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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우편배달부>안토니오 스카르메타

맑은 바람 2024. 9. 22. 15:03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우석균옮김/민음사/1판1쇄 2004.7/1판15쇄 2009.1/184쪽/읽은때 2024.9.18~9.22

안토니오 스카르메타(1940~  )  
칠레 안토파가스타에서 출생/조부때 크로아티아에서 이주/칠레대 문학부 교수/1967년 발표한 첫단편집 <열정>은 삶의 활력이 넘치고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음/1985년 출간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안토니오의 대표작으로 2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됨/이 작품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가 이탈리아 영화 <일 포스티노>다/<일포스티노>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관객이 본 외국영화로 꼽힘/군사정권이 들어서자 1973~1989 베를린으로 망명/2000~2003주 독일대사/2002괴테훈장(문/학부문)수상/2003 소설 <승리의 춤>으로 플라네타상 수상의 영예를 안음

역자 우석균.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졸. 스페인에서 중남미 문학박사 학위 받음.

**파블로 네루다 탄생 100주년(2004) 기념 출간
 
*파블로 네루다:(1904~1973) 향년69세/칠레의 시인/1943년부터 산티아고 이슬라 네그라에 정착/死後 집은 박물관이 되고 바다가 보이는 집 앞에 무덤이 있어 유명 휴양지가 됨/1971년 노벨문학상 수상

시대적 배경: 1969년 6월~1973년
공간적 배경: 어촌(산안토니오 항구/극장이 있다)과 산크리스토발 언덕의 이슬라 네그라
주요인물: -어부 호세 히메네스(마리오의 아버지), 마리오 히메네스(17세), 시인 네루다, 베아트리스, 로사부인
 
마리오는 어부가 적성에 맞지 않아 빈둥거리다가 우체국 구인광고를 보고 마음이 동해 면접을 본다.
단 한 명이 사는 이슬라 네그라를 담당할 우체부가 된다.이슬라 네그라의 주민은 파블로 네루다 씨다.)

이탈리아 영화 일 포스티노 중 네루다와 마리오


(36)마리오 사랑에 빠지다:
바로 그때였다. 마리오가 술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핑 돌아버린 것은. 얼마 살지는 않았지만 어떤 포도주에도 그렇게 취해본 적은 없었다. 마리오가 본 여자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가 녹이 슨 푸른손잡이를 잡고 축구게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녀들을 갈망하는 만큼이나 수줍음도 많아서 수없이 좌절하던 마리오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얼이 빠진 덕에 대담하게 테이블 축구대로 전진했다.----마리오는 머리에 털 나고 이렇게 가슴이 두방망이질 친 적이 없었다.피가 융단 폭격하듯 심장으로 몰려 이를 진정시키려고 손으로 쓰다듬었다.
---소녀는 바 테이블로 하늘하늘 향했다. 걷는 모습이 램블러스 그룹의 음악보다 더 흐드러진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듯했다.
(47)(마리오는 베아트리스에게 사랑의 고백을 하려고 네루다에게 시 한 편 써달라고부탁하자 대상을 봐야 영감이 떠오른다며 둘은 주점으로 향한다.)
"우리가 같이 있는 걸 보면 감동해 까무러칠 거예요.파블로 네루다씨와 마리오 히메네스가 함께 주점에서 포도주를 마신다!  까무러치고말고요!"
"그건 너무 슬픈 일이군. 소녀에게 시 대신 비문을 써줘야 한다면."
(49-50)네루다도 한눈에 반하게 한 베아트리스:
열일곱 살의 소녀가 바 테이블을 따라 쭉 가로질러 오는 모습을 보았다.산들바람에 흐트러진 밤색 곱슬머리, 슬픔을 머금은 듯한 꿋꿋하면서도 꿋꿋한 둥그런 갈색 눈, 두 치수는 작음직한 새하얀 블라우스에 앙증맞게 짓눌려있는 젖가슴으로 미끄러져내리는 목, 숨어 있으면서도 도발적인 젖꼭지, 새벽이 다하고 포도주가 바닥날 때까지 휘어감고 탱고를 추고픈 허리의 소녀였다. 잠시 후 소녀가 테이블 뒤에서 나와 홀로 들어서면서 하체가 성스럽게 출현했다.눈길을 확 끄는 미니스커트가 아찔한 엉덩이를 감칠맛나게 휘감고 있었다. 그 아래 쭉 뻗은 다리는 구리빛 무릎을 미끄러져 오동통하고 야성적인 맨발까지 하염없이 내려갔다.
(63-64)베아트리스의 데이트에 대한 엄마의 반응:
-더 이상 말할 것 없어. 우리는 아주 위험한 상황과 맞닥뜨렸어.처음에 말로 집적대는 남자들은 다들 나중에 손으로 한술 더 뜨는 법이야.
-번드르르한 말처럼 사악한 마약은 없어.촌구석 술집년을 베네치아 공주처럼 느끼게 만들지. 그리고 나중에 진실의 순간이 오면, 즉 현실로 되돌아오면 말이란 부도수표일 뿐이라는 걸 깨닫게 되지. 네 미소가 나비보다 더 높이 난다는 말보다 술주정꾼이 주점에서 네 엉덩짝을 치근덕거리는 게 천만 번 낫지
-나비처럼 번진다고 했어요.
-난다고 하든 번진다고 하든 그게 그거야.왠지 알아? 말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이야. 허공에서 사라지는 불꽃놀이일 뿐이라고"
-마리오가 해준 말은 허공에서 사라지지 않았어요. 저는 외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할 때도 그 생각을 할 거예요.
(84-85)로사부인(베아트리체의 엄마)의 방문 후, 네루다와 마리오의 대화:
-제 마음이 아픈 건 베아트리스를 볼 수 없다는 그 사실 때문이예요.앵두같은 입술, 밤하늘을 빚어놓은 듯 한가롭고 새까만 눈, 그녀의 그 따스함을 맡을 수 없다니! 왜 베아트리스 어머니가 저를 꺼리죠? 소녀와 결혼하고 싶은데.
-과부의 말에 따르면, 자네가 발톱의 때 말고는 가진 게 없어서지.
-하지만 저는 젊고 건강한걸요.아코디언보다 더 팽팽한 허파도 있고요.
-하지만 베아트리스 때문에 한숨 쉬는 데만 허파를 사용하잖아.벌써유령선 뱃고동 같은 천식소리가 나는걸.
-하! 제 이 허파로 순양함 돛에 바람을 불면 호주까지라도 보내버릴걸요.
-계속 베아트리스 때문에 가슴앓이 하면 한 달 후에 생일케잌 촛불도 못 끓걸.
마리오가 열을 올렸다.
-좋아요.그러면 어쩌라구요?
-첫째, 나한테 소리 지르지 말라고.귀머거리가 아니니까!
-죄송해요, 선생님.
-둘째, 집에 가서 낮잠을 한숨 자라고. 눈이 죽사발보다 더 퀭하잖아.
-일주일째 눈을 붙이지 못했어요.어부들이 저더러 '올빼미'래요.
-계속 그러면 일주일 안에 자네를 나무 조끼 속에 집어넣게 될 거야.사람들은 정겹게도 그걸 관이라고부르지.
마리오, 화물열차보다도 더 긴 대화를 나누었군. 잘가게.
-시인 동무, 당신이 저를 이 소동에 빠트렸으니 책임지고 저를 구해주세요. 당신이 제게 시집을 선물했고, 우표를 붙이는 데만 쓰던 혀를 다른 데 사용하는 걸 가르쳤어요.사랑에 빠진 건 당신 때문이에요.
-천만에!시집 두어 권 선물했다고 내 시를 표절하라고 허락해 준 줄 알아.게다가 자네는 내가 마틸데를 위해 쓴 시를 베아트리스에게 선사했어.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예요!

말년에 함께한 마틸데 부인


(108-109)마리오에게 파리에서 녹음기 선물과 함께 보내온 네루다(프랑스대사로 근무 중)의 육성 편지:
자네에게 글 말고 뭔가를 보내주고 싶었어. 그래서 이 노래하는 조롱에 내 목소리를 담았지. 조롱이면서 새인 셈이지. 자네에게 주는 선물이야. 하지만 마리오.나 역시 부탁이 있네. 자네만이 할 수 있는 거야. 다른 친구들은 다들 어찌할 바를 모르거나 내가 망령든 우스꽝스러운 늙은이라고 생각할 테니.이 녹음기를 가지고 이슬라 네그라를 거닐면서 마주치는 모든 소리를 녹음해줘. 우리집 유령이라도 필요해.건강이 좋지 않다네.바다가 아쉬워.새들도 아쉽고.우리집 소리를 실어 보내주게. 정원에 들어가서 종을 울리게. 먼저 바람에 울리는 작은 종들의 가냘픈 소리를 녹음하게. 그리고 다음엔 큰 종 줄을 대여섯 번 잡아당기라고. 종. 나의종! 바닷가 종루에 걸려있는 종만큼 낭랑하게 들리는 말은 없지. 그 다음에는 바윗가로 가서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를 담아줘. 갈매기 소리가 들리면 녹음해 주고. 밤하늘의 침묵을 들을 수 있다면 그것까지도. 파리는 아름답지.하지만 내겐 너무 큰 옷이라네. 게다가 여기는 겨울이라 밀가루를 흩날리는 풍차처럼 바람이 눈을 휘날리고 있어.눈은 쌓이고 쌓여 내 몸으로 기어오르지. 나를 하얀 도포를 입은 서글픈 왕으로 만들어 버려.벌써 입까지 차올라 입술을 덮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네.
자네가 프랑스 음악에 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도록 1938년 음반에서 한 곡 녹음해 보내네. 파리 카르티에라탱의 한 중고 음반점에 처박혀 있는 걸 발견했다네. 젊었을 때 그 노래를 얼마나 불렀는지.늘 이음반을 구하고 싶었는데 뜻은 못 이뤘었지. <기다리겠어요>란 노래인데 리나케티가 불렀어. 가사에 '밤낮으로 기다리겠어요.돌아오시기를 항상 기다리겠어요.'라는 부분이 있다네.
(그리움이 뭔지, 아름다움이 뭔지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가 있을까!)

이슬라 네그라의 종탑과 네루다
네루다가 살던 집 라차스코나


(111)마리오의 녹음 활동:
마리오는 우표 수집광처럼 바다의 움직임을 집요하게 녹음했다.
과부가 있는 대로 화를 냈지만 마리오는 밀물과 썰물, 바람에 상큼하게 부서지는 파도만을 쫓았다.
소니 녹음기를 줄에 매달아 게가 집게를 비벼대고 해초들이 달라붙어 있는 바위틈새에 밀어넣었다. 나일론 천조각으로 녹음기를 감싸고 아버지 배를 이용해 부서지는 파도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3미터짜리 파도가 투우사의 단창처럼 해변에 내리꽂히기 직전의 스테레오 음향을 잡아냈다.
파도가 잔잔한 어느 날에는 갈매기가 수직으로 하강하여 정어리를 쪼는 소리와 팔딱거리는 정어리를 부리로 제어하며 물위를 스치는 소리를 녹음하는 행운을 잡았다.
(외모는 후줄근하기 짝이 없으나, 타인의 시선이나 말에 굴하지 않고 자기 길을 가는 마리오야말로 진정 '자존감이 높은 인물'이다. 멋지다!)
(126-127)(마리오는 아들을 얻었다.잘 먹고 장난이 얼마나 심한지 '사나운 개 콧등 아물 날 없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 아이였다. 이 무렵 네루다의 노벨상 수상(1971년) 소식이 전해져 마리오의 마을은 성대한 잔치가 열렸다.)
(131)네루다의 노벨상 수상 연설:
정확히 백 년 전, 가련하지만 찬란한 시인, 처절하게 절망한 시인이 이런 예언을 썼습니다.
"여명이 밝아올 때 불타는 인내로 무장하고 찬란한 도시로 입성하리라."
저는 叡智者 랭보의 이 예언을 믿습니다. 저는 지리적으로 철저히 격리된 나라의 알려지지 않은 한 지방 출신입니다.
가장 버림받은 시인이었고, 저의 시는 지방적이고 고통스럽고 비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인간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결코 희망을 잃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도달했습니다.
시와 깃발을 가지고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미래는 랭보의 말대로라는 것을 노동자,시인 그리고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에게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불타는 인내를 지녀야만 빛과 정의와 존엄성이 충만한 찬란한 도시를 정복할 것입니다.
이처럼 시는 헛되이 노래하지 않았습니다.
(수상 소식이 전해진 얼마 후 네루다는 병든 몸을 이끌고 이슬라 네그라로 돌아왔다.)
(152-153)네루다와 마리오의 대화
(네루다가 돌아오자마자 칠레에 군사혁명이 일어나 사방에 군인이 깔려 있어 마리오는 해변 쪽에서 몰래 숨어들어 네루다를 만난다)
 -아침에 오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군인들이 집을 포위하고 있거든요. 의사 선생님만 들여보내 주더군요.
-이제 의사는 필요없어.무덤 파는 인부나 당장 보내주는 게 낫지.
-그런 말씀 마세요,선생님
-무덤 파는 건 좋은 직업이라네, 마리오. 철학을 배우니까.
-좀 어떠세요, 선생님?
-죽어가고 있어. 그외에는 별일없지.  이렇게 열이 나니까 프라이팬 위의 생선같군.
-곧 열이 내릴 거예요.
-아니, 열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내가 사라질 거야.
-심각한 병인가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티볼트의 칼을 맞은 머큐소처럼 대답해 주지.
'상처는 우물처럼 깊지 않고 교회 문처럼 넓지 않지.하지만 충분해.내일 내 안부를 물어 보게. 내가 얼마나 딱딱한지 알게 될 걸세'
(158)네루다가 죽기 바로 전에 읊은 시:
하늘의 품에 휩싸인 바다로 나 돌아가노니,
물결 사이사이의 고요가
위태로운 긴장을 자아내는구나
새로운 파도가 이를 깨뜨리고
무한의 소리가 다시 울려 퍼질 그때까지,
어허! 삶은 스러지고
피는 침잠하려니

(159)1973년 9월 23일 네루다는 산타마리아 병원에서 최후를 맞았다.
(162)네루다 장례 후 52년생 마리오는 웬 남자들에 연행된다.
(난리통에 흐지부지되었지만 마리오의 力作이 그해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던 것이다.  <파블로 네프탈리 히메네스 곤살레스의 연필 초상>   이번 12권의 지정도서 중 가장 재미있었다.)

**스카르메타의 작품이야말로 진정한 시다.--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네루다의 집과 마틸데 부인 사진은 박찬운님 블로그에서 허락없이 가져온 것입니다. 내리라시면 하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