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동유럽

(4)폴란드 크라쿠프/ 아우슈비츠 수용소

맑은 바람 2011. 1. 4. 00:03

5일째 5월 13일 일

-소금광산의 괴테와 쇼팽-


아침은 헝가리에서

점심은 슬로바키아,

저녁은 폴란드에서


밥숟갈 놓자마자,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들을 수없이 지나고 동유럽의 알프스라고 불리는 타트라 산맥을 거쳐 약 9시간 만에 폴란드의 옛 수도 <크라쿠프>(슬라브 종족의 전설적 지배자 ‘크라크’에서 유래됨)에 도착하다.

중간에 슬로바키아에서 풀풀 날리는 점심을 먹고.

 

폴란드는 토질이 비옥해서 비료를 쓰지 않으며 자연 재해가 거의 없는 축복받은 땅이다.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는 단층이거나 이층집들-이미 패놓았거나 쪼개려고 준비해 놓은 통나무들, 한가로이 풀을

뜯는 젖소와 양들-집주인은 보이지 않는다.

도회지에서 멀리 떨어져 음악회다 전시회다 쇼핑이다 이런 도시인들이 누리는 삶의 오락거리가 없는 농촌의 삶

속에서 그들은 어떤 순간들에 행복을 느끼며 살까?


일명 <크리스탈 동굴>이라 불리는 <소금광산>-길이 300km 깊이 3000m  9층으로 된 갱 안에 두 형제와 한 명의

광부가 이루어놓았다는 <성안토니우스 성당>을 비롯, 소금광산의 수호신인 <킹가공주>를 모신 성당에는 소금으로 만든 상들리에가 반짝이고 있었으며 시설들이 <세계문화유산 1호>로 등록되어 연간 50억 이상의 순익을 올리는 관광 상품이 되고 있다니, 앞서 산 사람들이 후손에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가, 자신을 돌아본다.

-얼마나 영리한 사람들인지 독일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광산 안에 생뚱맞게 <괴테> 동상을 세워놓았고 광산 코스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빛의 쇼를 하면서 <쇼팽>의 이별곡을 들려준다.-폴란드의 자존심? 

폴란드는 시련의 역사 끝에 1989년 사회주의 국가의 체제에서 벗어났다.


크라쿠프 시내로 들어와 구시청사를 돌아보고 바오로 교황 2세가 미사를 집전했다는 성당에 들어,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마음을 비우고 돌아나왔다. 사실은 낮부터 우리 꼰대가 골이 나서 돌아다녀 나도 마음이 상한 채로

돌아다녔었다.

 비옥한 농촌

 

 소금으로 만든 <성안토니우스 성당>

 

 구시청사

 

 바오로 교황2세가 미사 집전한 성당



제 6일  5월14일 월

-아우슈비츠, 히틀러와 공범자들-


500년 동안 폴란드 왕이 거처했던 <바벨성>을 보고 은회색의 중세건물들로 둘러싸인, 유럽광장 가운데서 가장 규모가 큰 <중앙광장>을 한 바퀴 돌고 오쉬비엥칭으로 이동하다


“Arbeit macht frei(일하는 자 자유로워라)”

아우슈비츠 정문에 독일어로 씌어진 문구

아우슈비츠에서는 사진 촬영을 하지 않기로 했다.

묵묵히 유품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2차 대전 때 희생자가 5000만 명으로 2000만 명 이상이 러시아인이고 폴란드인의 1/5인 600만이 희생되었는데

이곳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사라진 사람들은 모두 450만으로 120만이 유대인이었고 그밖에  집시 80%, 독일의

반전 세력, 장애자, 유럽의 엘리트, 동성연애자, 여호와의 증인 등이었는데 유럽의 동서남북에서 화물차에 실려

왔다고 한다.

이곳 폴란드에 유대인이 많았던 이유는 폴란드의 까즈미 시대 왕이 유대인에게 허용적이었기 때문이고 왕은 그들의  富를 적절히 활용했다고 한다.


**똑같은 모양의 안경과 이지러지고 바스라진 안경테

**제각각의 모양과 빛깔은 오래 전에 잃은 채 모두가 잿빛인 어린애 신발들, 산더미 같은

*갓난애 배냇저고리, 손바닥만한 털조끼 더미

**의수, 의족, 목발, 지팡이 더미(히틀러의 말살 대상에 장애인이 들어있었다)

**흑발, 금발, 아마빛깔이었을, 이제는 모두가 하얗게 바랜 머리털 더미(독가스가 지나가면 이리 된단다) 그 머리털로 짠 양복들이 고가에 거래되었다고

**생체실험 대상이 되어 생식기를 잘린 네 명의 소년들

**빗 더미, 면도기 더미, 구두약 더미, 가방 더미, 한 통으로 1400명을 죽였다는 빈 독가스 통 더미

**가스실-독가스를 마시면 15~20분 후에 절명하게 된다. 인생 오십 육십 년 산 동안보다 더 길었을 처절한 순간이, 그을린 벽에 피맺힌 손톱자국으로 남았다.


말을 잃게 하는 현장-여기저기서 소리 없이 눈물을 찍어낸다. 내 메마른 가슴에도 눈물이 번졌다.


이곳을 방문한 유대인들이 품는 의문점:

1. 41~44년의 4년간 이곳에서 만행이 저질러지고 있을 때 소위 말하는 우방연합군은 무얼 한 걸까?

왜 폭격 한번 하지 않은 걸까?

2. 미영불의 공동의 적 러시아의 슬라브족, 폴란드인, 종교지도자, 유대인, 장애인, 정치범들이 지상에서

사라지는 걸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한 걸까?

그들의 묵인 없이 어찌 유럽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자행될 수 있단 말인가?


폴란드는 지도상 유럽의 한가운데 있어 북유럽에서 20시간 동안 화물차로 실려온 사람들은 현지에 도착했을

때는 1/4이 이미 사망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악몽에서 벗어나 약 6시간 후에 드디어 체코 프라하에 도착.

오늘도 별 셋짜리 <SANTON BRNO HOTEL>에서 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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