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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저메이카 킨게이드

맑은 바람 2024. 8. 31. 02:09

저메이카 킨케이드 지음/정소영옮김/문학동네/141쪽/1판1쇄2021.11/1판2쇄 2022.4/읽은 때 2024.8.29~8.30


저메이카 킨케이드(1949~  )필명.
서인도제도의 영국연방 내 독립국인 앤티카 섬의 수도 세인트 존스에서 출생/본명은 일레인 포터 리처드슨/영국식 교육을 받으며 성장/학업능력이 뛰어났지만 연이어 태어난 남동생들과 가난 때문에 학업 중단 /1966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와 입주보모 노릇을 함/20년 동안 가족과 단절된 삶을 삶/일하는 동안 야간학교에서 학업을 이었고 직장을 그만둔 뒤 대학에 진학(전액장학금)했으나 이듬해에 자퇴함/ 1973년부터 필명으로 작품 발표/<뉴요커>편집장 윌리엄 숀의 아들과 결혼, 유대교로 개종(1979)/<애니존>과 <루시>는 자전적 소설/피식민자,여성,흑인,이주민으로서의 자기정체성을 반영한 작품들을 주로 씀/앨런 숀과 이혼(2002)/2004년 미국문학 예술아카데미회원으로 선출됨/현재 미국 버몬트주에 거주하며 하버드 대학에서 강의함.(그녀가 받은 상:모턴다우언제이블상, 구겐하임 펠로십상, 레넌상, 페미나외국소설상, 비포 콜럼버스 재단의 미국도서상--)


--차례--
*불쌍한 방문객(주인남자 루이스가 루시를 두고 한 말)
(9)차를 타고 오면서 누군가 유명한 건물과 주요거리,공원,그리고 막 완공된 때에는 대단한 볼거리였다는 다리를 알려주었다. 내가 곧잘 빠져들던 백일몽에서 그 모든 장소는 행복을 의미했다.물에 빠져죽어가던 내 어린 영혼의 구명보트였다.
(12)내가 살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지다니:
나로서도 얼마나 놀라웠는지, 커버린 내 몸이 다 들어가지 않는 작은 침대에서 잠을 잤으면 하다니, 아주 사소하고 아주 자연스러운 몸짓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면에서 엄청난 분노가 솟아올라 모두 내 발 아래 죽어 나자빠졌으면 싶던 사람들에게 다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들다니.아, 집을 떠나 이 새로운 장소로 오는 단 한 번의 재빠른 행동으로, 내 슬픈 생각, 내 슬픈 감정, 그리고 내 앞에 펼쳐진 삶 전반에 대한 불만을 마치 다 낡아서 다시는 입지 않을 옷처럼 두고 떠나 오리라 상상했는데. 예전에는 지금 내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위안을 얻었지만, 지금은 이것을 설레며 바랄 수도 없게 되었다.그래서 난 침대에 누워, 분홍색 숭어와 코코넛 밀크를 넣어 요리한 초록색 무화과 한 그릇을 먹는 꿈을 꾸었다.할머니가 해주시던 요리라 그 맛을 보자 정말 기분이 좋았다.할머니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그것들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머라이어
(20-21)(위즈워즈의 '수선화'를 강당에 올라가 외고는 열광적인 박수갈채를 받은 이야기를 듣고는) 머라이어가 손을 뻗어 내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살아온 역사가 대단하구나"
그 말에 약간 부러움이 담겨 있는 것 같아 내가 말했다.
"원하시면 얼마든지 가지셔도 돼요."
(33)엄마의 사랑:
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른다는 찬사가 주변에서 쏟아질 때마다 엄마가 자기 만족감에 푹 빠지는 모습에 난 소름이 끼쳤다. 나를 향한 엄마의 사랑이란 오롯이 나를 자신의 분신으로 만들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까닭은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분신이 되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 싶었다. 이런 생각은 엄마에게는 전혀 예상치 못한 충격일 것이다. 평생 자신의 방식이 가장 좋은 방식이라고 믿으며 살았으니 자기 속으로 낳은 자식이 어떻게 자신과 달리지기를 바랄 수 있는지 어리둥절하겠지. 그 답은 나 역시도 알 수가 없다.

*혀
(41)루이스:머라이어 남편
루이스는 변호사였고 그래서인지 항상 무언가를 세심하게 읽었다.
---내가 루이스라는 인물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난 그를 좋아했다. 그는 농담을 잘해서 나를 웃기곤 했다.고향에서 멀리 떠나와 혼자 지내는 나를 안쓰럽게 여기는 듯했다.
내가 신랄한 말투로 가족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는 내가 사실 가족이 너무 그리워서 그러는 거라고 했다.---그는 보통의 준수함을 넘어서는 용모라서, 옆모습은 마치 동전이나 우표에 찍혀 있어야 할성 싶었다.루이스의 괜찮은 점은 바로 자신의 준수한 용모로 상대의 관심을 끌려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남자에게 그것은 훌륭한 특성이었고 난 그 점을 바로 알아봤다.
(48-49)머라이어 친구 다이나:루이스와 그렇고 그런 사이/부부 이혼의 원인 제공
우리는 깔깔 웃었고 그렇게 웃는 우리를 보고 다이나는 자기를 보고 좋아서 웃는다고 생각했다.다이나는 그런 사람이었다.자신의 존재가 다른 사람들을 정신 못차리게 행복하게 민든다고 생각하는 사람.
---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고 스스로도 그 점을 아주 대단하게 여겼다.세상살이와 관련해 내가 지닌 믿음 중 하나는, 아름다움이 여자들에게 대단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이다.어차피 사라질 것이니까. 아름다움은 사라질 것이고 뭘 어떻게 해 본들 되찾을 수는 없을 테니까.
(루이스,머라이어,다이나의 삼각관계를 두 눈으로 똑바로 지켜보면서 나는 모든 것들과의 작별을 생각한다)

*차가운 가슴
(71)빈방:
집에 빈방이 있다는 건, 누구에게도 딱히 필요하지 않은 그런 방이 있다는 건 얼마나 호사스러운 일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집마다 딱 필요한 것보다 하나씩은 방이 더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머라이어의 생각은 정반대이므로 그녀에게 할 질문은 아니었다.
그녀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아 덜 가졌으면 하고 바랐다.덜 가지면 행복해질 거라고 믿었다.나로서는 가진 게 너무 많아서 일어나는 불행을 바라보면, 재미도 있고 기분 전환이 되었다.가진 게 너무 없어서 벌어지는 일들은 하도 많이 봐서 뻔했으니까.
(72)일요일이었다. 머라이어와 루이스는 아이들을 데리고 사과를 따러 간다며 시골 어딘가로 가고 아파트에는 나 혼자 있었다.
그들이 집을 나설 때의 모습으로 말하자면,잘 몰랐다면 나라도 "정말 행복한 가족이네"라고 할 정도였다.
----부모와 네 아이들 모두가 건강하고 팔팔해 보였다. 어느 면으로 보나 견고하고 진실했다.하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은 폐허라는 사실을 나는 곧장 깨달았다.이 로마제국이 실제로 멸망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이 없기를 바랐지만, 혹시라도 재빨리 그곳을 벗어나지 못했을 경우 난 눈을 돌릴 작정이었다.
(73-74)난 일요일을 좋아하지 않았고 이번 일요일도 다르지 않았다.일요일에 대한 이런 감정이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여기까지 쫓아오다니 믿을 수가 없다.일요일만 되면 너무 절망스러워서 차라리 행주처럼 쓸모있는 존재가 되는 게 낫겠다 싶었다.
고향에서 엄마아빠와 함께 살 때, 앞에 보이는 거대한 대양을 건너기만 하면 분명 내 뒤를 따라오지 못할 것들의 목록을 만들곤 했다.장소만 바뀌면 내가 가장 경멸하는 것들을 완전히 내 삶에서 쫓아내 버릴 수 있으리라 보았다.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하루하루가 내 앞에 펼쳐질 때마다 만사가 어디나 매한가지라는 걸 알게 되었다.현재가 형체를,내 과거의 형체를 갖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76)엄마:
어느 날 엄마와 말다툼을 벌이다가,난 아무리 내 의지를 내세워봐도 또 엄마에게 질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절망감에 엄마를 똑바로 보며 "엄마가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그 말을 얼마나 사납게 내뱉었는지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말했다면 분명 그 소망이 실현되었을 것이다.물론 다른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할 일은 없었다.내게 그 정도로 중요한 사람은 없었으니까.내 비위를 맞춰주지 않으려는 엄마의 마음은 엄마를 지워버리고 싶은 내 갈망보다도 강렬했지만, 어쨌든 내가 그런 걸 바란다는 사실에 너무 큰 충격을 받은 엄마는 두통에 시달리게 되었다.얼마나 심한지 아예 자리에 누웠다.밤에 집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면 난 엄마가 세상을 떠나서 장의사가 와 시신을 실어가는 소리라고 확신했다.아침에 엄마 얼굴을 다시 볼 때마다 난 속으로 기쁨에 전율했다.
(104)엄마가 원수가 된 이유:
엄마는 날 잘 알았다.자기 자신을 아는 만큼이나 잘 알았다.그런 엄마가 아들이 앞으로 해낼 일이 얼마나 자랑스러울지 하는 생각에 빠져 눈에 눈물이 그렁해질 때마다 내 심장에는 칼이 꽂히는 심정이었다. 자신을 똑 닮은 자식인 나와 관련해서는, 약간이라도 비슷한 상황을 예상하는 인생의 시나리오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난 속으로 엄마를 '여자 유다'라고 불렀다.그러면서 그때조차 완전한 절연이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엄마와의 절연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루시
(107-108)다시 1월이 되었다. 세상은 다시 헐벗고 창백하고 차가워졌다.난 다시 새로운 시작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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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새로 만들어 내고 있다고 보았는데, 과학자보다는 화가의 방식이었다.정확도와 계산에 의지할 수가 없었다.믿을 것은 직감뿐이었다.딱히 마음 속으로 계획한 바는 없었지만 그림이 완성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난 사회적 지위도 없고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도 없었다.내겐 기억이 있고, 분노가 있고,절망이 있었다.
(121~122)루시:
왜 내 이름을 루시로 지었느냐고 엄마에게 물었을 때 엄마는 못들은척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시묻자 엄마는 나지막이 말했다.
"악마 이름을 붙인 거야.루시는 루시퍼를 줄인 거지.하여튼 내 뱃속에 들어선 그 순간부터 얼마나 성가셨던지."
그 말은 내게 또렷이 들린 정도가아니라 심지어 엄마 입에서 나오기도 전에 귓속에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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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벌어진 잠깐 사이에 짓눌리고 늙고 피곤하던 나는 가뿐하고 말끔하고 새로운 나로 탈바꿈했다.실패자라는기분에서 벗어나 의기양양한 기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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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루시퍼의 여자 이름.엄마가 나를 악마처럼 여겼다는 것을 알고도 난 놀라지 않았다.내겐 엄마가 종종 신과 가깝게 여겨졌는데, 결국 악마가 신의 자식이 아니던가?
(122-123)난 스무살이었다.살아온 인생이 길지도 않은데 내 얼굴에 순진함이라곤 없었다.아직 모든 것을 알지는 못했지만 때가 되면 모든 것을 알게 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사는 일이 냉랭하고 고되더라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의 장벽 앞에서 떨고 있나! 두려움 앞에 주저앉으면 볼장 다 보는 거다.  무모하리만치 도전하면 장벽은 의외로 힘없이 주저앉는 것을. 그 너머 펼쳐진 세계를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이에게 어찌 설명이 가능할까?)

--해설--
(132)대학을 일 년 만에 그만둔 후 잡지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뉴요커>의 고정 칼럼니스트 조지 W.S.트로와 친분을 맺고 그를 통해 만난 편집장 윌리엄 숀에게 발탁되어 '마을이야기Talk of the Town'라는 난에 고정적으로 글을 썼다.킨케이드 자신도 밝혔듯이, '마을이야기'에 9년간 그의 글을 싣고 통틀어 20년 간 그를 <뉴요커>의 전속작가로 두며 작품 활동을 독려하고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윌리엄 숀은 킨케이드가 작가로 자리를 잡는 데 큰 힘이 된 인물이다.
(133)루시의 분노와 적의(원한)는 이 작품의 주된 정조
(2024 파리올림픽 베드민턴 종목에서 금메달의 영광을 안은 안세영은 말했다.'나의 분노가 내게는 힘이었고 분발력이었다'고.  분노는 대부분 파괴로 이어지지만 그 감정을 승화시키면 멋진 결과를 얻어내는가 보다.안세영이나 킨케이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