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17회 선배라며 친구 송광호가 책을 보내왔는데 보내줄 테니 주소를 가르쳐 달라 했습니다. 몇 년 전 한 번 만난 적이 있어 그러라고 연락처를 주었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송선배야말로 外柔內剛의 전형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저는 '이만갑'은 보지 않으나 누구나처럼 북한 실정에 대한 궁금증은 갖고 있어요.
이 책은그런 궁금증을 폴어주면서 여러 면에서 착잡한 맘이 들게 합니다.'느릿느릿'이라도 통일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우린 함께 잘살아야 하니까요~
내 개인적인 감상보다 이 책의 내용을 요약,전달하는 게 의미있을 것 같아 길지만 정리해보았습니다.
책장 덮는 순간 다 잊어버리니 筆寫야말로 우리 나이에 필요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
--외국에서 본 남한ㆍ북한
(이 책은 관훈클럽 정신영 기금의 도움을 받아 저술 출판됨)
송광호지음/하움출판사/373쪽/2023년 9월 1판1쇄/읽은 때2024.6.20~6.29
송광호:사대부고(17회),서강대, 성균관대 졸업/1975년 캐나다 이민/언론계 투신/89년 1월 북한에 첫발을 디딘 후 모스크바 특파원(1992~)을 하면서 모두 8차례 북한을 방문/관훈클럽국제보도상, 한국신문상, 대한민국인권상 등 수상/
1부 내가 만난 북녘 땅
(27)평양 8경:
1.을밀상춘:모란봉 을밀대에서 바라보는 봄 경치
2.부벽완월:부벽루에서의 달맞이 풍경
3.영명심승:해질 무렵 영명사의 중들이 찾아드는 모습
4.연당청우:대동문에서 종로로 통하는 길 한복판에 있었던 연못에 비내리는 소리
5.보통송객:보통강 나루터에서 떠나는 나그네를 전송하는 광경
6.용산만취:용산 즉 대성산의 소나무가 늦가을에도 푸른 풍경
7.거문범주:수레문 즉 옛날 평천리 앞을 가로막았던 외곽 성문 유지에서의 뱃놀이
8.마탄춘창:이른봄 대동강의 여울 마탄의 눈 섞인 물이 소용돌이치는 풍경
(28)평양 미술관에서 발견한 서도글씨:
"그대가 품은 뜻이 높다면 세월은 청춘을 연장해 주리라"
(37)미군 증오의 원인: ---신천박물관에 근거 자료 전시
**양민 학살1(황해도 신천군 신천읍에서 주민 3만을 불태워 죽임)
**양민학살2(원암리 밤나무골 화약창고에 어머니와 어린이 910여명을 가두어 눟고 살해함)
(40) 80년대 첫 개성방문 때는 평양에서 밤12시 침대열차를 이용했다.러시아 특파원 당시 모스크바에서 밤 12시 침대열차로 페테르부르크로 갈 때와 같은 시간대다. 한밤중의 열차 이동은 공산국가 특성인 것 같다.
(이번 푸틴의 북한방문도 새벽시간에 이루어진 걸 보고, 國賓을 어째 한밤중에 맞이하느냐는 의문을 품었더니 그게 관례인 모양이다)
(43)구호물자를 보내온 북한:
1984년 남한의 홍수피해 때/쌀5만석, 옷감 50만m, 시멘트 10만톤을 보내옴/이듬해 9월 분단이후 처음 남북이산가족행사가 열림
(47)"이념은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나 그 이념이 만드는 역사는 늘 폭력적이고 고통스럽다---노벨상 수상작가 솔제니친"
(54)송기자의 첫 방북:
*1989년1월--정주영회장 금강산 개발 건으로 첫 방북
*1989년7월1일~7월8일 세계청년학생축전에 177개국, 2만2천 참가--이때 임수경 密入北
(59)천안문 사태 직후라 캐나다의 한인 언론인들과 미국 한인교포 언론사에서도 단 한 명도 평양행사에 참가하지 않아 친북신문 발행인의 배려로 기자들의 숙소인 평양호텔로 옮기고 북한당국이 인정하는 외신기자 완장을 참으로써 정식 취재활동을 인정받은 첫 남한 출신 북미기자가 된 것이다.
(61)<작가 루이제 린저가 1989년 7월 5일 로마에서 임수경에게 보낸 편지>
사랑하는 수경아, 나는 너의 의로운 행동에 대한 소식을 듣고 격동된 심정을 금할 수 없구나. 나는 너에게 경탄의 인사를 보내면서 언제나 너의 편에 서 있을 것이라는 것을 확언한다.여성으로서 그러한 용단을 내렸다는 것은 실로 얼마나 장한 일이냐. 너의 행동은 조선의 모든 여성들과 청년들을 위하여 역사에 영광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게 될 것이다.열렬한 인사를 보내면서.
(72)남한언론사 사장단 초청:
김정일 집권 때/2000년 8월/고려호텔/6박7일/동아 조선 연합뉴스, 전북일보 불참 선언/46명이 참가
**2000년6월 남북정상회담 후 6ㆍ15 공동성명 선언 발표
**2000년 12월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108)자국민 구줄 노력:
북한에 강제 억류된 국민들에 대해 캐나다, 미국, 일본 등의 자국민 구출 노력은 거의 필사적이었다.
남북간의 교환조건의 기회가 늘 있었는데도 우리 정부는 그들에 대해 국가차원의 구출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다.
(115)평양의 상징 김일성광장:
광화문광장의 4배/10만 명 이상 인원 수용/중앙엔 김일성ㆍ김정일 두 초상화 전시
(123)평양민속공원:
2009~2012 동안 수억을 들여 김정일--김정은이 공들여 가꾼 민족문화유산/민속촌박물관/60만평/반만 년 민족사와 당대 풍습 문화를 보여주는 유물과 사료들이 전시됨/외부관광객과 신혼부부들의 필수 코스/갑작스런 폐쇄조치/이유는. 김정은 고모부 장성택이 이 민속 공원을 조성한 장본인이었기 때문
(126)법 위에 군림하는10대 원칙:
북한주민의 암기 의무/조항 전부가 김일성 父子의 장기집권을 위한 내용/예(1조)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사상으로 온 사회를 일색화하기 위해 몸 바쳐 투쟁하여야 한다./외국도서가 가정집에 있으면 유일사상체계를 흔드는 범죄행위로 간주되어 정치범으로 낙인 찍혀 수용소로 끌려간다.
(131)소련 군정(스티코브 중장/정치군인)은 김일성을 앞세워 강압적인 정치세력을 펴나갔고, 서울에서는 송진우,여운형, 장덕수,김구 등 당대 국내 지도자로 손꼽히던 제1정객들이 잇달아 암살당하는 대 혼란기 속에서 마침내 1948년 8월 이승만 단독정부가 세워졌다.
**신익희:1956년 5월, 제3대 대통령 후보 유세기간 중 사망
(147)이념은 피보다 강하다?
남북 한 가족, 한 핏줄의 친형제 중 장남 손원일 장관(1909~1980/초대해군참모총장/5대국방부장관/국립묘지를 세움/초대 서독대사)은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동생 손원태 박사(1914~2004/김일성주석과 의형제처럼 지냄/미국거주 병리학박사)는 평양 애국열사릉에 안치된 것이다. 우리 민족 현대사의 갈라진특이한 자화상이요, 슬픈 단면이 아닐 수 없다.
(155~167)태권도 역사를 쓴 최홍희:
최홍희는 이승만정부 때인 1955년 <대한태권도협회>를 창설, 1958년에는 첫 국제기구인 <국제태권도연맹>을 8개국이 서울 조선호텔에 모여 출범시켰다.그리고 1960년대부터 '태권도시범단'을 결성해 해외순방에 나섰다.
박정희 군선배 장성으로 초대 말레이시아 대사를 지내기도 했으나 박대통령과의 갈등으로 캐나다로 망명/북한에 태권도를 보급한 것은 1980년 9월이었다./태권도가 인생의 전부인 그는 북한 고위 당국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태권도 스포츠맨일뿐이니 절대 나를 정치에 결부시키지 말아 달라"
태권도시범단을 이끌고 북한에 입국(1980년)했을 때도 북한 고위층에게,
"여기 온 사범들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니, 사상 전횐을 시키려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김대중대통령조차 최홍희 총재의 남한방문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는 '빨갱이'소리를 들으며 북한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사망했다.)
(188)적대세력 고무찬양죄:
평양인구는 서울인구의 절반도 안 된다.서울지하철이 평양보다 늦은(1974.8)사실은 대한민국 자존심의 문제였다.일부 남한 주민이라도 서울 지하철 개통이 북한(1973.9)보다 늦었다는 사실을 알고 발설하는 경우,국가보안법에 저촉됐다.
적대 세력에 대한 '고무찬양'죄목에 속했다.1980년대 초까지 남한은 그런 식이었다
2부 남한은 북한을 너무 몰라요
(199)이산가족의 아버지, 빨갱이 왕초 전충림:
토론토 뉴코리아타임스(친북성향) 발행인/함남 함흥이 고향/부친이 목사/1950년대 조선일보 총무국장 역임/1970년대 토론토에서 북한의 해외 이산가족 찾기 운동의 선구자/1980년대에 이르러 1000 명이 넘는 이산가족이 상봉함/
1979~1991사이 해외 거주 이산가족 4000여 명을 찾아줌
전충림은 북한의 이산가족의 아버지였다.누가 그에게 빨갱이라고 돌을 던질것인가!
(208)북한의 핵개발:
1950년대부터 김일성 주석은 핵개발에 모든 국력을 쏟아부었고, 북핵이 완성된 것은 김정일 시기인 2006년경으로 추정된다. 남한에 김대중-노무현의 진보정권이 들어서고 난 후 일이다.
(230)지난 1988년 노태우정부의 7ㆍ7선언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위대한 치적이다. 해외동포들에게는 법적으로 정식 방북을 처음 허용받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엄청난 수의 해외동포들이 방북 물결에 휩쓸려 꿈에 그리던 가족을 만났다.
(245)김일성 측근 채노인 이야기:
김일성이 묘향산에서 심장마비로 急死한 후 김정일은 대책회의를 했다.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는 중에 채노인도 한마디 했다.
"이제부터는 새로운 각오로 일하기 위해 고급간부들은 특히 술과 여자를 멀리하자"고 말했다 한다.
다음 날 저녁 어느 손님이 현관에서 기다린다고 해 나갔더니 그를 차에 태워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감옥소였다.알고 보니 '수령모독죄'로 체포된 것이다.허구한 날 술과 여자로 이골이 난 김정일 위원장을 겨누어 야유했다는 죄목이었다.
그로써 김일성 측근이라는 과거의 황금전성기는 하루아침에 끝이 났다.
6개월 감옥살이 뒤에는, 그는 가족들 7명과 함께 함경도 통제구역으로 추방됐다.'천을'이라는 곳이다. 천을은 하늘 아래 첫마을이라는 고지대였다. 마을은 80가구 300여 명으로 각종 죄를 지은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국가에선 집도 주지 않았다.맨땅에 허술하게 오막살이를 짓고 살았다.그의 고생길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248)김정일의 여자 성혜림:
성혜림은 영화배우다/경남 창녕 만석꾼 집안 출생/1950년 집안 전체가 월북
(257)탈북자의 대부 이주헌 선교사:
'탈북자의 아버지'라고도 일컬어진다./미국 국적을 가진 의료 선교사 부부/이주헌은 심장의, 부인은 간호사/하바롭스크에서 활동하다 집으로 성경을 배우러 다니던 가짜벌목공이자 위장탈북자에게 살해됨(1993)
후에 송기자에 의해 발견된 '러시아땅에 떨어진 두 밀 알'자료집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시, 2014년 그들 부부에게 <대한민국 인권상>을 받게 했다.
(274)모스크바 특파원 송기자의 업적:
모스크바에 개설된 유엔난민기구(1994년 봄)를 통해 탈북자들을 대한민국으로 입국시켰다./현재까지 3만여 명이 입국했다.
(295)황장엽:
1960년대 김일성종합대학총장/1970년대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10년 이상 지냄/북한노동당 비서요, 주체사상 창시자/1997년 2월 대한민국으로 망명/망명을 도운 이가 켈로부대(반공청년 게릴라 부대)부대장 이연길이다/이연길이 베이징에서 대북 무역사업을 할 때 김덕홍이라는 북한의 사업가를 알게 되고, 그때 황장엽의 심복이었던 김덕홍이 황장엽을 소개했다/
(301)황장엽 비서는 자신이 확립한 주체사상을 김정일이 독재 권력에 악용해 북한주민들이 비참하게 굶는 사실에 극심한 심적 갈등을 겪고 있었다고 한다. 이연길은 '그러할 즈음 황장엽은 나를 만나 비로소 망명의 꿈과 희망을 품게 됐다'고 강조했다./북에서는 황이 모스크바 세미나에서 주체사상 강연한 내용을 문제삼이 황이 위기에 빠지자 이연길이 나서서 베이징 탈출을 성공적으로 도왔다/황은 귀순후 결혼(?)해서 아이까지 얻었다.
(305-307)간첩혐의자 김련희:
1969년생/조선족 브로커의 꾐에 넘어가 2011년 9월 남한에 입국했다/그녀는 자나 깨나 가족이 있는 평양으로 돌아가기를 소망했다.상황이 절망적이라 생각되어 자살시도까지 했다./한국이 싫고 북한이 좋아서가 아니다. 혈육이 살고 있는 평양가족과 떨어지지 않겠다는게 오직 한가지 이유였다./그녀는 밀항을 꿈꾸고 위조여권을 알아보고 자진간첩(셀프간첩)신고까지했다. 대한민국 정보기관은 간첩 관련해 기본적인 판별력도 없나.어쨌든 김련희는 간첩으로 판정나 감옥생활을 했다./그녀는, 남쪽에서 억만금을 준다 해도. 내 가족에게 달려갈 것이예요.
(312)송기자와 김련희의 인터뷰 내용:
--한국에 온 지 10년이 지났는데 평양생활과 차이점은 어때요?
"한국은 막살기는 좋은 것 같아요.생의 가치나 무게라 할까 그런 걸 생각하지 않고 그냥 살아요. 저는 정치를 모르고 관심도 없지만 평양생활은 사는 느낌이 단단해요. 북주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주권을 지키는 거예요. 자주권은 인생의 가치관이라고 볼 수 있지요.한국은 다른 것 같아요. 북에서는 남쪽을 같은 동포로 영리한 민족이라고 평을 하지요. 그런데 한국은 북이 잘하는 점이 있어도 절대 인정 안해요. 마치 악마처럼 생각해요"
(330)캐나다 주병돈 박사:
2010년 10월 평양과학기술대학이 창설되자 캐나다 주병돈 박사는 평양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10년간 자원봉사교수로 일한다. 평양과기대는 모든 교재와 시험을 영어로 하며 군면제 조건까지 갖추어 북한의 명문대학으로 부상한다
(331)주박사는 서방의 자본주의와 북한 주체사상의 간극을 좁혀 이념차를 해소시키는 것이 교육목표였다.
붙임글
--나의 캐나다 이민생활 40년과 언론취재 회고
*1975년 12월 캐나다 이민
*1981년 봄 캐나다 일간 한국일보에 기자 겸 광고 및 사업국장으로 취직, 무리한 욕심으로 빚을 지고 기자생활 접음
*브리태니커 서적 판매로 캐나다 전국 천여 명 세일즈 맨 중 1위를 차지하여 큰 돈을 벌음
*1992년 모스크바 초대특파원 발령
*1999년 2월 강원도민일보 북미특파원 발령
*1994년4월 시베리아 탈북 벌목공 2명을 <유엔난민기구>에 등록, 남한으로 오게끔 도와줌으로써 정식 창구를 통해 자유대한 품에 안긴 탈북자 첫 사례를 남겼다.
이 공로로 인해 송기자는 2013년세계 인권의 날에 <대한민국 인권상>을 수상했다.
*해방 후 북한 군정 책임자였던 소련군 사령관 레베데프:
3년간 평양에서 근무할 당시 기록해 두었던 육필 비망록 4권(1945~1948)을 그의 둘째아들에게서 전해 받고 이를 신문에 연재했다. 송기자는 이 특종발굴 보도로 <한국신문상>을 수상했다.
(367)관동군 조선인 포로 명단 확보:
러시아 국립군사문서보관소에서 조선인 관동군 포로 6334명의 명단을 확보, 8ㆍ15 광복절에 지방 5개신문사 1면 톱기사로 대서특필함/이 공로로 <관훈클럽국제보도상>을 수상함
(371)평생수집 역사자료 4200여점 양구<근현대사박물관>에 기증:
'책 ·영화 ·강연 이야기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1日1食> 나구모 요시노리 지음 (2) | 2024.07.04 |
---|---|
<탈무드> 유머편 (0) | 2024.07.01 |
<수술 권하는 정형외과의 비밀> 황윤권 (0) | 2024.06.19 |
<생의 수레바퀴>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0) | 2024.06.09 |
<나는 100살,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요> 엠마뉘엘 수녀 (2) | 2024.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