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이란 무엇인가
시공디스커버리 총서/1996년11월 초판/2012년 2월 초판 23쇄/크리스티앙 비에ㆍ장 폴 브리엘리
ㆍ장 뤽 리스펠 지음/은위영 옮김/읽은 때:20210706~0708
앙드레 말로:(1901~1976.11.23)향년 75세. 소설가, 혁명가, 정치가
'인간의 조건'으로 콩쿠르상 수상/반식민 운동, 중국혁명운동, 반나치스 운동에 참여/문화부장관 역임/
현실참여 지식인의 대명사
제1장 지도자의 어린 시절
(14)회상하고 싶지 않은 어린 시절:"내가 아는 대부분의 작가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사랑하지만 나는 그 시절이 너무도 싫다."
(15)외할아버지의 투덜거림:
"젠장, 아들놈이 넷이나 되는데 작가라고는 하나도 없어. 한 놈만 글쟁이가 되었어도 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내가 되었을 텐데."
(17)책의 바다에 빠지다:부모의 별거로 외가댁에서 살게 된 말로는 삼총사, 월터 스콧, 플로베르, 위고,세익스피어, 발자크 등의 작품을 만났다.
17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포기한 후 독학으로 교양을 쌓아 파리문단과 예술계에 데뷔한다.
(19)책방주인 르네 루이 두아용과의 인연:문학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책방(라 코네상스=지식, 월간지의 제목, 뒤에 '악시옹=행동'이라는 잡지로 창간된다) 주인은 의식있는 젊은 무명작가의 글을 출판하기로 결심한다. 말로는 '입체파 시의 기원'이라는 평론을 게재했다.
후에 악시옹 창간호에 '랑드뤼에 대한 찬가'가 특집으로 기획된다.
*랑드뤼:수십 명의 여인을 살해한 살인범/전쟁으로 수천만이 죽은 당시를 풍자
(23)클라라와의 만남:부유한 독일계 이민가족의 상속녀인 클라라 골트슈미트와 날카로운 지성과 천부적인 말솜씨를 지닌, 훤칠하고 우아하고 자상한 청년은 결혼에 골인한다.
제2장 반항자의 모험
(28)막스 자코브(입체파 시인)와 칸바일러(입체파 화가)의 만남:칸바일러의 후원으로 작고 고급스러운 책 '종이달'을 출판, 막스 자코브에게 헌정함
(32)도박가 말로:주식 투자로 빈털터리가 되기도 하고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그는 재능이 있어 그를 필요로 하는 데가 많았다.
(34)앙코르 유적 약탈:1924.1 유적의 파괴자와 도굴꾼으로 말로를 지목했다. 징역 3년을 구형받았지만 클라라의 구명운동과 사이공에 있는 젊은변호사 모냉의 도움으로 석방되었다.
(37)"모든 프랑스인에게 고한다. 안남땅 도처에서 들리는 이 풍문을. 몇 년 전부터 비등하는 만갈래의 증오와 원한이 한데 묶인 이 불안을 우리 모두가 경계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그에 대한 댓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할 것이다.--'사슬에 묶인 인도차이나' 앙드레 말로
(45)'인도차이나' 창간:1925년 6월, 말로와 모냉이 사이공에서 창간함/친베트남계의 일간지/거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는 제국주의의 개들이 으르렁거렸다./이 잡지는 중국의 민족해방운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그가 정글에서 마주친 뱀과 전갈 떼도 이곳의 부패에 비하면 약과였다.인도차이나의 입을 막기 위해 온갖 공작이 벌어졌다./코친 차이나라는 소중한 식민지 땅에서 '인도차이나'는 입에 물린 재갈을 푸는 역할을 했다./1925년12월, 벽에 부딪힌 말로는 프랑스로 귀국
**(용모가 아랑 드롱을 닮았다.가난한 청년이 돈 많은 여인을 탐한 것도)
제3장 꿈과 행동 사이에서
(51-53)말로의 신화:말로가 '서구의 유혹'에서 유럽의 몰락을 예고할 때 그는 25세의 청년이었다. 아시아에서 에스파냐 내전에 이르기까지 이 젊고 총명한 지식인은 인류의 연대성을 추구해 나간다./명철함, 번득이는 예지, 깊이를 지닌 혁명적 지식인, 말로의 신화가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다./"금세기 최고의 지성을 만난 느낌이었다"--모리스 사슈
(55-56)또다른 여인들의 등장:조제트 클로티와 루이즈 드 빌모랭/조제트는 후에 말로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낳는다/루이즈는 쾌활하면서도 꿈을 심어주는 여자로 금발에 이목구비가 반듯하고, 맑은 하늘빛 눈동자에 창백한 얼굴의 여자(쌩텍쥐베리의 약혼자와 동명이인?)
"눈부시게 고운 그녀의 말씨는 여왕 주위의 귀부인들을 연상케 한다"(말로)
-내 삶은 당신과 함께 마감될 게요.
--개연성인가요, 획실성인가요?
--무엇보다도 깊은 신념이오.
(62)지드와 말로:글쓰기와 사유에 대한 정열, 도덕적 엄격함, 공산주의 이념이 서로 같은 동지
(63)트로츠키와 말로:말로는 레온 트로츠키에 열광하여 그가 망명 왔던 프랑스에서 추방당할 위기에 처하자 이에 맞서 항거하기도 함
(55)<인간의 조건>:1933년 공쿠르상 수상작/말로의 나이 32세 때/몽테뉴와 파스칼에게서 영감을 얻은 제목/중국혁명의 복잡한 에피소드/공산주의자들이 주도했다가 장제스에 의해 진압된 상하이 봉기/전년도 중국여행에서 남긴 몇 편의 짧은 단상과 오려놓은 신문기사 몇 점/우연한 만남과 인도차이나의 경험에서 떠올린 인물들/역사적인 만큼이나 전설적이고 영웅적인 사실주의/그리고 누구나 '운명과 의지의 목소리가 교차됨'을 느낄 수 있는 소설
(75)말로, 스페인 내전 참전:1937년 3월, 실제로 공화파 정부의 정치선전 및 대외협력부 장관의 기능 수행/에스파냐 의료 지원금 모금을 위해 조제트 클로티와 미국행, 수천만 달러를 들고 발렌시아로 돌아옴
**이 때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영화 '희망(시에라 데 테루엘?)'이다./1945년 상영/루이 델뤼크 상 수상/1970년 파리에서 재개봉
제4장 전쟁의 시대
(78)말로의 전쟁 참여:1940.3 프로방스에 주둔한 기갑여단 보충대/6.16포로로 잡힘/막내동생 롤랑의 도움으로 탈출/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두 남동생이 레지스탕스 운동 중 사망)
(82-83)베르제르(=양치기)대령인 말로와 솔레유(=태양)의 만남:1944년 6월 25일, 말로는 소집령에도 끄떡 않는 독불장군 솔레유를 직접 찾아간다.
"엄청나게 강한 인상인데 생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충성하고픈 느낌이야"--솔레유
말로를 주인으로 모시는 데는 5분이면 충분했다.
(84)레지스탕스의 활동: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이들의 혁혁한 활동이 연합군의 승리를 이루는데 일조했다./말로는 활동 중 총상을 입고 포로가 되었다. 총살을 앞두고 취조를 기다리는 중 파리가 해방되었다(1944.8.15~25)
(86)알자스 해방군의 선봉에 서다: 2000명의 군대의 지휘관이 되어알자스 탈환을 위한 전투를 시작했다.
"베르제르 대령은 입에 담배를 문채 짧은 명령을 내리고 나서 말없이 적진을 응시하곤 했다. 우리는 그 시선에서 증오와는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을 보았다. 말로에게는 증오도 전쟁만큼이나 경멸스러운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우리들의 공통된 의지를 상징하며 하나의 모범이 되었다. 그는 죽음을 찾고자 했는가, 그의 행동을 보면 또 이렇게 주어지는 죽음이야말로 자유를 추구하는 최고의 행동이겠거니 생각하면 그렇게 믿을 수도 있다. 타인의 삶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내놓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초월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궁극적인 것이므로 바로 이러한 점을 병사들 하나하나가 다소 혼동스럽긴 해도 자기의 내면 깊숙이 느끼고 있었다.--피에르 보켈 피에르 갈랑트의 '말로'에서
(88)망자의 달:1944.11 동반자 조제트 클로티가 열차 사고로 죽고, 남동생 둘이 레지스탕스 활동 중에 죽는다.
1945년 이래 죽은 동생 롤랑의 아내와 그 아이들과 블로뉴 숲에서 살았다.
제5장 영광과 영원
양아버지가 된 드골과 말로:25년간 양부자 관계를 유지한다./이 둘은 공산주의자들의 영향력이 거세된 향후 정국에서 반마르크스 주의의 토양을 일구어 나가게 된다./1945년 드골 내각에서 공보부장관으로 입각함/1951년 정치 선전위원이 되어 전세계를 누비고 다님
(100)알랭 말로(롤랑의 아들)가 바라본 말로:당신에게는'기독교의 성인의 통공'이 창조자들의 것으로 대체되었다. 당신이 '되찾은'시간이란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담보로 하는 것이었다. 전적으로 우리 것이어야 할 우리의 시간은 당신의 이 작업으로 완전히 망가지고 말았다. 당신은 당신이 '침묵의 소리'라고 이름붙인 것만을 이야기했을 뿐, 그외의 모든 것, 우리의 목소리는 언제나 방해가 되는 잡음이나 소음에 불과했다.---당신은 악착스럽게 쓰고 읽음으로써 작업을 진전시켜 나아갔고 한순간도 쉬지 않았다. 당신은 바캉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른 채 죽었을 것이다."
(말로 곁에 머물렀던 네 여인을 생각한다.
클라라, 조제트, 전 롤랑의 아내 마들렌, 루이즈 드 빌모랭
클라라의 미모와 재산은 말로를 성장시키고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아이 둘을 난 조제트는 어째 혼자 그런 끔찍한 변을 당했을까?/루이즈는 영리한 여자였나 보다. 거리 두기를 하며 오래도록 연인 관계를 유지한 걸 보면--/아내가 된 제수씨 마들렌은 물론 경제적 이유로(?)결혼을 했을 테지만 알랭 말로의 말을 빌자면 아이들에게는 '최악의 큰아버지'였나 보다. 마들렌 또한 자신의 생활 영역은 줄어들고 오직 '절대적 헌신'만이 요구되었으니 그리 행복했으리라 믿기 어렵다. 다만 루이즈는 말로의 만년에 다시 만나 진정한 사랑의 시간을 나누었겠지?)
제6장 권력과 죽음
(110)드골과 말로:베네치아에서 돌아온 지 이틀 만에 말로는 드골의 호출을 받았다.
"다시 국가를 재건해야겠네. 통화를 안정시키고 제국주의와 결별해야겠어. 우선 국민들에게 프랑스를 다시 재건할 것인지,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것인지 물어 봐야겠네. 국민의 호응 없이 무엇을 할 수 있겠나."
말로에게는 적어도 역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역사가 그를 장군의 오른편으로 인도했고, 그는 제5공화국의 창시자가 물러나는 1969년 4월까지 이 자리를 충실하게 지켰다. 6월 1일 말로는 해방 직후와 같이 수상실 직속 공보담당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7월 27일 그가 관장하는 업무가 '프랑스 문화의 전파와 번성'으로까지 확대되더니 1959년 1월을 기점으로 부총리급에 해당하는 국무부서로 독립하고 6개월 후에는 '문화부'라는 정식 명칭을 얻게 되었다.
(113)또 다른 죽음:포르크로스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의 두 아들, 고티에와 벵상이 죽었다.(말로 60세 때) 그들은 어머니 조제트 옆에 묻혔다. 전에 조제트는 이런 말을 했다.
"얘들의 손금을 보면 겁이 나요. 나처럼 손금이 중간에 끊어졌거든요."
여행과 활동은 여전했지만 그는 무기력해졌다. 매순간 죽음은 말로를 휘감았고 말로는 죽음을 관조하며 예술과 삶 속에서 죽음을 이야기했다. 곧이어 찾아온 우울증과 잦은 병원 출입으로 그의 내면에 무거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1961년, 명예와 영광, 명성을 누린 그가 이렇게 말했다.
"삶을 완성하는 데 60년이면 족해. 그 다음에는 죽는 게 좋아."
(113)우리가 예술을 사랑하는 것은 그것이 자기가 미처 모르고 있던 인간의 위대함을 깨우쳐 주기 때문이다.
(115)모나리자의 첫 해외여행: 1963년 1월 9일
--(말로) 제가 귀국하면 저를 논단에 세워 '왜 미국에 모나리자를 대여했는가.'라는 비감어린 질문들이 쏟아질 것입니다. 저는 그때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그들 말고는 '모나리자'를 받아들일 만한 나라가 없었기 때문이다'
라고 말입니다.
(116)말로와 마오쩌둥:
1965년 8월, 중국에 건너가 마오쩌둥 접견/말로에게 마오쩌둥은 살아있는 신화와도 같은 존재였다. 말로는 이 날의 감동을 '반회상'에 문학적 필치로 그려냈다.
'만일 이 전설이 실재했다는 이유로 전설이 되지 못한다면--' 이라고 썼다.
(118)고속도로 25km의 건설비를 들여 문화회관을 지으면, 10년 내에 프랑스는 세계에서 첫째가는 문화국이 될 수 있다.
그가 오래 전부터 꿈꾸었고 여행을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다듬은 원대한 계획이 있다. 그것은 여태까지 소수 파리인만이 특권처럼 향유하던 '죽음보다 강한 예술'의 집인 문화회관을 전국 주요 지방에도 건립, 다양한 전시회나 행사를 열어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본격적인 프랑스 문화정책의 시발점이 1964년이었으니 불과 50년이다)
(121)"국가는 예술을 감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술에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말로
(123)지혜의 왕 코끼리:코끼리가 모든 동물 중에서 제일 지혜로운 동물이야. 유일하게 코끼리만 전생을 기억해. 그리고 오직 코끼리만 오랫동안 침잠하며 자기를 관조하지.
(123)말로의 회고록:1967년 '반회상' 출간/이 책이 나오기 두 달 전 의붓아들 알랭에게 말했다.
"내가 금세기 최고의 작가라는 것을 보여주지"/인간의 조건, 그것은 치유할 수 없는 병이 개인의 운명에 파고들듯 인간의 운명에 파고드는 창조의 조건이다. 이러한 조건을 파괴하는 것은 삶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것은 살인이다
(123-124)네번째 결혼:1967년 베리에르르뷔송 성벽 아래에 있는 브라크의 작은 배에서 루이즈 드 빌모랭과 살림을 차린다(말로 66세 때)/1969년 12월 26일 루이즈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124)루이즈의 유언:나는 어차피 우리 정원에 묻히겠지만 나 혼자 너무 슬플 거예요.그래서 하는 말인데 돌로 된 의자와 청동으로 된 탁자를 만들어 두면 어린아이들이 간식을 먹으러나마 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돌의자 위에는 내 좌우명도 새겨놓고요. 내 필체와 똑같은 글씨로 '살려주세요'라고 적어놓고 네잎클로버도 함께 새겨 놓으세요.
(126-127)말로의 죽음:
1976년 11월23일/그의 유해는 전쟁을 함께 치른 동반자, 조제트 클로티와 자동차 사고로 죽은 그의 두 아들, 고티에와 벵상이 잠들어 있는 샤론의 지하무덤에 안장하기로 했다. 물론 클라라와 마들렌은 이 제안을 달가워하지 않았다./샛노랗게 물들어 가는 숲을 지나 베리에르의 작은 묘지로 장례행렬이 천천히 움직였다. 가까운 친구들만이 기별을 받았다. 꽃다발을 던지던 한 친구가, 어떤 야유에도 꿈쩍하지 않았던 이 75세의 돈키호테가 마지막으로 억압에서 구해 내려했던 지역인 방글라데시를 상기시켰다. 옅은 색의 떡갈나무 관이 무덤에 내려지기 전에 모두 장미 한 송이를 던졌다.그러나 강복도 기도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이었다. 사제로서는 그와 가장 가깝게 지낸 피에르 보켈신부가 낮은 소리로 기도를 올렸다. 언젠가 말로는 반 농담조로 말했다.
"나는 냉담자야. 그래도 인물이 되었잖아. 당신도 알지만 내가 얼마나 영리한 사람이야. 하지만 당신이 나보다 더 잘 알겠지. 누가 하느님에게서 벗어날 수 있겠어.
베리에르에서 하얀 밤이 검은 대지 위로 떨어졌다.
(한편의 장대한 서사시를 읽은 기분. 갈수록 몰입하고 필사하는 재미가 점입가경이다.
앙드레 말로는 프랑스가 위기에 처했을 때 레지스탕스 활동으로 나라를 지켰고, 프랑스 문화의 세계화를 위해 헌신했다. 그의 뒤에는 드골이 있었다. 얼마나 멋지고 힘있는 인간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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