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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 걷기 여행-

맑은 바람 2009. 2. 19. 16:48

 

<제주 걷기 여행>-서명숙(시사저널,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지냄) 

 

 

436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을 지루한 줄 모르고 읽어냈다.

작가의 글솜씨도 글솜씨려니와 미지의 제주 지역들과 그곳 사람들의 삶, 그들의 전통음식 또 제주방언의 감칠맛 등이 날 꼭 붙들고 갔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통해, 사투리에 대한 나의 편견을 씻고 전라방언의 매력에 빠져든 일이 새삼스레 생각난다.

 

그녀의 현재는 ‘예정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제주에서 태어나 가장 예민한 시기를 제주에서 보내면서 제주문화를 익히고 도시로 가 글로 먹고 사는 생활을 하며 신산한 세월을 겪은 후 <산티아고>를 가게 되고, 그곳에서 제주올레의 씨앗을 품고와, 생후 반 백 년을 바라보는 나이에 마침내 ‘제주올레’를 만들게 된 일- 

 

읽는 중에 다음 주에 떠나는 제주행 배표를 끊어놓았다.

해마다 이맘때면 봄기운이 일어 어딘가로 한번 출동을 해야 직성이 풀려, 먼 바다 건너로 갈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사회분위기도 그렇고 내 사정도 호락호락한 건만은 아니어서 생각을 바꿨다.

 ‘제주올레’ 한두 코스를 걷거나 또는 자전거로 달려보리라.

 

***익혀두었다 써보고 싶은 사투리들;

1. 좋아나수광?(좋나요?) 2. 걸어보게마씸(걸어봅시다) 3. 간세다리(게으름뱅이) 4. 사람구경도 허곡 말도 곡곡허젠 나왐시네(사람구경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려고 나왔지) 5. 예, 삼촌, 알아수다 경허쿠다(예, 어르신 알았어요 그럴게요) 6. 뭐 햄시냐?(뭐 하냐) 7. 햐, 어떵 찾자시냐(아, 어떻게 찾았니?) 8. 마음 아팡 죽어지크라(마음이 아파서 죽을 뻔했어) 9. 경허민 겅해사주(그러면 그래야지) 10. 무사?(왜?) 11. 어떵 그추룩 말 잘햄시니?(어떻게 그렇게 말을 잘하냐?) 12. 잘도 틋냄쩌이(잘도 기억해낸다) 13. 배또롱(배꼽) 14. 맨도롱(뜨뜻 미지근) 15. 블란디야(반딧불) 16. 하영(많이) 17. 니영나영(너하고 나하고) 18. 알아수광?(알겠지요?) 19. 눈이 잘도 곱닥허게 왐쩌게(눈이 참 곱게 오는구나) 20. 이추룩 하염없이 걸어시민 좋기여(이렇게 하염없이 걸었으면 좋겠다)


<꼭 맛보고 싶은 음식들> 1. 할망뚝배기(서귀포부둣가) 2. 자리젓 3. 몸국 4. 갈칫국 5. 제주순대(서귀포 5일장 놀부네집) 6. 고기국수(서귀포 동문 로터리 고향생각) 7. 돼지갈비(제주항) 8. 유죽

 

제주올레 www.jejuolle.org

 

 

[좋은 글귀들]

 * 마라도(사진작가 김 영갑이 사랑한 마라도)

그대, 삶에 지쳤는가, 한번쯤 삶의 줄을 놓아버리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가, 그러면 마라도로 가보라. 마라도 바닷가, 눈이 베일 것처럼 수평선만 가로지른 그곳에 한번 서보라.

* 도보여행은 오감을 만족시키는 여행이다.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라이브 음악으로 들으면서, 목덜미를 간질이는 해풍을 느끼면서, 꽃향기를 흠흠 맡으면서, 풀 섶에 숨은 산딸기와 볼레낭 열매를 따먹으면서, 나비의 미세한 날갯짓까지 지켜보는 즐거움이란!


* 엄마와 일곱 살짜리 아들이 올레 6코스를 걸으며 나눈 대화:

“엄마, 여긴 하느님에게 칭찬을 참 많이 받은 곳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건데?” “칭찬을 많이 받았으니까 이렇게 아름다운거지요.” “아름다운 게 뭔데?” “빛나게 예쁜 게 아름다운 거예요.


* 비양도에서

바다가 한쪽만 보이더니 양쪽으로, 나중에는 사방에서 보였다.

탄성이 흘러나왔다. 근심과 걱정은 저만치 밀쳐둔 채 점점 풍경에 녹아들어갔고 마침내는 우리도 풍경이 되었다.

드디어 비양봉 정상. 에메랄드빛 바다가 사방에 펼쳐졌다. 세상에서 가장 넓은 비단폭을 팽팽히 당겨놓은 듯했다.

--어른인 나는 바다를 까맣게 잊고 살았지만 내 안의 어린아이는 바다를 늘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다시는 너를 불쌍하게 놔두지 않을게. 가끔은 하늘도 올려다보고 노을도 지켜보게 해줄게. 이곳 바다와 하늘을 두고 너에게 약속할게.”

 

* 걷기예찬

적어도 걷는 순간만큼은 ‘강 같은 평화’가 찾아들었다. 걷기는 마음의 상처를 싸매는 붕대, 가슴에 흐르는 피를 멈추는 지혈대 노릇을 했다.

자연이 주는 위로와 평화는 훨씬 따뜻하고 깊었다. 보이지 않던 꽃들이, 눈에 띄지 않던 풀들이, 들리지 않던 새소리가 천천히 걷는 동안에 어느 순간 마음에 와 닿았다.

개화산 산책은 육체를 단련하는 시간일뿐더러 정신을 샤워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걷기는 온몸으로 하는 기도요, 두발로 추구하는 禪(선)이었다.

 

* 산티아고 가는 길에

풍경과 사물에 집중하노라니 흩어진 마음과 떠돌던 생각은 어느덧 ‘지금’ ‘이곳’에 머무르게 되었다. 귓전을 맴돌던 휴대전화 벨소리가 어느 때부터인가 사라졌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세상과 연결된 풀러그를 뽑아버린 채 나는 언플러그드 세계로 완전히 이동한 것이다, 자연만이 휴식을, 느림만이 평화를 줄 수 있다는 걸 비로소 깨달아가고 있었다.

 

* 포도주가 숙성하는 계절이 있듯이 생각도 익는 시간이 따로 있는 걸까. 이글거리던 태양의 위세가 한풀 꺾이고 짐승들도 제집으로 돌아갈 무렵, 홀로 길을 걷 는것은 行禪(행선)이요, 묵상이요, 기도였다.

 

* 제주올레가 태동하는 순간

헤니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참 행복했고 많은 것을 얻었어. 그러니 그 행복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줘야 한다고 생각해. 누구나 우리처럼 산티아고에 오는 행운을 누릴 순 없잖아. 우리, 자기나라로 돌아가서 각자의 까미노를 만드는 게 어때? 너는 너의 길을, 나는 나의 길을.”

머리에 번개를 맞은 기분이었다. 제주 올레의 씨앗이 뿌려진 순간이었다.

 

*제주 올레 6코스에서 다섯 살배기와 엄마의 대화

“엄마-- 너무 아름다워요.”

“어? 으응-- 응. 그러네. 근데 아름다운 건 어떤 거예요?”

“아--그건요, 예쁘다가 다섯 개 있는 거예요!!”

 

* 자연에는 똑같은 장면과 똑같은 사물이 단 하나도 없다.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살아있는 동영상이다.