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랑방/애송시

성탄제 -김종길

맑은 바람 2009. 1. 17. 19:48

성탄제 

-김종길(1927~    )

 

어두운 방안에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러히 잦아지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설어운 설흔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이 시를 읽으면 마음이 짠-해 옵니다.

어머니의 부재 속에 앓고 있는 어린 아들,

할머니의 애간장은 타들어 가고-

어둠이 깔린 산 속을 허겁지겁 헤집고 다니며 눈 속에서 어렵사리 찾아냈을 산수유 열매-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도록 아무 것도 이룩한 것 없는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목이 멥니다. 안타까움과 애처러움이 밀려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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