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의 괴물
시공사/크리스토프 도미노 지음/성기완 옮김/134쪽/읽은 때:20210717~ 0729
프란시스 베이컨:(1909~1992)향년 83세/더블린 출생/퇴역 영국군 장교이자 기마조련사의 아들/20세기 최고의 구상화가/현대인의 분노와 공포, 위기를 기괴하게 표현해 냄/노름꾼, 독학으로 그림을 배움/그에게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순간의, 살아있는 사람에 대한 이미지다/고통받는 존재가 속박된 공간, 그것은 바로 '새로운 것을 항해 열려 있는 폭력'을 생산하는 그의 방식이다/매우 특이한 인생을 산 사람에게 그림과 삶은 아주 각별한 관계에 있다 (역자 해설)
***17세기 영국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은 그의 먼 조상
1장 그림을 향한 얼굴
경제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하던 중에 16세 무렵, 어머니 속옷을 입어보다가 아버지한테 쫓겨나 걸인처럼 세상을 떠돈다.
그때 아버지의 위탁교육으로 베를린과 파리에서 화가들을 접하게 되고 동성애자가 된다.
(16)그의 주요 소지품은 정신의 자유, 그리고 그가 결코 버리지 않았던 도전적 언동뿐이었다.
(19)스무 살에 실내장식과 가구제작업에 종사하며 최초의 유화 작품을 그렸다.
(22)베이컨과 로이 드 매스터:매스터는 베이컨보다 열 살 정도 위로서 아버지 같은 사람에서 형제로, 연인으로, 끝내는 경쟁자로 베이컨의 삶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다.
베이컨은 드 매스터와 꾸준히 만나면서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밀접한 관계를 맺어간다.
(23)25세 때 첫번째 성공을 거둔 작품 '십자가'를 그렸다.
(24)개인전 실패에 절망한 베이컨은 극단적인 보헤미언 생활을 하며 부랑아로 전전한다. 무엇보다 그를 끈질기게 휘어잡은 욕망은 노름이었다. 그는 노름 때문에 재산을 탕진하곤 했다.
(25)그레이엄 서덜랜드와의 우정:전쟁화가인 서덜랜드는 베이컨의 기교가 완숙해지는 데 공헌했을 뿐 아니라 당시 미술계의 실력가들에게 그를 소개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랑의 관계를 넘어 경쟁관계가 되었다.
(25)후원자 에릭 홀:1930년대 내내 그의 훌륭한 스승이자 재정적 후원자요 믿음직한 지지자였던 에릭 홀에게서는 예절을 배웠다.
2장 독창성의 발견
(32)성공의 마구간:사우스 켄싱턴의 허름한 아틀리에/재능이 싹을 틔운 토양/1961년부터 죽을 때까지 이용/이 아틀리에의 기를 받아 불쾌하면서도 소중한 작품들이 싹을 틔웠다.
(32)그는 비록 자신의 국제적 성공을 의식하긴 했지만 훈장이라든지 다른 특별대우 같은 공식적 형태를 띤 사회적 명성을 경멸했다. 그렇지만 그는 돈을 버는 데만큼은 열을 올렸다. 그는 돈을 쓸 줄 알고 나눌 줄 알았으며(술값이나 밥값을 혼자 다 냈다) 더구나 그의 노름벽을 만족시키는 데에는 많은 돈이 필요했다.
(37)공인 베이컨:야바위꾼 베이컨이 승리한 또 다른 경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예술장사다. 베이컨은 최소한 한동안은 미술시장에서 일정한 배당금을 보장해주는 가장 비싼 유럽작가였다.
(38)선이가 생각하는 천재의 조건:자신이 작품을 받아들이기 전에는 휴식도 멈춤도 받아들이지 않았다./아무리 인생이 뒤죽박죽이었어도 고집스러운 요구와 줄기찬 지속성이 특징이라 할 그의 작업에 대한 열정은 전혀 상처받지 않았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붓놀림으로 이루어진 그의 놀랍도록 통일되고 논리적인 미술세계를 제대로 알아보는 것은 오늘의 감상자에게 주어진 몫이다.
(42-43)친구들:**독일 태생 루시앙 프로이트(루시앙은 베이컨의 작품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나 베이컨은 프로이트를 혹독하게 평가했다.이것이 그가 프로이트를 인정했다는 표시다. 베이컨은 자신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작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사벨 로스돈(베이컨의 단골모델, 베이컨의 삶에 중요한 자취를 남긴다)
**피터 레이시(1953~1962 사이에 교제, 베이컨의 첫번째 회고전 날 죽음)
**조지 다이어(1963년 이후 교제, 베이컨이 끈질기게 화폭에 담으려했던 강인함을 구현하는 사람,
1971년 베이컨의 파리 회고전이 개최되던 날 자살함)
**존 에드워즈(1974년에 만나 베이컨의 마지막 20년을 함께함/문맹자인 에드워즈는 이미 신화로 불리고 있었음)
(49)대부분의 예술가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아세요? 바로 인생이죠. 모든 예술가는 인생과 사랑에 빠진 이들입니다.
그들은 한결 활력있고 격렬한 인생이 되도록 덫을 씌우죠."
3장 살아있는 이미지
(놓지는 못하면서 빨리 끝냈으면 하는 책, 나의 상식이 원하지 않는 책, 이해하기 힘든 책)
(57)영향을 받았거나 좋아하는 화풍: 이집트 미술, 스페인 북부의 동굴 벽화, 세잔, 드가, 엘 그레코, 고야, 쇠라 등을 찬탄한 적이 있다.
피카소는 아마도 베이컨이 가장 큰 존경을 바치는 대가일 것이다. 파리에서 활동한 이 스페인 화가의 인물에 대한 충실함과 그 형태를 해체시키고자하는 열정, 자유로운 구성과 비밀스러운 기술 등은 베이컨의 초기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66)그는 30년 동안 다음의 두 판형 중 하나를 선택하여 그림을 그렸다. 작은 그림은 가로 30.5cm,세로 33.5cm, 큰 그림은 198cm에 147.5cm로 딱 두 가지뿐이다. 편해서거나 우연이 아니라면 실로 놀라운 충실함이다.
4장 감각을 붙드는 작업
(78)그는 미술작업을 할 때조차도 노름꾼이다.그는 그림에 우연과 우발성을 결합한다. 독학으로 그림을 익힌 그는 서정적 추상성을 강조한 유럽 초현실주의자의 자동 기술이나 미국 사람들이 시도한 1940년대와 1950년대의 액션 페인팅 비슷한 무엇을 합해 자기만의 원리를 닦았다.
(79)지금 나는--젊었을 때보다 훨씬 더 우연을 많이 이용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작품에 적지 않은 손질을 하지만 그렇게 해서 그 그림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릅니다. 단순히 나는 손으로 붓을 쥐고 찍어누르고 던집니다.--단지 이미 완성된 이미지나 반쯤 그려진 이미지에 붓을 던져 그 이미지를 새롭게 창조할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82)그림을 배운 적이 없는 이 화가는 매우 정형화되고 선택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상황에 있었다.
"나는 매우 정돈된 이미지를 원합니다. 동시에 그것이 우연히 만들어지기를 바라죠."
베이컨 미술의 원동력은 바로 이 기술적인 도박, 즉 존재의 즉각성과 움직임, 생생함을 이용하는 이 모순에서 나온다.
(이 글을 번역한 이의 노고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100)예술가는 자기의 실존을 유일한 신앙으로 삼고 거기서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며 이때 자기자신이 되는 것 이상은 있을 수 없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고립된 생활을 한 베이컨은 현대적인 미술세계를 창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경험세계에서는 소수집단 속에서 매우 19세기적인 낭만적 삶을 살았는데 그의 삶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를 '나는 고통받는다 고로 존재한다'로 재해석한 삶이었다.
(실내기온 33도, 이 상황에서 글도 그림도 끔찍한 베이컨과 작별하게 되서 속이 다 후련하다.
그런데 왜 그 책을 끝까지 붙들고 놓지 못한 거람?)
(105)기록과 증언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것들이라면 왜 그리려 하겠습니까?"--프란시스 베이컨
('기록과 증언'은 보충학습 재료같은 거다.
본 학습에서 이해가 부족했던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이라 책장을 덮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