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영화 ·강연 이야기/책

12. 월든(Walden Pond)- 헨리 데이빗 소로우

맑은 바람 2008. 11. 29. 23:25

월든(Walden Pond)

헨리 데이빗 소로우(1817~1862) /강승영 옮김   2008. 11. 24 월

 

 

미 동북부 마샤츄세츠 주 콩코드 부근의 호수-

1845-1847 2년간 소로우가 통나무집을 짓고 홀로 살았던 곳. 자연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 고독을 모르며 오히려 풍진 세상 사람들을 멀리한 그곳에서의 삶과 사색을 기록한 것이 월든-이 책 한 권으로 소로우는 불후의 명성을 얻음. 간디와 로버트 프로스트가 감동한 책.

그는 에머슨, 너대니얼 호손, 월트 휘트먼, 링컨과 동시대인이기도 하다.

45세로 짧은 생을 마감했으나 그의 임종을 지켜본 지인은 “그처럼 행복한 죽음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486쪽에 걸친 이 책에는 사람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숲과 나무와 물고기와 짐승들-이를테면 사향쥐, 올빼미, 기러기, 호수의 얼음, 여우, 붉은 다람쥐, 산토끼, 어치(도둑새), 박새, 들꿩, 사냥개 등으로 이들의 사소한 움직임과 삶의 모습을 아주 진지하고 세세하게 그리고 있어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는 도저히 손에 잡히지 않는 글이다. 나도 처음엔, 원문이 난해한가 번역이 미숙한가 트집을 잡으며 적당히 건너뛰기도 했다. 조용한 병실에서 엄마 간호하며 수양하듯 읽다보니 여기저기 가슴에 와 닿는 문학적 표현 앞에 잠시 침잠하면서 점점 빠져들게 됐다.

나의 어설픈 감상보다 소로우의 좋은 글귀를 대하는 것이 더 값지지 않을까?

 

** “나는 내가 바라보는 모든 것의 군주며

세상에 내 권리를 의심하는 자는 하나도 없다"

(이것이 '자존감'이라는 걸 예전엔 몰랐었다. 타인의 시선에 영향받지 않고 스스로가 행복의 길을 알고 뚜벅뚜벅 걸어간 사람이다)

 

**내 집 위를 스쳐가는 바람은 산마루를 스쳐가는 그런 바람이었다. 그 바람은 지상의 끊어질듯 이어지는 음악가락을, 아니 그보다는 지상의 음악 중 천상에 속하는 부분을 실어다 주었다. 아침바람은 끝없이 불며 창조의 시는 중단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듣는 귀를 가진 사람은 드물다. 올림포스 산은 속세를 한 발자국만 벗어나면 어디에나 있다.

 

**내 집이 그 기슭에 자리잡고 있던 작은 호수는 콩코드 마을로부터 약 1마일 반 남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그곳보다 약간 지대가 높았으며 그 마을과 링컨 마을 사이에 있는 커다란 숲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리고 이 근처의 들판 중에서  유일하게 이름이 나있는 ‘콩코드싸움터’로부터는 2마일쯤 남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내 집은 숲에 묻혀 있다시피 했기 때문에 역시 숲으로 덮여 있는 반 마일쯤 떨어진 맞은편 호숫가가 나의 가장 먼 지평선을 이루었다.

 

**이 작은 호수는 8월의 잔잔한 비바람이 불다 멈추다 하는 사이사이에 나의 가장 소중한 이웃이 되었다. 그때는 비록 하늘은 구름으로 덮여 있지만 공기와 물이 다 같이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고 있어 오후의 한때일지라도 초저녁의 고요함을 지니고 있으며 티티새의 울음소리만 이 기슭 저 기슭에서 들려왔다.(법정스님의 오두막이 생각난다. 남자들은 그런데서 혼자 사는게 무섭지도 않나?)

 

**내 집 앞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한층 더 좁은 것이었지만 나는 조금도 답답하거나 갇혔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내가 상상의 나래를 펼칠 초원은 넓고도 넓었던 것이다. 호수 맞은편 기슭 위에는 떡갈나무 관목이 우거진 대지가 있는데 그 대지는 서부의 대평원과 타타르 인들이 사는 초원지대로 뻗쳐나갔으며 방황하는 모든 인간 가족들에게 충분한 공간을 제공했다.

광활한 지평선을 마음껏 즐기는 자 말고는 세상에 행복한 자 없도다.”

 

**하루 중 가장 기억할 만한 때인 아침은 잠이 깨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 시각에 우리는 잠이 제일 적다. 우리 몸 안의 어떤 부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잠만  자는 어떤 부분이 적어도 이때의 한 시간 동안은 깨어 있다. 어느 하인이 기계적으로 흔들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천재성에 의해 깨워지고 공장의 종소리 대신 천상의 부드러운 음악을 들으면서 향기가 가득한 가운데 새롭게 얻은 힘과 우리 내부의 열망에 의해 깨워질 때만 전날보다 더 고귀한 삶은 시작될 수 있으며 어둠은 그 열매를 맺고 빛에 못지않게 소중한 것임을 입증하게 된다.

 

**태양과 보조를 맞추어 탄력 있고 힘찬 생각을 유지하는 사람에게 하루는 언제까지나 아침이다. 아침은 내가 깨어있고 내 속에 새벽이 있는 때다. 깨어 있다는 것은 살아있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다시 깨어나야 하며 그 깨어난 상태에 계속 머물러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우리를 버리지 않는 새벽을 한없이 기대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 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제발 바라건대 여러분의 일을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일 것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가 되도록 두지 말라. 간소화하고 간소화하라. 하루에 세 끼를 먹는 대신 필요하다면 한 끼만 먹어라. 백 가지를 다섯 가지로 줄여라. 그리고 다른 일들도 그런 비율로 줄이도록 하라.

 

**자연 가운데 살면서 자신의 감각기능을 온전하게 유지하는 사람에게는 암담한 우울이 존재할 여지가 없다. 건강하고 순수한 사람의 귀에는 어떤 폭풍우도 ‘바람의 신’의 음악으로 들릴 뿐이다. 소박하고 용기 있는 사람을 속된 슬픔으로 몰아넣을 권리를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아, 아침공기! 만약 사람들이 하루의 원천인 새벽에 이 아침공기를 마시려 들지 않는다면 그것을 병에 담아 가게에서 팔기라도 해야 할 것이다. 아침 시간에 대한 예매권을 잃어버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아침 공기는 아무리 차가운 지하실에 넣어둔다 해도 정오까지 견디지 못하고 그전에 벌써 병마개를 밀어젖히고 새벽의 여신을 따라 서쪽으로 날아가 버릴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잡초들의 씨앗이 새들의 주식일진대, 잡초가 무성한 것도 실은 내가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닌가? 밭농사가 잘되어 농부의 광을 가득 채우느냐 아니냐는 비교적 중요한 일이 아니다. 금년에 숲에 밤이 열릴 것인지 아닌지 다람쥐가 걱정을 않듯 참다운 농부는 걱정에서 벗어나 자기 밭의 생산물에 대한 독점권을 포기하고 자신의 최초의 소출뿐만 아니라 최종의 소출도 제물로 바칠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정말로 부유했다. 금전상으로가 아니라 양지바른 시간과 여름의 날들을 풍부하게 가졌다는 의미에서 그러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들을 아끼지 않고 썼다. 그 시간들을 조금 더 공장이나 학교의 교단에서 보내지 않은 것에 대해 나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화이트 호수와 윌든 호수는 지상의 커다란 수정이며 빛의 호수들이다. 만약 이들이 영원히 응결되고 훔칠 수 있을 만큼 작은 것들이라면 아마 제왕들의 머리를 장식하는 보석으로 쓰기 위하여 노예들이 캐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 호수들이 액체 상태인 데다 그 양이 풍부하며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영원히 확보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이들을 무시하고 ‘코히누르의 다이아몬드’를 뒤쫓는다. 이 호수들은 너무 순수하기 때문에 그 가치를 측정할 수 없다. 

 

**-낚시와 사냥을 가라. 날마다 멀리, 더 멀리. 또 더 멀리. 그리고 시냇가이든 난롯가이든 두려워하지 말고 쉬어라. 그대의 젊은 날에 조물주를 기억하라. 새벽이 되기 전에 근심에서 깨어나서 모험을 찾아 떠나라. 낮에는 다른 호수에 가 있도록 하라. 밤이면 뭇 장소를 그대의 집으로 삼아라. 이곳보다 넓은 평야는 없으며 여기서 하는 놀이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다. 그대의 천성에 따라 이성적으로 자라라. 여기 있는 골풀이나 고사리처럼 말이다. 그것들은 결코 영국 건초는 되지 않을 것이다. 천둥이 울리면 울리도록 내버려두라. 그것이 농부의 수확을 망칠 우려가 있다한들 어떻단 말이냐? 그것은 그대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사람들이 수레와 헛간으로 피할 때 그대는 구름 밑으로 피하라. 밥벌이를 그대의 직업으로 삼지 말고 도락으로 삼으라. 대지를 즐기되 소유하려 들지 마라. 진취성과 신념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이 지금 있는 곳에 머무르면서 사고팔고 농노처럼 인생을 보내는 것이다.

 

  **몸을 부지런히 놀리는 데서 지혜와 순결이 온다. 나태로부터는 무지와 관능이 온다. 공부하는 사람에게 관능은 마음의 게으른 습성이다. 깨끗지 못한 사람은 열이면 열 게으른 사람이며 난로 옆에 웅크리고 있는 사람이며 해가 떠있는데도 누워있는 사람이며 피곤하지 않은데 휴식을 취하는 사람이다. 깨끗지 않음과 온갖 죄악을 피하려거든 외양간의 청소라도 좋으니 부지런히 일을 하도록 하라. 천성은 극복하기 힘드나 극복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항상 현재에 살면서 자신의 몸 위에 떨어진 한 방울의 작은 이슬도 놓치지 않고 받아들여 커 가는 풀잎처럼 우리에게 생기는 모든 일을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과거에 잃어버린 기회에 대해 애통해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말 복 받은 존재가 될 것이다.

 

 **“그대의 눈을 안으로 돌려보라. 그러면 그대의 마음속에

여지껏 발견 못하던 천 개의 지역을 찾아내리라.

그곳을 답사하라, 그리고

자기 자신이라는 우주학의 전문가가 되라.”

 

**당신의 인생이 아무리 비천하더라도 그것을 똑바로 맞이해서 살아나가라. 그것을 피한다든가 욕하지는 마라. 그것은 당신 자신만큼 나쁘지는 않다. 당신이 가장 부유할 때 당신의 삶은 가장 빈곤하게 보인다. 흠을 잡는 사람은 천국에서도 흠을 잡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이 빈곤하더라도 그것을 사랑하라. 당신이 비록 구빈원의 신세를 지고 있더라도 그곳에서 유쾌하고 고무적이며 멋진 시간들을 가질 수 있다. 지는 해는 부자의 저택이나 마찬가지로 양로원의 창에도 밝게 비친다. 봄이 오면 양로원 문 앞의 눈도 역시 녹는다. 인생을 차분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그런 곳에 살더라도 마치 궁전에 사는 것처럼 만족한 마음과 유쾌한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샐비어 같은 약초를 가꾸듯 가난을 가꾸어라. 옷이든 친구이든 새로운 것을 얻으려고 너무 애쓰지 마라. 헌옷은 뒤집어서 다시 짓고 옛 친구들에게로 돌아가라. 사물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우리들이다. 옷을 팔더라도 생각은 그대로 간직하라. 신은 당신이 외롭지 않도록 보살펴 줄 것이다.

 

(소로우가 세상을 떠난 지 150년도 훨씬 지난 이제서야(2023) 우리는 자연에 기대어 사는 삶의 진정한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자연인이다>, <자연의 철학자들>과 같은 TV프로들은 제2, 제3의 소로우들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