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 장편소설/문학동네/329쪽/2023.12초판/읽은때 2024.10.11~10.24
한승원(1939~ )전남 장흥 신덕마을/서라벌예대 문창과/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木船>이 당선됨/
장편소설--<아제아제바라아제> <초의> <흑산도 하늘길> <원효><추사> <다산><물에 잠긴 아버지><달개비꽃 엄마>/
산문집<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
자서전--<산돌키우기> 이상문학상 등 8개 문학상 수상
[회귀]
(11)거무:열한 살 소년/'거무'는 신성하고 그윽하며 幽玄한 감색 즉 약간 검은 빛을 띤 쪽색의 하늘 세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늙은 남자는 생각했다.
(12)책에 대한 늙은 남자의 말:
이 책들 갈피갈피에 향기로운 사람을 찾아가는 길이 지도로 그려져 있다./그런데 그 지도는 어떤 종이에 그려져 있지 않고, 성인들이 하신 말씀 속에 투영된 형상으로 네가 네 머리에 그려내야 하는 것이니라.
(15-16)어느 날 거무는 종이를 펼쳐놓고 향기로운 사람을 찾아가는 지도를 그려보려고 했는데 막연했다. 그 향기로운 사람은 누구이고 대관절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
몇날 며칠 동안 밤잠을 설치면서 고심하다가 늙은 남자에게 물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롭다는 그사람은 대관절 어디에 사는 누구입니까?"
그 늙은 남자가 대답했다.
"그 사람은 이미 네 몸속, 마음속에 들어와 있다."
(29)늙은 백양나무가 어린 박새에게:
우리 우주라는 것은 커다란 공과 같단다. 그렇기 때문에 속이 텅 비어 있지.우주 안에 살고 있는 것들은 그 빈 속을 아름답고 예쁘게 가득 채워야하는 의무와 권리를 지고 있단다. 그것은 타고난 운명이야.
[섭동攝動]
(태양계의 천체가 다른행성의 인력으로 말미암아 타원 궤도에 약간의 변화를 일으키는 일)
(46)
*홀로그램--홀로그래피에서 입체상을 재현하는 간섭 줄무늬를 기록한 매체
**홀로그래피--빛의 간섭을 이용하여 기록화상을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촬영하여 재생하는 광학 기술
*발밤발밤--가는 곳을 정하지 않고 발길이 닿는 대로 한걸음씩 천천히 걷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49)쑥부쟁이의 말:
시인은 신선처럼 고요하면서도 숭엄한 존재인데 꼰대짓하는 우주상담사는 시시콜콜 형이하학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이잖아요. 제가 말한 고요에는 평화와 안식이 들어있습니다.
(53)시인에게는 늙바탕에 들어서까지 버리지 못한 버릇이 있었다. 시력이 약해졌으므로 한 삼십 분 활자를 훑으면 눈물이 고여 눈앞이 금방 안개낀 듯 아물아물해지곤 함에도 불구하고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거나, 망상일지도 모르는 시상을 모아 시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데 시이기도 하고 에세이이기도 하고 소설이기도 한, 자기만의 특이한 글쓰기를 하지 않으면 우주 운행이 멈추어 버린 듯 갑갑하고 답답해진다.이제는 짧은 호흡의 들숨과 날숨으로, 지나온 삶의 굽이굽이에 떨어져 있는 반짝거리는 보석들을 이삭줍듯 주워담는 글쓰기와 사유를 즐기고 있었다. 시인의 이삭줍기 사업은, 華嚴같은 삶의 莊嚴이었다.늙은 시인이 수집한 *까치노을 같은 이삭은 누군가의 결핍으로 허기진 영혼을 구제해 줄지도 모른다.
*까치노을:바다의 수평선에서 석양을 받아 번득거리는 빛
(60~64)쌍봉사의 늙은스님과 초의 문답:
--여긴 무얼 하러 왔느냐?
--여기 늙은 쥐새끼 한 마리가 사람껍질을 쓰고 앉아 있다고 해서 본디 자리로 돌려보내려고 왔습니다.
늙은스님은 크게 웃으며,
--그래 너처럼 그렇게 한눈에 내 속에 기생하는 쥐새끼를 꿰뚫어봐 버린 놈은 처음 본다. 내 너에게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들을 수 없는 은밀한 선풍을 귀띔해 주고 싶구나. 가까이 오너라.
늙은스님은 초의의 코를 비틀고 다른 손으로 목을 휘감았다. 초의도 답례로 똑같이 그렇게 했다.
초의의 '쥐새끼 잡아 없애기'라는 화두는 나와 너, 그리고 사람의 탈을 쓴 우리 모두에게 그 쥐새끼가 들어있다는 것이었을 터이고, 간사한 소인 근성이라는 쥐새끼를 몰아내는 것이 선결문제, 이 시대의 '*킹핀'이라는 것일 터이다.
*킹핀-중심인물, 두목
[놀이]
문제가 생긴 닭과 돼지를 둘러싼 그들의 잔인한 놀이--그들은 자기동족을 심하게 괴롭혀 결국은 죽게 한다.
(70-72)모래마을의 심장판막증을 앓는 소년 이야기:
친구들로부터 놀림과 학대를 당하던 소년은 끝내 죽었다.
어른도 마찬가지다.어른들은 조리돌림을 즐긴다.
[광기어린 야만의 세상에서]
(80)부잣집 머슴 이야기:
"어느 날, 한 마을에서 해가 동녘 산 위로 솟아올랐을 때 부잣집의 머슴이 거대한 호랑이를 타고 나타났는데 그게 야만 세상의 시작이네.
허우대가 크고 힘이 장사였네.사실은 겁이 아주 많은데 속에 품은 간요한 쥐새끼 한 마리의 잔꾀로, 주인을 오무락쪼무락하는 머슴이었네.몸을 양옆으로 흔들며 걷고, 잘 따르는 새끼머슴들과 어울린 밤에는 폭탄주 마시기를 호쾌하게 즐길뿐 아니라, 모든 머슴들의 왕초노릇하기를 즣아했네.거기다가 은밀하게 몇십 만석군 부잣집의 늙은 마름들에게 꽃뱀노릇을 하며 전대를 불린 허리 늘씬하고, 몇 차례의 성형수술을 한 야들아들한 미녀의 서방노릇을 하며 살았네. 미녀라는 말에 점 하나 더 찍으면 마녀가 되는 그 미녀는 자기가 술과 일밖에 모르는 불쌍한 노총각인 머슴을 구제해 주었다고 한 친지에게 떠벌렸네"
(오늘 카톡방에 올라온 섬뜩한 글을 읽고 이 글을 읽으니 모골이 송연하다.)
[*늙은 음유시인의 사랑 이야기]
늙은 음유시인--기타를 치는 어부
(108)소설가와 어부의 대화:
모래톱과 부두에서 철썩거리는 파도소리, 삽상한 마파람과 금방 쏟아질 듯 수런거리며 반짝거리는 푸른 별과 누런 별, 불그스름한 별들이 술맛을 돋우었다.
--시인님, 여름과 가을밤의 풀벌레 소리가 참으로 이상한, 알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 아시나요?
--아, 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연주를 한다. 풀벌레들은 자기 날개나 다리를 치열하게 비비는 소리를 통해 자기 존재를 만방에 알리고 사랑을 구가하는 것이다. 우주 속에 흐르는 별들도 이웃의 별에게 어떤 영향을 주면서 또한 스스로도 이웃의 별에게서 어떤 영향인가를 받는다는데 그게 攝動이라고 들었다.
(137)"인생이란 것은 그냥 이 세상 다녀가는 한줄기 바람인 거다"---별명 남한산성(젊었을 적 시인의 친구)의 말
(141)음유시인의, 사랑에 대한 정의:
"사랑이란 것은 선물과 같습니다.
선물은 상대에게서 아무 것도 받을 생각 않고 가슴 설레는 즐거운 마음으로 주기만 하는 것 아닙니까.
세상에는 자기 앞에 닥치는 모든 순간을 선물하듯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길]
(149)누구든 가끔은 잘 가던 길 위에서 길을 잃고 방황한다.사람들은 다 한두 차례씩은 무지개를 쫓아가다가 무지개와 함께 길을 잃고 절망하고 실패를 경험한다. 그때는 누구에게 길을 물어야 하는가. 무지개는 실체가 없는데.
(150)사람들은 텔레비젼의 브라운관에서 난무하는 광고들과 죽이고 파괴하기의 게임과 너 죽고 나 살자는 스포츠와 티브이 프로그램과 영화 등을 통해 방죽에 고인 물처럼 더러움으로 가득차 있는 세상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조금씩 더러워진 채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정당화된 폭력과 탐욕과 불공정과 불평등을 체득하면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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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없더니 거기 하나 있었구나.'하고 깜짝 소스라치는, 자기로의 회귀라는 자각 체계를 갖춘 사람은 십 리쯤 가야 하나 만날 수 있거나 말거나 하는 세상이다.
(152-153)용돈 대신 김 세 궤짝:
아버지는 빠른 지름길을 버리고 멀리 우회하여 가곤 하는 나의 비현실적이고 비경제적인 짓을 못마땅해하면서도 제 놈 속에 무슨 개멋이 있긴 있는 모양이지 하고는 모르는 체하시곤 했다. 한세상 지내고 보니 나를 구제하곤 한 것은 늘 그 '개멋'이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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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돌아보면 나의 모든 길은 현실적인 낮의 길보다는 비현실적인 깜깜한 밤길이고, 달밤의 길보다는 별밤의 길이었다.
마음을 비우고 좋은 글을 쓰겠다는 생각마저도 버린 채 낚시질도 하고 천천히 모래밭과 해송 숲을, 저세상에 간 혼령을 부르기 위해 피운 *만수향을 찾아가는 바람처럼걸어다녀 보는 개멋을 부리기도 했는데, 따지고 보면 그 길이 나를 편하게 하는 길이었다. 사실에 있어서는, 이승에서의 내 모든 길은 아마도 저승(또는 천국)의 문턱에 있는 *업경대 앞까지 닿아 있을 터이다.
*萬壽香--부처 앞에 태우는 향
*業鏡臺--지옥의 염마왕청에 있다는 거울
[길을 벗어나면 벌레가 된다]
*比丘--남자승려
*比丘尼--여자승려
*에멜무지로--물건을 단단히 묶지 않은 채로
*자드락길--낮은 산기슭에 비스듬히 나 있는 좁은 길
*임(淋)리하다--많이 흘러 흥건하다
(156)해산토굴의 사랑초 이야기:
사랑초는 애초에 이웃집 마당에서 사방 이십 센티미터쯤을 삽으로 떠다가 자드락길 가장자리에 심었는데, 그 풀은 생명력이 무척 강하여, 해를 거듭할수록 마당에 깔아놓은 금잔디의 사이사이를 헤치고 번져나갔다.봄철과 가을철에는 토굴 앞마당과 언덕 아래 정원에 그 흰색과 연분홍의 꽃들이 지천으로 피었다.
(꽃에 대한 샘이 많은 나는 이 대목을 읽고 바로 쿠팡에 모종 두 개를 주문했다, 9900원에. 자주색 사랑초가 얼마나 잘 번식하고 오래도록 곁을 지키는지 잘 아는 까닭에~)
(157)구십을 바라보는 시인은 우주상담사로서 세상의 모든 존재들과 무리없이 소통하는, 인사이더적이면서도 아웃사이더적인 시각을 함께 가졌다고, 신선에 버금가는 삶을 산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낮에 뜻아니하게, 한 마리 거대한 벌레로 전락하게 되었다.
--해산토굴과 인접한 땅 주인과 길 하나를 놓고 분쟁이 생김--
(165)시인은 저쪽 젊은이의 처사를 서운해하고 괘씸해하는 스스로가 옹졸한 벌레가 된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꾸짖었다.
뱁새는 다만 한 가지에 집을 지어 살아도 넉넉하다며 초의스님은 一枝庵을 지어 살았다는데.
[틈입자]
*an intruder 불청객, 불법침입자/a trepasser 무단출입자
(189)율산과 나:
얼마쯤 함께 살아본 율산은 나를 "얼핏 보면 반편같고, 어찌보면 곱게 퇴행하는 어리숙한 늙은이"라고 평했고, 구름에서 실을 뽑아 외계인의 언어로 직조한 편직물처럼 케케묵은 구닥다리 시와 영혼의 옷을 지어 입고, 그 어떤 시공에든지 집을 잘 짓는 늘씬한 각시거미처럼 하늘 허공에 이상향을 짓는 과대망상을 가진 식물성의 아나키스트라고 몰아붙였다.
나는 나대로 율산을 '사실은 어리석은데, 스스로 어리석은 줄 모르는 모자란 놈, 소인 근성의 잘난체하기로 이골이 난 놈'이라 규정했다.
[결핍]
(195)율산의 결핍론:
우주 속에 존재하는 모든 구멍을 가진 존재들은 다 결핍을 가지고 있어.내려다보는 하늘은 들숨이고 그 하늘을 쳐다보는 땅과 바다의 반응은 날숨이야.부모가 죽으면 자식들은 좋지 않은 기억들만 떠올리며 통곡하는데, 남녀 간에 사랑하는사람이 먼저 죽으면 좋은 기억들만떠올리며 슬피우네.
스스로의 가슴을 아프게 한 짠한 기억과 아름답고 향기로운 기억은 시들거나 늙지 않는데, 그것은 유형무형의 결핍으로 인한 것이지.
(217)해산토굴 앞의 석등과 석탑:
--재일교포가 나에게 어렵사리 번돈을 다달이 송금해 왔다.그래서 그 돈으로 석탑과 석등을 세워 그 아래 부부의 유골을 뿌려달라고 아들딸에게 부탁했다--
율산은 나의 가슴을 따끔하게 헐뜯는 말을 덧붙였다.
"죽기 전에 미리 그것들을 설치한 것은 자네의 허영이고 탐욕이네. 자네는 이 토굴에서 영원히 살아 있으려 하고 있는 것인데 그거야말로 자네의 슬픈 결핍 채우기 아닌가."
[말[言]에서 미끄러지기]
(220)<해산토굴> 이정표를 보고 새우젓 사러 온 사람과의 대면:
--서로 불쾌한 만남이었지만 그는거기서 깨달음을 얻었다.--
'작가인 내가 나를 이 토굴에 가두고 養生하는 것은 나의 시와 소설과 삶이 한층 맛깔스럽게 익으라는 것 아닌가'
*눌눌한 (양복)-빛깔이 누르스름한
*애옥한 (마음)-매우 구차한
*흔감해하는 (표정)-매우 기쁘게 느끼는 듯한
*陰陰한(그늘)-우거져 깊고 어두운
[밥] 풀로만 목장 이야기:
--외국의 배합사료 공장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목장주는 일체의 배합사료를 먹이지 않고 풀만 먹이고 소들의 활동 공간도 넉넉히 마련해서 질 좋은 소고기를 생산한다.회원제로 운영하고 있다.
--배합사료를 먹고 자란 소는 비만하고 소화기 계통의 질병 예방을 위해 생균제, 효소제, 중화제등을 많이 먹인다.
소의 간은 이미 식용불가 처분을 받았다--
[이끼]
(248)율산의 말:
자네와 자네의 시는 어쩌면 이끼의 삶을 닮았네.생태적으로 볼 때 서식처와 영혼의 시공도 그와 비슷하네. 토굴 마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푸르거나 연초록색을 띠는 실이나, 울긋불긋한 카페의 천을 풀어놓은 듯한 이끼는 쨍쨍 뜨거운 가뭄 햇빛이 계속되면 청회색으로 시들어지듯 잎을 말고 있다가 적당한 습기와 그늘 있는 장마철이 찾아오면 파릇파릇 살아나 조그마한 꽃을 앙증스럽게 피우네.이끼의 삶은 얼핏보면 고요인 듯하지만, 깊이들여다보면 치열한 시끄러움이 야단법석을 떨어대네.
[아토피 세상]
(264-265)율산의 말:
글로벌 자본주의의 자유시장 경제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뱉어내고 싶은 불만과 굴절된 결핍 때문에, 그냥 여기저기 가려워서 긁어대고 싶어 미친듯이 몸부림치네.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옴과 아토피로 인해서일까, 정치 경제적인 옴벌레, 무좀벌레, 곰팡이균들이 세상의 구석구석, 부드러운 사타구니와 불두덩과 오금과 머리털과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사이, 한사코 부드러운 피부만을 갉아먹으면서 불개미처럼 스멀스멀 기어다니기 때문에 긁고싶어 환장히겠고 긁으면 시원해지므로 긁어대는데, 그렇게 긁어댄 다음에는 화끈화끈 아프고 그것이 가라앉자마자 다시 가려워지므로, 그 시원한 맛을 맛보고 즐기려고 긁지 않을 수 없어 다시 긁어대야 하네. 거기에 광기가 보태지면 긁어놓은 다음 화끈화끈 아플지라도 우리 모두 팍팍 긁자, 아픔 속에서 문득 시원해지는 느낌을 즐기자. 그냥 긁으며 미쳐버리자, 하며 긁어대는 것이네. 세상 굽이굽이에서, 긁어댄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원함과 화끈거림처럼 댓글들이 줄줄이 달리네.
(작가는 왜 비뚤어진 사람들에게만 촛점을 맞추어 비난해대는 걸까? 그게 작가 본연의 의무라서일까? 대한민국의 현재가 그 못나고 비뚤어진 사람들이 끌고 와서 된 것일까? 공정한 시각을 잃어버리고 양끝에서 무턱대고(?) 비난만을 일삼는 이들이 버티고 있는 한 우리의 미래는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안타깝고 슬프다.)
[비밀 작법]
밀교에서의 비밀작법의 주문인 '옴마니 반메 훔' 해석:
(278~279)'옴'은 시작하는 들숨인데 그 숨으로 천지가 깨어나네. 그것은 한 생명체가 탄생할 때의 첫소리이고 안간힘 쓰는 소리이자 의지이며 앓는 소리이고, 모든 생물들의 성행위 도중 오르가즘에 이르려는 몸부림의 소리이네.
아기들이 배우는 첫말 '마마' '엄'과 어원이 같고 '엄마' '오마니'의 첫소리와 동음인 그것은 인류 공통어이네.
'마니'는 다이아몬드를 뜻하는데, 陽으로서 밝은 구슬, 무엇이든지 마음 먹은 대로 이룩되게 하는 구슬인 여의주를 뜻하며 남성 성기,즉 남성 神의 에너지를 상징하네.
'반메'는 범어로 '파드마'인데 陰으로서 연꽃을 말하는 것이네.노자가 말한 우주의 늪인 谷神이네. 연꽃은 그윽한 암컷이고 우주적인 늪이며 풍요, 그 무진장한 생명을 잉태하여 생산하는 원천이네.마니와 반메의 만남은 우주적인 남성 에너지와 여성 에너지의 융합인데, 그 융합의 순간에 오르가즘이 일어나네.
'훔'은 사랑의 행위가 끝난 다음 안식하고 안도하고 종결하는 한숨인 날숨인데, 성스러운 행사가 종결되었음을 뜻하네.밀교에는 '훔 명상법'이 있네.비밀의식, 그 성취와 오르가즘의 다음 순간에 나오는 소리 '훔'은 우주의 모든 공간과 모든 시간, 모든 생명의 파장이 압축되고 함축되어 있네.
밀교에서의 비밀작법의 주문인 '옴마니 반메 훔'을 구태여 해석하자면, '옴, 당신의 거룩한 꽃 속에 내 편안히 안깁니다, 훔'으로 번역할 수 있고 '신화적인 늪인 연꽃 속의 보석이여, 여신 에너지 속에서 환희하는 남성신의 무진장한 에너지여'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성스러운 우주적인 오르가슴의 들숨과 날숨이네.
(281~282)한 편의 시를 쓴다는 것:
시인이 꽃이나 별이나 달이나 안개와 눈비 같은 우주의 에너지가 투영된 한 편의 시를 쓴다는 것은 깨어있는 시인의 내면에 숨어있는 시인만의 외계언어로써 우주의 한 표현인 '꽃' '별' '달' 따위의 모든 事狀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것이네.
시어는 시인이 가지고 있는 우주적 감성의 촌철살인 같은 언어의 부리 속에 달린 혀끝 같은 촉수이네.언어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품은 집이네.새로운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나만의 언어를 창제하여 지니고 살면서 하늘과 소통하는 언어로 꽃과 별과 달과 안개와 비와 바람과 구름과 산과 바다와 벌레와 새가 가진 하늘과 땅의 뜻을 내 식으로 해석해야 하고 그때읊는 시는 천기누설이네.
*놀놀한-빛깔이 노르스름하다
[환원의 시간 기행]
(308)망구인 나는 가끔 느긋하게 천원짜리 한 장을 내고 버스를 이용하는 미니여행을 한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남은 삶을 즐기기이거나 감쪽같이 외계 세상으로 사라질 준비이거나 적막강산 속에서 외롭게 소외되어 늙어가는 한 노인의 음습하게 곰팡이가 끼려하는 정체된 삶과 죽음에 대한 찬바람 같은 방어기제일지 모른다.
나는 그것을 還元의 시간 기행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청준(1939~2008)무덤-회진 진목리 갯나들 언덕
*짚뭇-볏짚을 묶은 단
--작가의 말--
(326)이야기는 그것을 꾸며 뱉어내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생각을 바꾸어 주고, 그 생각은 습관을 바꾸며, 그 습관은 그들의 운명을 바꾸어 줍니다.
(327)깨어있는 개가 어둠의 어른거리는 한 형상이나 울리는 지축을 향해 짖듯이, 귀를 가진 모든 것은 소리나는 쪽으로 돌아보고 짖습니다. 소리나는 쪽에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길이 이야기가 되고 그 속에 또 하나의 새 길이 열립니다.길은 누군가가 만들어 주는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사람 다니는 곳, 사람의 발길이 이어짐으로써 반들반들 닳아진 곳이 길입니다. 소리 나는 쪽으로 돌아보듯 나는 가장 쉽고 편리한 곳을 향해 길을 만들어갑니다. 이 소설이 내 최후의 길입니다.
(328)"저에게는 두 개의 수레바퀴같은, 생물학적 삶과 작가적 삶이 있습니다.시나 소설을 쓰는 것이 작가적 삶이고, 그 작가적 삶을 위하여 날마다 음식을 먹고 씩씩하게 살아가려 분투하는 것이 생물학적 삶입니다. 나는 살아있는 한 시와 소설을 쓰고 시와 소설을 쓰는 한 살아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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