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영화 ·강연 이야기/책

<시인의 집>전영애 (1)처음~160쪽

맑은 바람 2024. 10. 27. 20:59

전영애 지음/문학동네/495쪽/초판발행2015.7/읽은 때 2024년10월24일~11월8일

(<여백서원>을 한번 가 보기로 맘 먹고 날짜를 정해두었다. 사전지식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하며 이책저책 살피는데 막상 사고싶은 책은 품절이라 차선책으로 고른 것이 이 책이다. 물론 이렇게 두꺼운 책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어쩐지 그녀가 조근조근 말하듯 재미있게 읽힐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시인의 집을 찾아다니는 여행기가 아닌가!)

[프롤로그] 발트 해 연안의 부동산--에스토니아 문인의 집
--작가는 이곳에서 묵으며 플롬과 몽튀페를 만난다--
(18~19)플롬교수와 마담 몽튀페:
플롬교수는 로만어권 문학전공자로 영어.프랑스어,독일어에 두루 능통했다.주 전공은 이탈리아어라고했다.마담 몽튀페는 프랑스 사람답게, 그리고 나처럼 영어를 그리 잘하지 못했지만 이탈리아어와 일본어를 하고 주 전공은 그리스어와 라틴어였다.
무슨일을 하느냐고 내게 물었다.전공이야기를 간단히 한 다음 가볍게 "글도 써요."라고 덧붙였다.듣던 두 사람이 똑같이 "나도 그래요."라고 말했다.내가 그런 이야기를 덧붙인 것은 사실, 두 사람에게서 벌써 시인의 기미를 눈치챘기 때문이다.

물든 나뭇잎의 빛깔과 그 잎이 진 후의 슬픔을 그토록 열정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사람이, 또 그토록 열심히 귀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이 무엇일 수 있겠는가.
조금 더 걸어서 한모통이를 돌았을 때 플롬교수가 갑자기 건너편의 작은 녹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부동산에 관심 있으신 분, 저 토지에 투자하시죠." 나와 마담 몽튀페는 폭소를 터뜨렸다. 플롬교수는 시인의 집을 짓기엔 최상의 장소라고 진지하게 덧붙였다.

--그들에게 낭독해준 아일랜드 시인 존 F.딘의 시

<헌정>
나무 아래 하루살이들이
차르르 쏟아져나온다, 은하수처럼.
우리의 최상의 시는, 먼 변방으로부터 여기로 와 닿으며
그건 사랑의 시들, 고요함을 이루며
길에는 으스러진 토끼의 비명들이
더 높아지고
우리의 탈것들은 생명을 으스러뜨린다
어린아이의 눈물이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 될 때까지

진실로 사랑하는 이, 나이 먹으며 고통 속으로 들어가며
그녀를 위하여, 그녀가 발견한 것을 위하여
일찍이, 세상의 아름다움 너머에서, 언제나
격앙된 한순간 뒤에는, 고요함의 추구가 있었다.

도요새들 겨울벌판으로 떨어져내리고, 그들의 울음은
생존의 작은 할렐루야. 나 그대에게 드리네
시를,여기 괴로움과 기쁨이 있는 곳에서
저녁이, 그리고 아침이, 첫날이 있는 곳에서
(작가는 이 시를 읽고 눈물이 핑 돌고 숨이 막힌다 했다. 이 공감할 수없는 슬픔이여!)

1.만남의 돌 문턱--트라클의 잘츠부르크/인스브루크
*게오르크 트라클1887~1914
독일 표현주의 대표적 시인/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부유한 가정에서 출생/군복무 중 참상을 못견뎌 자살함.
(31)그가 남긴 이백 편 남짓의 시편들은 하나같이 모두 절창이다.부패와 사멸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가운데 온통 가을이고 겨울인 그의 시들. 부패 직전의 과일 같은 향기와 만추 같은 아름다운 색깔로 가득한 가운데 더없이 투명한 영혼이 내비쳐온다. 그의 시는 영롱한 구슬 같다. 고해의 수정알인 양.

<어느 겨울 저녁>
창유리에 눈송이 뚝뚝 떨어지고
저녁종 길게 울리는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는 저녁상이 차려져 있고
살림은 넉넉하다
떠도는 어떤 사람, 문으로 다가온다
어두운 오솔길들을 지나서.
황금빛으로 찬연히 꽃 피고 있다, 은총의 나무
대지의 써늘한 수액에서 솟아.

나그네는 가만히 들어선다.
고통이 문턱을 돌로 굳혀놓았었다.
거기 빛을 뿜는다, 맑은 밝음 속에서
식탁 위에, 빵과 포도주가.
(33)누군들 문턱에 서보지 않았겠는가.누군들 고통 어린 문턱 앞에 서보지 않았겠는가.헤맴이 클수록 그 너머 빛나는 것이 내뿜는 빛 또한 눈부시다.
짧은 생애를 살다간 시인 게오르크 트라클 자신 또한 그런 나그네였다.

2.유리병 편지의 부름--첼란의 부코비나
파울 첼란 1920~1970
독일 현대시단을 대표하는 시인/
부코비나의 주도 체르노비츠(루마니아와 소련 접경/합스부르크가의 변방/유서깊은 평화로운 지방)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남/ 나치수용소에서 간신히 살아남/번역가 활동/파리고등사범 독일어교수로 재직 중 센강에 투신 자살함
(48)그의 시는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읽은 사람들은 거의 예외없이 소중히 읽을 수밖에 없어서, 그의 글을 읽은 사람들끼리는 '파울 첼란'이란 이름이 무슨 암호인 양 기이한 동료애 같은 것을 불러일으킨다.

*시인의 마지막 발자국--첼란의 파리1
(68~69)첼란이 삶을 던져버린 미라보다리:
병과 고독 속에 최종적으로 내맡겨졌던 삶.첼란이 읽다가 밑줄을 그어놓았다는 카프카의 구절 하나--
"당신이 나를 버렸다고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버림받은 느낌이고 외롭습니다."
(첼란의 파리고등사범 출퇴근길을 되밟아보며 아인슈타인의 거리도 보고 퀴리부인 연구소 건물들도 지나치는 한국의, 아니 세계의 지성 전영애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여행지에서 언어의 장벽을 전혀 느끼지 않고 다닐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유로운 일인가!)
(76)첼란이 살던 단칸방이 있는 동네 골목 이름이 '투르네 포르'다.'계속 돌아다니라'라는 뜻

*삶의 집, 죽음의 집--첼란의 파리2
(90)살아보려 했던 첼란의 파리 생활:
국적없는 유대인이라는 철저한 이방인이었던 청년 첼란은 이 낯선 파리에서 글을 씀으로써 삶의 터를 잡으려 했다.쓰기로 했고 또 쓰지 않을 수 없는 그 글을 그는 이 파리 한가운데서 독일어로 썼다.독일어는 그가 한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나라의 언어이고 자신의 부모를 죽이고 자신을 말살하려 한 '살인자들의 언어'였지만, 그에게는 모국어이고 또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함께 즐겨 읽었던 '문학 언어'였다. 그는 그 언어로 글을 쓴 릴케, 트라클, 하이네, 카프카를 사랑했다.
---루마니아 끝자락에서 나서 자란 그와 유라시아 대륙 반대 끝의 내가 같은 시인들을 그리 아꼈을까, 얼마나 강한가, 시어의 힘은.
(94)첼란의 아들 에릭이 처음으로 '꽃'이라는 말을 했던 날 쓴 시:


돌.
내가 따라갔던 공중의 돌.
돌처럼 먼 너의 눈

우리는
손이었다.
어둠을 남김없이 퍼내어, 찾았다
여름을 올라온 말[語]


꽃--맹인의 말.
너의 눈과 나의 눈이
물을
마련한다.

성장
마음의 벽이 한 꺼풀 한 꺼풀
떨어져내리는 것.

이 같은 말 하나 더, 그러면 종추(鍾錘)들이
막힘없이 흔들리리.

 

(95)대표적인 서정시의 대상, 혹은 시 자체의 은유로서 꽃의 이미지는 시 자체의 역사만큼이나 많은 굴곡을 겪어왔지만 이처럼 굳어진 이미지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경직된 의식에는 알 수 없는 고통이 서려있고, 세상을 가득 채운 어둠은 이미 전제되어 있다. 그 가운데 우리의 모든 존재가 어둠을 펴내는 손으로 환원되어 꽃의 의미를 점자처럼 더듬어낸다.비록 몹시 어렵게 전해지지만, 눈물조차 흘리지 못했을 만큼 고통으로 굳어진 눈, 이제 나란히 놓인 눈이 흘리는 눈물로 키우는 꽃, 어렵게 찾은 소중한 언어, 허물어지는 마음의 벽,마침내 막힘없이 울려퍼지는 종소리,그처럼 청정하고 힘 있는 시어에의 꿈이 아주 천천히 다가와 각인된다.
(시도 해설도 내게는 外界語!)
(97)첼란이 정신착란에 걸린 이유:
가장 큰 원인은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에게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우울증에다 표절시비에 휘말린 것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플라타너스 잎'이라 했던 첼란의 삶이 그려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서울의 거리가 온통 플라타나스였던 시절. 그녀는 문리대거리에서, 나는 효제동 찻길가에서 플라타너스와 친구가 되었다.)

*물,불,시의, 언어의 끝--바하만의 로마
(101)잉에보르크 바하만 1926~1973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 태생/인스브루크,그라츠, 빈 대학에서 공부/비트겐슈타인에 관한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 받음/1953년 *'47그룹'을 통해 등단한 여성시인/골수 나치당원의 딸로 자람/로마에서 화재를 당해 사망함.
*47그룹--독일 최고의,영예로운 등용문
--빈에서 첼란과 바하만은 각각 스물일곱 살과 스물두 살에 스치듯 만난다.그러나 바하만은 그녀의 작품 <말리나>에서 첼란을 그녀 자신의 삶보다 더 사랑했다고 썼다.--
(107)쾰른에서 첼란이 바하만에게 준 시:

 

<쾰른, 암 호프>
마음 시간, 멈추어 서 있다
꿈꾸었던 두 사람이, 자정의 시곗바늘 대신

어떤 이들은 정적에다 말했고, 어떤 이들은 침묵했고
어떤 이들은 자기 길을 갔다
고향에서
추방당하고 유실되어
너희 성당들

너희 눈에 보이지 않는 사원들
너희 귀 기울여 듣는 이 없는 강물들
너희 우리 마음 속 깊은 곳 시계들

 

(109)생각하는 사람의 눈에는 세계가 어두웠다. 전쟁은 지났고 '평화'가 왔다지만 바하만의 눈에는 세상이, 매일매일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매일매일>

전쟁은 더이상 선포되지 않는다
계속될 뿐. 전대미문의 일이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렸다.영웅은
전장으로부터 먼 곳에 있다. 약자가
집중포화지대로 밀쳐넣어져 있다.
나날의 군복은 인내,
훈장은 초라한 별,
가슴 위에 뜬 희망.

이 별은 수여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제
집중포화가 그친 이제
적은 보이지 않게 되어버리고
영원한 무장의 그늘이
하늘을 뒤덮은 이제.

이 별은 수여된다
깃발로부터 도주에 대해.
친구 앞에서의 용기에 대해.
품위 없는 기밀의 누설에 대해
세상 모든 명령의
불복종에 대해.

(113)지금의 이 '평화'는 대전의 참화라는 지나간 파국 그리고 --우리가 진정한 준엄한 의식으로 그에 맞서지 않으면 닥쳐올 --또 하나의 파국 사이의 휴지기에 불과하다고 바하만은 말한다.
(117)바하만이 최후에 살던 로마 비아줄리아의 팔라초 사케티를 찾아서:
티베르 강 근처/오래된 건물 4층/계단 입구에 단테의 <신곡>의 한 구절이 새겨져 있다.

*떠도는 사람들의 거리--카프카의 프라하1
(123)프란츠 카프카: 1883~1924

체코 프라하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남/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국립노동자 산재보험국에서 근무/현대적 실존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작품에 반영함./폐결핵을 앓다 죽음
(126)돌아보면, 카프카 읽기로 나의 문학 '수업'이 시작되었다. 카프카의 작품을 옮기는 일로 내 독문학 공부가 시작되었고, 그러면서 문학이라는 큰 세계가 압도적으로 열려왔다. 돌아보니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기실 막막하기만 한 삶을 감내해내는 한 방편이었다. 세상이 온통 어둠뿐인 듯했던 이십대 후반, 인생에 대한 아무런 전망도 설계도 할 수 없던 그 적막한 시절, 좁은 방에 엎드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카프카를 옮겼다. 그냥 알고 싶었다.카프카가 누구인지, 문학에 命을 건다는 것이 무엇인지.
한 십 년 그렇게 방안에 있으면서, 또 나중에는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그의 글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저녁 무렵 아이를 업고 현관문을 나서 좁은 아파트 복도를 오락가락하노라면, 그래도 아직 기다릴 게 있는 듯했다. 그것은 카프카의 <황제의 傳喝>처럼 올 듯도 했고, 또 결코 오지 않을 듯도 했다.아니, 결코 오지 않는 줄 알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무슨 소식을 들고 나에게로 오려고 애쓰고 있으리라는 그 쓸쓸한 상상은 절망적 기다림을 견뎌내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134)카프카문학의 세계:
빈한한 시골 유대인 푸주한[白丁]이었던 카프카의 아버지가 프라하로 왔을 때 이 차이는 그의 일생을 걸고 뛰어넘어야 할 벽이었다.카프카의 아버지는 그 넘을 수 없어 보이던 벽을 넘어 상류사회로의 진입에 성공한다.그의 세심하고 섬약한 아들은 자수성가한 강인하고 무신경한 아버지에게 맞지 않았고, 유대인이었지만 유대교 신앙이 없었고, 체코에 살았지만 체코인이 아니었다. 그의 모국어가 된 상류층의 언어, 독일어 또한 독일에서는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고 프라하에서는 십분의 일 남짓한 적은 수의 사람들만 쓰는, 섬에서그렇듯 고립된 언어였다.겹겹의 고립 속에서 그가 파들어가고 만들어간 문학의 세계는, 한 점 군더더기도 용납하지 않는 어떤 엄정함이 있다.

겹겹의 문, 겹겹의 뜰--카프카의 프라하2
(158)카프카와 도라 디아만트:
베를린 슈테글리츠 시청역 부근 그루네발트 길가 벤치에서 만난 도라 디아만트/인형을 잃고 우는 소녀를 달랜다/카프카는 인형은 여행을 떠났다며 인형에게서 온 편지를 읽어준다./30여 통의 글을 남겼다./작가의 산문집 <인생을 배우다>에 '카프카의 가장 아름다운 편지'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