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시절을 회상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잘 한 일이 하나 있다.
평생친구를 얻은 것이다.
우리는 졸업 후 삼십여 년 세월을 두 달에 한 번씩 100% 출석률을 자랑하며 꼬박꼬박 모인다.
<기독학생회>가 맺어 준 인연이니 따지고 보면 하느님의 뜻이리라.
하나
피부가 눈부시게 하얗고 통통해서 백곰이란 별명을 얻은 친구.
속눈썹이 서양인형같이 예뻤다. 집이 같은 방향이라 다른 친구들보다 같이한 시간이 많았다.
꾀꼬리 같은 목소리에 공부도 나보다 훨씬 잘해 늘 선망의 대상이던 친구--
구십이 다 되신 시어머님 봉양하느라 카페에도, 모임에도 아직 얼굴을 내밀지 못하는 친구다.
네가 하루 속히 나올 날을 기다린다.
둘
지적이미지가 뚜렷하고 옷을 잘 입어내는 친구--
한때 city bank에 근무하며 한국인의 자긍심을 키워줬던 친구.
내가 신혼 초에 돈 없어 쩔쩔맬 때 낯 한 번 찡그리지 않고 돈도 잘 꿔 줬다.
중2 때는 짝궁이기도 했고 중·고·대학 10년을 함께 학창 생활을 했으니 역시 인연 깊은 친구다.
오빠 셋이 모두 서울대학생이었고 나이 차도 별로 없었는데 그분들과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걔네 집에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드나들었나?
셋
'매미' 별명으로 카페에 등록한 친구가 있다.
우리 중에 가장 출세한 친구다.
현재 답십리초등학교 교감님.
'열정' 그 자체이며 춤과 노래는 따를 사람이 없는 친구. 그 옛날, 한때 사랑에 빠져 물불 못 가리고
방황하던 시절도 있었으나, 벌써 아들 장가 보낸다고 청첩장 돌리고 있다.
아| 옛날이여|
넷
현직 동창회 부회장
늘 최고의 길을 지향해 온 남다른 노력파.
누구하나 경제적 어려움을 모르고 산 이 없던 시절.
그녀는 능력 하나 만으로도 세상 힘든 줄 몰랐다.
지금은 성대 수술을 하더니 목소리까지 꾀꼬리가 되어 최고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
다섯
순서가 나중이라고 서운해할지 모를 우리 고양 시민 두 사람.
이 둘은 새서울 자원봉사단의 일원으로 여러 분야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으며 <2002년 월드컵> 때엔
서울 관광 안내와 홍보사절로 뛸 예정이다.
해군사관학교 출신의 장교와 사랑에 빠져 사관생도들의 사열을 받으며 결혼식장에 입장해 우리를 황홀하게 했던
군인의 아내--남편이 U.N.군 사령부 소속이시라 국제적 파티에 자주 나가더니 요샌 사교춤 솜씨도 일품.
여섯
보기보다는 여리고 섬세하고 예민해서 자주 아파, 친구들을 걱정하게 하는 아이
두 아들을 최고 명문대학의 의대, 법대에 보내 놓고도 자랑 같은 건 할 줄 모르는 친구.
아, 또 있다.
멀리 있으니 마음도 멀어지네. 그 친구는 이화여대를 다녔다.
성격상 부고와 이화가 안 맞았던지 출발부터 시큰둥하더니, 그만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모 종교에 빠져
학교를 떠났다.
신산한 세월을 살아 친구들 가슴에 그늘을 드리우더니 지금은 미국 땅 어디에서 새 출발을 하여 알공달공 살고 있단다.
니 이야길 하다 보니, 보고 싶다, 친구야| 못본 지 벌써 몇 년이냐?
실 ,주, 임, 숙, 자, 정, 꼬마 주--내게는 너무나 소중한 당신들이다.(2000년 11월 12일 고교동창 카페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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