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지하철 옆자리

맑은 바람 2023. 9. 15. 15:19

왕십리에서 수인선을 탔습니다.
종점이라 자리를 골라 앉을 수 있어 좋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 경로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이른 시간에 약속을 잡았기 때문에 새벽잠을 설쳤어요. 영통역까지는 1시간 13분 남았고 30개 역을 지나야 하니까 잠이나 청해야지 하고 눈을 붙이고 앉았는데, 옆자리 아줌마가 어느새 내리고 빈자리에 山만한 남자가 앉았습니다. 갑자기 청하던 잠이 싹 달아나며 짜증이 확 올라옵디다. 눈을 흘기듯 살피니 빨간 배낭까지 메고 좁은 자리를 더욱 좁게 만드네요.베레모에 옆얼굴은 얼마나 크고 긴지--가지가집니다.
미운 놈은 떡 하나 준다지만, 싫은 사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그런데, 선이야, 그 사람이 떡을 달래니 밥을 달래니, 순전히 니 마음이 만들어 낸 감정을 가지고 울그락불그락하는 거자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마음이 조금 가라앉더군요. 그는 잠시 후 선릉에서 내렸습니다. 그렇게 금방 내릴 줄 알았더면 씰데없는 감정 소모는 안 하는 건데~~

옆지기라고 불리는 부부사이도 이와 크게 다를 게 없습디다.
좋을 땐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알공달공 살아야지 하며 엎어지다가도, 싫은 맘이 들 땐  아침저녁으로 나누는 굿모닝, 굿나잇! 도 안 하고 문을 꽝 닫습니다. 부부는 同床異夢일 뿐이야! 하며

누가 이 속을 다 헤아리고 알아 줄까!
잠들기 전 하루의 잘못을 돌이키고 신부님 앞이 아니더라도 스스로에게 고해성사를 줍니다.돌이켜 보니 삶이 고단했지만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될 때는 기특하다,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해주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뭉클한 이건 뭐지?

열심히 낙서하고 있는데 다시 옆자리에 아까보다 더 큰 남자가 털썩 앉습니다. 뜨뜻한 체온까지 전해 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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