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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맑은 바람 2021. 9. 19. 13:20

--코로나 19 시대에 영화보기
토요일 아침, 할미는 손녀 돌보기에서 놓여나 바쁜 듯 가벼운 걸음을 재촉한다. 골목길은 한산하다. 모두들 한 주간의 고된 일상을 내려놓고 꿀잠을 즐기나 보다.
전철도 텅 비었겠지?  했더니 웬걸~
오이도행 지하철은 만원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바삐 어딘가로 향하는 이들한테 미안한 감이 들었다.
시간 여유가 있어 만원 차를 보내놓고 사당행을 기다린다.

주말에, 더구나 이른 아침부터 영화 보러 나서는 이들이 이런 맹렬 할매 빼고 누가 있겠는가 하면서도 막상 상영관에 들어서서 텅빈 객석을 바라보니 섬뜩하다. 얼른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내가 지정한 좌석은 생각보다 훨씬 뒤쪽에 있다.
도로 스크린 가까운 아래쪽으로 내려와 가장자리 의자에 앉았다. 상영시간이 10분도 남지 않았는데  아무도 들어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2분 전, 마침내 출구 쪽에서 인기척이 난다. 
'아유, 살았다'

사실 얼마 전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넓은 상영관에 달랑 혼자서 영화를 본 적이 있었거든!
그때도 놓치기 아까운 영화라서 혼자 보러 오긴 했는데 자꾸 몸이 오싹거리고 뒤꼭지가 땡겨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어. 그때 뭔가 기척이라도 느껴지면 줄행랑을 치려고 가방은 움켜쥐고 발은 한짝 통로 쪽으로 내논 채였어.
그때의 악몽이 재현되려나 했는데 다행스럽게 등산복 차림의 늙수그레한 부부가 들어서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그런데 남자가 성큼성큼 내쪽으로 다가오더니
"제 자리인데요" 한다.
내참, 그 많은 자리를 놔두고 하필 임자 있는 자리에 앉아 있을게 뭐람?

내 자리는 놔두고 그들 언저리로 자리를 옮긴다.

맘 편히 영화에 집중한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크럽'(환영 받는 사교클럽)은 노년층으로 이루어진  아바나 음악그룹이다.
쿠바의 3대 피아니스트의 하나라는 루벤, 쿠바의 '낫킹콜'이라는 진짜가수 이브라임 그리고 타악기 현악기 연주자들--그들의 재능이 한데 모여 엮여지는 환상적인 조화는 1998년 7월 1일 카네기홀에서의 연주로 절정을 이룬다.
인생의 격랑기를 거쳐온 노인들답게 겸허하면서도 유머있고 소년들처럼 뉴욕의 거리를 걸어가며 웃고 떠드는 모습이 주는 감동이 그들이 뿜어내는 연주 솜씨 못지 않게 가슴 따뜻하게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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