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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 울지 마라, 탁구야~

맑은 바람 2021. 1. 28. 22:57

어느 주말, 모처럼 TV 앞에 앉아 볼만한 게 뭐 없나 여기저기 눌러 보았더니 처음 보는 드라마인데 인물들의 대사가 신선하고 들을 만했다. 뿐만 아니라 빵 만드는 사람들을 소재로한 것이 흥미로웠고 오븐에서 김이 오르는 빵이 나올 때는 입에 군침이 도는 게 빵 가게로 뛰어가고 싶었다. 채널을 고정시켜 놓고 오후 4시경부터 보기 시작한 것이 밤 12시를 넘겼다.

앞의 내용을 모르는 데다 무수한 복선이 깔려 있어 추리해 가며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단순한 선악 구도인데도 인물들의 개성 있는 연기 때문에 몰입하게 된다. 기다려지는 수/목 저녁이었다.

그런데 지난 목요일, 드디어 모자 상봉의 극적 드라마가 연출되었다. 사건의 진행을 보면서 이건 아닌데, 아닌데 하며 실망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작가가 바뀌었나 생각할 정도로 그동안의 흐름과 달랐다. 무슨 신파조의 연극을 보는 듯했다. 그렇게 차분하고 이지적으로 보였던 미순이가 그렇게 허술하게 납치되어 가는 장면도 그렇고 미순이가 찦차에서 내리는 데도 멀거니 쳐다만 보고 있는 납치범, 엎어지고 자빠지며 달려온 탁구가 그 옛날의 주먹은 어디 가고 초반부터 얻어터지는 장면들이 도무지 필연성이 없고 엉성하다. 게다가 피도 눈물도 없는(?) 깡패들에게 울음 섞인 목소리로 장황하게 하소연하는 장면도 시청자의 가슴을 울리지 못한다. 비교적 눈물이 많은 나도 점점 냉소하게 만드는 울음바다 속의 모자 상봉-

어떤 이가 우스운 얘기를 해주겠다며 저부터 실실거리고 웃으며 하는 얘기는 하나도 우습지 않다.

한 맺힌 모자 상봉도 당사자들이 먼저 울고불고 난리를 치면 보는 이는 더 이상 슬프거나 감격스럽지 않다.

차라리 상처와 미움을 안으로 꼭꼭 숨긴 채 싸늘한 말을 주고받는 마준과 유경-그들이 더 안쓰럽고 가슴 아프다.

 

배우들이 희로애락의 감정을 다 쏟아내는 드라마보다는 인물들의 절제된 말과 행동을 통해 시청자가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즐거움을 맛보게 해 주는 그런 작품이었으면 좋겠다.

(2010. 9.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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