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영화 ·강연 이야기/책

<금각사金閣寺> 6장~10장 미시마 유키오

맑은 바람 2024. 9. 5. 11:10

제 6장
가시와기와 나는 달밤에 금각에 앉아 퉁소를 불었다.
(202-203)어떻게 하면 그 소리, 가시와기가 불어댄 것과 같은 영묘한 소리에 도달할 수 있을까?  말할 필요도 없이 숙련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며, 미는 숙련이기에 가시와기가 그 흉한 안짱다리에도 불구하고 맑고 아름다운 음색에 도달했듯이 나도 단지 숙련에 의해 그것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용기를 주었다. 그러나 또 다른 인식도 나에게 생겨났다. 가시와기가 연주한 '어소차'의 선율이 그토록 아름답게 들린 것은 은은한 달밤의 배경만이 아니라, 그의 흉한 안짱다리 덕분이 아닐까?
가시와기를 깊이 알게 되면서 느낀사실이지만, 그는 오랫동안 지속되는 미를 싫어했다. 곧바로 사라지는 음악이라든지 수일 후에 시드는 꽃꽂이라든지, 그의 취향은 그러한 것들에 한정되어 건축이나 문학을 싫어했다. 그가 금각에 온 것도 달이비치는 동안의 금각을 찾아서 온 것임에 틀림없었다.
---
음악만큼 생명과 유사한 것은 없었고, 똑같은 미라 하더라도 금각만큼 생명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생을 모욕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이는 없었다.
가시와기가 어소차의 연주를 끝낸 순간, 음악, 이 가공의 생명은 죽고, 그의 흉한 육체와 암울한 인식은 조금도 상처받지 않은 채로 다시금 그곳에 남아 있었다.
(224)사람이 살지 않는 이 건축물은 잠을 잊을 수가 있었다.그곳에 살고 있는 어둠은 인간적인 법칙이 완전히 면제되어 있었던 것이다. 마치 저주하듯이 나는 금각을 향해 난생 처음으로 거칠게 외쳤다.
"언젠가 반드시 너를 지배할 테다. 두 번 다시 방해하지 못하도록 언젠가는 반드시 너를 내것으로 만들 테다!"
목소리는 황량하게 심야의 경호지에 메아리쳤다.

제 7장
(226)내 체험에는 누적이라는 것이 없었다.누적되어 지층을 이루고 산의 모양을 형성하는 따위의 두께가 없었다.금각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사물에도 친근감을 느끼지 못한 나는 자신의 체험에 대해서도 각별한 친근감을 품지 못했다.단지 그러한 체험 중에서 어두운 시간의 바다에 휩쓸려 버리지 않는부분, 무의미하고 끝없는 반복으로 함몰되지 않는 부분, 그러한 작은 부분의 연속에 의해 이뤄지는 하나의 꺼림칙하고 불길한 그림이 점차로 그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28)음악은 꿈과 비슷하다. 또한 동시에, 꿈과는 반대로 한층 확실한 각성 상태와도 비슷하다.음악은 그 어느 쪽일까, 하고 생각했다.하여간에 음악은, 이 상반되는 두 가지를 때로는 역전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따금 나는 내가 연주하는 '어소차'의 가락으로 쉽사리 化身했다.내 정신은 음악으로 화신을 하는 재미를 알았다.가시와기와는 달리 음악은 나에게 확실한 위안이었다.
---퉁소를 불고 나서 항상 생각하지만,금각은 어째서 이러한 내 화신을 책망하거나 방해하지 않고 묵인해 주는 것일까? 반면에 인생의 행복이나 쾌락으로 내가 화신하려고 하면 금각은 단 한 번이라도 묵인해 준 적이 있는가? 곧바로 내 화신을 가로막고 나를 내 자신으로 돌아가게끔 만드는 것이 금각의 수법이 아니었는가? 어째서 음악에 한해 금각은 나의 도취와 忘我를 허락하는 것일까?
주말에 길에서 우연히 창녀와 동행하는 老師를 보았다. 노사는 내가 악의적으로 미행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 일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자 나는 그 창녀의 사진을 구해다가 노사의 방에 넣는다. 어느 날 그 사진은 나의 방으로 돌아왔다.나는 그 사진을 조각내어 연못에 던진다.
그해 11월 나는 *出奔했다.
*출분-도망하여 행방을 감춤
(250)출분의 동기:
"너를 장차 후계자로 삼으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그러한 뜻이 없음을 일러둔다"
'나'는 학업을 소홀히 하고 3학년 때 그 무력감이 극에 달했다.
(262)가슴이 크게 뛰었다.출발해야 한다.이 말은 거의 날개치고 있다고 해도 좋았다.내 주변으로부터, 나를 속박하고 있는 미의 관념으로부터, 내 *감가不遇로부터, 나의 말더듬 증세로부터, 나의 존재 조건으로부터, 하여간에 출발해야 한다.
(269)마이즈루 만을 향하여:
마이즈루 만, 이 이름은 예전과 다름없이 내 마음을 들뜨게 했다.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른다.그러나 시라쿠 마을에서 보낸 소년 시절부터 그것은 보이지 않는 바다의 총칭이며, 결국에는 바다의 예감 그 자체의 이름이 되었다.
(270-277)여행 중에 일어난 잔학한 마음:
모든 것이 바뀌어 있었다. 그곳은 영어로 쓰인 교통표시가 위압하듯이 이곳저곳 길목에 튀어나와 있는 외국의 항구도시처럼 변해 있었다. 수많은 미군 병사들이 왕래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분명히 평화가 있었지만 너무도 잘 되어있는 위생관리가 예전의 군항으로서의 어수선한 육체적인 활력을 빼앗아 거리 전체를 병원같은 느낌으로 바꿔놓았다.
그래서 나는 유라로 가기로 했다.여름에는 해수욕으로 붐비는 해변도 이 계절에는 한적해져서, 단지 육지와 바다가 어두운 힘으로 대결하고있음에 틀림없었다.
---
유라에 무엇이 있는가? 무슨 증거를 얻기 위해서 나는 이렇게 열심히 걷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발길을 주저하지 않았다.어딘가에, 어디든지 도달하고자 했다.내가 가려는 장소의 지명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무엇이건 간에 도달한 것에 직면할 용기, 거의 부도덕에 가까운 용기가 솟았다.
---
화강암질의 모래를 밟으며 물가로 향해 걷는 동안 나는 아까 가슴에 떠올랐던 하나의 의미를 향해 확실히 한 걸음 한 걸음 접근해 간다는기쁨에 다시 휩싸였다.
그것은 그야말로 우라니혼의 바다였다! 나의 모든 불행과 어두운 사상의 원천, 나의 모든 추악함과 힘의 원천이었다.
지금 나는 파도와 거센 북풍을 향하고 있었다.
돌연히 나에게 떠오른 상념이 가시와기의 말처럼 잔학한 상념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여간에 이 상념은 느닷없이 나의 몸 속에서 생겨나,아까부터 떠오르던 의미를 계시하며 환하게 나의 내부를 비추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전혀 느껴보지도 못했던 이 생각은, 생겨남과 동시에 강력하고 거대해졌다. 오히려 내가 그것에 감싸였다.그 상념이란 이런것이었다.
'금각을 불태워야 한다'
(뭔가 억지스러워~~뜬금없이.)

제 8장
(291-292)이 반 년 동안 내 눈은 하나의 미래를 직시하며 움직이지 않았다. 그동안의 나는, 아마도 행복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우선 절간의 생활이 편안해진 것이다.금각이 언젠가는 불타리라고 생각하니, 견딜 수 없었던 일들도 견디기 쉬워졌다.죽음을 예감한 사람처럼 절간사람들에 대한 내 감정은 좋아지고, 대응하는 태도도 밝아지고, 무슨 일이건 화해하려고 들었다.심지어 자연과도 화해했다.겨울동안 아침마다 우메모도키(감탕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의 가지에 남아있는 열매를 쪼아먹으려고 오는 새들의 가슴털에도 친근감을 느꼈다.
나는 노사에 대한 증오심조차 잊었다.! 어머니에게서도 친구들에게서도,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어떠한 것이든 종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용서할 수 있게 된다.그 종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눈을 내것으로 만들고 또한 그 종말을 부여하는 결단이 내 손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 자유의 근거였다.

제 9장
나는 그녀가 나와 만났다는 운명에 무엇인가 예감해 줄 것을 기대했다.세계의 몰락에 가담하고 있다는 의식에 조금이라도 접근해 줄 것을 기대했다.그것은 그녀에게도 무관한 일은 아니리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초조감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나는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1개월---그래, 1개월 내에, 신문에 내 기사가 크게 날 거야, 그러면 기억해 달라구."
말이 끝나자, 나는 몹시 가슴이 뛰었다.그러나 *마리코는 웃음을 터뜨렸다.
*마리코--유곽의 여자
(342)방화를 결행함에 있어서, 노사에 의한 추방 따위는 기대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은 이때였다. 노사와 나는 이미 서로 영향을 미질 수 없는 다른 세계의 주민이 되었다. 나에게는 장애물이 없었다.더 이상 외부의 힘을 기대하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자신이 생각한 시기에 결행하면 됐다.
----
6월 25일, 한국에 동란이 발발했다.세계가 확실히 몰락하고 파멸하리라는 내 예감은 사실이 되었다.서둘러야 한다.

제 10장
(346)절에 돌아오면서 나는 오늘밤에 산 물건들을 생각했다.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물건들이다.
나는 만일의 자살에 대비해 칼과 약을 샀으나, 새 가정을 꾸린 사내가 무언가 생활의 설계를 세우고 사는 물건들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그것들은 내 마음을 즐겁게 했다.
(349)그날이 왔다. 쇼와 25년(1950) 7월 1일이다.화재경보기는 오늘도 고쳐질 가망이 없었다. 그것은 오후 6시에 확실해졌다.안내하는 노인이 다시 한 번 독촉하는 전화를 걸었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바빠서 갈 수 없으니까, 내일은 반드시 가겠다고 수리공이 대답한것이다.
(370-371)몸이 마비된 듯하면서도 마음은 어딘가에서 기억 속을 더듬고 있었다.무슨 말인가가 떠오르다가 사라졌다.---그 말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아마도 나를 고무하기 위해 나에게 접근하려는 것이리라.
"안으로 향해 밖으로 향해 마주치면 즉각 죽여라."
---그 최초의 한마디는 그런 것이었다.<*임제록>'示衆'의 유명한 구절이다.말은 잇달아 거침없이 나왔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상을 만나면 조상을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족을 만나면 친족을 죽여서 비로소 해탈을 얻노라.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透脫自在해지리라."
그 말은 내가 빠져 있던 무력감으로부터 나를 끌어냈다.갑자기 전신에 힘이 넘쳤다.여전히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 부질없는 짓이라고 집요하게 알리고 있었으나, 내 힘은 헛수고를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부질없는 짓이기에 오히려 나는 해야만 했다.

*임제록:당나라의 선승 임제의현의 가르침을 그가 죽은 후 제자 삼성혜연이편집한 것으로서, 현존하는 것은 의현이 죽은 후 254년이 지난 1120년에 원각종연이 중각한 것이다.
(금각에 불을 놓고 3층 '금박입힌 작은 방'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아 포기하고 산 정상을 향해 내달렸다. 히다리다이몬 산의 정상까지.)
(375)정신을 차리니, 몸이 온통 물집과 찰과상으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손가락에도, 아까문을 두드릴때의 상처인 듯 피가 배어 있었다.나는 도망쳐 나온 짐승처럼 그 상처를 핥았다.
(376)마지막 장면:
호주머니를 뒤지니 단도와 수건에 싸인 칼모틴(수면제) 병이 나왔다.그것을 계곡 사이를 향해 던져버렸다.
다른 호주머니의 담배가 손에 닿았다. 나는 담배를 피웠다. 일을 하나 끝내고 담배를 한 모금 피우는 사람이 흔히 그렇게 생각하듯이, 살아야지,하고 나는 생각했다.

--작품 해설--
[불후의 명작 <금각사>의 테마는 무엇인가]
(아버지의 부탁으로 도제로 들어온 하야시는 금각사를 불태우고(1950년7월2일 새벽) 수면제를 복용하고 칼로 자해하나 살아난다.
불려온 어머니는 경찰에서 하야시에 대한 정보를 주고 귀가 도중 기차에서 뛰어내려 죽는다. 그런데 왜 하야시는 어머니를 싫어했을까?)
(390)범인이 말한 방화 및 자살 동기:자기혐오,미에 대한 질투, 아름다운 금각과 함께 죽고 싶었던 점, 사회에 대한 반감, 방화에 대한 사회의 비판을 듣고 싶다는 호기심
(403)금각사는 문장력이 탁월한 작품이기에 그 맛을 살리기 위해 우리말 번역 시 가능한 한 의역보다는 직역을 고집했음을 밝힌다.

(고전인문학교실 지정 도서 3권을 읽었다.<루시> <필경사 바틀비> 그리고<금각사>-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루시,바틀비,미조구치는 울분을 품고 있는 주인공들이다.
사회적 약자로 취급받는~그래서 독자는 그들과 감정이입이 되는 순간 기분이 어둡고 칙칙하다. 독서의 즐거움이 반감된다.
이 세 권의 책을 읽기 바로 전에 읽은 <그리스인 조르바>는 얼마나 유쾌했던가.

배짱과 인류애, 특히 세상의 모든 과부를 숭배(?)하는 조르바~ 쫄딱 망하고서도 크레타 해안을 휘저으며 춤과 노래를 부르는 조르바~~ 그래서 난 카잔차키스를 좋아하나 보다. 지금 그의 또다른 작품 <미할리스대장>과 <스페인 기행>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며 날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