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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각사(金閣寺)>1장~5장 미시마 유키오

맑은 바람 2024. 9. 2. 08:36



미시마 유키오 지음/허호 옮김/웅진지식하우스/407쪽/초판1쇄1995.3/삼판14쇄 2024.5/읽은때 2024.9.1~9.5

(30년 가까이 스테디 셀러로 자리잡고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있는 책을 이번에 평생학습관 인문학 교실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니 기쁘다.  세익스피어의 말대로 '죽을 때까지 공부하라'는 말씀이 참으로 맞는 말이다.)

**탐미주의 문학의 거장인 미시마 유키오의 대표작이자 고백소설로 아름답고 섬세한 문장으로 그려냈다--譯者해설 중에서

미시마 유키오(1925~1970)향년45세/미시마 유키오는 필명/본명은 히라오카 기미타케/학습원 고등과를 수석으로 졸업, 천황에게서 은시계를 하사받음/도쿄제국 대학 법학부 졸업/13세에 처녀작 <산모>를 발표/23년의 집필기간 동안 180편의 소설, 60편의 희곡, 그리고 방대한 분량의 수필과 평론을 써서 '*쇼와의 귀재'로 불렸다./31세(1956)에 발표한  <금각사>로 일본 문단의 정점에 올랐다. 금각사는 일본 근현대문학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요미우리 문학상 수상./33세에 결혼/45세에 할복자살
*쇼와昭和--1926-1980간의 일본연호

역자 허호:(1954~  )수원대 외국어학부 교수/미시마 유키오에 대한 많은 저서가 있다.


제 1장
(9)5월의 저녁 무렵이면 학교에서돌아와 숙부집 2층에 있는 공부방에서 건너편의 산을 바라보곤 했다.신록으로 덮인 산중턱이 석양을받아서 벌판 한복판에 금병풍을 세워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것을 볼 때마다 나는 금각을 상상했다.
사진이나 교과서에서 현실의 금각을 이따금 접하기는 했지만 마음 속에서는 아버지가 들려준 금각의환상이 훨씬 멋진 것처럼 여겨졌다. 아버지는 결코 현실의 금각이 금빛으로 빛나고 있다는 식으로는말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금각처럼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없었고 또한 금각이라는 글자 그 음운으로부터 내 마음이 그려낸 금각은 터무니없이 멋진 것이었다.
(11)말더듬이 소년의 권력 의지:
나는 역사 중에서 폭군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했다.내가 말더듬이에다가 과묵한 폭군이라면 신하들은 내 안색을 살피며 항상 주눅이 들어 지내게 되리라.---이런 식으로 평소에 나를 업신여기는교사나 학우들을 모조리 처형시키는 공상과 더불어 내부 세계의 제왕이자 조용한체념에 잠긴 위대한 예술가가 되는 공상도 즐겼다.외모는 보잘것없었지만 나의 내부 세계는 누구보다도 이토록 풍요로웠다.무언가 씻어없앨 수 없는 열등감을 지닌 소년이 자신을 은근히 선택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이 세상 어디엔가 아직 내 자신도 모르는 사명이 기다리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금각사 방화의 원대한 복선이 여기 깔린 것 같다)
(14)비웃음이란 얼마나 눈부신 것인가! 나에게는 같은 반 소년들의 소년 시절 특유의 잔혹한 웃음이, 눈부시게 빛나는 무성한 나뭇잎처럼 찬란하게 보였다.
(16)나는 예술가가 되기에는 너무도 오만했다.폭군이나 위대한 예술가가 되겠다는 꿈은 꿈일뿐 실제로착수하여 무엇인가를 해내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남에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점이 유일한 긍지였기 때문에 무엇인가 남들을 이해시키겠다는 표현의 충동을 느끼지 못했다.남의 눈에 띄는것들이 나에게는숙명적으로 부여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고독은 자꾸만 살쪄갔다.마치 돼지처럼.
(26-27)우이코와 탈영병과 금강원:해군병원에 간호사로 일하던 우이코는 어느 해군을 사랑하여 도망나온 해병은 우이코의 발설로 체포직전에 우이코를 사살하고 자신도총으로 자살한다.
(32-34)밤하늘의 달처럼 금각은 암흑시대의 상징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그렇기에 내가 꿈꾸는 금각은 그 주위에 몰려드는 어둠을 배경으로 할 필요가 있었다.어둠 속에서 아름답고 가냘픈 기둥의 구조가 안으로부터 희미한 빛을 발하며 고요히 앉아 있었다.사람들이 이 건축에게 어떠한 말을 건네더라도 아름다운 금각은 잠자코 섬세한구조를 드러내보이며 주위의 어둠을 참고 건뎌야 한다.
*지붕 꼭대기의 봉황:


다른 새들이 공간을 난다면 이 금으로 만든 봉황은 번쩍이는 날개를펴고 영원히 시간 속을 나는 것이다.--날아가기 위해 봉황은 단지 부동의 자세로 눈을 부라린 채 날개를 높이 들고 꽁지깃을 휘날리며 당당한 금빛의 양다리를 힘차게 버티면 된다.이렇게 생각하니 나에게는 금각 그 자체도 시간의 바다를건너온 아름다운 배처럼 여겨졌다.--이 복잡한 3층의 지붕 달린 배가 마주한 연못은 바다의 상징 같았다.금각은 수많은 밤을 노저어 왔다.어제 끝날지도 모르는 항해.그리고 낮 동안 이 신비스러운 배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닻을내린 채 뭇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밤이 오면 주위의 어둠으로부터 힘을 얻어 지붕을 돛처럼 부풀려 출범하는 것이다.
내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직면한 문제는 美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시골의 소박한 승려였던 아버지는 어휘도 부족하기에 단지 "금각처럼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없다"라고만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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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각은 손안에 잡히는 작고 정교한세공물 같을 때도 있었고 하늘 높이 끝없이 솟은 거대한 괴물과 흡사한 건물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美라는 것은 작지도 크지도 않고, 적당한 것이라는 생각이 소년인 나에게는 없었다. 그렇기에 여름철의 꽃들이 아침 이슬에 젖어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는 듯이 보일 때,금각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했다.구름이 산 저편을 가로막고 천둥을 머금은 채 암담한 테두리만을 금빛으로 번쩍일 때에도 그 웅대한 광경을 보며 금각을 연상했다.심지어는 아름다운 사람의 얼굴을 보아도 마음 속으로 '금각처럼 아름답다'라고 형용하기에 이르렀다.
(38)아버지와 금각사 방문:
그토록 꿈에 그리던 금각은 너무도싱겁게 내 앞에 전모를 드러내었다.---그것은 낡고 거무튀튀하며 초라한 3층 건물에 지나지 않았다.꼭대기의 봉황도 까마귀가 앉아 있는것처럼 보일 뿐이었다.아름답기는커녕 부조화하고 불안정한 느낌마저 들었다. 미라는 것은 이토록 아름답지 않은 것일까,하고 나는 생각했다.
(아주 오래 전, 40년도 더 전에 초등학생인 아들들을 데리고 현진건의 <무영탑>에 나오는 '影池'를 찾아간 적이 있다. 내 상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텅빈 벌판에 초라한 연못이 하나 '나 影池요'하듯 버티고있었다.
늘 퉁을 잘 떠는 작은애가 낮은 소리로 "이게 뭐야~!"라며 말을 뱉는다. 이미 실망해서 무안하던 참에아들의 한 소리는 나의 화를 돋구었다. 나는 후회할 짓을 아들한테한 것이다.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제 2장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아버지의 뜻대로 금각사의 중이 되었다.
(57)쓰루가와:금각사의 徒弟로 들어온 또래의 소년/유복한 집안/말이 빠르고 쾌활함/
(70)전쟁이란 우리 소년들에게 단지 꿈처럼 실속없이 바쁜 체험이자인생의 의미로부터 차단된 격리병실 같은 것이었다.

제 3장
(80)아버지의 기일:
보고 싶지 않은 엄마가 아버지의 기일에 절에 온다/용서가 되지 않는 엄마/엄마의 불륜을 목격해서
(85)친구 쓰루가와:
쓰루가와는 정말로 선의의 통역자,내 말을 현세의 말로 번역해 주는둘도 없는 친구였다.그렇다.때로는 쓰루가와가 납에서 황금을 만들어내는 연금술사처럼 여겨졌다.나는 사진의 음화, 그는 양화였다.한번 그의 마음으로 여과되면 나의 혼탁하고 어두운 감정이 하나도 남김없이 투명한 빛을 발하는 감정으로 변하는 것을 몇 번이나 놀라움으로 바라보았던가! 내가 말을 더듬으며 주저하고 있는 사이에 쓰루가와의 손이 내 감정을 뒤집어서 외부로 전해 준다. 이러한 놀라움에서 내가 배운 것은, 단지 감정에머물러 있는 한에는 이 세상의 최악의 감정도 최선의 감정도 차이가없다는 것, 그효과는 마찬가지라는것, 살의도 자비도 겉보기에는 다를바 없다는 것 등이었다.입이 닳도록 설명해도 쓰루가와는 이러한 사실들을 믿을 수 없겠지만, 나에게는엄청난 발견이었다.쓰루가와 덕분에 위선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고는 하지만, 위선이 나에게는 상대적인 죄에 불과했다는 점도 이유가 됐다.
(93-94)패전의 충격, 민족적 비애 따위에 금각은 초연했다.혹은 초연을 가장하고 있었다.어제까지의 금각은 이렇지 않았다.결국 공습으로불타지 않았다는 사실, 오늘 이후로는 이미 그럴 걱정이 없다는 사실, 이러한 사실들이 금각으로 하여금다시 '옛날부터 나는 여기에 있었고 미래에도 영원히 여기에 있으리라' 하는 표정을 되찾게 했음에 틀림없다.
---더욱 기묘한 것은, 금각이 이따금보여주는 미 가운데서도 그것이 이날만큼 아름답게 보인 적은 없었다는 점이다.
---'금각과 나와의 관계는 끊겼구나'하고 나는 생각했다.이것으로 나와 금각이 같은 세계에 살고 있다는 몽상은 깨졌다.다시 원래의,원래보다 훨씬 절망적인 사태가 시작되리라.美가 저쪽에 있고 내가 이쪽에 있는 사태,이 세상이 계속되는한 변함없을 사태---
패전은 나에게 이러한 절망의 체험그 자체였다.

제 4장
금각사 주지의 배려로 나는 오타니 대학에 입학한다.
(134)동급생 가시와기:심한 안짱다리의 소유자/외톨이/그의 창백한 얼굴에는 일종의 험악한 아름다움이 있었다./그는 주장하고 있는그림자, 아니,존재하고 있는그림자 그 자체였다.햇빛은 그의 단단한 피부에 스며들지 못함에 틀림없었다./禪寺의 아들
(146)안짱다리의 고백:
불안이 전혀 없고 발붙일 곳이 전혀 없는, 그러한 상황에서 나의 독창적인 삶이 시작됐지.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이러한 점에 사람들은 불안을 느끼고 자살하기도 하지.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야.안짱다리가 내 삶의 조건이고 이유이며 목적이자 이상이고---삶 그 자체이니까.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충분하니까.원래 존재의 불안이란 자신이 충분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치스러운 불만에서 생겨나는 게 아닐까?
(자존감으로 꽉찬 안짱다리가 멋있다!)

 

제 5장
(172)가시와기의 생각:우아함, 문화,인간이 생각하는 미적인 것, 그러한 모든 것들의 실상은 삭막하고무기적인 거야. 龍安寺는 아니지만, 돌멩이에 불과하지.철학,이것도돌멩이, 예술,이것도 돌멩이야. 그리고 인간의 유기적인 관심이래야,한심하게도 정치뿐이지. 인간은 모름지기 자기모독적인 생물이니까.
(유럽의 어느 수도원학교에서 순 말썽쟁이 아이를 보고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대.
"넌 녀석아.이담에 정치가나 되라" 얼마 전TV에서 조지아 다큐영화를 봤는데, 선거공약으로 무료로 어르신들의 틀니를 만들어준다하고 이만 빼 놓고는 선거에 낙방하니까 흐지부지하고 만다.
그들은 말한다. 어차피 이쪽도 저쪽도 국민복지하고는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들이야~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정치가를 한심하게 생각하나 보다.
밥을 달래나 떡을 달래나, 왜 요새는 양쪽 다 밉지? TV 켜놓고 밥먹다가 정치가들 얼굴이 나오면 밥맛이 떨어지니--)
(173)말의 힘:
"아름다운 경치는 지옥이로군."하고 또 가시와기가 말했다.아무래도가시와기의 이런 말투는 억측처럼 느껴졌다.하지만 나도 역시 그를 따라서 그 경치를 지옥처럼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이 노럭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신록에 싸인 조용하고평범한 듯한 눈앞의 풍경에도 지옥의 흔적이 있었다.지옥은 낮에도 밤에도 언제 어느 곳이건 마음 내키는 대로 나타나는 모양이었다. 우리들이 부르면 들리는 장소 바로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185-187)쓰루가와의 죽음: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고 집으로 가다 교통사고를 당해 죽음./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에서도 흘리지않았던 눈물을  흘렸다. 쓰루가와의 죽음은 아버지의 죽음보다도 훨씬 나의 중대한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를 잃고 나서 지금 새삼스레 느끼는 것은, 나와 밝은 대낮의 세계를 잇는 한 가닥의 실이 그의 죽음으로 인해 끊어지고 말았다는 점이다. 나는 잃어버린 낮, 잃어버린 빛,잃어버린 여름 때문에 울었다./그에게는 요절의 징후라곤 조금도 없었고 불안이나 憂愁와는 태어날 때부터 무관했으며, 죽음과 유사한 요소를 조금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그의 돌연한 죽음은 그야말로그러한 요소들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순수한 혈통의 동물은 생명력이 약한 것처럼, 쓰루가와는 삶의 순수한 성분만으로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막을 방도가 없었는지도 모른다.그렇다면 나에게는 그것과 반대로 저주받을 장수가 약속되어 있는 듯이 여겨졌다.
(193)숙직하던 날:예사롭지 않은 9월 태풍이 불었다./바람은 그대로劫風처럼 무한히 거세져 나와 금각을 한꺼번에 붕괴시킬 징후처럼 여겨졌다.내마음은 금각 속에도 있고 동시에 바람 속에도 있었다.내세계의 구조를 규정하고 있는 금각은 바람에 흔들리는 장막도 없이 마음껏 달빛을 받고 있었으나,바람,나의 흉악한 의지는 언젠가는 금각을 뒤흔들어 잠에서 깨어나게 하여 붕괴의 순간에 금각의 오만한 존재 의미를 빼앗아 갈 것임에 틀림없었다.(도처에 깔린 伏線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