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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기행

맑은 바람 2022. 10. 18. 22:57

니코스 카잔차키스/테오도라 바실스 英譯/송은경 옮김/열린책들/246쪽/2008년 3월 초판 1쇄/2011년 10월 초판2쇄/읽은 때 2022년10월2일~10월16일
**원본 초판은 1927년 알렉산드리아에서 출간됨/수정판은 1961년 그리스에서 출간됨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크레타 출신/향년 74세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카잔차키스 묘비명

이탈리아
-성프란체스코
**성프란체스코(1181또는1182~1226.10.3)이탈리아 아시시 출생, 로마 가톨릭교회 수사이자 저명한 설교가
(15)무솔리니는 이날(성프란치스코 축성일)을 국경일로 선포했다.그리하여 청빈과 순종과 순결에 헌신했던 성인이 검은셔츠단(파시스트 군단) 명단에 올랐고, 언론인들과 철학자들은 새로 창설한 파시스트 대대들에서 프란체스코의 덕목을 찾아내는 과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16-20)매력적이던 아시시가 오늘날에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변해 버렸다.지난 석달 사이 이곳을 다녀간 참배객이 200만 명에 달했다.
가정집들은 모두 여관으로 탈바꿈했고, 정숙하던 주민들이 탐욕스러운 장사꾼으로 변해 버렸으며, 처녀들은 무릎이 훤히 드러나는 치마를 입고 다닌다./수치심조차 모르는 이 축제를 맑은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분노를 느낀다. 우리의 시대가 프란체스코의 이상들과 너무나 역행하고 있어서라기보다는, 그 점을 인정할 정직성조차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이다./지상의 면모를 일신하고자 하는 이상은 인간의 능력보다 훨씬 높은 곳에 서 있어야 한다. 바로 그 속에 이상의 비밀스러운 능력, 끌어당기는 힘이 있고, 이상에 도달하려는 영혼의 고통스러운 분투, 인간의 정신적 성장을 촉발시키며 솟구치는 저 엄청난 고양이 있는 것이다./지금 성 프란체스코는 서로 증오하는 육식성 인류의 갑옷에 싸여 파시스트 이탈리아를 순회하면서 꽃으로 꾸민 화관을 머리에 얹은 채 축일을 축하받고 있다.--마치 도축을 눈앞에 둔 한 마리 짐승처럼/성 프란체스코는 한 마리 작은 어린 양이고 우리는 그를 좋아한다.--왜냐하면 우리가 바로 늑대들이기 때문에.

-무솔리니(1883~1945)대장장이 아들/인민의 아들 자처/최연소 이탈리아 총리/2차대전 때 사살됨
(30-32)그는 멈출 수가 없다.멈추면 패배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독재자>들의 가장 큰 특징이자 가장 비극적인 고뇌가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쉬지 않고 싸워 이겨야만 한다. 멈춰서거나 결단을 못 내리거나, 토론을 시작하는 순간 그들은 패하고 만다./무솔리니는 배짱이 두둑하다.자신의 활시위-이탈리아-를 위험스럽게 잡아당긴다.
볼셰비즘과 파시즘의 유사점은 아주 많다.둘 다 개인들을 전체의 노예로 종속시키고자 무력을 사용한다는 것, 개인의 자유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 경제생산과 소비에서, 정치적ㆍ 사회적 표현에서 냉혹한 기율이 존재한다는 것, 의회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를 증오하는 것, 질서와 안보의 중시, 반대자들에 대한 즉각적인 탄압, 동정심이 배제된 무자비한 질서.
그러나 이러한 유사점들은 방법의 측면일 뿐 목표에 있어서는 둘이 완전히 다르다. 파시즘은 구시대의 우상들을 지지하고 이용한다. 파시즘은 애국적 정서를 위험스러울 정도로 과장하고 가톨릭을 떠받든다.자산의 소유를 존중하고, 계급 투쟁을 통제하기 위해 싸우지만 애매한 수단들을 동원한다. 파시즘은 때로 혁명적이고, 때로 보수적이며, 때로는 역사의 흐름을 거스른다. 파시즘은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모든 사회적 이익들을 국가라는 철권 아래 묶고 조화시키고 싶어 한다.
인류는 고뇌로 가득찬 戰後의 이 비극적인 분투에 순응하며 지금도 그것을 따르고 있다.

이집트
-나일강
(40)나는 지금, 기계와 굶주림에 예속된 인간의 영혼이 빵과 자유를 위해 몸부림치는 시대에 여행을 하고 있다. 오늘날 이 노동자의 절규는 지상 전체의 절규이다. 이 가슴 저미는 외침이 내가 이집트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여행하는 내내 나를 따라다니며 안내했다.
(42)고대의 위대하고 성스러운 강 세 곳--나일 강, 유프라테스 강, 갠지스 강--중에서도 나일 강이 가장 성스럽다.
토사를 옮겨 대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 나일 강이다. 그후에 자신의 물로 대지를 덮어 비옥하게 만드는 것도 나일이다. 나일 강은 식물과 동물과 농부들을 낳는다. 인간으로 하여금 협동하고 조직화하고, 최초의 과학들을 발견하게끔 만드는 것도 결국 나일 강이다.

-카이로
(51)나는 가옥들 사방으로 사막을 볼 수 있었다. 사막은 매복한 채 도시를 포위하고 있었다. 나일의 물을 마시고 꽃을 피우는 카이로라는 거대한 장미가 모래 위에 펼쳐져 있었다. 대기는 육욕과 죽음으로 충만했다.
(54)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음을 바라보며 삶의 미미한 섬광을 좀 더 깊이 즐기기 위해 연회장 한가운데에 미라를 갖다 놓곤 했다. 그들의 오래된 노래 하나가 양피지에 보존되어 있다.

하루하루를 기뻐하라. 향수로 몸을 적시라.
향기로 코를 채워라.
그대의 목구멍과, 그대 옆에 앉은 사랑하는 육체를 위해
연꽃 화환을 엮어라.

유희를 대령시켜라. 걱정일랑 벗어던져라--
걱정거리가 그대를
침묵이 좋아하는 곳으로 데리고 가는 그 시각이 될 때까지
명심하라. 그곳에서는 그 누구도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피라미드
(57)이집트인의 집과 궁전은 잠시 머무는 거처이기 때문에 진흙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무덤은 영원한 거주지이기 때문에 단단한 돌로 되어 있다. 수천 명의 일꾼들이 불멸의 작업을 돕는 가운데 시신의 내장을 비워 내고 향기로운 약초와 타르로 몸을 채운다. 그 위에 부적을 매달고, '死者의 書'를 시신 옆에 둔다. 사후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 어떤 길을 택해야 하는지, 어떤 액막이 주문을 외워야 하는지를 알려 주기 위한 것이다.

-상이집트
(63)물과 땅과 인간의 육체와 눈물로 이루어진 섬, 여기 이집트의 국경을 바라보노라면 인간의 노고와 고통이 그 얼마나 용감하면서도 무용한가를 뼈아프게 느끼게 된다.
(64)나는 쿠칸드로프들이 깨기 전에 일찌감치 일어나 룩소르와 카르나크의 신전들을 직접 찾아간다.거대한 신전들 밑에서 나는 아무 감정없이 한 마리 개미처럼 돌아다닌다. 이해는 커녕 반감이 들 정도로 엄청난 규모다.
(69)죽음의 계곡에서 나일강까지 줄곧 나를 따라온 두 허깨비는 바로 국왕 아멘호테프4세(아크나톤)와 그의 아내 네페르티티였다.
예수보다 1370년을 앞서 살았던 이 신비로운 국왕부부만큼 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산 사람 중에도 몇 없다.아멘호테프의 육체는 발육을 저지당했다.그는 수두를 앓았고--튀어나온 턱, 좁은 이마, 길게 휜 코, 육감적인 입술, 병자처럼 가녀린 목, 허약한 어깨--가슴과 허리와 발은 여자 같았다.
그러나 남녀가 뒤섞인 이 기형적인 육체 속에 희열에 찬 두려움없는 영혼이 살았다. 그는 스스로 목표를 정했다. 이집트의 전능한 신 아몬을 옥좌에서 몰아내고 그 자리에 아톤 신--태양신--을 앉혔다. 그가 왕좌에 올랐을 때는 열다섯 살의 어린 소년이었다. 왕이 되자마자 카르나크의 가장 성스러운 아몬신전 바로 한가운데에 붉은 화강암으로 예배당을 신축하여 태양신에게 바쳤다.
(70)아멘호테프는 낡은 아몬교와 그 사제들을 상대로 격렬한 전쟁을 선포했다. 모든 사원에서 낡은 신의 조상을 깨부수고 상형문자에 올린 그 신의 이름을 지워버렸다. 새로운 숭배자들은 아몬의 이미지를 칭하는 이름을 찾아내어 파괴하고자 오벨리스크 꼭대기에 오르고 캄캄한 무덤 심층으로 내려갔다. 그들은 이처럼 가시적인 형체를 파괴해 버려야만 그 신의 영혼도 지워버릴 수 있다고 믿었다.
**오벨리스크:고대 이집트에서 태양숭배의 상징으로 세웠던 탑
(71)아멘호테프는 아톤에게 경의를 표하고자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태양신의 영광'이란 뜻을 가진 '아크나톤'으로 개명했다.
그리고 테바이와 멤피스 중간에 새 수도를 세웠다.
이것은 종교혁명이었을 뿐 아니라 경제적 동기와 정치적 묵표를 수반한 혁명이었다.아크나톤은 아몬 세력이 소유했던 방대한 자산을 모조리 손에 넣었다. 그리고 성직자의 권력을 제한하고 왕권에 예속시켰다. 그는 파라오를 지고의 신성한 직책으로 선포하고 스스로를 최고신의 지위로 격상시켰다.
태양신은 수많은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들로부터 숭배받았다.
(72-73)아몬이 이집트를 다른 나라들과 분리시켰다면 태양신은 모든 나라를 하나로 결합시켰다.
건축분아에서는 으리으리한 정문이 사라지고 속인들이 범접할 수 없었던 어두컴컴한 홀과 제단들도 폐기되었다. 음울한 죽음의 의식들도 더 이상 행해지지 않았다. 안뜰에 딸린 타일과 벽을 비롯해 신전 곳곳이 다채로운 새들과 강, 물고기, 깡충깡충 뛰는 동물들, 바람결에 춤추며 떨어지는 나뭇잎들도 장식되어 있다.
이 짧았던 이집트의 르네상스가 남겨놓은 모든 작품들에서 길고 육감적이고 희열에 찬 아크나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항상 사랑하는 아내 네페르티티가 있다. 키 크고, 사랑스럽고. 고집스러워 보이는 뾰족한 턱과 아시아의 분위기를 풍기는 두툼한 입술을 가진 그녀는 에너지와 열정을 뿜어낸다. 그녀는 완전 나체로 남편에게 꽃을 바치는모습으로 자주 묘사된다. 회색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자그만 나체상도 있다. 이 작품에서 그녀는 두 주먹을 굳게 쥐고 목을 세운 채 긴 보폭으로 늠름하게 걷고 있다. 사막을 생각하고 있는지, 위로 쳐든 시선이 단호하면서도 절망적이다.
그러나 혁명적 독창성이 정점에 달했을 때 젊은 아크나톤은 돌연 사망하고 말았다. 우리는 그의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74)아크나톤의 사위이자 후계자였던 투탕카톤새 종교를 포기하고 아몬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의 이름도 투탕카멘으로 개명했다. 그리고 수도를 다시 테바이로 옮기고 아몬을 최고 숭배자의 자리에 되돌려 놓았다.

-우리시대의 삶
(87-88)동앙의 많은 민족들이 깨어난 것은 세계대전 덕분이었다.
유럽인들은 그들을 전쟁의 도구로 이용함으로써 그들의 가슴 속에 민족의식을 불붙이고 부채질했다.그들에게도 권리가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동맹국들을 도우면 전쟁에서 승리한 후 자유를 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집트, 인도, 세네갈, 알제리의 수백만 사람들이 급히 유럽인들의 군대에 파견되어 싸웠다. 그곳에서 그들은 현대전의 전투 방식을 배우고, 최신 군사 장비를 이용하는 법을 완전히 습득했으며, 게다가 유럽인들을 죽이는 법까지 배웠다.
동양인들은 유럽인들과의 일상적인 접촉을 통해 그들을 좀더 잘 알게 되었다. 바로 곁에서 관찰하면서 유럽인의 여러 가지 소소한 동기들을 보았고, 그들 내부의 불화와 이기주의의 충돌을 보았다. 동양인들은 이제 유럽인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전쟁이 끝났다.동양인들은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각자의 조국으로 돌아왔다.그들은 이제 깨어나 있었고 전문지식으로 무장되고 각종 혁명 이론의 선전에 흠뻑 젖어 있었다. 자신들에게도 권리가 있음을 알고 그것을 요구했다. 그들은 자기 민족을 발효시킬 엄청난 효모가되어 있었다.
유럽인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동양인들을 전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약속했던 완전한 자유를 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몽매한 동양 대중 속에 불붙은 빛을 압살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폭력적인 수단을 수시로 동원했다.
그러나 빛은 항상 스스로 증식하는 법이다. 이것은 빛의 본질이기도 하다. 드세게 뻗어 올라 불꽃으로 변한다.
(91)유럽은 구심점이 될 만한 믿음을 모두 상실한 채 서서히 붕괴해 가고 있다. 만약 새로운 세계대전이 터진다면 유럽은 아마도 총체적이고 극단적으로 해체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세계의 운명은 서양에서 동양으로 이동할 것이다.내가 말하는 동양에는 물론 러시아도 포함된다.

-시인 카바피스
(92-93)이집트에서 가장 뛰어나고 지적인 인물/지금 내앞에 완전한 한 사람이 앉아 있다. 자부심 속에 조용히 예술적 위업을 성취하는 사람, 금욕적 쾌락주의의 엄격한 명령에 호기심과 야망과 육욕을 종속시키는 隱者의 우두머리
그는15세기의 피렌체에 추기경으로 태어났어야 할 사람이다. 교황의 자문역이나 맡고 베네치아의 도제궁에 특별 사절로 파견되어 술 마시고, 사랑하고, 운하 근처를 어슬렁대고, 글쓰고 침묵이나 지키며 --그리고 가톨리교회의 가장 사악하고 복잡하게 뒤얽히고 수치스러운 사건들을 적당히 빠져나가며--세월을 보냈어야 할 사람이다./그의 목소리는 애정과 색채로 가득하다. 그의 교활하고 요염하며 가식적이고 장식적인, 죄지은 늙은 영혼이 그같은 목소리로 표현되는 것이 나는 즐겁다.
오늘밤 처음으로 그를 보고 목소리를 들음에도 불구하고, 깨끗하게 퇴보해 가는 저 복잡하고 무겁게 짐진 영혼이 얼마나 지혜롭게 성공을 거두었는지 이해가 된다. 자신에게 딱 들어맞는 예술적 형태를 찾아내어 구제받았다는 점에서 말이다.
무심하고 즉흥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지혜로운 고찰에서 나오는 시구, 의도적으로 일관성을 파괴한 그의 언어, 자연스럽고 소박한 운--이런 것들이야말로 그의 영혼을 충실하게 포옹하여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육체이다. 그의 시들에서는 육체와 영혼이 하나이다. 그렇게 근본적으로 완벽한 통합은 문학사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카바피스는 문명의 마지막 남은 꽃들에 속한다. 시들어 가는 겹잎들과 병든 긴 줄기만 있을 뿐 씨앗은 없는 꽃.

시나이 반도
-시나이
(103)신이 밟고 간 산. 시나이가 오랜 세월 내 마음 속에서 범접할 수없는 정상처럼 빛을 발했다.
홍해. 아라비아 페트라이아 라이토의 작은 항구, 사막의 긴 낙타행렬, 유대인들이 40년을 신음하며 떠돌았던 저 위험하고 냉혹한 산야.그리고 마지막으로, 불꽃이 이는 데도 타지 않는 떨기 수풀에 세워진 저 성스러운 수도원-지난날 내가 대도시들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시절, 꼭 달성하고 싶었던 목표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107)여행 끝에 마시는 한 잔의 물.소박한 은신처, 세상 어느 귀퉁이에서 남모르게 살아가는 인간의 따뜻하고 소모되지 않은 마음. 그 마음은 낯선 이를 기다린다. 그리고 마침내 그 길의 끝에서 낯선 이가 나타날 때, 인간을 발견한 그 마음은 기쁨으로 설렌다. 그리하여 마치 사랑에 빠진 것처럼 지극히 환대한다. 확실히,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
(108--)시나이 산꼭대기를 향하여:
세 명의 낙타몰이꾼이 갖가지 색상의 젤라바 차림으로 도착했다./비쩍 마른 다리와 둥근 독수리의 눈을 가진 쾌활한 그들 베두인족은 가슴과 입술과 이마에 손바닥을 갖다대는 인사법으로 우리에게 인사했다.
각자 자기 낙타를 몰고 왔는데, 낙타에는 여행에 필요한 식품과 천막, 군용 간이침대와 담요가 산더미처럼 실려 있었다. 우리는 사막에서 사흘 낮과 밤을 보낼 예정이었다./우리는 출발하기 무섭게 가없는 사막으로 내몰렸다. 수도원에서 한걸음만 나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황량한 회색 사막이 시작된다.
꾸준히 진동하는 낙타의 규칙적인 움직임이 온몸을 휘어잡는다. 이 운동에 맞추어 피도 스스로를 율동적으로 조절하고, 피가 흐르듯 사람의 영혼도 흐른다. 합리적인 서구의 사고방식에 억눌려 비좁은 수학적 공간들에 갇혀 있던 시간도 해방된다. '사막의 배'가 둥실둥실 움직이는 이곳에서 시간은 자기 본래의 리듬을 회복하여, 물흐르듯 흐르는 불가분의 본질로 , 사고를 몽상과 음악으로 바꾸어 버리는 가볍고 신비로운 현기증으로 변한다./불이 사그라지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자 우리도 침묵으로 빠져 들었다. 은밀한 기쁨이 내 영혼을 사로잡았다. 나는 이 모든 낭만-사막, 아라비아, 천막, 베두인족--을 잠재우고자 애썼다. 걷잡을 수 없이 쿵쿵대는 내 가슴을 껄껄거리며 비웃었다.
(111)우리는 3천 년 전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에서 도망쳐 나올 때 지나갔다는 그 잔인한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가로지르는 이 홍해는 이스라엘 민족을 다듬어 낸 저 끔찍한 공방의 기능을 했다. 이곳에서 그들은 굶주림과 갈증 속에 단련된 끝에 직품으로 빚어졌다.
(113)내가 지금 통과하고 있는, 나무도 물도 없는 이 잔인한 골짜기가 바로 야훼의 끔찍한 칼집이다.그가 포효하며 지나간 바로 그 현장이다.
이 소름끼치는 사막을 건너 살아 보지 않고서, 어찌 히브리 민족을 알 것이며 느낄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낙타를 타고 사흘에 걸쳐--한없이 지루한 사흘이었다--그곳을 건넜다. 구불구불 뱀처럼 휘감긴 골짜기를 따라가자니 갈증으로 목이 타 들어가고, 관자놀이가 욱신거리고, 머리가 빙빙 돈다.
40년이나 이 용광로에서 단련된 민족이 어떻게 죽을 수 있겠는가? 이 무자비한 민족을 사랑하는 나는 그들의 미덕을 갈아낸 숫돌인, 저 무지막지하고 거친 암석들을 즐거이 바라보았다. 그 의지, 끈기, 고집, 인내력.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의 살로 만들어진 신. 그 신을 향해 그들은 절규했다.
"먹을 것을 주시오!" "우리의 적을 죽여 주시오!" "약속의 땅을 주시오!" 그리고 강제로 신을 복종시켰다. 지금까지 살아남아 자신들의 미덕과 악덕을 무기로 세상을 지배하는 유대인들은 이 광야에 빚을 지고 있다. 오늘날, 분노와 복수와 폭력이 난무하는 이 덧없는 시절에 유대인들은 또 한 번 선택된 민족이 될 수밖에 없다. 저 속박의 땅에서 탈출시켜준 그 무시무시한 신의 선민 말이다.
아! 이 영웅적인 태고의 공기를 나는 얼마나 가슴깊이 들이켰던가!
(116)유대인들의 메시아:
유대인들은 선행을 행하면 메시아가 온다고 믿는다. 만약 유대인들이 나태와 불충에 빠지면 메시아는 오지 않는다.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다. 선하고 관대한 행위 하나하나가 그를 조금씩 끌어당기며, 악하고 비열한 행위를 하나씩 할 때마다 그를 멀어지게 만든다. 따라서 메시아는 인간의 모든 행위에 영향을 받는다. 그는 인간에 의해, 크고 작은 모든 인간들에 의해 창조된다.좀 더 깊이 들어가면, 구원은 메시아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는 각 개인들의 행위에서, 집단적으로는 민족의 행위에서 온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유대인들은 자신들에게 이같은 의무를 부여한 이 가혹한 가르침을 더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짧은 생 안에서 메시아의 재림을 보고 싶어 했고, 이 생에서 보상과 구원을 누리기를 원했다. 그리하여 자신들의 키와 똑같은 小메시아들을 창안해 냈다.
안식일과 대속죄의 날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 그들은 일주일 내내 불의를 범하고 불충하고 탐욕을 부릴수 있다. 매주 찾아오는 메시아, 즉 안식일이 되면 모든 것이 용서되기때문이다. 이날 하루 고결하게 기도에 잠기면 그 주에 저지른 모든 잘못이 용서된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1년의 죄악을 용서받기 위해, 해마다 찾아오는 메시아, 즉 속죄의 날을 기다린다.
(119-122)베두인족:
한무리의 낙타 속에서 베두인족이 다가와 진심어린 인사를 건넸다.
"살람 알레이쿰(당신들에게 평화가내리기를)"
우리는 그들이 우리의 세 안내인들에게 다가가 손을 움켜잡는 것을 지켜보았다.그들은 서로의 어깨 위로 몸을 숙여 뺨과 뺨을 맞대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인사말이 꽤 길게 늘어졌다./베두인족은 사막에서 같은 동족을 만나면 서로에게 몸을 굽히고 손을 꽉 잡는다. 그리고 저 소박하고 유서 깊은 스티코미티아(대화)가 시작된다./'살람'과 '알라'란 말이 반복해 나오는 가운데 이 만남은,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 의당 갖추어야 할 신성하고 숭고한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나는 유서깊은 전통과 소박하면서도 사람을 사로잡는 영혼을 가진 이 사막의 아들들을 감동속에 바라본다. 그들은 몇 알의 대추야자와 한 줌의 옥수수,한 잔의 커피를 먹고 산다.그들의 몸은 닳아서 비쩍 말랐고, 힘줄투성이 다리는 염소다리처럼 가느다랗고, 눈과 귀는 짐승처럼 예민하다.
수천 년의 세월 속에서도 그들의 삶은 변하지 않았다./재산에 대한 존중이 거의 종교에 가까워서, 사막에 어떤 물건이든 남겨두고 다닐 수 있다. 물건 주위에 원을 그려놓으면 그 안은 불가침의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베두인족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면서도 손님 접대를 가장 잘하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은 굶주려도 먹지 않고, 낯선 이에게 대접할 것을 항상 천막에 보관해 둔다. 그들은 배가 고파도 절대 구걸하지 않는다. /베두인족의 낙타사랑은 대단하다. 잠자리를 정성껏 보살펴 주는 것은 물론이고 낙타가 풀을 먹을 때는 그 앞에 웅크리고 서서 풀에 붙은 티끌을 하나하나 정성껏 떼어냈다.
(122-)시나이 수도원 도착:
해발 1500m의 미디안 고원에 위치함/높이 솟은 두 개의 산 사이에 평지가 넓게 펼져지고 그 유명한 시나이 수도원이 오디 덤불에 둘러싸인 채 마치 요새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 여행의 목적지. 내 평생 이 순간을 얼마나 그려왔던가. 마침내 고된 노동의 결실이 손에 들어온 지금,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조용히 기쁨을 만끽했다. 서두르지도 않았다./이윽고 수도원이 뚜렷이 눈에 들어왔다.--오디나무들, 탑들, 교회, 사이프러스들, 잠시 후 우리는 정원에 도착해 있었다.
놀라움과기쁨으로 가슴이 뛰었다.나는 키를 높여 울타리 너머를 살폈다.--사막 한가운데, 햇빛 속에서반짝이는--올리브나무,오렌지나무,호두나무, 무화과나무, 그리고 꽃으로 만발한 아름드리 아몬드나무들,향긋한 온기, 향내,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작은 곤충들.
나는 한참 동안 이 미소띤 '神'의 얼굴을 감상했다. 인간을 사랑하는 신, 흙과 물과 인간의 땀으로 만들어진 신이다.
지난 사흘 동안 내가 마주친 것은 그와는 정반대의 얼굴이었다. 무섭고, 암석으로 가득하고. 꽃 한송이 피우지 못하는 얼굴. 나는 속으로 생각했었다. 이것이 진정한 신이다.타오르는 불길, 인간의 바람대로 조각되지 않는 암석.
그런데 지금, 나는 울타리에 기대어 꽃 만발한 과수원을 들여다보며 고행자들이 한 말을 실감하고 있다.
'하느님은 한줄기 떨림이며, 조용한 눈물 한 방울이다.'
(123-124)기적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붓다는 말한다."육신의 기적과 영혼의 기적, 나는 전자를 믿지 않는다.내가 믿는 것은 후자이다."
시나이 수도원은 영혼의 기적이다.사납기 짝이 없는 사막, 적대적인 종교를 받들고 다른 언어를 쓰며 호시탐탐 노리는 부족들 한가운데서, 우물 하나를 중심으로 1400년전에 세위진 수도원이 지금까지도 요새처럼 우뚝 솟아, 사방을 포위한 자연의 힘과 인간의 무력에 맞서고 있다.
미소 한 점 없이 냉혹한 사막을 사흘 동안 헤쳐온 끝에 수도원의 꽃 만발한 아몬드나무들을 바라보는순간, 가슴이 울렁거렸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여기에는 인간의 훌륭한 양심이 존재한다. 여기서는 인간의 미덕이 사막을 지배한다./지금 내가 여기, 성서에 나오는 산중심부,구약성서의 저 高遠한 현장에 서 있다.동쪽편으로 내 앞에 우뚝 솟은 것은 모세가 황동뱀을 못박았다는 '깨달음의 산'이다. 아말렉족과 암몬족의 땅이 바로 너머에 있다. 북쪽으로는 케달족과 에돔족이 차지한 사막과 타히만 산맥이 모아브 사막까지 쭉 펼쳐진다. 남으로는 파란 岬과 홍해가 있다. 마지막 서쪽으로는 시나이 산, 하느님이 모세에게 말씀을 내리셨다는 '거룩한 정상'이 있고, 얼마 멀지 않은 곳에는 성 카타리나 예배당이 있다./나는 수도원의 큰마당을 내려다본다.중앙에 교회가 빛나고 그 옆에는 자그맣고 하얀 모스크가 서 있다. 이곳에서는 초승달과 십자가가 사이좋은 형제처럼 함께하고 있다. 그 주위로 눈덮인 수도승들의 방과 저장실, 게스트하우스들이 하얗게 반짝인다.
(126)어느 노인이 들려주는 '시나이 수도원'의 전설:이드로(모세의 장인)의 딸들이 양에게 물을 먹이러 왔다는 이 우물 근처, '불꽃이 이는 데도 타지 않는 떨기수풀' 바로 그 현장에, 유스티니아누스1세(비잔틴제국 황제)가 이 수도원을 세웠소. 또한 황제는 폰투스와 이집트에서 200가구를 뽑아 여기로 보냈지.수도원 옆에 살면서 파수꾼과 하인 역할을 하도록 말이오.
그로부터 백 년 후, 무함마드가 세상으로 내려왔소. 그도 시나이산을 거쳐갔지. 붉은 화강암판에 새겨진 그의 낙타 발자국이 아직도 보존되어 있소.그가 수도원으로 들어오자 수도승들이 깊은 경의를 표하며 맞았다오. 그러자 무함마드가 크게 기뻐하며 그들에게 저 유명한 聖約 '아크티나메'를 주었소. 노루 가죽에 쿠파체(코란 원전을 쓰는데 사용한 아라비아 글자의 한 서체)로 적혀 있고, 그 예언자의 손바닥 도장이 찍힌 형태인데,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지.
(126-1)아크티나메의 내용:
"시나이의 수도승이 산속이나 평원, 동굴이나 골짜기, 사막 혹은 예배당에 은신해 있을 때에는 내가 그와 함께하며 모든 해악으로부터 보호해 줄 것이다.육지나 바다, 동이나 서, 남이나 북, 그들이 어디에 있든 내가 지켜줄 것이다. 이 산에서 몸 바쳐 신을 섬기며 이곳을 축복하는 모든 이들은 세금 혹은 수확물에 대한 10분의 1세를 면제받을 뿐아니라, 군복무와 벌금 납부에서도 제외될 것이다. 자비의 날개가 머리 위에 펼쳐질 것이니 그들은 평화 속에 남을 것이다."
(그후 노예들은 이슬람교도로 변하고 베두인족의 습격이 있었으나 현재는 평화롭게 지냄)
(132)우리는 대주교, 聖具 보관인,부원장과 함께 교회로 들어갔다.
교회의 富에 눈이 어지러울 정도다.--공중에는 은촛대들이 가득 매달렸고, 금빛 찬란한 성화벽들이 솟아 있고, 벽과 기둥마다 가치를 따지기 힘든 무수한 성상들이 어른거린다.
성구 보관인이 커다란 성골함을 열고 수도원의 신성한 보물들을 우리 앞에 쳐들어 보인다--성스러운 유골들, 금빛 의상들,비잔틴의 저 찬란한 예술성이 숨쉬는, 진주로 뒤덮인 자수품들, 보석들이 번쩍이는 주교 冠, 상아 조각품,귀한 십자가들,부적, 지팡이들--
이 모든 금과 진주 같은 보물들이 그 유구한 세월 사막 한가운데 틀어박혀 있었다니!
(스폐인에서 성당을 찾았을 때, 금으로 휘황찬란하게 도배한 성당을 보고, 이 안에 하느님은 계시지 않겠구나 생각했다. 한때 세계 각국에서 금은보화를 끌어모아 국력을 자랑하던 때의 스페인을 보았을 뿐이다.)
(140-141)나의 종교관:
호메로스의 자그만 책자를 들고 다니던 나는 마치 주님에게 심술 부리고 싶은 사람처럼, 우상숭배에 해당하는 그 긴 6보격 구절들을 큰 소리로 읽었다. 그리스의 해안이 내 앞에 펼쳐지고 올림포스의 신들이 어른거렸다./인간이 이 생에서 저지른 사소한 죄악들을 히브리인들의 신이 궤변으로 비난해 대니, 인간이 어떻게 자기변멍을 당당하게 할 수 있겠는가!/그래, 나는 죄를 지었다.--나는 당신의 모든 계율을 어겼다./하지만 나는 이 땅과 불과 물과 바람을 길들였다.--피와 진흙탕 한가운데서 자유를 외치고 요구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그날 시나이의 정상에서 내가 상상한 것이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인간의 변명. 신과 인간의 대화.
(142)조르바:
산 전체에 기운이 베어 있다. 이제 그것은 모세의 기운이 아니라 내 평생 지극히 사랑했던 소박한 노동자, 기오르고스 조르바의 기운이다/조르바는 늙은 광부이다.용맹하기 그지없는 영혼, 번갯불 같은 섬광과 깊은 균열들로 가득한 정신의 소유자다. 지금 그는 멀리 나가 있고 정기적으로 편지를 보내오지도 않는다. 펜을 제대로 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펜을 끌 잡듯 하기 때문에 종이가 찢어진다./한번은 나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왔다.
"내 법에 의하면, 나는 신을 두려워하지 않소. 죽음도 두렵지 않소. 내가 아무것도 아니듯 죽음 또한 아무것도 아니니까.제아무리 거대한 자연의 힘도 나는 두렵지 않소./나는 신과 악마는 하나라 믿고 있소"
(조르바의 입을 통해 말해진 작가의 종교관 덕분에(?) 그는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고도 수상하지 못했고, 교회 묘지에도 묻히지 못했다. 그의 '자유'는 용납받지 못했다.)
(150)예언자 사무엘이 주님의 명을 받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감:
--사무엘,네 뿔나팔에 예언의 기름을 채워 넣고 베들레헴으로 가거라.
--거기는 먼 곳이고, 지금까지 백 년동안 당신을 섬기며 돌아다니느라 제 다리는 쇠약해졌나이다. 저는 이제 더 이상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육신을 경멸하여 결코 건드리지 않으니,지금 내가 육신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사무엘에게 말하고 있노라!
-말씀하소서, 주여, 제가 여기 있나이다!
--네 입을 굳게 봉하고 누구와도 동행하지 마라. 그리고 이새의 집 문을 두드려라.
--저는 베들레헴에 가 본 적이 없는데, 이새의 집 문을 어찌 알아보겠습니까?
--내가 피의 지문으로 표시해 놓았다.이새의 문을 두드려 그의 일곱 아들 중 하나를 선택하여라.
--어느 아들 말입니까? 주님? 제 눈이 침침해져서 제대로 보지 못하나이다.
--네가 그와 마주하는 순간 네 가슴이 송아지처럼 울부짖을 것이니라.네가 선택할 사람이 바로 그이니라. 그의 머리칼을 헤치고 정수리를 찾아내어 기름붓는 의식을 행하라.이제 그가 유대의 왕이니라. 알아들었는가!
(157-158)이윽고 양떼에 둘러싸여 서 있는, 밝은 적갈색 머리칼에 떠오르는 해처럼 빛을 발하는 청년과 마주치자 사무엘은 잠자코 서 있었다. 그의 심장이 송아지처럼 울부짖었다.
"다윗! 이리 오너라!" 그가 위엄있게 소리쳤다.
"당신이 이리로 오세요. 저는 양떼를 두고 가지 않을 것입니다." 다윗이 대답했다.
'바로 이 사람이다! 이 사람이야!'
사무엘이 천둥처럼 소리치고 황급히 앞으로 나아갔다.
(159)크레타에 사는 안드레아스 아저씨의 '주인'에 대한 정의:
주인이란, 전세계를 여행하고 나서 권총을 움켜잡고 자살하는 사람이다.
(161)내 인생에서 가장 근사한 나날들:라이토의 작은 항구에서 배를 기다리며 보낸 닷새/나는 바다에 몸을 담그기도 하고 모래사장에 쭉 뻗어보기도 하고 야자수 밑을 배회하기도 했다. 늦은 오후가 되면 성서에 나오는 늙은 대추야자나무에 올라가, 불모지 산들의 번득이는 색상들이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곤 했다.
(163)시나이 수도원에서의 마지막 만찬:
나는 수도원장 테오도시오스에게
대도시들에 대해, 현대인의 고뇌에 대해. 노동자와 시민 계급, 러시아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 속에서 악마적인 것이 터져 나온다. 지식의 나무를 타고 쉬쉬대며 기어오르는 뱀이다.
"테오도시오스 신부님, 만약 당신이 저 고요한 수도승의 방에서 나와---세상을 주의깊게 살펴본다면, 인류를 사랑하는 당신의 따뜻한 마음도 고뇌로 전율하게 될 것입니다. 전쟁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흥분이 당신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그것은 새롭고 검은, 종교에 가까운 공포지요. 전쟁 이후 모든 민족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황폐화시키는 바람이 지상을 뒤덮고 있어요. 광풍이 터져나왔습니다. 지금 몰려오고 있어요. 그것은 사랑하는 많은 얼굴들과 옛 사상들을 휩쓸어 버릴 것입니다. 이제 구원은 없어요."
"구원이 없다?"
수도승이 나직이 되뇌며 고뇌에 찬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이렇게, 훌륭한 은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그의 평온을 고통에 찬 불안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의 융숭한 대접에 최악의 방식으로 보답한 것이다.

-편지(몬티타에게 보내는)
(164)최후의 녹색 풀잎이 꼿꼿하게 서 있습니다. 바로 앞이 온통 사막인데도 굴복하지 않고 저항합니다. 그것은 마지막 수분 한 방울까지 끌어모으고, 대지의 마지막 조각을 부스러뜨리고 솟아오릅니다. 작지만 필사적인, 결코 굴하지 않는--이 녹색 풀잎은 내 마음 속에서 인간 안의 최상의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모델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의무다. 이것이 바로 현대인의 자리다.
(168-169)나는 시나이의 사막을 횡단하면서 인류의 새로운 '출애급'을 보았습니다. 이 환영, 이 사막의 반영이야말로, 나의 동방여행을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경험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불꽃이 이는 데도 타지 않는 떨기수풀'입니다. 어느 것도 그것을 소멸시킬 수 없습니다. 인간의 정신은 아프리카 어느 전설에 나오는 '작은 전갈'과도 같습니다. 당신도 이 전갈을 좋아하게 될 것입니다, 몬티타.
그 작은 전갈이 말했습니다.
"나, 작은 전갈은 결코 신의 이름에 호소하지 않겠다.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내 꼬리로써 해 낼 것이다"

예루살렘
-약속의 땅을 향하여
(175-176)오늘날 그리스도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더 이상 겁먹게 하지도 제어하지도 못한다. 우리의 행동 방향을 이끌지도 못한다.이제 그것은 효력을 상실했다.이는 무슨 의미인가? 진실되기를 멈추었다는 뜻이다. 노동하는 대중을 향해 이 지상에서의 삶은 아무 가치도 없으며 단지 사후의 삶을 위한 준비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설교는, 현대를 사는 우리의 정신적 경험이나 가장 절실한 요구들과 철저히 상반된다. 살아 있는 사람 어느 누구도 이 말을 믿을 수 없다. 따라서 이것은 진실되기를 멈춘 설교인 것이다.
지난날 신이 디오니소스, 야훼, 예수, 아리만(조로아스터교의 惡神),브리만의 형상을 기졌다면 오늘날에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 것에 불과하다. 피와 눈물로 우리의 가슴을 비트는 모든 것들이 바로 우리 시대 神의 형상이다.

-예루살렘
(184)바닥을 덮고 있는 거대한 대리석판-예수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뒤 뉘어졌다는 석판--을 얼마나 핥고 입을 맞추었는지 다 닳아버렸다.--내 옆에 있는 동방정교회 사제가 콥트교도들과 라틴 민족, 아르메니아인들을 의심과 증오의 눈길로 바라본다. 그가 몸을 숙여 숨죽인 목소리로 나에게 말한다.
"이 교회의 모든 것이 우리 동방정교회의 것입니다. 신성한 성소들도 모두 우리 것이죠.하느님께서 저주하셨던 저 이교도들이 우리에게서 그것들을 빼앗고 싶어하지만 이 분쟁 구역에 쇠창살로 울타리를 세워 아무도 발들여 놓지 못하게 할 것이요."
--나는 이렇게 응수했다.
"나는 당신들의 마음이 사랑으로 충만해지는 날이 오기를 하느님께 비오. 신성한 빛이 이제 당신들의 초에 내려앉지 말고 음험하고 反그리스도적인 당신의 정신에 파고들기를!"

-파스카
(193-194)(유월절(부활절)에 '그리스도부활 교회' 경내에서 아토스산의 '비잔틴 수도원'에서 지낸 석 달을 생각한다./석 달이 지나자, 나는 단식과 고통으로 인해 일어설 수도 없게 되었다. 두 눈은 쑥 들어가고 귀에선 윙윙대는 소리가 나고, 팔다리는메뚜기의 팔다리처럼 변해 버렸다./고독은 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해. 예수는 더 이상 내 영혼을 구해줄 수 없어.

-오마르의 모스크
(195-198)오마르의 모스크 주위를 걷노라면 내 가슴은 마치 낭떠러지 위에선 아이처럼 태평스레 뛰논다.나는 하늘을 향해 몸을 뻗지 않는다.--나에게는 이 지상이 멋져 보인다. 나의 이 조국은 내 영혼과 육신을 위해 특별히 제작되었다./기독교적 이상을 받들어 지상을 경멸하고 지상을 떠나왔건만 이 오마르의 모스크가 흙으로 내 마음을 위로하고 화해시킨다. 햇빛 속에서 찬란하게, 즐거움에 가득차 온갖 색상으로 반짝이는 모스크가 마치 거대한 수컷 공작새 같다./나는 예루살렘의 오래된 선창 너머에 있는 넓은광장을 성큼성큼 서둘러 가로지른다. 장엄한 모스크 주변을 몇 시간이나 빙빙 돈다./저 너머로 모아브산맥이 부드러운 기운을 내뿜고 있다. 바로 앞에 있는 목마른 올리브산은 바싹 말라 먼지로 덮여 있고 그 밑으로, 타오르는 햇볕에 부식된 도시가 펼쳐진다./야훼가 콧구멍을 넓히고 서서 산 제물을 받고 피 냄새를 맡았던 곳이 바로 이 봉우리다.뻣뻣한 목을 가진 신의 난공불락의 요새. 솔로몬의 위대한 신전이 세워졌던 곳도 바로 여기다.
나는 피와 증오와 논란으로 가득한 그 모든 역사를 다시 체험했다. 햇볕에 구워진 단단한 머리, 매부리코, 편협하고 무자비한 이마, 빳빳한 목, 탐욕으로 불타오르는 눈--이것이 히브리 민족이다.
(작가는 왜 이리 히브리 민족에 대해 부정적이고 편협한 생각을 품었을까? 기독교도도 아니면서--)
그러나 이스라엘의 이 피구덩이를 배회하는 동안 내 마음은 돌아섰다. 오마르의 모스크가 마치 보석들로 조각된 샘처럼 햇빛 속에 솟아 있었다.
(199)오늘, 오마르의 모스크에서 나는 내 마음의 불안들이 단련되기를 바라며 내가 이 세상에서 깊이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조화시키려고 애쓴다. 냉정한 정신과 타오르는 상상력, 기하학적 견고함과 정확성, 열망의 신비한 불꽃을 넘어서지 않고 그 안에 머무르는 것. 나도 신자처럼 모스크의 둥근 천장을 오래 응시한다. 아랍인들의 장난기가 동물과 식물들을 장식으로 바꾸고, 장식들을 문자로 바꾸면서 신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치 왕궁 정원의 무성한 잎사귀들 사이로 군주를 보듯 신을 본다.

-히브리인들의 한탄
(204)통곡의 벽:
서로 융합하고 함께 울기 위해 여기모인 유대인들은 세계 구석구석에서 온 사람들이다. 긴 오버코트를 입고 관자놀이에 곱슬머리가 달랑거리는 사람들은 갈라시아에서 왔다. 하얀 젤라바를 입은 이들은 아라비아에서 왔고, 붉은 머리를 짧게 자른 사람들은 폴란드 출신들이다. 성서에 나오는 족장들처럼 키가 크고 위엄을 풍기는 이들은 바빌로니아 출신들이다. 러시아, 스페인, 그리스, 알제리에서 온 사람들도 있다. 위로 뒤집힌 엉성한 콧수염의 한 남자는 중국인 같아 보이는데 가부좌를 틀고 앉아 머리와 상체를 율동적으로 천천히 움직이면서, 마치 울다 지친 아이처럼 쉬지 않고 구슬프게 낭독한다.
(207)유대 정신은 지상의 정복을 원한다. 이 지상이 자신을 품지 못하고 질식시키기 때문에 모든 나라를 자신의 리듬 밑에 복종시키고 현재를 분쇄하고자 한다. 바로 이것이 유대정신의 가장 깊은 특징이다. 그리스인들은 반대 세력들을 조화시키는 것을 좋아한다.덧없는 모든 순간들을 즐기고 쉽게 어울린다. 그들은 세계에 균형을 가져왔다. 유대인들은 그 균형을 깨뜨리고 인간의 마음을 교란하기 위해 쉬지 않고 전투를 벌인다. 현실은 결코 그들을 품어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덧없는 순간들 너머에 있는 절대적인 것을 요구한다.

(지성인의 입장에서 종교를 이해하려고 치열하게 다가가서는 이내 실망한 점엔 공감이 가지만, 유대인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작가도 유럽인의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약속의 땅
(217)당신들(유대민족)은 좋든 싫든 우리 시대정신의 도구가 될 것이오.게다가 우리시대는 혁명의 시대요. 다시 말해, 유대인의 시대지.누군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소. '괴테가 사망한 1832년 3월 22일, 한 시대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으니, 바로 유대인이 군림하는 시대이다.' 그것은 사실이오. 괴테는 '조화'를 대표하는 최후의 완벽한 인물이었소. 따라서 우리시대의 진정한 시작은 괴테 이후인 셈이지. 낡은 조화를 파열시키고 새로운 조화를 창조하려는 폭력 말이오. 오늘날 히브리 민족이 득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소. 모든 조화의 파열이야말로 이 민족의 본질 그 자체니까. 최고 지성들과 행동파 지도자들이 유대인인 이유도 여기에 있소. 왜 이처럼 번성하느냐고? 왜냐하면 당신들이 멸망해 가는 이 덧없는 시대에 세계 도처에 흩어져 부단히 움직이기 때문이오. '디아스포라('씨를 뿌린다'는 뜻)'가 바로 당신들의 조국이오. 당신들은 운명을 벗어나고자, 이외 딴 고장(팔레스타인)에서 행복과 안전을 찾아내고자 헛되이 애쓰고 있소. 나는 조만간 아랍인들이 당신들을 여기에서 몰아내어 다시 세계 각지로 흩어놓았으면 하고 바라오. 내가 이렇게 소망하는 것은 유대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오."

키프로스
-아프로디테의 섬
(221)키프로스는 과연 아프로디테의 고향 땅이다. 나는 이렇게 비옥한 섬을 본 적도 없고, 이처럼 아슬아슬하고 감미로운 설득력으로 충만한 공기를 호흡해 본 적도 없다. 해가 지고 바다에서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는 늦은 오후, 가벼운 나른함이 나를 덮친다./우리는 배로 좁은 해협을 건넜고 하룻밤 새 야훼의 전투 캠프에서 아프로디테의 침상으로 옮겨져 있었다. 나는 파마구스타에서 라르나카로, 라르나카에서 리메소스로 옮겨가면서 해상의 그 성스러운 도시 파포스에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변화무쌍하지만 소멸되지 않는 저 액체 성분의 포말에서 아프로디테라는 여인의 신비한 가면이 탄생한 현장으로.
(226)운전사와 술집 여주인의 시시한 대화가 내 마음을 흥분시켰다. 위대한 신전, 유명한 풍경에 깃든 영감들, 추억들, 역사적 깊이--이런 것들도 나를 감동시키지 못했는데 사소하고 인간적인 이 순간이 내 안에서 순식간에, 아프로디테의 모든 것을 소생시켰던 것이다.

(내가 카잔차키스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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