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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깽> 김상열 극본

맑은 바람 2024. 8. 29. 15:38

읽은 때 2024년8월28일~29일

(카톡방에서 멕시코 조선 노예사를 다룬 소설 작품 제목이 화제가 되어 설전 끝에 돌아돌아 <애니깽>대본을 만나게 되었다. 연극 대본을 만나기는 평생 처음. 오래 살다 보니, 아직도 낯설고 처음 해보는 것도 있다.좋은 거지?)

김상열(1941~1998)향년 57세
한국 뮤지컬을 정립
대표작으로는, <언챙이곡마단>, <병신과 머저리>,<배비짱>,<애니깽 >등이 있다.
**<애니깽>은 극단 '신시'의 창단 공연작(1988.10)이었고, 후에 창작뮤지컬로 재탄생한 <애니깽>(1998.6)은 김상열 선생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등장인물--
한우 민우 강쇠 철구 삼례
고종황제 궁녀 윤치호(외무대신)
메이어즈 (영국계 멕시코 애니깽 농장 대리인)
오바(대륙식민회사 서울지부장)
하야시(주한일본공사)
감독관(애니깽 농장의)
간수(큐바 형무소의)
멕시코인(티화나 경찰)

**대본은 모두 10장으로 됨
--시대적 배경:1904년 8월~1930년
--공간적배경: 일제강점기 직전 조선인마을~멕시코 유카탄 반도 애니깽 농장~쿠바~샌프란시스코~일제강점기 경성

애니깽 농장이 있었던 유카탄 반도의 메리다


이역만리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 애니깽 농장 땡볕 아래서 매맞고, 병들고, 총에 맞고, 독사에 물려서 죽어간 그들의 영혼은 누가 달래줄 것인가?

여기 10평 남짓한 소극장의 무대 위에서 적지 않은 1034명의 위령제를 지내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위대하지도 않은 이들이여!

똑똑하지도 않은 이들이여!

그래서 역사에 외면당한 벌레같은 이들이여!

여기 우리의 연극 속에서 잠시 위안을 삼으소서

--극작가 김상열

 

1장.
(오바)조선은 아주 덥고 아주 춥고 그래서 사람들도 변덕이 심하고 더구나 삼 년째 흉년에다 전염병이 기승을 부려 수태 죽어가고 있소이다/그런데도 속수무책으로 굶겨 죽이면서도 이 나라 백성이 외지에 나가는 걸 질색을 하고 있습니다.
(메이어즈)한 사람당 10불의 소개비를 지불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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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어즈)(여기저기에 榜을 붙인다)

아메리카 대륙 남쪽에 위치한 멕시코는 자원이 풍부하고 정치ㆍ문화면에서 미국과 같은 나라임. 토질이 좋고 기후가 온후하여 지상의 낙원이라 일컬으며 주민들 생활도 부유하며 전염병 따위는 일체 없음. 다만 애니깽 농장에서 일손이 모자라 최근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 노동자들이 몰려들어와 엄청난 돈을 벌고 있는 즉 조선 백성들에게 그 혜택을 주고자 함.
금년 음력12월 10일 전까지 당대륙식민회사의 모집 사무소에 와서 희망자는 조속히 등록을 필하되 기일에 착오없기 바람.
(강쇠)삯이 대단하여 하루 일하고 한 달 먹고 사는 목돈이라는데--배타고 두 달 걸려 가는 나라라며--그 이름이 미국 다음가는 묵시국이랍디여--
2장.
(소리)영국선박 일포드 호는 1905년 4월 4일 정오 1033명의 조선 노동자들을 싣고 인천항을 출발,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를 향해 떠났다.
일포드 호에 승선한 한국 노동자의 성분을 보면 남자 702명, 여자135명 그리고 어린이가 196명이었는데 약 200명이 전직 황실의 무관 출신이고 나머지는 농부,노동자,전직 하급관리, 거지패, 일반 서민으로 구분되었다.
이들의 계약서는 영문과 국문으로 작성되었고 노동 계약 기간은 4년--- 이것이 조선인의 첫 노예 송출이었다.
(배에 오른 조선인들, 오바와 메이어즈는 태도가 돌변하여 조선인들을 마구 다룬다)
3장.
고종과 윤치호의 대화:
(윤치호)근자에 시중에서 백성들간에 설왕설래하는 출처를 알지 못할 유언비어를 캐어 본즉 조선백성 천여 명이 멕시코에 노예로 팔려갔다하온즉 외무부 관리로 하여금 그 진상을 조사케 하였사옵니다.
(황제)노예라니?
멕시코는 어데 있는 나라인가?
지금 세상은 모든 나라들이 노예교역을 못하도록 되어 있는데 어찌하여 천여 명이 넘는 우리 백성이 외국에 팔려 갔단 말인가. 이것은 사람을 모집하는 초기 단계에서부터 제지하지 못한 당국의 무능한 탓도 있으려니와 도대체 궁성의 관리들은 천여 명의 백성이 인천항을 떠날 때까지 무얼 하고 있었단 말인가---?
4장.
(소리)드디어 *1905년 5월15일(약 한 달 보름 걸렸다), 1034명의 한국 노예들은 멕시코의 살리나 크르즈 항에 도착하였다.긴 항해 중에 한 여인이 해산을 하여 1명의 노예 숫자가 늘어난 것이다. 그 아이는 남자였는데 인천을 출발하여 태어났다고 해서 이름을 인출이라 했다.1034명의 한국 노예들은 육로를 통해서 유카탄 반도의 메리다에 도착, 22개의 애니깽 농장에 분산 배치되었다.
(감독관)이게 애니깽을 자르는 칼이다.--경우에 따라선 사람의 목을 자를 수도 있지--
애니깽은 이 유카탄 반도의 특산물이다. 선인장과에 속한 용설란의 일종이지만 가시가 돋았고 즙에는 독소가 있어 찔리거나 몸에 묻으면 살이 썪는다.
또 하나 애니깽 밭에는 독사가 많다.
물리면 그자리에서 죽는다. 잘 알아서 살아남도록 하라.  이제 우기가 지나면 폭염이 온다.맨대가리로 농장에 나갔다간 타죽는다. 이제 그대들은 멕시코 국법과 농장의 관례에 따라서 복종해야 한다.
동양 종족인 그대들은 이 땅에선 제 7등 종족으로 대우받는다.
영어가 통하지 않으니 당분간 수화로 한다. 어떤 형태의 조합이나 그룹을 결성해선 안 된다. 숙식이나 급료는 농장주들의 재량에 따라 다르다. 4년간의 노동 계약 기간에 너무 연연하지 마라. 여긴 극심한 노동력 부족 상태다.
농장주의 허락 없이 작업장을 떠날 수가 없다.만약에 농장의 관례를 무시하거나 위반하면 그건 전적으로 농장주의 권한에 따라 처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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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관)애니깽 잎을 자르는 일은 그리 용이하지 않다. 애니깽은 밧줄과 카펫트의 원료이므로 그 줄기가 질기고 억세다.

가끔 칼질을 잘못하여 제 손을 자르는 놈들이 있다. 한 손이 없어지면 급료는 반으로 줄어든다.
혹시나 하는 기우에서 경고한다.
대우나 여건이 불평스럽다 해서 탈출을 해선 안 된다.
메리다의 모든 농장주들은 상호협약이 돼 있어 다른 농장에서 탈출한 노예는 절대 받아주지 않는다.

만약 탈출하다가 체포되면 농장의관례에 따라 사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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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구는 아기 젖을 구하러 나갔다가 감독관에게 발각되어 묶인 채 심하게 매질 당하다가 기절한다)
(감독관)여기서 살아 남으려면 맘을 편안하게 가져야 돼--
아무 것도 생각해선 안 돼!
욕심을 내서도 안 되구--
해가 뜨면 나귀들이 어떻게 일하는가를 잘 살펴 봐.주인이 때리지 않아도 아주 익숙하게 제 길을 찾아서 잘 간다. 매질을 하지 않아도 꾀를 부리지 않고 열심히 애니깽 잎을 실어 날러--당나귀한테 배워--

(이 감독관의 말을 듣고 뒷골이 땡기지 않는 이가 있을까? 뒤에 삼례는 보기좋게 복수를 한다.)
5장.
(애니깽 농장에서 고통받는 백성들의 현실을 모른 채 고종황제는 태평하다. 농장 사람들은 고국의 임금께 처지를 알려야 한다며 방법을 모색한다.)
(한우)되돌아 갈 수도 없게 됐구먼, 그렇다고 눌러 살 수도 없게 됐어. 하루 세끼를 죽으로 연명했고 의복은 일 년에 한 벌--하루에 애니깽 잎 천 개를 따지 못하면 기둥에 두 손을 묶기여 가죽 채찍으로 피가 나도록 얻어 맞았지--전혀 의사소통이 되질 않았어. 그리고 내 나라말은 점차 희미해져 갔지--농장 주인 댁의 개가 부러웠구먼--멕시코 감독관들은 총으로 무장을 했고--
그 사람들의 생각과 판단이 곧 애니깽 농장의 법이었다니까--괴로움을 견디다 못한 조선사람 중에는 혀를 깨물거나 애니깽 자르는 칼로 자신의 동맥을 끊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어--차라리 죽음으로써 편안한 안식을 찾겠다는 거였지.
6장.
(탈출:한우,민우,강쇠,철구는 삼례를 남겨두고 탈출한다. 삼례는 감독관을 애니깽칼로 요절 낸다)
(삼례)아무 것도 아닌 것이--그저 벌레 같은 것이-- 단칼에 요절이 나는 허수아비 같은 것이--

잘났다고 뻐겨보지!
가죽 채찍을 휘둘러 다시 한 번 위세를 부려 보시지!  애니깽 토막처럼 쓰러지는 것이---

이 보잘것없는 짐생이 우리를 그렇게 괴롭혔는가--?  

어찌 기가 죽어 말이 없는가?
장작을 패듯 몸뚱이를 갈라줄 수 있어, 이렇게!
조선년이 너희보다 모질지 못한 줄 알았더냐!
그 잘난 애니깽 가시에 우리가 찔려 죽을 줄 알았더냐?
(삼례는 고문 끝에 죽는다, 아들을 남겨두고--)
7장.
(소리)1911년 7월 7일 한국인 노동자 4인, 즉 엄한우,엄민우 형제와 차강쇠, 박철구 등은 메리다 항에서 밀항선에 승선,멕시코 만을 건너 큐바의 마나치 항에 도착하는데 성공하나 이내 불법입국으로 체포되어 5년간의 중노동형을 선고 받고 마나치 형무소에 수감된다. 세계 제 1차대전 후 세계의 설탕값이 폭등함에 따라 큐바의 사탕수수 농장은 죄수들의 노동력까지 필요로 하게 된다
(철구, 사탕수수 농장의 간수를 애니깽 가시로 찔러 살해하고  한우,민우,강쇠의 탈출을 돕는다.한우는 이미 탈진한 철구를 총으로 쏜다.)
8장.
(하야시)전하--고무라 외무대신께서는 전하의 통치능력에 대하여 심히 우려를 하고 있사옵고 --

궁성의 대신들 또한 무능하다 판단하여--
모든 외교적 주권 행사를 차제에 동경궁성당국에 맡기는 일을 고려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이었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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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일본 보병 일개 연대가 인천항에 입항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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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특수병력 1000명은 창경궁 일각에 병영을 설치하며 부득이 조선 근위대와 마찰이 있을 것을 예상하여---
거치른 병졸들에게 봉변을 당하시는 것보다---안전한 처소로 거처를 옮기심이--
(윤치호)황실의 근위대는 이미 무장이 해제되었사옵니다, 전하---
(오호라, 통재라~이게 사실이란 말인가? 작가는 이 중대한 역사적 사실을 얼마만큼 충실하게 전하고 있을까 만약 사실이라면 황제는 앉아서 코를 베인 셈이네. 무능력의 극치!)
(52)(한우 민우 강쇠는 탈출하는 도중에 오아시스를 만나 물을 마시다가 멕시코인이 다가오자 미친 척 쇼를 했으나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여기서 강쇠는 진짜로 미쳐 총살을 당한다.)
*멕시코와 미국의 접경지대인 티화나에 있다.
9장.
(하야시)일본과의 약속을 어기셨습니다.---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대한공립협회에 서한을 보내어 멕시코 이민의 실태를 조사하라 하셨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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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일러 배은망덕이라 하는 거외다.이 땅에서 러시아, 불란서, 미국의 세력들을 척결하고 대일본제국의 보호령을 받고 있는 조선으로 독단적으로 해외에 외교적 지침을 내린다는 것은 일본제국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소이다.
(고양이 쥐 생각하는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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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1930년 샌프란시스코 항구--멕시코의 티화나 정신병원을 탈출한 두 명의 조선인 엄한우와 엄민우. 두 형제는 부두의 하역장에서 밀항을 계획하게 된다. 품 속에 애니깽 토막을 간직한 채--
10장.
(소리)엄한우,엄민우 두 형제는 인천항에 도착한다. 그러나 나라도 없고 임금도 없고 조선백성도 없는 그들의 땅에서 밀입국자로 체포되어 수감된다. 그들의 국적은 멕시코 인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메이어즈) 작금 경성의 일간지에 게재된 두 조선인의 귀환 소식과 그들의 입을 통해 기사화된 대멕시코 이민실태에 대한 그릇된 증언에 대하여 일본의 대륙 식민회사와 유카탄 반도의 애니깽 농장조합의 이름으로 이를 반박하고자 합니다.

(메이어즈의 반박 내용은 두 조선인을 인간 말종으로 표현하며 그들의 말을 묵살하라고 한다. 천벌을 받아 마땅한 인간!)
(윤치호)(윤치호가 민우,한우를 면회온다)
어떻게 된 건가--?
---이젠 조선땅에 임금님은 안 계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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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이 떠나 있는 동안 이 나라는 일본 사람들의 것이 되고 말았네. 나라도-- 임금님도 없어졌다네--
어떻게--거기가 어딘데--여기까지 살아왔는가?
(한우)짐승이었습니다. 그저 짐승같이 뛰어왔습니다.
(윤치호)총독부에 사면을 건의했네--석방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가게나---
(민우)보십시오--이게 바로 애니깽입니다-- 이 가시에 찔려서 동포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윤치호)가련한 백성들아--살아왔으니 그대들이 이긴 것이다.-- 이 버림받은 백성들아--
(윤치호는 불운한 시대의 정객으로 나라를 지키는데 도움을 주지 못했으나 두 형제를 살려내겠다는 책임자로서의 도리를 보여 그나마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