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여행/은륜을 따라

바람 맞은 날-환상의 강화도 자전거 코스

맑은 바람 2009. 3. 25. 11:16
 

 

 

  흐린 뒤 갬  햇빛 짱~

 


“비가 와서 길이 미끄러울 텐데 괜찮을까?”

“아스팔트라 해 나면 곧 말라.”

정이는 걱정하고 난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소방서 앞에서 만나 강화도로 출발,

초지대교를 건너 강화에 진입, <덕진진>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자전거에 올랐다.

 

 새 자전거로 시승식도 겸함

 

 

구름이 어느새 걷히고 해가 반짝 모습을 드러냈다.

해안을 따라 차도 옆에 걷거나 자전거로

달리기 좋은 길이 주욱 펼쳐져 있었다.

 

 

 일명 해안도로

 

강화 쌀로 유명한 벌판을 지나고 때로는 염하강을 옆에 끼고 달리기도 했다. 경사도 완만한

편이다. 단지 오늘 서해안 바람이 세다는 일기 예보대로, 만만치 않은 바람이 계속 달려들어

자전거가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한다. 바로 꽃샘바람 아닌가. 아예 ‘바람벽’을 뚫고 들어가는

기분이다. 그러나 봄의 물기와 산수유 매화 향기를 머금은 바람은 부드럽고 달착지근했다.

풍광이 좋은 곳에서 잠시 다리를 쉬었다.

 

 사과도 한 쪽씩 먹고 건너편 가게에서 옥수수 찐빵도 사다 먹고

 

8km 남짓 달린 끝에 마침내 <강화 역사관>에 닿았다. 자전거 해안도로는 여기서 끝나 있었다.

<강화 역사관>에 들러 강화도의 역사를 돌아보니 강화도사람의 처절한 삶이 가슴을 친다.

지정학적으로 외세의 침입을 받기 좋은 위치에 있어 섬 주민들이 안락한 생활을 할 겨를이

거의 없었다. 남자들은 싸우다 죽고 성벽이나 돈대를 쌓다 죽고 여자들은 침략자의 횡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노동에 시달려 죽고 아이들은 굶어죽고--

 

지척에서 고난의 삶을 산 조상들을 우리는 잊고 살았구나.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프다는 구실로--

 강화의 과거와 미래~

 

 돈대

 

 도처에 돈대-늘 싸우며 일했다

 

<강화역사관>을 돌아 나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강화도에 와서 숯불장어구이를

못 먹으면 섭섭할 것같이, 도처에 숯불 장어구이 집이다. 불은면에는 아예 <더리미 장어구이마을>이

따로 있다. 언덕배기에 한갓지게 자리 잡은 <수연참숯불장어> 집이 눈에 들어온다. 조경이 잘되고 정갈해 보이는 곳이다.

대기실에 앉아 있노라니  도자기 한 점이 눈에 띈다. 박대통령 내외가 다정히 앉아 있는 사진이 새겨진

백자였다.  이분들을 특별히 좋아한 누군가에 의해 이렇게 만들어졌나 보다.

밑반찬도 좋았고 장어구이도 훌륭했다.

 

 

 

 커피는 이곳에서~

 

<광성보>로 갔다.  강화도에 수십 개의 돈대(일종의 軍 초소)가 있지만 주변 풍광이 가장 좋은 곳에

자리잡아 20여 만 평에 자연공원을 크게 조성해 놓았다.

 

불과 150년 전 신미양요 때 1000여 명의 미군의 공격을 받고 목숨 바쳐 싸운 조상들의 피로

적신 땅에 이제는 아무것도 모르는 후손들이 한가로이 풍광을 즐긴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미국과 형제국의 우의를 다지며 온 나라가 영어 광풍에 휘말리고 있는 모습을,

조상들은 저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하실까?

 

<용두돈대>에서 잠시 ‘손돌목’ 이야기를 떠올리며,  죄 없고 충성스럽기까지 한 사람들이 의심 많은

상전들 때문에 얼마나 허망하게 목이 날아갔나를 생각하니 ‘인권’ 운운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아무리 공사중이라도 미관이 흉물스럽다

 

 

 

 손돌의 혼이 한 그루 소나무 되었나?

 

 광성보를 뒤로하며

 

왕복 20km정도를 쉬며 놀며 달린 끝에 덕진진으로 돌아와 자전거를 차에 싣고 해넘이를

보려 부지런히 <섬암 돈대>를 지나 <동막 해변> 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해는 이미 자취를 감추고 저만치 산 아래 가천의대가 바라보이는 활어회 마을에

닿았을 땐 갯벌조차 완전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도다리와 숭어 한 접시와 사이다로 여행의 마침표를 찍고 귀로에 올랐다.

 

나뭇잎 더욱 푸르고 배꽃 복숭아꽃 흐드러질 때 다시 오마 약속하며--

너희들은 그때쯤 지상에 없겠지?

 

  2009. 3. 22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