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동유럽

·수상한 동행

맑은 바람 2009. 1. 19. 17:15
 

동유럽 6개국 9일간의 여행을 위해 일행 16명이 독일 <푸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을 때 한 늙수그레한 남자가

현지에서 합류, 탑승해서 차 앞자리에 앉는다.  우리와 9일간 합류해서 여행할 사람이란다.


맨 앞자리에 앉아 시트를 뒤로 제끼길래 뒷사람이 다리 뻗기가 불편하다고 했더니 선선히 내일은 뒷자리로 옮기겠다고  말한다.  행색이 몹시 초라하고 얼굴은 원래 그런 건지 탄 건지 새카만 데다가 인상도 호감이 가질 않았다.

일행은 그의 합류를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게다가 거친 인상 때문에 한편으로 경계하는 빛이었다.


원래 16명이 팀을 이루었기 때문에 식사 때 4명씩 한 테이블을 이용하는 것이 잘됐다 싶었는데 한 명이 더 들어오다 보니 식사 때마다 자리 때문에 잠시 서성거려야 했다. 더구나 한국인 관광객들이 식사하는 장소는 식사 시간에 예약이 꽉 차서 여유 좌석이 없어 그 남자는 일행 중 누군가와 한 테이블을 이용해야 했다.

당연히 반기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나 그 남자는 넉살 좋게 이 테이블 저 테이블에 잘도 끼어 앉을뿐더러 자기가 먼저 자리를 확보해 놓고 이리와 앉으라고 부른다. 점잖은 처지에 대놓고 거절할 수 없어 엉거주춤, 부르는 대로 따를 수밖에--

 

 첫날저녁 세 쌍의 부부가 자연스럽게 맥주 한 잔 하자며 모였더니 어느 새 그 남자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술이 오가는 가운데 그 남자는 자신은 지금 여러 달째 여행 중인데  이집트에서 석 달을 보내고 이번에 동유럽 9일짜리를 하게 되어 여러분을 만나게 됐다고 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도 그 남자는 자기가 누구라는 걸 밝히지 않았다.

사실 우리는 그가 누구인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가 그런 것이 궁금한 게 아니었다.

도대체 뭐 해 먹고 사는 위인인가 즉 직업이 뭔가 어느 계층의 사람인가 그게 알고 싶은 거다.

그의 행색을 근거로 우리 일행은 뒤에 이런 말들을 나누었다.

어디로 보나 크게 돈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데 여러 달 여행을 다니고 있는 걸로 미루어, 남의 돈 떼먹고 도망 다니는 사람일지 모른다. 그런데 영어가 좀 되는 걸 보니 마구잡이는 아닌 모양이야, 일단 조심해들! 이러면서 거리를 두고 경계했다.


폴란드 <크라코프>로 이동하기 위해 9시간 버스를 타게 된 날.

얘기가 바닥 난 가이드가 그 남자에게 <이집트> 여행담 좀 들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랬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나도 가이드 경험이 많다’며 스스럼없이 마이크를 받아 쥐고 이집트 여행담을 늘어놓는다.


 한 시간 이상을, 사람들이 듣거나 말거나 이집트이야기를 하는데 지리적 특성, 풍속, 종교 등을 매우 조리 있게

군더더기 없이 말하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말을 마쳤다.

“이집트 사람들은 아침에 싸웠더라도 해지기 전에 꼭 화해를 하고 용서하며 다음날까지 가지고 가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을 품고 사는 사람”이라고.

이렇게 말을 마치자 일행은 힘찬 박수를 보냈다.

다들 속으로 놀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에 대한 나의 평가도 달라졌다.

목사이거나 선교사인가 보다. 적어도 빚에 쫓기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돈 떼먹고 달아난 사람을 죽도록

미워하다 이집트에서 큰 깨달음을 얻고 그 사람을 용서하게 되었나 보다-‘말의 힘’을 느끼는 순간이다.


그런데 다음 날, 그 남자는, 어제 미진한 내용이 있어 잠시 덧붙이겠다며 다시 마이크를 잡는다.


이집트 사람이 제일 많이 쓰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을 소개하고 싶단다.

하나는 “한 둘라(신께 감사합니다)”

또 하나는 “인 살라(신의 뜻에 맡깁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겠다고 한다.

달리는 차 속에서 반수면 상태로 있던 사람들 귀가 솔깃하는 순간이었다.


“저는 아이가 없는 몸입니다. 물론 집사람도 없구요.”

그리고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을 잇지 않는가?

“저는 해외교포들의 지역을 순례하는 신부입니다. 이번에 안식년을 맞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중입니다. 이곳 동유럽도 사실 성지순례길입니다. 안식년이 끝나면 **교구에서 주임신부로 일하게 될 것입니다. 지나시는 길에 들르시면 식사 한번 대접하겠습니다.”


분위기가 술렁거리며 비로소  그간의 미심쩍었던 점이 풀려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전날보다 더 큰 박수소리가 터졌다.


그날 저녁 신부님은 각 테이블마다 와인을 한 병씩 돌렸다.

또 한 번 말의 힘, 신분의 힘이 얼마나 큰가 아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