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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흘러간 노래

맑은 바람 2023. 9. 24. 22:24

(성장사)

 

소파에 길게 누운 어머니는 잠꼬대하듯 감아놓았던 이야기 실타래를 다시 푼다.

한두 번 더 들으면 백 번째가 될지도 모를 똑같은 얘기- 토씨 하나 틀리는 법 없다.

맞장구 치기도 힘들어하는 딸의 얼굴이 점점 굳어져가는 것도 나 몰라라 하면서-

 

-서모가 밥상 밑으로 꼬집으며 밥 고만 먹으라고 눈치준 일

-9살에 가출해서 친척집으로 갔는데 공부 시켜준다더니 부엌데기 노릇만 이 년하다가

-11살 때 일본인의 군수공장인 인천 공장으로 가 버린 일

-거기서 사람대접 받고 살면서 천안 아저씨의 구애를 받은 일, 그 남자는 이미 고향에 처자가 있는 몸이라 받아들일 수는 없었지만, 지금까지도 엄마의 반짇고리엔 그 아저씨가 만들어준 실패가 반질반질 닳은 채로 담겨 있다.

 

공장사람 중에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있는데 용 *필, 용 효* 이라서 -누가 중매가 들어왔는데 용씨라는 말에 기대치가 있어 덜컥 결혼했더니 물 한 그릇에 은가락지 하나 놓고 가진 거라곤 뭐 두 쪽뿐이더란다.

 

자식 넷 출가시키기까지 스물네 번 이사 다닌 일이 엄마의 생을 한 마디로 요약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