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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

맑은 바람 2021. 7. 31. 18:29

-사과 하나로 시작된 현대 미술
미셸 오 지음/이종인 옮김/시공디스커버리 총서/175쪽/초판 1쇄1996.10/초판 15쇄 2007.11/읽은 때 2021.0729~0802

**"그림이란 색채, 형태, 공간 따위의 다양한 관계 속에서 어떤 조화를 찾아내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여 그것을 새롭고 독창적인 논리에 따라 바꾸어가는 것입니다."

제1장 유년시절
폴 세잔(1839~1906 )향년67세/부친은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로 엑상프로방스(엑스)의 은행가/중학을 졸업할 무렵 라틴어, 그리스어, 고대문학 및 프랑스 문학에 대해 폭넓은 지식을 습득함/우등생이자 모범생 세잔은 학교생활에 충실함/회화의 모든 전통을 철저하게 거부했던 세잔이었지만 문학만큼은 고전적 취미를 즐겼으며 늘 책을 읽으면서 당시의 문학 풍조도 폭넓게 받아들였다.


(14)에밀 졸라(1840~1902)와의 우정:중학동창/졸라는 아버지가 없는 데다 병약했고 지독한 근시여서 동급생들에게 자주 괴롭힘을 당했다. 그때마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세잔이 그를 구출해주곤 했다./세잔이 처음으로 개구쟁이들을 물리쳐준 다음날 졸라는 사과를 선물했다./이들의 우정은 1886년(세잔 47세,오르탕스와 결혼)까지 계속된다/나중에 건축가가 된 밥티스탱 바이유도 중학친구로 졸라, 세잔, 바이유는 3총사
(15)세잔이 사랑한 것들:아르크강에서의 수영, 강변의 소나무, 식물, 숲, 음악, 악기 코넷(트럼펫 비슷한 금관악기), 리하르트 바그너
(17)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학과에 등록(예나 지금이나 법관은 신분상승의 지름길), 그러나 세잔은 부르주아 사회에서 가장 경멸받던 직업인 예술가가 됨
(18)세잔의 인간성:세잔은 미술교수의 귄위주의적인 태도와 낡아빠진 예술관에 동조할 수 없었으나 언제나 일정한 권위를 갖춘 사람에게 존경을 표했고 자신에게 미술의 기초를 가르쳐준 사람에게 순수하게 고마움을 표했다.
(18)세잔의 첫 작품:1859년에 아버지가 사들인 집 자 드 부팡의 '사계절'벽화
(21)세잔의 파리행:법학 대신 미술을 선택하기로 결심하고 친구 에밀 졸라의 독려에 따라 파리행을 결심한다./아버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미술대학 불합격, 살롱 출품작은 낙선을 거듭한다.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을 읽을 땐 불쾌감을 누르기 힘들었으나 세잔은 초반부터 편안하다.
그의 인품과 만나는 기분이다.)
(36)세잔의 도덕성?:1869년 오르탕스 피케(19세의 모델, 미래의 아내)를 만난 이후로는 성애를 다룬 주제를 쓰지 않았다.1886년 결혼

(41)에스타크에서의 생활:그림을 계속하기 위해 병역을 기피한다.

제2장 인상주의 시대
모네, 르누아르, 시슬레, 피사로 등이 그린 풍경화는 선배화가들의 그림과 판이했다. 이들은 햇빛이 자연, 인물, 구름, 그리고 물 등에 미치는 효과에 점점 더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그들은 그늘이 늘 갈색이나 흑색이 아니고 햇빛이 사물의 색깔을 바꾼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들 중 모네는 특히 물에 몰두했다.
이러한 실험은 그에 상응하는 기법을 구사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그래서 그들은 짧은 붓질을 한 위에 색칠을 하거나 서로 다른 여러 색깔을 화폭 위에 뒤섞거나 갈색과 흑색을 배제하는 기법을 개발해 냈다. 이런 혁명적 수법을 사용하는 화가들은 비평가와 일반 대중에게 조롱을 받았다.(그들은 아직 인상파 화가라고 불리지 않았다)
(46)인상파 화가의 등장:모네의 제안으로 살롱에 더이상 매달리지 말고 따로 전시회를 갖기로 함(1874.4.15~5.15)
참가자--에드가 드가, 기요맹, 모네, 베르테 모리소, 피사로, 르누아르, 시슬레, 세잔 등 30여 명


(54)세잔과 고갱:1881년 피사로의 소개로 만남/고갱은 아마추어 화가로 인상파화가의 그림을 수집하고 있었음
(54)세잔은 교과서적 원칙을 별로 대단치 않게 생각하는 바르비종파의 원칙을 채택했다./이 인상파 시대에 그는 자연을 관찰하는 법을 배웠고 그래서 모네와 피사로가 그랬듯이 작고 가는 붓질로 햇빛을 표현했다.
(55)"바다를 주제로 한두 가지 연구를 시작했습니다"-피사로에게 쓴 편지/적어도 세잔 이전에 바다를 그린 인상파 화가는 별로 없었다./"이곳의 햇빛은 정말 기가 막힙니다. 모든 물체가 마치 실루엣으로 축소되어 버리는 느낌입니다.오베르 출신의 풍경화가들이 이리로 내려온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1876.7.2 에스타크에서 피사로에게)


(59)'맹시의 다리'에 대한 언급:세잔은 사전에 깊이 생각하지 않은 붓질을 단 한 획도 한 적이 없다.그는 자기가 무엇을 할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사람의 눈을 시원하게 하는 절묘한 색채감으로 사물의 본질을 구성하는 색채의 마술사였다."--에밀 베르나

 
제3장 자연과 평행한 조화
(70)구성주의:대상이나 풍경을 여러 각도에서 잡아 화면 위에 그리는 방식/구성주의 시대의 세잔의 정물화는 조화로운 전체를 만들어내기 위해 대상 하나하나와 각각의 색채에 저마다 다른 위치를 배정했고 그리하여 유화와 수채화에서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발견했다.
(78)세잔은 1886년 4월 28일 오르탕스와 결혼했다. 당시 그는 47세였고 아들 폴은 14세였다. 아버지는 결국 결혼식을 허락했고, 식을 치른 몇달 후 사망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변의 진리인가 보다. 평생 부친은 아들 때문에 끌탕을 했으리라. 법학도의 길을 포기한 일, 연거푸 미술대학 불합격, 살롱에 낙방, 병역 기피, 경제적자립이 어려움, 동거 사실을 속였다가 끝내 결혼한 일/기존질서에 순응한 삶과 개혁과 변화를 주도한 삶의 대결일까?)
(84-85)세잔과 졸라의 결별:세잔에 대한 부정적 견해와 졸라의 '작품'이라는 글 속에서 세잔을 '실패한 천재'로 묘사함

제4장 이제 약속의 땅이 보입니다
(97)화가 귀스타브 카유보트: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폭넖게 성원해 주었고 모네, 드가, 르느와르, 고갱 등이 그랬듯이 세잔을 대단히 존경했다.
(98)입체파의 회화론과 상통하는 세잔의 회화관:"나는 자연에서 원통, 구, 원추를 봅니다. 사물을 적절히 배열하면 물체나 면의 각변은 하나의 중심점을 지향하게 됩니다.지평선에 평행한 여러 선은 넓이를 줍니다.그것은 자연의 단면, 다시 말해 전지전능한 아버지 영원의 신이 우리들 눈 앞에 펼쳐놓은 광경의 단면을 줍니다. 반면 지평선에 수직으로 걸친 선은 깊이를 줍니다.그런데 우리에게 자연은 넓이보다는 깊이로 다가섭니다. 그러므로 빨강과 노랑으로 재현되는 빛의 진동 속에서 공기를 느끼게 하려면 충분할 만큼 파랑을 칠해 넣어야 합니다."
(125)추상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데생과 색채의 분리를 시도한 사람은 세잔이 처음이었다.
세잔의 시대에 형태와 색채만으로 자신의 정서를 표현하겠다는 방식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125)세잔의 죽음:1906년 10월15일 그림을 그리던 도중 강한 비바람이 갑자기 몰려왔다. 그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세탁물 배달 마차에 태워져 집으로 실려왔다.세잔은 1906년 10월22일 폐렴으로 사망했다.


(127)세잔은 최초의 현대적 화가:세잔은 미술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대가이다. 그는 우리에게 우주의 약동하는 힘을 터득하라고 가르쳤다. 그는 생명이 없는 낯선 물체들이 서로에게 변화를 주는 그 미묘한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의 작품은 미술이 선과 색채로 대상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선과 색채로 자연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입증했다. 세잔에 대한 이해는 곧 입체파의 출현을 예견하는 것이다.--알베르 글레증.장 메칭거

기록과 증언
많은 화가들이 세잔의 재능을 인정하고 존경했는데도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그를 호되게 밀어부쳤다. 심지어 사후에도 그런 비난이 계속되었다.( 세잔의 라이벌인 화가들이 그를 칭찬하는데 평론가들의 말에 비중을 둘 게 뭐야.
살롱에 연이어 낙선하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세잔-그는 처음부터 비평가들에게 곱지 않게 대했다.
"왜 내 허락없이 내 작품에 대해 왈가왈부하느냐"고. 그에게 혹독했던 이유 중의 하나이리라)
(150)동시대 화가들의 칭송:
**고갱-최초의 세잔 작품 수집가/'커피포트가 있는 정물'은 그가 자신의 소장품 가운데 가장 아끼는 작품/상징파에게 큰 영향을 줌/**20세기 초의 세 대가 마티스(세잔의 진정한 후계자), 피카소, 브라크의 주목을 받음
**클로드 모네가 평론가 지베르니 제프루아에게--세잔이 여기 와서 파티에 참석할 걸세.그렇지만 그는 아주 괴짜인데다 또 모르는 사람 만나는 것을 두려워해. 그래서 자네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도 혹시 안 올지도 모르겠네.이 친구가 평생 남의 도움을 받지 못한것은 정말 안된 일일세. 그는 진정한 예술가인데 자기 자신의 능력에 너무 회의를 갖고 있네.
'양괴':
(158)파블로 피카소:세잔은 나의 유일한 스승이다.--물론 나는 그의 그림을 보았다.--아니, 그것을 여러 해 동안 연구했다.--세잔은 우리 모두에게 아버지 같은 사람이다.
(160)세잔의 회의: 그는 하나의 정물화를 완성하기 위해 100회를 작업했고, 초상화를 그릴 때는 모델을 150번이나 자리에 앉혔다./그림은 그의 세계이자 삶의 방식이었다./그는 혼자서 작업했다. 제자도 없었고 가족의 응원이나 살롱 심사위원의 격려도 없었다. 그는 어머니가 죽던 날 오후에도 작업을 했고 경찰의 포위망 속에서도 에스타크에서 그림을 그렸다./나이가 들면서 자기 그림의 독창성이 시각 장애의 결과가 아닌지 그렇다면 자신의 전 생애가 신체적 이상에 근거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그림그리기는 종교적 행위처럼 느껴진다. 스스로 고행을 찾아 행하는 수도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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