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여행/은륜을 따라

성산에서 잠실까지, 자전거를 타고

맑은 바람 2008. 9. 16. 22:44

 

 

080915 (월)  구름 약간, 맑은 날


근심에 가득 차, 가던 길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인생일까?

나무 아래 서 있는 양이나 젖소처럼

한가로이 오랫동안 바라볼 틈도 없다면

숲을 지날 때 다람쥐가 풀숲에

개암 감추는 것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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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인생은 불쌍한 인생, 근심으로 가득 차

가던 길 멈춰서서 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


-<가던 길 멈춰 서서 Leisure>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


한 삼 일 전부터 아침마다 머리를 움직이기가 두렵다. 팽 돌까봐.

달팽이관이 움직였나? 위장 상태가 안 좋은가?

허기사 며칠 전부터 위가 더부룩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몸 상태가 안 좋았다. 자연 기분도 가라앉고

이런 저런 일과 사람들이 원망스럽고 짜증나고--

한 마디로 ‘근심으로 가득 찬’ 상태-

약속을 했으니까 나가긴 해야 될 텐데 자전거를 탈 수 있을려나 염려하면서도 김밥을 말았다.

하는 데까지 해 보는 거지, 뭐 하면서 툭 털고 일어나니 나갈 만했다.


약속장소에서 친구 부부를 만나니 기분이 많이 밝아졌다.

오늘은 성산대교를 출발, 서울숲을 지나 잠실대교까지 가는 일정이다. 왕복 44키로를--

성산대교를 출발해서 강변을 따라 페달을 저어가니 어느새 온갖 시름이 눈 녹 듯 사라진다.

행복하다. 행복이 뭐 별 거냐~

 

가다 쉬다 주로 다리 밑에서 쉬곤 했는데 역시 옛 어른들이 한여름 다리 밑을 그리도 좋아했던

이유를 알겠다. 아무리 햇살이 따가워도 일단 다리 아래로 들어서면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순식간에 땀을 식혀준다.

<서울숲> 잔디밭에서 가져온 음식들을 풀어놓았다.

기정이가 준비해온 빨간 식탁보가 분위기를 근사하게 만들어줬다. 이런 사소한 것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움직이는구나 ! 식사를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저기 가족들 또는 연인끼리

오순도순 모여앉아 음식을 나누거나 담소를 즐기거나 밀어를 나누는 모양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고 명화 ‘풀밭 위의 식사’를 떠오르게 하며 우리나라도 이제 정말 살 만한 나라가 되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흐뭇했다. 우리는 식후 풀밭에 이리저리 누워 쪽잠을 즐긴 후 숲을 한 바퀴 돌아보고

목적지 <잠실대교>를 돌아 귀로에 올랐다.


 어느 정도 지치고 힘이 빠진 상태지만 이미 익숙해진 길이라선지 갈 때보다 빨리 돌아왔다. 

<성산대교> 가까이 이르렀을 땐 가을 하늘을 황홀하게 물들이는 노을을 배경으로 분수가 높게 치솟고

있었다. 탄성을 자아내는 광경이었다.

 

 자전거 타는 일이 정말 즐거워서 하는 일이긴 하지만 취미생활도 처음부터 끝까지 편안하고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참 즐거움을 맛보려면 순간순간 넘겨야 할 힘든 고비가 있다.

 

온몸으로 달려드는 시원하고 때로는 후끈한 바람을 맞으며 눈은 가까이 멀리 펼쳐지는 아름다운

광경들을 마음껏 바라볼 수 있지만 다리는 잠시도 쉴새없이 페달을 저어줘야 하니 무릎이 시큰거리기도 하고 허벅지가 얼얼하기도 하다.

그 힘든 과정이 아킬레스건인가 보다.

그 과정을 넘긴 후에 맛보는 쾌감이란 진정 자전거를 즐길 줄 아는 자의 특권이랄까?

                         63빌딩을 배경으로

 

                       풀밭 위의 식사

 

                       잠시 오수를 즐기며

 

                            누워서 바라본 하늘

 

                           팽양성용

 

                         한남대교 밑, 에어컨이 팡팡 나오는 최고 시설의 이동식 화장실

 

                          말라가는 풀향기

 

                           노을을 배경으로 치솟는 분수

 

                            여정을 무사히 마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