 장을 겹쳐서 딱 반으로 접어 그것을 아기의 속옷 밑 등쪽에 넣어주고는 급하게 뛰어 달아났습니다. 나 자신에 대해 행복감을 느낀 것이 바로 그때였어요. 화폐가 이런 역할로만 쓰인다면 우리 화폐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평론가 오쿠노 다케오의 글 참조**
다자이 오사무:(1909~1948)
본명 쓰시마 슈지/11남매 중 10번째/쓰가루의 대지주 집안에서 자랐으나 부의 축적이 주변의 가난한 사람에게서 착취한 것임을 깨달으며 프롤레타리아 성향을 드러낸다/도쿄대불문과 입학, 중도포기/23세 때 자전전이야기 '만년'을 써서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다가 낙방함/일본 문학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깊은 자기분석, 자기고백의 문학을 일궈냈다/
<달려라 메로스>는 옛이야기의 소박하고도 강한 뼈대를 살리면서도 그 속에 현대인의 부끄러움과 자의식을 빚어 넣어 우정과 신뢰를 노래한, 다자이 문학의 명랑성과 건강성을 대표하는 단편이다/다자이 오사무는 패전의 황망함 속에서도 전혀 변하지 않는 인간의 에고이즘, 인색함, 고루함에 절망한다/<사양>은 다자이 문학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인간실격>은 처음으로 자신만을 위해 쓴 작품이며 내면의 진실을 담은 정신적 자서전이다. 다자이의 모든 작품이 사라진다 해도 '인간 실격'만은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거듭 읽히고 감동을 주는, 문학을 뛰어넘은 영혼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여러 번 자살시도 끝에 끝내 서른 아홉 생일을 일주일 앞두고 다마강 수원지에 투신 자살함/<인간실격>은 그가 자살한 1948년에 씌어진, 마지막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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