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이야기/가을

배롱나무가 빛나다

맑은 바람 2008. 9. 12. 14:42

 

2008. 9. 12 금  쾌청


 연속 외출할 일이 있는 때엔 집에서 쉴 날을 기다린다. 나도 참 늙었나보다. 내일 모레가 추석이나 집안 사정상 올해는 각자 집에서 조용히 나름대로 추석을 지내기로 하니 맘 한 번편하다. 내일 저녁에 위령미사에 참석하면 된다.


 지금 정원에서 가장 빛나 보이는 건 역시 배롱나무다. 여름 백일 동안을 꽃 피운다고 해서 목백일홍이라고도 하나 이미 가을로 들어선 지금도 한 보름 이상은 저 화려한 광채를 뽐내지 않을까 싶다. (추후 기록: 아니야, 그게 아니었어.  이 글을 쓴 이삼 일 후부터 꽃빛깔이 확 죽어버리고 말데~ 그러니까 그무섭도록 요염한 광채는 알고 보면 배롱나무의 '노을'이었어. 해넘이 전에 하늘을 황홀하게 물들이고사라지는 노을-)

왕돈까스 집으로 가는 골목 어귀에서 가져온 코스모스도 웬 키가 저리 큰가?

계단 밑 금잔화도 수녀님네 집 앞 골목에서 저 혼자 필까 말까 망설이는 걸 데려왔더니 자리 잘 잡고 예쁘게 피고 있다.

 계단 양 옆을 장식하던 어린 목백일홍은 이내 상태가 안 좋고 울타리를 제 맘대로 넘나드는 나팔꽃은 아침마다 제 고운 모습을 한껏 뽐낸다. 그래, 메뚜기도 한철이다. 활짝활짝 피어나거라.

참 무던하고 수수하게 오래도록 계속 피고 지는 건 역시 사랑초다. 신길동 엄마네서 데려와 기른 게 벌써 수년이 되었는데 겨울에 몇 포기 뽑아 화분에 담아 들여놓았다가 햇살 좋은 봄에 마당에다 옮겨 놓으면 땡볕 여름날에도 목마르다 투정 한 번 안 하고  혼자 묵묵히 잘 견디고 있다. 그래서 믿거니 하는 마음과 정이 더 간다.


  나무나 꽃들도 젊은 연인처럼 반짝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꽃, 수십 년 한솥밥 먹은 남편처럼 그냥 언제고 듬직하니 내 옆에 있겠거니 미더운 나무, 언제 떠날지 몰라 가슴 조이게 하는 로맨스 같은 꽃, 멀리 계신 부모처럼 거의 존재조차 잊고 살다가도 문득 돌아보면 편안한 얼굴로 마주 대하는 나무--들이 제각기 다른 모양과 표정으로 살아가니 그 대상에 따라 애착이 더 가고 덜 가는 게 인지상정이 아닐까?

 햇님이 방긋 웃는 이른 아침, 나팔꽃 아가씨~

 

 

 조락의 계절을 알리는 방울토마토

 

 가을의 전령 고추잠자리

 

 가을의 얼굴을 환하게 해주는 배롱나무

 

 고추도빨갛게여물어가네

 무던한 사랑초

 

 키다리 코스모스

 

이제부터 한창 꽃망울을 터트릴 금잔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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