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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철 <얘들아,우리 시골가서 살자!>

맑은 바람 2023. 11. 24. 12:25

--15년 동안 전원에서 살며 배운 모든 것
이대철(1945~  )지음/디자인하우스/331쪽/1판1쇄1997.11/읽은 때 2023년11월15일~11월24일
(2009년 3월에 이 책을 만나, 글이  넘 재미있고 아름다웠던 기억이 있어 다시 읽어 본다.)

이대철: 서울대 임학과/조기퇴직 후 용인 하늘말 숲속(마북리)에 정착함/목공 일에 능한 농부/
이 책은 하늘말에서 살아온 15년간(1982~1997)의 이야기

차례
프롤로그  나무가 되고싶은 아마추어 목수
(25)나무는 생명이다. 나무는 먹이를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거나 남을 죽이지도 않고, 제자리에서 스스로 생명을 키워간다. 또 나무는 다른 종류의 생물이 살아갈 수 있도록 제 몸을 내놓는 아량도 있다. 나무에 둥지를 튼 새들이나 나무줄기에 기생해 피어나는 버섯 등, 나무는 자신의 생명을 이어갈 양분을 그들에게 나누어줄 뿐 아니라 제 몸의 상처를 묵묵히 감수한 채 다른 생명과 공존하는 슬기를 알고 있다.
(교과서에 실려도 손색 없을 만큼, 문장이 유려하고 생각의 폭을 넓혀준다)
(34)땅을 선택하는 지혜:
"땅을 찾는다는 것은, 다시 말해 땅을 선택한다는 것은 배우자를 찾고 택하는 것과 같지. 자네가 원하는 수 많은 조건 중 한두 가지 장점만 골라봐. 그렇게 해서 일단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둔 곳이 있으면 자주 찾아가 만나 봐야돼. 땅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정이 들어야만 좋아지는 법이니까."
(41)설계자에게 주문한 나의 의견은 부엌에도 햇빛이 들어오게 해 달라는 것, 딱 한 가지였다.
아침 햇살이 눈부신 창가에 장미라도 한 송이 꽂아 놓고 아이들과 둘러앉아 아내가 해준 아침밥을 오손도손 먹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아기자기한가.
(41)큰아들의 이층 다락방:
비오는 날의 검푸른 능선과 짙은 잿빛 하늘, 산등성이에서부터 뽀얀 안개가 뭉게뭉게 피어나는 모습, 황사 현상으로 노랗게 찌든 하늘에는 아랑곳없이 온통 진달래꽃으로 붉게 물든 산, 마치 땅에서부터 치솟아오르는 듯 분분하게 휘날리는 눈보라, 팔레트에서 색을 떠다 마구 흩뿌려 놓은 것 같은 적황, 갈색 단풍의 화려한 군무와 투명하도록 파란 하늘, 이 모든 자연의 조화와 신비를 아들은 그 창을 통해 배우고 깨달아갔다.
(43)5월이 되면 층층이 늘어선 가지마다 하얀 꽃이 피어나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가르쳐 주는 층층나무, 이에 질세라 마로니에와 목백합은 그 넓은 잎으로 넉넉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탐스럽게 피어나 목월의 시처럼 내 영혼을 구름꽃 피는 언덕으로 불러내어 피리를 불게 하고, 그 진한 향기는 중년의 내 마음에도 젊은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게 하는 목련은 또 어떤가.

4월ㆍ땅, 그 무한한 생명의 신비
(47)나는 땅이 내게 줄 기쁨을 알기에 땅을 사랑한다. 땅을 갖게 되었다는 기쁨, 그것은 소유의 기쁨이 아니라 어쩌면 무소유의 기쁨이라고도 할 수 있다. 땅은 결코 어느 한 개인의 것이 될 수 없다. 땅은 그냥 땅일 뿐이니까. 다만 내가 가꾸고 돌볼 땅이 있다는 것은 삶의 활력소가 된다. 버려진 땅, 황폐한 땅을 살아있는 땅으로 만들어 다시 자연에게 돌려줄 수 있다는 기쁨, 나는 그 노력을 무소유의 기쁨이라 말하고 싶다.
(이 글은 귀농, 귀촌을 꿈꾸는 '과히 늙지 않은 이들'(50대 안팎)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인 듯싶다. 나는 이미 심적으로 대철씨 농장에 들어와 지내는 한 마리 새다. 그래서 그가 누리는 즐거움을 함께한다.)

5월ㆍ산철쭉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96)햇빛ㆍ바람ㆍ물, 이 세 가지 자연의 은혜는 서로서로 힘을 합해 우리에게 양식을 주고 삶의 기쁨을 안겨준다. 그러나 기쁨만 있는 것은 아니다.삽시간에 억수로 쏟아진 빗물에 목을 꺾고 늘어진 채소들이나 언제 그곳에 있었냐는 듯 빗물에 씻겨내려간 빈 밭을 바라보아야 할 때는 하늘이 원망스럽기도 하다.그러나 주는 것도 빼앗아가는 것도 모두 자연의 뜻이다.
농촌은 순간순간 자연의 위력과 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절대자의 힘을 알려주는 교훈의 章이다
따라서 농부는 겸손을 먼저 배우게 된다.바람과 해를 무서워할 줄 알고 마을어귀에 있는 고목나무에게까지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믿는지는 알고 있지 못해도 모두 하나같이 신앙인이다. 우주를 주관하는 힘, 아침이면 해를 솟게 하고 밤이면 별을 총총이 흩뿌리는, 그리고 바람과 비를 마음대로 하는 그 힘이 어디엔가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껴 알기 때문에 그들은 삶 앞에 겸손하다.
또 땀 흘리지 않고 무엇을 얻으려고 하지 않으며 남의 것을 향해 욕심을 키우지도 않는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평범하면서도 남다른 진리를 밭에서 배우고 터득하기에 늘 열심히 노력한다.
땀 흘려 노력하여 얻은 추수의 기쁨을 알기에 게으름을 부끄러워하는 농부들, 난 내가 농부인 것이 이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

6월. 장대비를 맞으며 쑥쑥 크는 아이들
(자전거로 마북리에서 서울 사는 친구 만나러 간 큰아들 홍이 얘기는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글쓴이는 타고난 글쟁이가 맞다!)
(홍이가 애리조나에서 삼촌 집이 있는 유타주까지 2000km를 7일동안 자전거로 여행한 이야기는 홍이나 그 부모나 나조차도 감동 그 자체다!)

7월ㆍ 별빛 속에 누워 수영을 하노라면
(120)밭일은 끝이 없다. 사람이 밭을 갈아 채소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채소가 잡초로부터 살아 남기 위해 사람을 부리는 듯하다.
(133)중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떠나기 전 큰아들 홍이와 친구들이 수영장에서 작별의 시간을 나눌 때:수영장 둘레에 촛불을 켜 놓은 채 밤수영을 즐기는 아이들--나는 지금도 그때 그 광경을 잊을 수가 없다. 거실 창문을 통해 보이던 그 아름다움이라니. 마치 착륙을 유도하는 비행장의 서치라이트처럼 어둠 속에 줄을 맞추어 빛나던 불빛이며 바람에 하늘거리는 불빛이 물 위에서 춤추던 그 신비함. 그리고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를 열다섯 살 소년들의 티없이 맑은 웃음과 건강한 육신. 내가 이렇게 가슴 저리며 기억하고 있는 그 밤, 그 자연을 그 아이들도 모두 기억하고 있을까. 아마도 성인이 되어 피폐해 가는 자신의 정서를 탓하고 싶을 때면 문득 떠올려 보고 눈시울을 적실 그럴 정겨운 장면이었다.

8월ㆍ감나무 밑, 바람도 쉬어가는 그곳
(169-171)우리집에서 가장 시원한 감나무 밑, 그러나 쓸모없이 버려졌던 데드 스페이스에 만들어진 데크는 내 땀과 수고로 어느날 우리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로 변모했다. 미처 못을 박을 새도 없이 우리 내외는 그곳에 나와 앉기 시작했다. 그곳은 우리에게 너무도 새로운 생활의 맛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새로 설치한 데크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리에게 그 어느 곳에서도 맛보지 못한 즐거움을 나누어 준다.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에서부터 신문을 읽고, 식사를 하는 것까지 여름부터 추운 겨울이 오기 전까지 모든 일상을 이 데크에서 해결하고 있다. 유리창을 통하지 않고 나무와 들꽃을 직접 볼 수 있으며 곧바로 우리를 자연의 품으로 인도하는 곳이 바로 이 데크이다.
바닥에 화문석자리를 깔고 누우면 멀리 있던 하늘이 성큼 눈 안으로 들어온다.
저녁 시간에는 촛불을 켜 놓고 데크에 나와 앉아 식사를 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을 따라 일렁일렁 춤을 추는 우리 부부의그림자는 쉰이 넘은 중늙은이에게도 새로운 로맨스를 꿈꾸게 한다.
막히지 않고 트여 있는 공간, 그러면서도 집이라는 인위적인 공간의 일부로 편입된 데크, 나는 이곳을 진정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평화의 가교', 혹은 포근한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자연의 품'이라 부른다.

9월ㆍ 누구나 낙엽타는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농촌의 아름다운 가을/防犯의 여러 가지 방법들/진돗개를키워라!/자연에서 단련된 아이들이 성공한다?
(내가 볼 땐 뭐니뭐니해도 씨가 좋아야 해, 그 다음이 밭이고!)

땅을 사라, 언젠가는 산골구석의 땅값이 종로와 맞먹을 수도 있을 거다. 소비자가 밭떼기의 피해에서 벗어나려면 농협의 역할이 커야 한다.

10월ㆍ짙고 푸르른 하늘빛이 그리워
(나누는 삶의 기쁨: 가을의 주인공들. 내가 수확한 밤을 나누고 감을 나누고, 수산시장의 어물들도 사서 나눠 주고. 꽃도 한아름 사서 나눠주고-- 풍성한 가을은 나누는 기쁨으로 가득찼다.)
(202-203)선물의 의미:
부자가 별건가, 나누고 싶은 물건이 있고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으며 또 그것을 그에게 주기 위해 주저않고 가슴에 집어안을 수 있으면 부자지/마음의 울타리가 넓고 얕을 때 주고싶은 사람이 많아지고 나누고 싶은 물건이 넉넉해지는 법이다./결국 선물을 준다는 것은 나를 위한 기쁨에 다를 바가 없다.

11월ㆍ잎새 지는 소리, 커피 물 끓는 소리
(214)마을 이 집 저집에서 낙엽 태우는 냄새와 연기가 골짜기 가득 퍼져간다.가을이 깊어가는 한가한 초저녁 풍경이다.낙엽 타는 냄새는구수하다. 연기가 뽀얗게 피어나도 맵지 않다. 그 곁에 앉아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다 보면 마냥 한가로운 생각이 든다.
(219)가을 밤, 책을 보며 음악을 들으며
농촌에서 늦가을부터 겨울 석 달간은 휴지기간이다. 우리 가족에게는 독서기간이며 음악에 심취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가족과 함께 테라스에 누워 담요를 덮고 존 덴버의 음악을 들으며 보름달을 바라보는 정경은 한폭의 잊을 수 없는 정경이다. 누군들 부럽지 않겠는가!)
(224)아내에게 주는 생일 선물; 양구~춘천 가는 길 드라이브

(이 책을 읽고 나도 그 길을 가 보았다. 그후로도 양구살이 석 달 동안 여러차례 그 길을 달려보았다. 호젓하고 구비구비 길이 아슬아슬하고~운두령에서의 무 서리(?)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

12월ㆍ장작더미 위로 하얗게 눈이 쌓이면
(내가 이 책에 몰입하는 이유는 그들의 삶 속에 내가 살아보고 싶은 삶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벽난로 속에서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참나무 불길을 보며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부엌 옆에 김치항아리를 묻어두고 겨울밤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동치미 무를 썰어서 사각사각 씹으면 당장 트림이 올라오고 속이 뻥 뚤리는~이런 땐 시루떡이라도 미리 사다 놓아 쪄서 같이 먹으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떠오르겠지~공부 잘한 아이들을 조기 유학 보내놓고 겨울방학이 되면 온 가족이 캠핑카를 빌려 타고 미서부 풍경 좋은 산악지대를 여행하면서 엄마 솜씨로 한국의 음식을 끼니마다 먹여 가며 아이들 에너지를 비축해 주고~이런 꿈 같은 삶을 작가는 살아낸 것이다!)

1월ㆍ아름다운 초록별 지구를 위하여
(266)후포 망상해수욕장에서 밤바다 물결소리를 들으며 겨울 밤하늘의 별을 세다:
하늘에 총총이 떠 있는 수많은 별, 그리고 보름달은 아니었지만 달이 뜨는 것도 보았다. 하늘은 우리의 이불이었다. 슬리핑백 밖으로 눈을 빠끔히 내밀고 쏟아지는 별빛과 싸늘한 겨울 달빛을 보는 그 고요와 황홀함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늘, 바다, 땅. 그 모든 것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고 말하기조차 황송한 아름다움. 그 모든 것을 위해 그 모든 것의 아름다움을 위해 우리는그곳에 이르렀고 장관에 감탄하며 탄성을 입안에 가둔 채 침묵했다.

2월ㆍ망치소리 드높은 새들의 보금자리

3월ㆍ버드나무 끝에도 봄빛이 왔네
(농촌에서 해볼만한 수익성 높은 일:1.표고버섯 재배/ 2.양봉/3.양란키우기
모두 부지런한 손길이 필요하며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이뤄내는 일들이다. 농촌살이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에필로그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는가
(317)다시 도시로 돌아가 산다는 생각은 꿈에도 할 수 없다. 다만 지금과 같은 생활을 지속할 수 있기만 바랄 뿐이다.우리 집 단골 손님인 청솔모와 다람쥐, 까치의 겨울 양식을 위해 감을 넉넉히 남겨 놓는 인정, 새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고 또 정육점에서 기름을 얻어다 겨울 양식을 대신해 줄 만큼 무언 중에 다져진 그들과의 교감, 어느 바위틈에 무슨 들꽃이 피어나는지 알 만큼 친해진 땅과의 친밀감, 이 모든 것이 땅과 나무로 되어 있는 자연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기쁨이었다. 이제까지와 똑같은 노력과 사랑을 땅과 나무와 새와 다람쥐와그리고 내 집을 스쳐가는 바람에게까지 나누어 주며 살고 싶은 게 내 마지막 소망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한국판 <윌든>을 보는 듯해서 편안하고 즐겁고 좋았다. 독서의 즐거움이 바로 이런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