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여행/은륜을 따라

은륜에 꿈을 싣고

맑은 바람 2008. 8. 4. 09:32

 

 

 

발이 땅에 닿지 않게 안장을 높이고 자전거를 몸 쪽으로 기울여 왼다리를 뒤로 폼 나게

쭉 뻗어 왼쪽 페달에 얹고 오른발로 살짝 땅을 밀면서 한쪽 발을 마저 페달에 얹고 사뿐

안장에 엉덩이를 붙인다. 이어 페달을 두어 번 저어 핸들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가벼운

내리막길을 달리면 사악- 삭- 귓가를 스치는 초여름의 부드러운 바람-

이제 막 자전거를 배운 초보자가 누리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환희의 순간이다.

  

  소위 몸치인 내가 감히 자전거를 배워야겠다고 벼르게 된 계기가  있었다.

  작년 봄, 일본의 가고시마(鹿児島)를 여행할 때였다.

  우리 여행팀 속에 꽤 연배가 있어 보이는 여자 분이 한 분 있었는데, 젊은 사람들 못지않게

  행동이 민첩하여 뒤처지는 일도,  몸이 불편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누를 끼치는 일도 없었다.

  여행 인솔자의 고령자에 대한 염려를 일시에 불식시킨 것이다.

  

  부럽기도 하고 건강을 지키는 비결이 뭔지 궁금하기도 해서 다가가 여쭤보았다.

  “연세가 몇이신데 이렇게 가볍게 잘 다니세요?”

  “내 나이 지금 칠십이유. 그런데 지금도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우.”

   군살이라고는 하나 없는 단단한 몸매와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바로 자전거라고--

  

  또 김훈선생의 <<자전거여행>>을 읽으면서 처음엔 그 글솜씨에만 매료되었으나 읽어나가면서

차츰 ‘나도 자전거를 타고 섬진강을 한번 달려보았으면-’하는 바램이 생겼다. 물론 차로 씽씽

달리는 기분도 멋질 테지만 자전거를 타고 쉬엄쉬엄 가다가 멈추고 싶은 곳에 잠시 몸을 내려놓고 한가로이 자연에 취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렬해졌다.

 

마침 얼마 전에 뜻밖의 돈이 생겼다. 환갑기념이라고  한 모임에서 축하금(?)을 받은 것이다.

큰돈은 아니지만 지갑에 넣고 다니면 흐지부지 나갈 게 뻔해 이 돈을 어떻게 가치 있게 쓸까

생각하는데 그때 한 친구가 얼마 전부터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했다. 

 ‘아, 바로 그거다.’

 난 망설임 없이 올림픽 공원 안에 있는 자전거교육 사무실에 등록을 했다.

  8주 코스의 자전거교육을 신청했다고 하니 식구들이 이구동성으로 한마디씩 한다.

 “아니, 학교 운동장에 가서 서너 번 넘어지면 배울 걸 가지고 무슨 8주씩이나--”

 “아들아, 엄마 나이를 생각해 봐, 지금 나둥그러지면 골절상이야. 안 넘어지면서 배울 수 있는

 곳이래.”

  식구들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이다.

 

 집과의 거리가 만만치 않아 오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교육시간보다 길고 또 교육받으러 가기

위해 집안일을 아침부터 부지런히 서둘러야 하고 다른 약속은 아예 생각도 못하고--

반나절을 자전거 배우는 일에 다 쓰고  집에 돌아오면 완전히 파김치가 된다.

그럼에도 기쁜 마음으로 그곳에 갈 수 있었던 건, 자전거 타는 일이 주는 즐거움이 꽤 크고 나이

들어 뭔가 배울 수 있다는 일이 신나고 이런 여건이 갖추어진 현재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서였다.


교육 첫날,

자전거의 여러 가지 명칭과 주행 시 안전교육을 받은 후에 난생 처음으로 자전거를 끌고 줄지어

연습장으로 갈 때엔 자전거와 나 사이에 호흡이 맞지 않았다. 자전거 페달이 자꾸 딴지를 걸고

슬쩍슬쩍 바지자락을 잡아채는 바람에 여러 차례 넘어질 뻔하기도 했다.

그러나 은빛 바퀴살이 돌아가면서 내는 사그락 사그락하는 소리가 마치 음악처럼 들려와 한두

번 고꾸라질 뻔한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4주 정도가 지나니 자전거는 내게 상당히 우호적이 되어 언덕배기와 가파른 내리막길도 웬만큼

달릴 수 있었고 발목의 힘으로 밟던 페달을 허벅지의 힘으로 밟게 되었다.

물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심사인지, 자전거는 종종 나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전거의 깨우침을 듣는다.

 ‘멀리 봐라, 멀-리.’

  

겁나고 조심스런 나머지 바로 코앞만 바라보고 상체에 힘이 쏠리면 이내 핸들이 우왕좌왕하거나 중심을 잃고 나둥그러지게 된다.

8주 코스를 끝내면, 나는 나의 가느다란 발목을 페달에 얹고 한강변의 자전거 도로를 달리게

될 것이다. 강북 쪽의 살곶이 다리에서 난지교까지, 강남의 암사동 선사유적지에서 행주대교까지 틈나는 대로 쉬엄쉬엄 달릴 것이다.

 

그런 후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면  전남 구례로 내려가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 길을 따라

경남 하동까지 600리를 달리며 조국산하의 아름다움에 맘껏 취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언젠가는 흰 파도와 황금빛 햇살 찰랑거리는 제주도 해안도로를 달려 보고 또 유럽

어디쯤에서 자전거로 여행하는 꿈도 꾸어보리라.  

     

 ***<에세이플러스> 2008. 8월호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