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이야기/가을

분꽃과 맨드라미

맑은 바람 2010. 9. 9. 00:47

 

뜰에 심어 놓고 가까이 지내고 싶은 꽃들이 있다.

어릴 적 시골집에 놀러 갔을 때, 싸리 울타리 아래에서, 우물곁에서 혹은 장독대 근처에서 만나 알게 된 꽃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봉숭아, 채송화, 족두리풀, 맨드라미, 분꽃, 과꽃, 백일홍, 나리꽃,

나팔꽃-- 기회 닿을 때마다 사거나 구해다가 심어 놓았다.

 

올여름 가장 식구가 불어난 것은 분꽃이다.

어디로부터 언제 왔는지도 모르는 분꽃 식구들이 아침이면 뜰을 환하게 밝힌다. 그러나 낮에는 꽃잎을 다물고

있다가 저녁이면 다시 꽃이 피어나서 신기하다 했더니 분꽃은 저녁 무렵에 피어나 아침에 시드는 꽃이란다.

그래서 일명 Four-O'clock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분꽃은 가느다란 줄기에 가지마다 수많은 꽃을 달고 있어 제때에 지지대를 세워 주지 않으면 제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쓰러지고 만다.

                         지지대를 세워주고 꽁꽁 묶어 놓는다

 

 

                         이 꽃들이 지고 나면 크고 까만 열매가 맺힌다

 

                         그 열매를 터트리면 곱고 하얀 분가루가 쏟아져 나오는데 여인들이 그 가루를

                         분처럼 발랐다 해서 <분꽃>

 

분꽃 대가족 바로 옆에는 단촐하게 두 식구뿐인 맨드라미가 있다.

붉은 꽃의 생김새가 마치 닭 벼슬처럼 보여 흔히 계관화(鷄冠花)라고 부르기도 하는

맨드라미는 줄기 하나에 꽃대가 하나씩이다. 오랜 시간 동안 붉은 줄기를 튼튼하게 키워가면서 조금씩 자라서

언제쯤 저 꽃송이가 제 모습을 갖추게 되려나 궁금해진다.

 

                               키가 1m까지 큰다

 

                          절개 굳은 여인 같기도~

 

                            무성한 잎이 지지대 구실을 하나?

 

 

맨드라미가 건장한 남자라면 분꽃은 가녀린 여성이다. 맨드라미가 소수 정예 부대라면 분꽃은 오합지졸 군대다.

분꽃이 문어발식 기업이라면 맨드라미는 이리저리 유혹에 휘둘리지 않고 주력 업종에만 힘쓰는 회사다.

분꽃이 분수에 넘치게 직함을 많이 가지고 자기과시에 힘쓰는 사람이라면 맨드라미는 소란스럽지 않게 혼자

내공을 쌓아가는 사람이다.

 

꽃 속에서 세상을 본다. (2010. 9. 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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