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영화 ·강연 이야기/책

교황의 역사

맑은 바람 2021. 7. 12. 18:36

--도시에서 세계로
프란체스코 키오바로, 제라르 베시에르 지음/김주경 옮김/시공사/175쪽/1998년1월 초판,2009년 2월초판 14쇄/읽은때20210709~0717

제1장 예수, 베드로, 그리고 교황
(16)바울로는 기독교가 전통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모든 이에게 문을 활짝 열게 만든 일등 공신이다.
(전통:유태의 율법은 하느님과 유태인 사이에서 맺어진 약속)

제2장 로마의 공인
(27)4세기에 기독교는 합법적인 종교가 되었고 다시 그 후에 국가의 공식적인 종교로까지 승격되었다.
(28)박해의 시대:4세기 첫 무렵의 황제들은 아예 기독교라는 이름과 함께 교회를 완전히 없애버리기로 했다. 303년에서 313년까지 10년간에 걸쳐 혹독하고 끔찍한 박해가 있었고 따라서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순교자들과 배교자들이 생겨났다.(4000명에서 수만명)
(28-2)밀라노 칙령(기독교 공인)발표:313년 2월,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인들에게 종교와 예배의 완전한 자유를 허용한다. 그는 모든 국민들에게 '생명의 빛을 주는 집'으로 들어가도록 귄고했다. 315년부터 건축되기 시작했던 라테라노 대성당(지금의 로마 대성당)은 아직까지도 '모든 교회의 머리이자 어머니인 교회'라고 불린다.
(30)황실교회가 만든 공의회(=주교회의, 종교회의):교회들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
(31)니케아 공의회:325년 개최/동방을 혼란케 하고 있던 아리우스파(아리우스는 알렉산드리아의 사제)에 관한 문제 해결/아리우스파의 주장--예수는 뛰어난 인간일뿐이다/니케아공의회의  확정된 교리--아버지와  아들은 영원한 존재이며 동일한 실체다
(31)영원한 로마:330년 로마황실이 동방의 콘스탄티노플로 자리를 옮긴 대신, 로마에는 본질적인 것, 즉 베드로와 바울로, 두 사도가 세웠던 기독교의 전통이 남게 된다.
(34)교황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대교황 레오1세/452년 망투 부근에서 훈족의 왕인 아틸라를 만나 이탈리아 침공을 포기하도록 설득했고/455년 아프리카에서 온 반달족의 왕 게이세라쿠스가 로마를 점령했을 때도 그를 만나 로마시를 무력으로 짓밟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37)대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로마 귀족 가문 출신/로마의 성사예식서를 제정하는 데 공헌함/그레고리안 성가/'하느님의 종 중의 종'이라는 서명을 사용

제3장 로마 교황
(43)교황령의 시초:피핀(프랑크족 메로빙거왕조의 권력을 손에 쥔 궁재, 751년에 왕으로 선출됨)이 롬바르디아족을 정복했고 승리의 대가인 이탈리아 영토를 성베드로의 무덤 위에 헌납함
(47)스테파누스 6세와 교황 포르모수스:철의 세기라 불린다/죽은 포르모수스의  시신을 꺼내 교황복을 입히고 재판을 한 후 거리를 끌고다니다가 테베레 강물에 던졌다.

후에 교황 테오도루스 2세에 의해 묘지가 만들어지고 안장된다.(897년)
(52)힐데브란트: 로마교회 부주교로 개혁파의 총수였다./교황권을 황실에서 해방시킬 방법을 찾았다./1059년 교황선출을 콘클라베, 즉 추기경들로 구성된 선거인단에 맡기기로 한다./힐데브란트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가 된다./황제 하인리히 4세와 대립했으나 교황은 영적지도자답게 황제를 용서했고 파문을 취소했다./교황은 1085년 살레르노에서 죽었다/"나는 정의를 사랑했고, 불의를 미워했다."그는 씁쓸히 덧붙였다."그래서  나는 추방당한 채 죽어간다."
(55)십자군전쟁의 발발:1070~1071사이, 투르크족이 팔레스타인 점령/그레고리우스 7세는 예루살렘 성묘를 해방시키기 위해 원정군을 파견하기로 했다.
1095년 11월 27일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교황 우르바누스2세는 정열적인 연설로 십자군원정에 불을 붙였다.
"하느님께서 원하신다"
(59)젊은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통치를 위해 태어난 인물이라 할 만함/탁월한 외교능력으로 왕들을 중재함/새로운 문화에 호의적이고 대학발전을 장려/십자군 4차 원정 추진
(61)교황권의 시련기:아나니 사건/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가 이단과 성직매매 혐의로 고발 당하고 프랑스왕 필리프 무리들에게 따귀를 맞았다/로마로 돌아온 교황은 깊은 상처로 며칠 만에 숨을 거둔다.
(61)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쿠스회:프란치스코회 수도사들은 신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주력함/도미니쿠스회 수도사들은 교회의 이념적 순수성에 관심이 많고 교황정치의 충실한 일꾼들이었다.

제4장 위기의 시기
(64)교황 클레멘스 5세:보르도의 대주교 베르트랑  드 고트/아비뇽으로 거처를 옮김/프랑스왕의 협박에 의해 성전기사단을 처벌함(1307.10.13 금)/2000명에 이르는 성전 기사단의 기사들이 투옥, 고문 당했으며 수백 명이 화형에 처해졌다.
(사람들이 '13일의 금요일'을 꺼리는 이유가 이 사건에서 비롯된 것일까?)
(65)교황들의 호화로운 생활:
요한 22세는 엄격한 재무관리로 막대한 자금을 모음--후임자 베네딕투스12세는 화려하고 장엄한 교황궁 건축--이어 클레멘스6세는 나폴리 여왕에게서 영지를 사들이고 르네상스 시대의 교황들이 누리던 호화스런 생활을 즐겼다.
(스스로를 베드로의 대리자, 하느님의 대리자 라고 하는 이들이 펼친 생활은 누구도 그들을 하느님의 종이라 생각할 수 없게 한다. 권력욕, 명예욕에 사로잡힌 탐욕스런 인간들이 대부분이라는 걸 그들의 역사가 말해 주고 있다.)
(68)만국 공의회:1417년 스위스의 콘스탄츠에서 열림/서방기독교세계의 총집합/주교,황제,제후,평신도,사제들이 참석/세 교황을 해임시킴/콘클라베에서 마르티누스5세를 새 교황으로 선출함
(69)인문주의:인간은 스스로를 운명의 주인으로 자각하기 시작했다.우주 안에서 인간의 위치를 다시 정립했으며 중세보다는 고대를 더욱 친근하게 여기게 되었다. 이런 새로운 사유방식을 인문주의라고 부른다.
(69)마르티누스 5세:그는 서구 기독교세계의 심각한 분열에 종지부를 찍으며 마침내 로마로 돌아왔다. 교황이 로마로 돌아온 것은 교황권의 근대사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했다.
마르티누스 5세의 남달랐던 점은 유대인을 대하는 태도이다.그는 유대인 박해를 철저히 금했다. 더욱이 당시에는 유대인 아이들에게 강제로 세례를 하곤 했는데 교황은 이런 행위를 하는 자를 파문에 처했다.
(70)미에 집착했던 3명의 교황:
1.알렉산드르 6세-돈과 여자에 대한 정열을 주체할 수 없었던 자


2.율리우스 2세-끊임없는 전쟁을 일으킴/미켈란젤로와 브라만테의 절친한 친구/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성전의 천장화와 자신의 무덤을 맡겼다./브라만테에게는 성베드로 대성당의 신축을 명령했다.
3.레오 10세-로렌초 가문 출신/조반니 데 메디치/도덕적  순결과 유연한 성품, 가문의 막강한 힘이 그를 교황으로 만들었다/평화를 사랑하고 삶을 즐김/라파엘로를 사랑하여 그가 죽었을 때 일생 한번 눈물을 흘림/화려한 삶을 사는 동안 교황청의 금고가 바닥남/683명의 시종을 거느리고 32명의 추기경단을 창단하여 왕의 권력을 축소시킴
(74)종교개혁:1517년 독일의 수도사인 마르틴 루터는 르네상스 시기에 교황권이 지니던 화려한 이미지를 산산조각 내버렸다./루터는 기독교의 모든 체제를 규탄했고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고발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감추어져 있던 이 두려운 말이 드디어 루터의 입을 통해 세상에 나온 것이다.
(78)개혁자 교황들:
1.피우스5세--영적지도자의 면모를 바티칸에 도입/청빈한 생활/도미니쿠스회의 흰옷을 그대로 고수, 그후 교황복이 되었다./오토만제국에 대항하여 스페인과 베네치아와 동맹을 맺는데 성공, 레판토해전에서 투르크족을 대파하는 업적을 세움(1571.10.7)
2.그레고리우스13세--전직 볼로냐대학 법률학 교수/예수회 수도사들을 양성, 각지로 보냄/성 바르톨로메 대학살(만명이 넘는 신교도가 학살된 사건)소식이 전해지자 로마인들이 감사의 찬가를 부르며 행진하는 것을 묵인했다.
3.식스투스 5세--박식하고 준엄하고 뛰어난 재능을 지님/프란체스코회 출신/지나치게 엄격한 법규로 공포의 교황이라 불림/교황청 구조를 개편, 교황의 권력을 분산시킴
(81)근대 이념의 태동:
**환속한 조르다노 부르노를 화형에 처함/죄명은 사상의 자유를 믿은 것
**갈릴레이가 사형언도를 받음/교황 친구의 도움으로 목숨은 건졌으나 자신의 이론을 부인하고 죽을 때까지 침묵해야 했다.
(82)계몽주의 시대의 걸출한 두 교황:
1.인노켄티우스 11세--귀족출신/박식하고 성실하고 청렴함/헝가리를 해방시키고 베오그라드를 정복함/밀물처럼 밀려들어오는 이슬람 문화로부터 유럽을 수호하는 중요한 정치적 역할 담당
2.베네딕투스 14세--신화적 인물/본명 프로스페로 람베르티니/학식이 뛰어나고 '개방적 정신, 일처리 능력이 능숙함/교황권에 과학적  정신을 도입하기 위해 대학에 고등수학과 화학, 외과학 강좌를 개설토록 함

제5장 혁명의 한복판에서
(103)레오13세:본명 조아키노 페치/위대한 외교가/수세기 전에 실추했던 교황권의 국제적 위신을 다시 찾음/전통적 교리의 틀 속에서 교회와 근대성을 접근시키려고 시도함/그는 평소에 "하느님은 우리의 거짓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제6장 또다시 맞은 천 년
(107)**요한 23세:본명 안젤로 론칼리/피우스 12세의 후임/77세 때 교황의 자리에 오름/좋은 목자가 되는 것이 유일한 관심사/카톨릭 교회를 현대세계에 개방한 가장 대표적인 교황/신자 비신자를 떠나서 그들을 소박하게  선한 마음과 겸손함으로 대했다./진정한 과도기의 교황/더 이상 전쟁이 정의의 도구로 사용될 수 없음을 역설, '지상의 평화'를 강조했다./그의 부고를 듣고 사람들은 로마거리를 행진하며 한없이 울었다.(1963.6.3)

**요한 바울로 2세:인류를 분리하는 종교, 정치, 사회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 전념했다.
**베네딕투스 15세:남작의 아들/1차대전의 전운이 감돌자 그는 이 전쟁을 유럽의 자살행위라고 고발하면서 무의미한 살육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그는 엄격하게 중립을 지킴으로써 전쟁을 더욱 적극적으로 비난했다./교회 내부적으로는 전통주의자와 근대주의자의 권력다툼을 불식하는데 성공했으며 선교활동을 꽃피웠다./1917.6 교회법 공포
(110)라테라노 협정:1929년 2월11일, 바티칸과 파시스트정부의 협상/이탈리아 정부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인 새로운 바티칸국의 자유와 주권을 보장했다/교황은 이탈리아 국가를 인정하고 로마가 이탈리아의 수도임을 받아들였다.
(113)교황 피우스11세의 활약과 죽음:교황은 독일국가 사회주의를 비난하고 소비에트 공화국을 비난했다./1938년9월6일, "우리는 영적으로는 모두 유대인입니다" 하고 불어로 한 이 말은 온세계에 울려퍼졌다./이로써 교황권은 견줄 데 없는 도덕적 명성을 누리게 되었다./1939.2  갑자기 서거함
(114)피우스 12세:본명 에우제니오 파첼리/전직 국무장관/2차대전 발발시 나치의 잔혹상에 침묵/방송매체로 대중들에게 어필
(117)바울로 6세:본명 조반니 바티스타 몬티니/피우스12세의 고문/폭넖고 깊이있는 학문의 소유자/우유부단함/성대한 의식에 사용되었던 상징물들을 없앰/교황은 삼중관을 팔아 그 돈으로 가난한 자들을 구제했다. 교황의 가마는 박물관으로 보내졌다./1964년 1월,예루살렘 순례에서 콘스탄티노플의 총주교 아테나고라스1세를 만나 기독교 통합운동의 막이 오름
(119)요한 바울로 1세:알비노 루치아니/노동자 집안 출신/겸손함과 미소/갑작스런 죽음으로 재위기간은 33일/독살설이 있음
(120)요한 바울로2세:(1920~  )폴란드인/카를 요셉 보이티아/1978년 10월에 교황으로 선출/윤리학 교수 출신
용기와 결단력의 소유자/카리스마 넘침/잦은 세계여행을 통해 메시지를 전함/가는 곳마다 땅에 입을 맞추고 미사를 거행함/몇 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 그 나라 현실에 맞는 연설로 군중을 사로잡음

기록과 증언
(132)대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
서구뿐 아니라 동방에까지 그 인품이 널리 알려졌고 그의 권위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다.
"저는 사람들의 말을 통해서 존경받는 것이 아니라, 제게 풍겨나오는 인품을 통해서 존경받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알렉산드리아 총주교에게 보낸 편지 중(1982년)
(134)교황의 절대권력(1075년 당시 그레고리우스 7세 때):교황은 황제를 해임할 수 있다(실제로 1076년 그레고리우스 7세는 황제를 파문함)/그 누구든 교황의 판결을 수정할 수 없으며 교황만이 모든 사람들의 판결을 수정할 수 있다/어느  누구도 교황을 심판할 수 없다
(139)트레비 분수:분수는 교황들의 관심이 유용성에서 웅장함으로 변했음을 보여준다./클레멘스  12세가 계획하고 베네딕투스 14세가 완성함
성베드로 성당:1454년 처음 계획하여 1614년 정면 부분을 왼성하기까지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시대에 따른 다양한 건축 양식들이 도입되었다.
(140)교황 율리우스 2세:정치가, 전쟁 지도자/미켈란젤로ㆍ라파엘로ㆍ브라만테의 후원자

여행  떠나오기 직전부터 읽기 시작, 오늘에야 책장을 덮는다.
드라마틱하지도 감동적이지도 않다. 인간 속성이 교황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을 보았다.
아직 종교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인가 자꾸 종교 관련 책에 눈이 간다.

이 책을 덮는 순간. 이 여행의 성격과도 어느 정도 비슷하다는 걸 느낀다.
교황도, 종교도 내 삶을 바꿔 줄 수 없듯 내 고단한 일상에 여행은 잠시 쉼표가 될지언정 진정한 행복과 기쁨은 내 안의 우물에서 건져올려야 하는 것임을~ (20210717  감포항에서)

 

 

'책 ·영화 ·강연 이야기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잔  (0) 2021.07.31
베이컨-회화의 괴물  (0) 2021.07.19
앙드레 말로  (0) 2021.07.08
푸른 삶 맑은 글  (0) 2021.07.06
점선뎐  (0) 2021.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