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뜨는 언덕 끝 집--쿤체의 도나우 강가
(161)라이너 쿤체 1933~
구동독 욀스니츠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병약하게 자랐다./라이프치히 대학에서 공부하고 강의했으나 프라하의 봄 이후 반체제작가로 지목, 해직됨/1977년 서독으로 이주/꼿꼿하고 올곧은 저항시인이면서 섬세하고 따뜻하다/시집 <민감한 길><푸른 소인이 찍힌 편지><방의 음도> 등이 있다/시집 <보리수의 밤>에는 한국에 관한 시 열두 편이 담겨 있다
(164)도나우 강변 시인의 집:선물로 자스민차를 들고 갔다.
시인의 시에 <한잔 자스민 차에의 초대>가 있다.
들어오셔요, 벗어놓으셔요 당신의
슬픔을. 여기서는
침묵하셔도 좋습니다
(167)시인으로 사는 일에 대한 작가의 고백:
시는 거의 나의 삶이었음에도, 시단에서 활동한 적은 거의 없다. 그런 내가 시인인가 싶지만, 또 그런 것 같다.나의 복잡한 詩歷을 조금만 이야기하자면, 스무 살쯤부터 이십대에 한 일이라고는 시를 쓰지 않겠다는 결심뿐이었노라고 말하곤 했다. 글을 쓴다는 건 표현 욕구인데, 강한 욕구가 있어도 자신을 내보이는 일은 견디기 어렵게 부끄러웠다.시대도 험해서 저 좋은 일 하는 것도 죄스럽기만 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결론은, 시를 안 쓰는 것이었다.거의 스무 해 동안은 자신과의 약속을 잘 지켰다. 그 세월을 독문학 공부만 하고 살았다.공부의 중심이 시였다 해도. 그러다 서른아홉 살 겨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독일을 헤매다가 억눌러두었던 나의 시에도 장벽이 무너진듯 봇물처럼 시가 터져 나왔고, 나는 기행시집 <깨어지는 벽 앞에 서서>를 냈다. 오랜 세월 억눌렀지만 나의 삶을 지탱해준 시를 이제는 조금 돌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그 후 등단도 하고 작은 시집도 세 권을 더 냈다. 시가 조금 다듬어지지 않겠나 하는 것이 유일한 욕심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몇 년 동안 조금 들여다본 문단은 내가 범접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곳에 자리잡자면 시간이 있고, 술도 좀 마실 줄 알아야 할 것 같았다.물론 뛰어난 재능이 있다면야 다 불필요하겠지만, 나는 셋 중 어느 하나에도 능력이 없었다.
(168)--독일어로 쓴 시를 쿤체에게 선물꾸러미와 함께 건냈다.--
그 이유는 '해뜨는 언덕에'골목 끝집에 사는 시인 라이너 쿤체는 나에게 시에 대한 개안을 하게 한 큰 시인이었고, 언젠가 이 시인의 집 문턱을 나서며 나의 첫 독일어 시가 씌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176)--쿤체는 내가 준 독일어 시를 다듬어 출판까지 약속을 받아냈다.그리고 자청해서 한국의 학생들에게 시를 읽어주고 싶어 자비로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했다.--
'시인' 외에는 어떤 수식어도 불필요한 사람, '시인'을 꼽으라면, 생존하는 독일인들 가운데서 내가 제일 먼저 꼽는 사람이다.
*시인, 시인의 집--쿤체의 초대
(181)작가가 어린 딸에게 쓴 편지:라이너 쿤체는 천생의 시인이라고 했는데, 내가 그의 시를 눈여겨보고 소개하려 노력한 것은, 그가 다름아닌 '시인'이기 때문이야.
동독 독재의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그는 오로지 시의 본령을 지켰어. 그런데 그로 인하여 가장 체제비판적인 시인으로 지목되어 핍박받았지. 서정시란 개인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장르인데, 한 사람 한 사람,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를 눈여겨보는 사람이 쓰고, 그런 것들의 소중함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장르인데, 동독이란 체제는 '집단'의 윤리를 극도로 강조한 곳이었기 때문에 그런 개인 옹호는 반국가적 범죄가 되었지.
<민감한 길> --쿤체의 가장 유명한 시--
수맥 위의 땅은 민감하니
나무 한 그루도 베어져서는 안된다
수맥이 말라버릴 수 있으므로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베어졌던가
얼마나 많은 뿌리들이 뽑혔던가
우리들 마음 속에서
*잠시 서울에 켜진 독일 서정시인의 등불--라이너 쿤체 방한 기록(2005년 10월)
(199)--한국을 방문한 쿤체에게 어느 젊은이가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말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인생은 본질적으로 아주 긴 여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긴 여정은 오로지 고달픔입니다.그런데 그 길을 자꾸 가노라면 사는 것이 살만하게, 값지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옵니다.이 지점들 사이의 구간이 길면 길수록 더 힘들게 느껴지지만, 삶이 살만하다고 느끼는 지점은 그만큼 소중하고 값지게 다가옵니다. 정말 행복한 순간은 언제나 백분의 일초입니다.더불어산다는 것은,특히 남녀가 함께 산다는 것은 그 백분의 일초에 다가가고자 함께 노력하고, 그 백분의 일초를 향해 살아가고, 그 백분의 일초를 위해 생각하는 것입니다.다만 이런 이야기가 해당되지 않는 순간이 있기는 합니다. 몹시 나이가 들었거나 불치의 병이 들었을 때 말이지요. 그 외에는 그런 순간은 언제나 계속 있습니다.그 순간을 위해서 일하고 살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213)쿤체의 삶의 의미는?:
저와 제 아내는 평생 카뮈가 한 말을 따라서 살았습니다.
"세상은 부조리로 차 있지만 사랑이 그것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한다"는 구절이지요.
그리고 우리의 또 하나의 근원적 체험은,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구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능하지 않는 것은 욕심내지 않으며,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은 청산합니다.사회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실존적인 이야기입니다.
바꿀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되, 또한 내가 어떤 것을 바꿀 수 없다고 하여서 체념하지 않는 것, 첫번째가 부조리를 구원하는 사랑에 대해, 두번째가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의 구분이었다면, 세번째는 아주 중요한 것인데요, 이는 단지 우리에게, 거의 오로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무엇이 나의 실존을 위해 중요한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우리는 정말 중요한 것에 도달하기 위해 자유의지로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입니다.가능한 한 가장 높이 충족된 삶을 위해서요.
<하나의 의미를 찾아낼 가능성> --쿤체
믿음의 균열을 뚫고 비쳐나오는
無
하지만 조약돌이 이미
온기를 가져간다,
손안에 고인
(사진217)
*두이노 성과 비가--릴케의 아드리아 해
(219)라이너 마리아 릴케 1875~1926
체코 프라하 출생/뮌헨대,베를린대에서 독문학 등 공부/독일 북부화가촌에서 일년 남짓 정착한 것을 제외하면 평생 집없이 떠돌아 다님/무덤은 스위스 라론/시집 <두이노의 비가>, <오르페우스에게 부치는 소네트>가 있고 소설 <말테의 수기>가 있다
(224)<두이노의 비가> 첫 구절:
누가, 내가 소리친다한들, 내 소리를 들을까, 천사들의
위계에서? 설령 어느 천사가
문득 나를 품에 안는다한들, 그의 보다 강한 현존으로 하여 내가 스러지고 말 것을
아름다움이란. 무서운 것의 시초에 다름아니므로, 그건 우리가 지금 견뎌내야 할 것
우리는 아름다움을 찬탄한다, 그것이 잠잠히
우리를 파괴하기를 거부하기에.
이 장엄한 첫구절은 압도적인 자연 앞에서 터져나오는 외침이자, 광활한 천지 앞에서 무한히왜소하게 느껴지는 인간에 대한 뼈저린 자각이다. 릴케는 여기서 감히, 혹은 더이상, 오래 전에 죽은 것으로 선언된 신을 찾지 못하고 한 계단쯤 아래, 신과 인간 사이의 중간자로 설정된 '천사'를 불러낸다. 이 기적 같은 자연의 광휘 앞에서 신을 다시 부르기는 면구스럽다 해도, 인간의 왜소함을 돌아보게 되는 어떤 막강한 존재를 아니 부를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천사란 이 찬연하게 밀어닥치는 자연의 거대한 열림에 대한 지칭에 다름아니었을 것이다.
(이 해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겐 시어가 그저 표면적으로 읽힐뿐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시를 느끼는 능력은 천부적인 것인가,번역의 한계인가?)
(233)몬팔코네 사진
*바람 속, 장미 곁의 묘비명--릴케의 라론 계곡
(237)릴케가 말년에 쓴
<오르페우스에게 부치는 소네트>
아주 먼곳에 있는 말없는 친구여, 느껴보라
네 숨결이 어떻게 공간을 넓히고 있는지.
어두운 종루의 대들보에서
종소리로 울리거라, 너를 잠식하고 있는 것,
그것이 이 자양분에서 강하게 되리라.
變容 가운데서 들고나거라
무엇이 너의 가장 고통스러운 체험이었는가?
마심이 쓰거든 포도주가 되어라.
이 밤 넘치는 마력에서
네 감각들의 엇갈림길에서
그 기이한 만남의 의미가 되거라.
그리고 지상의 것이 너를 잊었거든
말없는 대지에게 말하라, 나 흐르노라고
빠른 물살에게 말하라, 나 그냥 있노라고.
(239)만년의 릴케가 쓴 시들은 강박없이 아름다운 심상으로 전해져 사람의 마음에 새겨지는 지혜로 가득하다.긴 세월의 침묵 끝에 터져나오기 시작한 <두이노의 비가>나<오르페우스에게 부치는 소네트>--스위스 산록의 작은성 뮈조트에서 1922년 2월 2일에서 5일까지 첫 스물다섯 편이 쏟아져나왔다--에 닮긴 삶과 예술에 대한 시적 성찰들은, 시가 가 닿을 수 있는 정점을 보여준다. 그것은 마치 오르페우스처럼, 노래로 삶과 죽음을 관통하고 자유롭게 넘나드는 어떤 높은 곳에 서 있다.
(242)릴케의 묘원이 있는 교회 사진
(243)릴케의 묘원이 있는 라론계곡을 찾아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이탈리아까지 갔다. 다시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뮌헨역을 출발한 지 12시간이 지나서야 목적지에 닿았다.--
(248)릴케의 묘비명:
장미, 오 순수한 모순이여,
그 누구의 잠도 아니려 함이여, 그많은
눈꺼풀 아래서
(251)라론 계곡의 묘원은 시인이 스스로 마지막 안식처로 택한 거처이다. 평생 집이 없었던 그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의 정처이다.
*말테의 도시--릴케의 파리
(256~257)
<가을날> 릴케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들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워 주시고,
벌판에는 바람들을 풀어놓아 주십시오.
마지막 열매들에게 가득차라 명하시고,
그들에게 이틀만 더, 좀더 남녘의 낮을 주소서
완성되라 그들을 재촉해 주시고
무거운 포도송이 속으로 마지막 감미로움을 몰아주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다시는 짓지 못할 것이며
지금 혼자인 사람은, 오래도록 혼자일 것입니다.
깨어나, 읽고, 긴 편지를 쓰고
가로수길을 이리저리
불안하게 떠돌 것입니다. 낙엽이 바람에 휩쓸릴 때면.
(273)그림
부삭의 옛성에서 만들어진 중세의 테피스트리 <*일각수와 함께 있는 숙녀>
*일각수--인도와 유럽의 전설에 나오는 동물 (a unicorn)
*파리의 미아--하이네의 파리
(275)하인리히 하이네 1797~1856
뒤셀도르프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본,괴팅엔,베를린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학위까지 받았다./그러나 독일시민사회에 진입하지 못하고 파리로 가서 살았다./많은 작품이 노래로 작곡되어 오늘날에도 널리 애창되고 있는 시인/하이네의 시는 낭만적 감성을 바탕으로 하지만 독일 참여문학의 뚜렷한 선봉이기도 하다./한편 하이네의 산문 문체는 현대적인 문화면 문체의 효시로 간주된다./작품 <로렐라이> <독일, 겨울동화><노래의 날개 위에>가 유명/하이네의 시에 붙여진 곡이 만여 개나 된다/말년에는 척수결핵으로 여러 해 병상생활을 했으며 사후 몽마르트르 묘원에 묻혔다.
(279~280)
<낯선 곳에서 3> 일부
나도 한때 아름다운 조국이 있었지
그곳에서는 참나무가
드높이 자랐고, 제비꽃은
다소곳이 고개 숙였지.
그건 꿈이었어
제비꽃은 내게 독일식으로 입맞추었고 독일어로 말했네
(얼마나 믿을 수 없이 아름답게 울렸는지)
'이히 리베 디히'라는 그 말
그건 꿈이었어
*노래 속에 지은 집--하이네의 로렐라이 언덕
(296~297)
로렐라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네
내가 이렇게 슬픈 것이
옛 시절의 동화 하나
내 마음을 떠나지 않네
공기는 서늘하고 날은 어두워지고
고요히 라인 강은 흐르네
산정이 섬광을 발하네
저녁 햇살 속에서.
더없이 아름다운 처녀가 앉아 있네
거기 높은 곳에 놀랍게
그 황금 장신구가 번득이네
그녀 금발머리를 빗네.
황금 빗으로 빗네
그러면서 노래를 부르네
그노래기이하고도 강렬한 선율을지녔네.
작은 배를 탄 사공의 마음이
격렬한 고통에 사로잡히네
그는 험한 암벽을 못 보네
거기 높은 곳만 올려다보네.
내 생각으로, 파도가 결국
사공과 배를 삼켰네
그리고 그건 그녀의 노래로써
로렐라이가 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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