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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정호승

맑은 바람 2008. 12. 1. 23:50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정호승   2008. 12. 1

 

6000원짜리 기차표를 끊었다

싱겁다 뻔하다

슬슬 후회가 밀려온다

그 돈이면

 

동태찌개가 한 그릇인데

갓난애 머리통 만한 사과가 5개,

이태리 요리사가 만든 샌드위치에

커피가 무한정 리필 되는 레스토랑에 앉아

음악을 들을 수도 있는데

 

시집은 살게 아녀!

남들 입에 오르내리는

명시 몇 편이면 돼

공연히 속은 느낌이

자꾸 들거든

 

***좋은 시 두 편***

(12쪽) 햇살에게

 

이른 아침에

먼지를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가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먼지가 된 나를

하루 종일

찬란하게 비춰주셔서 감사합니다

 

(47쪽) 선암사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