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퇴행성관절염 진료일에

맑은 바람 2022. 6. 7. 21:30

몇 마디 말의 효과

나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병원의 인기있는(?)선생님의 환자가 되기로 했다.

벌써 십 년도 더 되는 어느날부터 오른쪽 무릎이 뜨끔거리고 아파서 정형외과를 들락거렸다.
물도 빼보고, 연골 주사도 몇 차례 맞아보고, 관절염에 좋다는 치료제도 이것저것 사먹어 보고, 정 힘들 땐 한동안 소염진통제도 복용하고, 아쿠아가 좋다고 해서 수영장에도 다녀보고-- 무릎 아픈 사람이 해 본 건 다 해봤다.
이제 여차직하면 마지막 수단으로 원치않는 인공관절수술까지 해야 할 것 같아서 집 가까운 유명병원에, 평판이 좋은 선생님 앞으로 등록을 해서 이번에 두 번째 검진을 받게 된 것이다.

번호표를 뽑고. 알림톡에서 바로 열 수 있는 진료카드도 열어 접수를 했다. 오늘 진료받을 수 있는 환자번호가 나왔다. B2191
최근에 방사선 촬영한 것이 없다니까 우선 방사선 촬영부터 하고 오란다. 탈의실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30분 가까이 기다린 끝에 인공로보트같은 기사가 지시하는 데 따라 말 잘듣는 로보트처럼 무릎 촬영을 했다.
다시 진료 대기실로 돌아와 기다린다. 대기 예정 시간이 30분이라고 자막이 뜬다.
드디어 B2191 차례가 왔다.
--삼 년만에 오셨네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아플 때마다 한의원도 가고, 소염진통제도 먹고 견뎠지요.
담당 간호원과의 질의응답이었다.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3년만이시네요.
--선생님이 문밖을 나오기 힘들 때 수술하자고 해서 기냥저냥 견뎠어요. 어제는12000보나 걸은 걸요.
--그렇게 무리하지는 마시고 하루 30분 정도만 걸으세요. 사진을 보니 왼쪽은 괜찮은 것 같고 오른쪽이 문젠데, 뼈가 튼튼한 편이라 더 쓰셔도 되겠어요. 그럼, 또 3년 뒤에 볼까요?
--아녜요, 그건. 제 나이가 무릎수술 적령기라니까 일 년 뒤에 또 와 볼게요.
--그러시지요. 뼈가 언제 부서져서 주저앉게 될지 모르니까.

선생은 일단 환자의, 수술에 대한 공포심에서 가볍게 해방시켜 주었다. 불과 십분도 되지 않는 진료시간 동안.
물론 6만여 원이나 들어간 방사선 사진은 의사참고용인지 환자한테는 보여주지도 않았다.
개인병원에서는 방사선 촬영 사진을 앞에 놓고 이러쿵저러쿵 설명도 해주더만--

 

그러나 어쨌든 선생의 명쾌한 몇 마디는 환자의 맘을 편하게 해주었다. 명의는 명의다.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아있는 행복  (0) 2022.06.16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0) 2022.06.15
한국의 미  (0) 2022.03.06
젤렌스키  (0) 2022.03.04
책의 운명  (0) 2022.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