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고, 지하철역에서 가깝고, 시설이 좋아보이고, 검사종목마다 제각기 다른 방에서 검사하고 또 직원들이 비교적 친절해 보였다.
그래서 전날 저녁을 굶고 아침에 변을 채취해 9시에 검진센터에 도착했다.
피검자들이 많아 진료차례가 부지하세월이었다. 20분 기다리고 2분 동안 검사--맨 이런 식이다.
11시에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놓고 그 안에 검진이 끝나지 않겠는가 생각했는데, 11시 반이 넘었다.
아직 산부인과 검진도 끝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같이 밥 먹는 건 물 건너갔고, 약속을 못 지켰으니 가서 차나 사야지 하며 전화를 해뒀다.
산부인과 진료를 끝으로 옷을 갈아입고 종합적으로 정리해주는 의사를 만났다.
--약 드시는 것 없지요?
--네
--그런데 인지 기능이 좀 떨어지네요.
--네? 무슨 말씀인지요?
--여기 문진표에 있네요. 날짜도 잘 기억 못하고, 사물의 이름을 얼른 대지 못하고~
漸入佳景이다!
--저 가끔 치매검사 받는데요, 그 비슷한 질문도 못 들었어요.
글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직원이 나를 앉혀놓고 문진표를 작성하더니, 나이가 많으니 묻지도 않고 알아서 작성한 부분이 있나 보다. 당황한 의사는 치매검사문항 몇 가지를 대며 묻는다.
그렇지 않아도 검사 시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약속이 어그러져, 심사가 사나워지고 있는데 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치과검진 때도 그랬다.
대기석에서 20분씩이나 기다렸는데 검진 의자에 앉으니 의사는 건성으로 쓰윽 한번 입안을 들여다보고는
--이상 없습니다 한다
지금 씌운 어금니가 흔들리고 있는데 말이다.
아마도 앞으로 건강검진을 위해 제기동엘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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