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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

맑은 바람 2022. 9. 30. 22:55

김훈 산문/문학동네/411쪽/초판 2015.9/읽은 때 2022.9.28~9.30
김훈(1948~ )서울.

작품:칼의 노래, 풍경과 상처, 자전거여행, 밥벌이의 지겨움, 남한산성
1부 밥
2부 돈
3부 몸
4부 길
5부 글
(1부에서 5부까지 1음절로 된 소제목을 묵상한다. 결국 그것들 때문에 살고, 그것들이 모여서 삶이 된다.)
1부 밥;
(17)라면이나 짜장면은 장복을 하게 되면 인이 박인다.그 안쓰러운것들을 한동안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공연히 먹고 싶어진다.인은 혓바닥이 아니라 정서 위에 찍힌 문양과도 같다. 세상은 짜장면처럼 어둡고 퀴퀴하거나, 라면처럼 浮薄하리라는 체념의 편안함이 마음의 깊은 곳을 쓰다듬는다.
(17-1)라면의 탄생
1963년, 쌀값이 오르고 춘궁기에 200만 이상이 굶주렸다.--박정희소장은 기자 회견에서 "나는 국민을 굶기지는 않겠다."며 울먹였다.
이 배고픈 시절에 나타난 라면의 맛은 경이로운 행복감을 싼값으로 대량공급했다.그 맛의 놀라움은 장님의 눈뜸과도 같았고, '불의 발견'과 맞먹을 만했다.
라면의 탄생은 수천 년 동안 이어진 허기를 달래준, 식량사의 전환으로 꼽힌다. 라면의 제조기술은 모두 일본에서 배운 것이지만 한국라면은 1인분의 양이 일본라면의 1.5배가 넘고 칼로리가 높아서 한 끼의 식사가 될 수 있도록 보강되었다./그때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00달러를 밑돌아, 에티오피아 캄보디아와 함께 세계 최빈국으로 분류되어 있었고 필리핀의 원조를 받고 있었다.

(이 놀라운 사실을 이제서야 깨닫다니!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은 다 저마다 업적과 저지른 죄가 있었건만, 악행에 초점을 맞추어 一擧에 날려버린다. 영웅도 죄인도 어느 정도 만들어진다. 그런데 그들을 끝내 하야시키거나 감옥에 보내고 탄핵시켜 버렸다. 우리들의 부끄러운 自畵像! 이 부끄러운 민낯을 언제까지나 쳐들고 살아야 하나?)
(김성우와 김훈은 둘다 신문기자 출신이다. 이 둘의 글을 비교해 보니, 김성우는 대리석집에 비유할 만하고, 김훈은 통나무집에 견줄 만하다. 왜 그럴까? 대리석은 아름답지만 향기가 없다. 통나무는 친화적이고 향기가 있다.)
(23)삶의 심층구조와 서사적 로망을 회복한다는 것은 이제는 영영 불가능해 보인다.이 부박한 삶의 영양소로서 라면은 몸 속으로 들어온다.시간의 작용이나 기다림, 환상, 스밈, 우러남처럼 삶에 깊이를 가져오는 기능은 음식에서조차 사라지고 있다.
(34-45)나의 아버지:
*김광주(1910~1973)소설가/경향신문 문화부장/연재소설 '정협지'가 대중의 인기를 끔
내가 실패를 거듭하는 까닭을 나는 안다. 내 아버지의 삶의 파탄과 광기, 그의 꿈과 울분과 절망의 하중을 내가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신산한 기억들을 나는 겨우 몇 자 쓰려 한다. 아버지는 63년을 살고 棄世하였다. 나는 이제 아버지보다 더 오래 살고 있다.나는 젊은날의 내 아버지가 때때로 내 가엾은 아들처럼 느껴진다.

70년대의 기라성같은 청년작가 김승옥이 단편소설 '무진기행'을 발표했을 때, 아버지는 문인 친구들과 함께 우리집에 모여서 술을 마셨다. 그들은 모두 김승옥이라는 벼락에 맞아서 넋이 빠진 상태였다./새벽에 아버지는 "이제 우리들 시대는 갔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아버지는 자상하지 않았고 가정적이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가난했고 거칠었으며 늘 울분에 차 있었다.아버지에게 광야란 없었다. 아버지는 그 불모한 시대의 황무지에 인간의 울분과 열정을 뿌리고 갔다.
(김성우의 아버지와도 어찌 이리 닮았는가, 재주와 능력은 많으나 돈벌이 재주가 없어 가족을 굶긴 사람들--바로 우리들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김성우의 글은 사실적ㆍ감각적이나 김훈의 글은 다분히 추상적ㆍ공상적이어서 내 생리와 맞지 않아 지루하고 졸립다.

<자전거 여행>은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글이 아름답고 서정적이어서 그 은륜의 매력에 빠져, 섬진강 붕어섬이니 요강바위를 찾아 헤매기도 하고 나이 59세에 자전거를 배워 김훈처럼 은륜을 굴려 이곳저곳 다니기도 했는데--)
(71):
전기밥솥 속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나는 한평생 목이 메었다. 이 비애가 가족들을 한 울타리 안으로 불러모으고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아 밥을 벌게 한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73)이 세상의 근로감독관들아, 제발 인간을 향해서 열심히 일하라고 조져대지 말아 달라. 제발 이제는 좀 쉬라고 말해 달라. 이미 곤죽이 되도록 열심히 했다. 나는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 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96-97)만경강 갯벌에 내려앉는 도요새 무리들:
대륙간을 날아다니면서도 그것들은 짐보따리들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것들의 자랑은 무일푼의 혈혈단신에 있다. 그것들은 먹을 것과 잠자리를 예비하고 있지 않고, 버리고 떠나고 또 찾아서 날아간다. 그것들의 유선형 몸매와 기름진 용골근육은 홀로 시공을 통과하는 자의 외로움과 강인함으로 빛난다. 원양의 바람 속을 무착륙으로 건너가는 그것들의 눈은 두꺼운 보호막으로 덮여 있고, 보호막 안쪽에서 그것들의 눈동자는 닥쳐올 시공속의 조짐들을 예민하게 관찰한다.그것들의 싸움은 바다에 순응하는 싸움이다. 썰물에 갯벌이 드러나면 그것들은 먼바다 쪽까지 나아가며 갯벌을 들쑤시며 먹이를 찾는다. 다시 밀물로 갯벌이 덮이면 그것들은 내륙쪽으로 밀리면서 연안으로 다가온다. 물가에 앉은 새들이 사람의 마음에 돋아나는 저녁 등불을 바라볼 때, 새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는 풍경에 관하여 나는 말할수 없다. 끝끝내 말하여질 수 없는 것들의 무서움이 저녁 갯벌에 가득하고, 먼거리를 자전거로 달려온 내 짐보따리는 무겁다.
(이 대목에서 왠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떠오른다. 그런데 사실, 김성우를 읽다가 김훈을 읽으니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다만 읽어야 하는 이유는 10월 세째 주 목요일 '독서토론용 교제'이기 때문이다. 김성우의 '돌아가는 배' 이후에 중고서점에서 그의 책 한 권을 단돈 3000원에 사 놓았다.1985년 1월, 한국일보 발행 '세계문학 전집'. 그 책은 그가 파리특파원 시절, 몇 년에 걸쳐 유명문학인의 자취를 좇아 세계곳곳을 다니며 엮은 컬러기행이다. 480페이지나 되는 묵직한 책 속에서 짝사랑하던 왕년의 유명작가들을, 쫀득쫀득한 김성우의 필체로 만나는 즐거움이 기대된다.)
(127)나는 놀기를 좋아하고 일하기를 싫어한다. 나는 일이라면 딱 질색이다. 내가 일을 싫어하는 까닭은 분명하고도 정당하다. 일은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키기 때문이다.부지런을 떨수록 나는 점점 더 나로부터 멀어져서, 낯선 사물이 되어 간다. 일은 내 몸을 나로부터 분리시킨다. 일이 몸에서 겉돌아서 일 따로 몸 따로가 될 때, 나는 불안하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소외된 노동으로 밥을 먹었다.
나는 이제 아무 데도 붙여 주는 곳이 없고 기웃거릴 곳도 없어서 혼자 들어앉아 있다. 또 막 무는 개들이 너무 많이 돌아다녀서 대문 밖에 나가지 못한다. 요즘 나의 일이란 하루에 그저 두어 줄씩 작문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때때로 그나마도 하고싶지가 않다.
(이렇게 '나는 일하기 싫다'고 당당하게 선언하는 걸 보면 놀랍고 한편 웃음이 난다. 속마음은 태반이 그럴 테지만 다들 그걸 숨기고 산다. 그의 글 '밥벌이의 지겨움'도 처음 접했을 땐 충격적이었다.감히 그런 말을---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피를 짜서 쓴다는 大作을 내놓는 사람이 그런 말을,괜히 풍 떠는 거야 하며 곧이듣지 않을 테니 맘껏 내질러 보는 거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128)목수:
내가 사는 마을에는 집을 짓는 공사장이 있다.마흔 평짜리 목조주택을 짓는데 설계에 허세가 없었다. 낮고 순한 집이었다. 나는 그 공사장에 가서 목수들과 안면을 트고 그들이 하는 일을 들여다보았다. 젊은 목수들이었다. 목수들을 도와 주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목수들은 나를 귀찮아하면서 위험하니까 가까이 오지 말라고 했다. 목수들은 허리춤에 여러 가지 연장을 차고 있었다. 젊은목수들의 연장은 아름다웠고, 그들의 망치질이며 톱질과 대패질은 행복해 보였다. 세상의 재료들을 재고, 자르고, 깎고, 다듬어서 일으켜세우고 고정시키는 자들의 기쁨으로 그들의 근육은 꿈틀거렸고, 날이선 연장들은 햇빛에 빛났다. 아아, 연필과 지우개는 잊혀져야 마땅하리라---

2부 돈;
(178-180)돈:
아들아, 사내의 삶은 쉽지만 않다. 돈과 밥의 두려움을 마땅히 알라.돈과 밥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지 말고 주접을 떨지 말라. 사내의 삶이란, 어처구니없게도 간단한 것이다. 어려운 말 하지 않겠다.-사내의 한 생애가 무엇인고 하니, 일언이폐지해서, 돈을 벌어오는 것이다. 알겠느냐? 이 말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이 세상에는 돈보다 더 거룩하고 본질적인 국면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얘야, 돈이 없다면 돈보다 큰 것들이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 否라! 돈은 인의예지의 기초다. 물적 토대가 무너지면 그 위에 세워놓은 것들이 대부분 무너진다. 이 사태는 인간의 삶의 적이다. 이것은 유물론이 아니고 경험칙이다. 돈없이도 혼자서 고상하게 잘난 척하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아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말아라. 추악하고 안쓰럽고 남세스럽다./주머니 속에 돈을 지니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대답은 자명한 바 있다.돈을 벌어야 한다. 노동의 고난으로 돈을 버는 사내들은 돈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돈은지엄한 것이다.아, '생의 외경', 이 외경스러운 도덕은 밥벌이를 통해서 실현할 수 있다./돈과 밥의 지엄함을 알라.그것을 알면 사내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아는 것이고,이걸 모르면 영원한 미성년자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큰소리로 외치고 싶다!)

3부 몸;
(258- 261)아줌마 만세!:
이 사회는 성적 긴장과 유혹을 상실한, 나이든 여자들을 집단적으로 천덕꾸러기로 만들어 가고 있다./대기업은 아줌마를 무서워한다.아줌마가 이 나라 소비권력의 핵심부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일류 백화점이나 고급 양품점에서는 아줌마를 아줌마라고 부르지 않는다. 아줌마를 아줌마라고 부르면 아줌마들이 싫어한다는 것을 백화점을 관리하는 높은 아저씨들은 잘 알고있다.아줌마는 경멸의 대상인 것이다./아줌마는 성적 긴장의 날이 서있지 않다.아줌마는 풀어져 있고 아줌마는 퍼져 있다.아줌마는 재래시장 좌판에서 봄나물을 살 때, 물건 파는 할머니를 윽박질러서 기어코 한 움큼을 더 집어온다./아줌마는 세월과 더불어 늙어가면서 여성자신을 속박하고 있던 사내들의 성적 시선의 사슬을 끊어버린 자유인의 이름일 수도 있다.
아줌마들이 아줌마를 소외시키는 이 세상의 성적 기만과 허위에 당당하게 맞서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줌마들이 만원 지하철 안에서 남의 귀밑에다 대고 껌을 짝짝 씹지 말고, 봄나물 한줌을 더 가져가려고 가엾은 노점 할머니들을 서럽게 만들지 말기 바란다.
(267-268)글이 되는 연필과 지우개;
한평생 연필로만 글을 쓰다보니, 출판사 편집자들로부터 눈총을 받고 산다.아무래도 컴퓨터로는 글이 써지지 않는다./연필로 글을 쓰면 팔목과 어깨가 아프고, 빼고 지우고 다시 끼워맞추는 일이 힘들다. 그러나 연필로 쓰면, 내 몸이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이 든다. 이 살아 있는 육체성의 느낌이 나에게는 소중하다. 나는 이 느낌이 없이는 한 줄도 쓰지 못한다. 이 느낌은 고통스럽고도 행복하다. 몸의 느낌을 스스로 조율하면서 나는 말을 선택하고 음악을 부여하고 지우고 빼고 다시 쓰고 찢어버린다.내 몸이 허락할 때, 나는 내 맘에 드는 글을 쓸 수가 있고 내 몸이 허락하지 않는 글을 나는 쓸 수가 없다.지우개는그래서 내 평생의 필기도구다.지워야만 쓸 수 있고, 지울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므로 나는 겨우 두어 줄씩 쓸 수 있다.
(284)개털로 꾸민 까치집:
작년에 우리 마을 까치가 버리고 떠난 빈 둥우리 한 개가 나무에서 떨어졌다. 둥우리를 주워다가 그 안쪽을 들여다보니까 온통 우리집 개털로 꾸며져 있었다. 나는 개털을 보면 우리집 개털인지 딴 집 개털인지 다 안다. 방에서 기르는 서양종 개들은 몸집이 큰 쥐만한 것들도 있는데, 이런 개들은 털도 보잘것없어서 까치둥우리 내장재로 쓸 수가 없다. 이러니 우리 동네 까치들은 죄다 우리집 개털의 따스함과 포근함 속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른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우리 개가 우리마을 까치의 집짓기에 기여한 공로를 큰 자랑거리로 알고 이 일을 동네 반상회에서 보고하려 했는데 아이들이 말려서 못했다.

(김훈선생의 돋보이는 개그편!)
(285-287)영동에서 만난 어느 포수의 이야기:
"개를 관리하기는 하지만 개를 길들이지는 않는다"
"제 어미한테서 사냥을 배운 개들이 사람한테 배운 개보다 훨씬 더 민첩하고 근성이 질기다."
개가 잘못했을 때,
"개를 때리면 때려도 말 안 듣는 개가 된다"
더구나 새끼들이 보는 앞에서 어미개를 때리면 어미의 권위가 무너져서 새끼들을 사냥개로 길러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포수의 '개에 대한 확고한 철학'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4부 길;
(307)11월
나는 자연사한 새들의 주검을 본 적이 없다. 숲속의 그 많은 새들이 어디로 가서 죽는 것인지 나는 모른다./겨울철새들은 11월에 날아온다.시베리아에서 날아오는 겨울철새들이 시베리아로 돌아가서 죽는지, 을숙도에서 죽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을숙도 갈대숲을 뒤져봐도 새들의 시체는 없다./나는 자연사한 벌레들의 주검을 본 적이 없다.여름 풀밭의 그 많던 벌레들은 다들 어디로 가서 죽는가. 숲을 다 뒤져도 벌레들의 주검은 보이지 않는다. /11월에는 이런 하찮고 가벼운 것들의 무거움에 마음을 다치기 십상이다./봄의 어린 벌레들은 가볍고 명랑하다.봄의 벌레들은 연두색이다. 봄의 어린 벌레들은 풀잎에서 풀잎으로 건너가지 못한다.여름의 벌레들은 뒷다리에 힘이 넘쳐서 풀섶을 마구 뛰어다닌다.여름벌레들은 초록색이다. 가을에 벌레들은 햇빛에 그을려 누레진다. 가을 벌레들의 머리통에는 숲속에서 이리저리 긁힌 생채기가 나 있다.가을이 더 깊어져서 11월이 끝나갈 때, 벌레들은 힘이 빠져서 양지쪽에 몰려 있다./연두벌레, 초록벌레, 누런 벌레들은 11월에 모두 사라진다. 그것들은 이슬이 마르듯이 사라지고, 주검의 자취를 이 세상에 남기지 않는다./11월은 습기가 빠진 존재의 모습을 가차없이 드러내보인다. 말라서 바스락거리는 것들이 11월의 들판에 가득하다.11월은 말라가고 바래어 간다./11월의 들판은 조용히 바스락거리면서 죽어가는 것들로 가득하다. 나뭇잎이 죽고 벌레들이 죽고 새들이 또 어디선가 바스락거리면서 죽을 것이다.

(그러구보니 매미들은 일찌감치 사라지고 8월 초부터 합창소리로 풀밭을 가득 채우던 벌레들이 사라졌다. 한 번도 그들의 사라짐에 생각이 머문 적이 없었다. 無情했었다)

5부 글;
*칠장사--임꺽정(홍명희)
*연어--은빛 물고기(고형렬)
연어의 생로병사에 대한 관찰과 명상
(397)*1975년 2월 15일의 박경리
1974년 7월 13일 군사재판에서 긴급조치 4호 위반,형법상의 내란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던 김지하가 형집행정지로 영등포교도소에서 출감했다.
(김지하씨는 석방되었으나 그의 지지자들과 함께 사라지고 박경리는 우두커니 남았다가 백기완이 출소하는데 필요한 돈10만원의 일부를 보태고 사라졌다. 등에 갓난아이를 업은 채로-김훈은 취재하러 나갔다가 이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
(김밥에서 맛있는 소시지만 빼먹는 어린아이처럼 나도 김훈의 글에서 내 입맛에 맞는 부분만 골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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