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붓다의 행복론

맑은 바람 2023. 11. 13. 11:06

불교의 언저리에서 맴도는 내 모습이 안타까웠던지 어느날 知人이 책 한 권을 건네더군요.
<반야심경>(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본작가 야마나 테츠시가 佛者가 아니라도 쉽게 읽을 수 있게 썼다고 하는데 사실이 그런 것 같아요.
未知의 처녀림을 답사하는 심경으로 읽어나가면서 계속 '色卽是空,空卽是色'의 높은 벽 앞에서 발을 멈추게 되네요.
그런데 분명한 건, 붓다가 이 괴로움의 바다(苦海)에서 인간을 구해주고 싶은데 無明해서 빠져나오질 못한다는 거예요.
나의 말과 행동의 기준을 남에 맞추다 보니 그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도 하고 불행에 빠트려 괴로움을 주기도 한다네요.
진심으로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自尊感을 지닌다면 남의 언행에 내가 휘둘리지 않는다는 거지요.
행복해지려면 언행의 기준을 남에게 두지 말고 나에게 두라~

저는 이쯤에서 최근에 넷플릭스로 만난 영화 <드라이빙 미스데이지>이야기를 하고싶습니다.

전직교사에 깐깐한 성미 때문에 아들도 혀를 내두르는 유대인 할머니 데이지의 운전기사로 어느날 호크(모건 프리먼)가 찾아옵니다.
있는 갑질 없는 갑질 해대며 구박수준의 태도를 보이는 데도 호크는 언제나 넉넉한 웃음과 침묵으로 대합니다.

딱 한 번, 친척집엘 찾아가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중 호크는 소변이 마려워 참을 수 없게 되자 차를 세우고 내리려는데, 데이지는 조금만 참고 더 가자고 합니다. 이때 호크는, 내가 내일 모레면 70인데 오줌 누는 것까지 허락을 받아야하겠느냐고 굳은 표정으로 응대합니다.

그렇게 시종일관 호크의 흔들림 없는 자존감에 데이지의 거만모드는 마침내 기가 꺾이게 됩니다.

어느 날, 치매기로 요양병원에 들어간 데이지에게 이미 은퇴한 호크와 아들이 찾아갑니다.
엄마 데이지는 아들에게, "자네는 가서 간호원이나 꼬시게" 하며 호크와 둘만이 있고싶어합니다.

눈치 빠른 아들은 사라지고 데이지는 만면에 웃음 가득한 얼굴로 호크가 입에 떠 넣어주는 미음을 맛있게 받아먹습니다.

호크야말로 붓다가 말하는 행복한 인간의 모습일 거라 생각합니다.
호크는 불경을 몰라도 이미 괴로움의 바다를 벗어난 사람이니까요.

저요? 저는 이 순간에도 내 글을 읽고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여 줄 친구들을 생각하는,

깨달음의 경지로 가기엔 너무 먼 사람입니다.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갑진년 첫날  (0) 2024.01.01
길상사에서 추기경님을 만나다  (0) 2023.11.14
백향과 리각에서(4)  (0) 2023.11.07
무당거미의 곡예  (0) 2023.10.28
이가림과 김재홍  (2) 2023.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