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전희식이 치매어머니와 함께한 자연치유의 기록
전희식ㆍ김정임 지음/그물코/1판1쇄 2008년3월/250쪽/읽은 때 2023년11월25일~11월27일
전희식(1958~)경남 함양/1994년 전북 완주로 귀농/현재 전국 귀농운동본부 이사/87세의 치매어머니를 모시고 삶
(책 제목에 '똥'을 쓰다니~방영웅의 <분례기>가 똥례 이야기라지만 피부로 닿지는 않았었다. 하긴 최정례시인은 '시는 똥이다' 라고 쓰긴 했지만~ 작가에 대한 호기심과 치매를 다룬이야기라 이 책을 골랐다.)
(9)그분의 마지막 소원이 혼자서 걷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치매위험군에 걸려 있다. 오늘은 네가, 내일은 내가~아무도 보장해 주지 않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혼자 걷는 게 마지막 소원이 되지 않도록, 매일 아침 일어나 내 손으로 이 닦고 세수하고 혼자 용변을 보고 사람 만나러 또는 장 보러 혼자 걸어다닐 수 있는 지금의 시간들을 누리며 감사해야겠습니다)
(19)땅도 천생연분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살 곳이 정해지는 것은 보통 인연이 아니라고 보면 된다.그런 인연은 뭐라고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없는 신비에 싸여 다가오는 법이다. 지금 어머니랑 살고 있는 곳도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24-25)집을 지으면서 나는 원칙을 세웠다.몸은 좀 불편하더라도 마음은 아주 편한 집을 짓는다는 것이다.살면서 양심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는 집이 그 핵심이었다.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집, 에너지를 적게 쓰는 집, 자연과 순환하는 집, 생활의 편리를 지나치게 좇지 않는 집,이런 것이었다.
그래서 뒷간을 본채에서 30m쯤 떨어진 마당구석에 재래식으로 두었고 보일러와 세탁기, 냉장고는 아예 들이지 않는 것으로 집 구조를 만들었다. 자다가 오줌 누러 가려면 총총한 별도 봐야 하고 얼어붙는 겨울바람도 쐬야 한다. 손빨래를 하면서 빨랫감 하나하나에 얽힌내력들을 되새겨 보는 것은 삶에 대한 성찰이 된다.
재미있고 즐겁게 집을 짓는다는 것도 중요한 원칙이었다. 여럿이 한데 어울려 지으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목표 중심의 삶이 고단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집 짓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제일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버려진 것들을 주워모아서 다시 되살려내겠다는 원칙이다. 그래서 쓰레기장과 고물상을 돌면서 필요한 것들을 모았다.일을 서두르거나 일정을빠듯하게 세워가지고는 할 수 없는것이 이 일이다. 기다려야 하고 느긋해야 한다.
(44)봄나물 이야기:
엄니:나시래이 안 뜯어오고 웬 빌금다지냐?(*나시래이는 냉이, 빌금다지는 지은이가 어릴 적 질리도록많이 먹던 나물)
(48-49)어머니는 똥대장:종일 혼자 계신 어머니는 온 집안을 똥칠갑을 해놓았다.
똥꽃
감자 놓던 뒷밭 언덕에
연분홍 진달래 피었더니
방안에는
묵은 된장 같은 똥꽃이 활짝 피었네
어머니 옮겨다니신 걸음마다
검노란 똥자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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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똥칠한 옷과 이불을 빨며:
줄곧 힘들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러면 너랑 어머니랑 바꿔서 살아볼래?"하는 소리가 들렸다. 옷에 똥을 누는 사람보다 그 똥을 치울 수있는 사람이 몇 배는 행복한 줄 알라는 소리도 들려왔다. 똥을 쌌는지 된장이 끓는지도 모르는 사람보다 아직은 멀리서도 똥냄새를 맡을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잊지 말라고도 했다.
연이어 들리는 소리에 일어서서 고개를 두리번거렸으나 아무도 없었고 무심한 하늘만 푸르렀다.
(63-64)어머니와 함께한 황제밥상:
"어머니, 밥상이요 밥상. 일어나세요"
" 언제 부침개까정 맹글었냐. 먹을 끼 너무 많아 어떵 거부터 먹어야 할지 모르겠네?"
음식 칭찬에 인색한 어머니 입에서 이 정도의 말이 나온 것은 밥상에 대한 극찬에 가까운 평가라고 보면 된다.
한 벌 장만했던 놋수저를 어머니와 내 놋그릇 옆에 두니 황제의 밥상이 부럽지 않다. 고추장은 내가 농사 지은 고추와 메주와 싹 틔운밀과 찹쌀을 가지고 만든 2년 된 것인데 고추장만 가지고도 밥 한 그릇 먹을 수 있을 정도다. 청국장 역시 농사 지은 콩으로 어머니와 함께 이제 막 아랫목에서 띄워 완성한 것이다.밥상에는 플라스틱 용기는 하나도 없고 놋그릇과 사기 그릇만 있다. 방에는 모짜르트의 음악이 흐르고 시계는 여덟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79)자존감을 잃어버린 노인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어떤 경우에도 "그거 아니다"라고 하면 안 된다.나는"좀 가만히 있으라"든가 "이제 그만해요" 등의 말을 어머니께 하지않는다. 자기 존재성에 대해 자신감을 잃어버린 노인한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똥누는 사람 주저앉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신 "그럼요!그렇지요!"라고 일단 동의를 해 준다. 동의해 줄 수 없는 경우에는 어머니 말씀을 그대로 반복해 준다.
가령 이렇다. "가만히 누워 계시는게 편하시다구요? 저랑 같이 다니면 제가 고생일 거라고요?"라고.
(남다른 생각, 남보다 조금 앞선 생각과 용기 있는 행동이 삶을 바꾼다. '애들아, 우리 시골 가서 살자'의 이대철씨가 그렇고 전희식씨가 또한 그러하다.
치매 어머니를 아파트 방구석에 가둬두고 삶이 끝나는 날까지 감옥 아닌 감옥살이를 시킬 수도 있지만, 글쓴이는 어머니를 그 수렁에서 건져 내어 자연 속으로 이끌어, 햇빛과 구름과 바람과 물과 풀과 나무와 꽃들 속에 사시게 하니 보는 우리들도 가슴이 뛴다.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94-95)어머니의 환각 증상:
어머니의 착각을 고쳐 드리기 위해 손짓발짓을 다했다.어머니는 좌절했다. 그러다가 끝내는 언제나 부정당하는 자신마저도 포기했다.
나는 바로 이게 치매라고 생각한다. '포기한 삶의 틈새로 끼어든 이물질들'이 치매다.
혼자 마음대로 돌아다니다 길을 잃고 집을 찾지 못해 식구들을 안타깝게 만드는 치매 노인들을 일주일에 몇 번씩 식구들이 모시고 나들이를 시켜드린다면 그런 증세는 사라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모든 망각은 '잠재된 고의'라고 한다. 왜 집을 못찾겠는가? 이치에 안 맞는 말을 하고 똥오줌을 못 가린다는 이유로 멀쩡한 사람을 감금해 두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이 집을 못 찾는 치매노인의 심리라고 하면 억지일까?
(99)세포의 죽음:
세포는 소우주로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한다.이런 세포가 죽음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은 죽음 말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죽음을 선택하는세포, 살아야 할 의미를 잃었다는 것이다. 모든 기억은 다 고통이고 할 수 있는 모든 생각들이 괴로움의 원천일 때 해당 세포는 자살을한다.
(103)치매는 병이 아니다:
알츠하이머 특집을 다룬 '깨어라'잡지가 그동안 내가 봐온 책들과 다른 점은 치매노인을 관리의 대상이나 치료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한 식구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치매 걸린 사람에게 인식의 오류를 바로잡아 주려는 시도를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생산성이 있으면서도 함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라는 지적도 평소 내 생각과 같았다. 치매노인이 공격성을드러내는 이유는 삶의 한 대목에서 겪은 좌절감 때문이라는 설명은 현대심리학에서 평범한 현대인을 진단하는 것과 꼭 같았다.예기치 못하는 순간에 스스로 쓸모 없는 존재라는 느낌에 압도당하지 않도록 보살피는 것이 치매노인의 품위와 존엄을 위해 필요한 사항이다.이 소책자를 읽고 나서 내 방식의 어머니 돌봄에 대해 더 자신감을 가졌다.
(106-108)큰소리치는 어메:
-저 보이능기 찔레꽃이제? 저기까정 갔으면 좀 꺾어 오지 빈손으로털렁털렁 왔나?
-찔레꽃 뭐 하게요?
-부침개 부치 먹을 때 넣으면 올매나 존대. 아이고, 저기 시염만 시커멓게 났지. 인치라 인치! 그것도 모르고.
**인치:'쑥맥','멍텅구리'의 사투리?
계획을 바꾸어 앞산으로 가서 찔레나무를 잘랐다. 찔레나무를 자르다보니 지난 주에 산뽕을 따다가 아직 시퍼래서 다음에 따러와야지 했던 뽕나무 오돌개가 제법 까맣게 익어 있었다.산뽕나무도 함께 잘라왔다.어머니가 좋아서 입이 벌어질생각을 하니 찔레가시가 손을 찌르는 것도 몰랐다.
벌써 오십이라지만 하는 짓마다 '인치' 같은 막내자식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차다가 잠이 드셨나 보다.
어머니를 깨워 뽕나무랑 찔레꽂을 보여 드리니 반색을 하시며 오돌개를 한주먹 따서는 통째로 한입에 털어 넣으셨다.
-어무이, 나도 줘야지요? 어무이가 다 묵을끼요?
-너는 안 묵고 왔나? 저기 인치라 인치. 뽕밭에 갔으면 저부터 먹을 끼지, 츳츳
이렇게 해서 어머니는 완전히 찔레꽃 오돌개 삼매경에 빠져드셨다.
무서운 집중력을 보이셨다.저러다가 또 사건 내실 거 같아서 한마디했다.
-어무이 오줌 좀 누시고 하세요.
못 들으신 어머니는 여전히 꽃잎만 따고 계신다.세 번째 고함을 질러서야 겨우 어머니가 나를 쳐다보신다.
-내가 기머거리가? 와 그리 가암을 질러? 동네사람들 다 듣것네.
지 에미 옷에 오줌 싼다고 굿을 해라 굿을 해!
그리고는 꿈지럭꿈지럭 뒷방으로 오줌 누러가신다.
어머니가 나랑 사시면서 달라진 여러 모습 중에 가장 반가운 것이 이것이다. 맘에 안 들면 당당하게 큰소리 치는 것. 떵떵거리고 사는 어머니 모습을 보는 어느 자식 마음이 흐뭇하지 않으랴.
(분명 치매노인 이야기건만 왜 이리 뿌듯하면서도 재미있을까, 이런 아들딸 눈 씻고 찾아봐도 보기 힘들 텐데, 글쓴이의 진솔한 삶의 태도가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111)산야초도 담그고 도끼질도 하고:
-요즘 나 밥값 하제?
-밥값 정도가 아니라 품삯 드려야겠는데요?
-인자 다 키웠네.옷에 오줌도 안 싸고.
-하하하, 그러게요.빨래 좀 해보게 옷에 오줌 좀 눠 보세요.
-찌랄하고 있다. 저놈 말하는 것 봐라.
(118)포기하지 않고 계속 꿈을 꾸는 사람은 언젠가 기회를 만난다.기회를 잘 살펴 보면 포기하지 않고 꾼 꿈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126)달라진 어머니: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서는 똥오줌도 옳계 보지 못하시는 어머니, 당신 몸 하나도 간수하기 힘들어 옷입는 것까지 남에게 의지해야 하는 어머니는 자식 아픈 몸을 치료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지 자꾸 부항기를 만지작거리셨다.
(치매노인을 폐기물 취급하고 마치 인격이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켜주고 스스로 해낼 만한 적당한 일거리를 주고 도와준다면 치매도 죽을 만큼 무서운 병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환해진다.)
(137-138)노인들의 이상 행동은 질병이 아니라 '치유' 과정:
노인들의 악담과 저주, 또는 의심과 불안 증세는 질병이 아니라 그것 자체를 일종의 치유과정으로 보는 것이 옳다. 그런 행위를 보장하고 잘 지켜봐 주는 것이 중요하다.한 노인이 평생을 어떻게 살아왔는냐에 대한 자연스런 귀착점이라고 생각한다.
노인이 되면서 잘 안 들리고 잘 안 보이는 것도 하늘이 주시는 은총이라고 생각한다. 손이든 발이든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데 눈이랑 귀가 여전히 밝고 마음이 청춘이라면 그 부조화를 안고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140)어머님 전상서 중에서:
어머니,
제 말 좀 들어보세요.
빨래는커녕 청소도 못 하고 밥도 흘리시는 우리 어머니.
물 한 모금도 오줌 눌까봐 안 마시려고 하는 걸 제가 다 알아요.
밭에 가서 일도 하고 장작도 패고 지게도 지는 저는
누가 뭐래도 누워서 꼼짝도 못하는 어머니보다 고생 덜 하는 거예요.
어머니 오줌 묻은 옷 빨고 삼 시 세 때 밥 해드리는 것쯤은
어머니 젊어 고생하신 거에 비하면 고생도 아니예요.
불편하신 어머니 딱 한 분 모시면서 고생이랄 것도 없어요.
두 살 터울로 우리 칠남매 주렁주렁 한 걸 홀몸으로 돌보고 해먹이고 공부시킨
어머니를 생각하면 정말 저는 고생도 아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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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이제 일어나세요.
제가 아기일 때 옷에 똥 싸고 오줌싸도
아프지만 않고 잘 먹으면 어머니 좋아하셨잖아요.
어머니가 옷에 오줌 누고 똥 묻혀도
기죽지 마시고 큰소리치면서 옷빨아 놓으라고 그러면 좋겠어요.
오줌 묻은 옷 절대 그냥 입고 계시지 말고
바로바로 마루에 내놓기만 하세요.
그러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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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3일 불효자 희식 올림
(167)20년 만에 처음 자식 밥상 차리신 어머니:어머니는 감자와 호박잎 넣고 멸치육수에 밀가루를 떠넣어 수제비를 만드셨다.
청국장 만들기, 아궁이 불 때기, 텃밭 물뿌리기, 마늘까기, 산뽕잎 따기, 가죽자반 만들기, 매실껍질까기, 바느질하기, 마루 걸레질하기. 등의 정점에서 어머니가 차린 밥상이었다.
(아침저녁으로 드나들 때 어머니께 큰절을 올리고, '하지 마세요,그만두세요,가만히 계세요' 등등의 부정적인 말은 절대 하지 않고, 끊임없이 대화를 건네고, 흥미를 유발시키는 사건을 일부러 만들고, 어머니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들은 열심히 찾아서 직접하는 기쁨을 맛보게 해드리면서 어머니의 自尊感을 세워드렸다.
글쓴이 전희식선생의 치매 어머니 모시기는 흉내내기조차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현대판 超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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