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이야기/가을

설레는 맘으로 기다리는 거야

맑은 바람 2008. 9. 24. 23:36

2008. 09. 24 수  종일  흐림


날씨는 후덥지근하고 종일 해 구경 한번 못하고 하늘이 꾸물꾸물하는 날-

날씨 핑계 대고 싶을 만큼 내 맘도 영 눅눅하고 칙칙하고-


베란다 앞 감나무가 애처롭다. 눈을 씻고 봐도 익어가는 붉은 감이 보이지 않는다.

작년엔 그래도 까치밥까지 남길 정도의 수확이었는데 올해는 완전히 흉작이다.

봄부터 여름 내내 푸른 잎을 달고 꽃을 피웠건만 제대로 된 열매 몇 개 건지지도 못했으니

저 맘이야 어찌 섧지 않으리.

세르지오는 저 감나무는 이제 수명이 다한 거라고, 베어버려야겠다고 작심을 하고--

오래된 나무를 베는 일이 맘에 걸려 제발 좀더 놔둬 보자고 했는데 나무를 아는 이

말에 의하면 유실수 생명이 30년이니 그 정도 살았으면 베어도 좋다나--

그 말이 좀 위로가 되긴 하지만 이 집의 역사와 함께한 나무이니 기쁘고 슬프고 아린 

사연도 많았겠지. 열매야 달리건 말건 가을이 깊어 가니 어느새 감잎이 하나둘 붉노랗게

변해가고 있다. 누가 뭐래도 알록달록 물들어 가는 감잎은 참 아름답다.


프란치스코의 토익 날이 이번 일요일이고 루도비꼬의 수능일도 부쩍 다가와 약 50일 남겨

두고 있다. 이미 오랜 동안 수도 없이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왔으니 이제 밝은 세상으로 나갈

일만 남았다. 저 터널 밖에 펼쳐질 세상 모습은 아름답고  신나야 한다.

그곳에서 기다리는 밝고 빛나는 존재와 만나기 위해 기쁘고 설레는 맘을 가져야 한다.

군둥내 나는 묵은 김치 치우는 기분으로, 지루한 영화 끝나기를 기다리는 맘으로 하루 하루

보내서는 안 되지. 노상 툴툴거리고 징징거리고 있는 이에게 기쁜 소식을 안고 달려올 손님이

어디 있겠는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면

내가 바라던 손님은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기 위해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수건을 마련하는’ 맘으로

설레임을 안고 기다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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