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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증 검사

맑은 바람 2022. 2. 6. 15:57

수요일 새벽, 몸과 함께 머리를 오른쪽으로 뒤치려는 순간  뱅그르르~
'안돼!'하며 다시 커다란 유리그릇 다루듯 몸뚱이를 왼쪽으로 돌려놓고 잠시 꼼짝을 안 한다.

화장실 가라는 싸인이 온다. 머리를 제삿상에 올리는 돼지대가리라도 되는 양 흔들리지 않게 곱게  모시고 일을 보러 들어갔다.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는 화장실이 어찌 구만리길처럼 먼 거야?

다시 몸을 눕히고 머리를 낮추면 또 지구가 뱅뱅 돌고 메스꺼워질 테니 그냥 일어나기로 한다.

최소한 움직여서 이 닦고 세수한다. 일어나서 돌아다니는 때는 요 이석증이란 놈이 어디로 달아나 숨어버린다.

어제의 놀란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저녁에 왼쪽으로 누인 몸을 밤새 움직이지 않고 자기로 한다.

한쪽으로 자려니 몸이 배겨 깊은 잠을 잘 수 없다. 자다깨다를 반복하며 잠을 설친다.
금요일 아침, 머리통을 고이 모시고 일어나다 나도 모르게 잠깐 앞으로 몸을 숙이는 순간,

"아이코!" 지구가 다시 크게 한 바퀴 돈다. 잠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어지럼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린다.

 

토요일 아침, 오늘은 주말이니 서둘러 병원엘 다녀와야지 하며 대니에게 동반을 부탁한다.
늘 다니던 이비인후과로 갔다. 이석증 때문에 서너 번 갔던 의원이다.
대기실은 환자로 그득하다.
차례가 되어 의사선생님 앞에 나가 '이석증' 같다 했더니
검사실로 가 보란다.

 

검사실 간호원은 줄이 쳐진 매트 위로 올라서게 하더니 똑바로 앞을 보란다. "잘하고 계십니다." 칭찬인지 격려인지--
다음엔 좀전과 같은 모양의 패드가 들어간 방석 위로 올라가 발을 줄에 맞춰 똑바로 서 보란다.

쿠션이 있어 좀전처럼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잠시 후 평형을 유지한다.
"잘하고 계세요."
그 다음엔 의자에 앉히고 안진용 커다란 안경을 씌우더니 정면 벽에 파란 점을 응시하란다.

눈을 크게 뜨고 같은 동작을 반복하려니 눈꺼풀이 자꾸 내려온다. 그럴 때마다 눈을 크게 뜨라고 주의를 준다.
"예, 이제 45초 남았어요. 6초 후엔 끝납니다."
계속되는 멘트가 귀에 거슬리기까지 한다.
"다 됐습니다. 이제 선생님께서 올라오실 거예요."
의사는 내 머리통을 이리 휙, 저리 휙, 앞으로 휙 제껴가며 그때마다 반응을 묻는다.
"어떠세요?"

"아무치도 않은 데요."

분명 모습을 드러내야 할 이석증이라는 놈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의사는 약간 당혹스러운 모양이다.
"나타나야 하는데 이거 어떻게 된 거지?"
"선생님을 보자마자 무서워서 달아난 모양예요."
"그럼 내가 명의네요."
"맞아요, 그런가 봐요."
진로실로 돌아와서 의사가 말한다.

 

"이석증이 아닌 것 같네요. 다음 주에 혹 증세가 보이면 그땐 검사비 없이 다시 진료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일단 내 몸에서 이석증이 달아난 것만 좋아서 마음이 환해지고 기분이 밝아져서 접수대로 갔다.
결재용 카드를 내놓으니

"5만7천 원 결재하겠습니다."
잠시 귀를 의심했다.

'5만7천 원이라고. 검사비가 꽤 비싸네.'

그런데 영수증을 받고 보니 9만7천9백원이었다.

 

처음 이석증으로 이 병원을 찾았을 때는 문진과 시진만으로 이석증을 바로잡아 주었다.

젊은선생님이 참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석증이 재발해서 두 번째 왔을 때는 검사 절차를 걸쳤다.

그때도 검사내용에 비해 검사비가 비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선생님은 내게 시간을 투자하는 대신 검사실로 보내고 다른 환자들 보는 일을 우선했다.

어지러워 팽팽 돌 때는 의사선생님이 어지럼증만 잡아주면 하느님할 텐데--하는 심경이었는데

'물에 빠진 놈 살려 주니 보따리 내놓으란 격'으로 검사비 타령을 한다. 그러나 검사비가 터무니없이 비싼 게 맞다.

저녁에 집에 들른 작은아들에게 낮에 병원 다녀온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 그거 간단해요. 유튜브에서 의사가 일러주는 대로 몇 가지 동작을 반복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감쪽같이 나아요!" 한다. 염장 한 번 제대로 지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